사람을 가장 성장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는 시련이 아닐까 한다. 시련을 겪은 사람만이 외적, 내적으로 넥스트 레벨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어로들의 서사를 통해 증명된다. 그들이 빛나는 이유는 그들에게 닥친 시련, 다른 말로는 그들의 시련을 안겨준 빌런이 존재하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히어로 장르에서는 그들만큼 다양하고 입체적인 빌런이 등장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히어로만큼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는 빌런들을 유형별로 정리해본다.


가족끼리 왜 이래, 가족이 원수형

옴 마리우스 – 아쿠아맨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지상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아틀란티스의 왕, 옴 마리우스는 이부형 아서 때문에 다른 왕국의 왕들에게 정통성을 의심받는다. 지상 정복을 발판으로 오션 마스터를 노리고 있던 옴에게 아서의 존재는 눈엣가시이자 그저 부숴버려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서는 불난 옴의 마음에 부채질하려 친히 아틀란티스까지 등장하고 만다. 이로써 서로를 마주한 이 형제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그는 이글거리는 야망을 비교적 나이스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왕으로서의 위엄, 형에 대한 증오 등 다양한 면을 낱낱이 보여준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차가운 옴이 지상 세계와 형을 증오하게 된 근본적인 계기는 어머니, 아틀라나의 죽음 때문이라는 설정! 자칫 권력에 대한 야망만 부각되어 평면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캐릭터에 가족애라는 인간(?)적인 면과 그의 분노가 어린 시절 세뇌된 편견으로 인해 생겼다는 오해가 밝혀지며 어딘가 마음 쓰이게 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대두된다.


헬라 – 토르 : 라그나로크

이미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헬라는 오딘의 첫 번째 자식으로 토르가 태어나기 전 오딘과 신나게 다른 나라를 정복하며 죽음의 여신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증명해낸 인물이다. 동생 토르의 탄생 후 평화로운 시대를 원하는 오딘에 반대하자 수천 년을 봉인당했다. 그는 쌓아온 분노와 살인에 대한 욕망을 아버지 오딘이 죽자마자 모두 분출하기 시작한다. 아스가르드로 귀환한 헬라는 잃어버린 힘을 완벽하게 되찾으며 위대한 정복의 행렬을 이어가려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백성들을 힘으로 다스린다.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막으려는 이복동생 토르도 그는 가차 없이 압도한다. 토르의 한쪽 눈을 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야 아버지와 닮았다는 농담을 남기는 여유로운 모습까지! 강력한 파워를 선보이며 최종 보스의 면모를 자랑한다. 누구에게도 자비 없이 잔인하지만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모습 때문에 매력적인 빌런의 대명사로 꼽힌다. 또한 망치를 잃고 방황하는 토르를 신으로서 각성하게 하고, 헬라의 등장 전 삐걱거리던 토르와 로키가 힘을 합쳐 아스가르드를 지켜내는 계기를 조성하며 극에 큰 줄기를 만들어낸다.


주먹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어벤져스를 분열시킨 지능형 빌런, 제모 -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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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비아 특수부대 출신인 제모는 치밀한 준비와 인내심 그리고 시간을 쏟아부어 어벤져스의 몰락을 위한 방법을 물색한다. 그의 범행 동기는 소코비아 사태 때 잃은 가족에 대한 복수로, 어벤져스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표였다. 군인 출신이긴 하지만 슈퍼 파워가 없기에 다수인 어벤져스를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하기엔 무리였을 테니, 그는 다른 방법을 고안한다.

제모가 대부분의 빌런들과 확연히 다른 차별점은 한 번도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어벤져스에 가장 큰 균열을 만들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분석한 제모는 윈터 솔져 시절의 버키가 토니 스타크의 부모를 살해한 사실을 이용한다. 이 어두운 과거를 중심으로 그는 어벤져스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할 처절하고 빽빽한 계략을 쌓아간다.

그가 만들어낸 가장 임팩트 있는 함정은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윈터솔져, 버키를 세상 모두가 찾게 만든 것. 버키로 위장해 UN 회의장에 테러를 일으켜 공개수배를 유도하고, 잠들어 있던 윈터솔져의 자아를 깨어나게 한 것은 전무후무한 아이디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제모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예측하고 어벤져스 멤버들의 리액션을 유도한다. 이것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하는 지략가의 면모를 보여주며 똑똑한 빌런의 매력을 여과 없이 선보였다. 복수의 과정에서 제 손에는 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았으니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보다 더 냉정할 순 없다! 극악무도형, 센티넬 –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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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세계관에 등장하는 무기로, 뮤턴트를 제압하기 위한 용도로 끊임없이 발전해 온 병기이다. 뮤턴트를 적대시하고 혐오하는 트라스크 박사의 역작으로, 오직 뮤턴트만 공격하고 뮤턴트만 상대한다. 세대가 흐를수록 센티넬은 발전하는데, 타인의 외모와 목소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레이븐의 유전자를 이용하여 세상에 없는 극악무도한 빌런으로 완성된다.

위에 언급한 레이븐처럼 모든 뮤턴트들은 각자의 능력을 타고났는데, 센티넬은 그 모든 능력을 흡수하여 뮤턴트들을 무력화 시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속을 다루는 매그니토의 능력에 대비하여 센티넬은 금속이 전혀 이용되지 않았다. 고로 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뮤턴트들은 센티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자신들에게 경고하는 것뿐이다.

센티넬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능력 있는 뮤턴트(히어로)들이 센티넬에게 잔혹하게 몰살되니, 다른 히어로물에서는 본 적 없는 암담한 전개이다. 엑스맨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들은 찰스와 매그니토마저 힘을 쓸 수 없는 현실이 꽤 무기력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주인공과 육체적,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다른 빌런들과 다르게 감정이 전혀 없고 오로지 입력된 목표인 뮤턴트 학살만을 수행하며, 수준이 다른 신체 능력을 자랑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 뿌리 깊은 나무형, 히드라 –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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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주요 빌런으로,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집단이다. 히틀러의 지원을 받은 요한 슈미트가 만든 집단으로 그 세력은 현재까지 지하 세계에서 암암리에 힘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퍼스트 어벤져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눈에 띄게 영리하거나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매력 없는 빌런이었다.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다.

히드라 멤버들은 2차 대전 이후 모두 박멸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의를 위한 단체 쉴드에까지 넓고 깊게 잠식되어 있었다. 닉 퓨리를 포함한 고위 쉴드 요원들 또한 처음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니, 굉장히 위협적인 빌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머릿수에서 나오는 무시 못 할 정보력으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사람들의 정보는 모조리 꿰고 있었으며, 오랜 시간 배후에서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여러 사건들을 조종해왔다. 쉴드는 이런 악의 무리를 막기 위해 존재하였지만, 사실은 히드라의 도구일 뿐이었다.

자신들의 어긋난 신념과 소속 집단을 위해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분한 히드라의 멤버들은 겉으로는 여유롭고 유해 보이지만 속은 냉혹하고 무자비한 빌런이다. 그들의 이런 이중생활이 히어로들을 깜빡 속아 넘어가게 만들며 위험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빌런으로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이후 모두 사라졌길 바라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친 쥐들이 많을 터, 앞으로 나올 영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기대가 증폭된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