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카론은 어디에!

미스터 윅은 시리즈 시작부터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사람을 죽여왔다. <존 윅> 1편(2014)에서 1시간 41분 동안 77명을 죽였고, <존 윅: 리로드>(2017) 는 2시간 2분에 걸쳐 128명을 지옥으로 보내는 이야기이며 <존 윅 3 : 파라벨룸>(2019)에서는 2시간 10분의 시간 동안 85명을 제거한다. <존 윅 4> (2023)는 본디 시리즈의 5편과 동시에 촬영하는 것이 기획 포인트였으나 한 편으로 줄이는 바람에 러닝타임이 길어졌다. 이번엔 무려 2시간 49분 동안 약 150명 정도를 죽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그는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 것이다.

키아누 같은 뱀파이어가 영생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


1~3편 보고가야 하나요?

사실 시리즈의 시작은 많은 제작사에서 문전박대 당해왔다. 자기 개를 죽인 자를 쫓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여자 때문에 은퇴한 전직 킬러야. 하지만 개 한마리 때문에 다시 손에 피를 묻히고 마피아 조직을 박살내. 그런데 킬러들의 활동을 위한 호텔 체인이 있고 여기선 살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 이거, 뭔가 장르 코미디의 시놉시스를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시놉시스로 만든 영화는 끝내 제작비 대비 4배를 벌어들였다.

이윽고 마피아를 박살 낸 존 윅이 속한 세계에는 12명의 간부로 구성된 최고회의가 있다. 모든 킬러는 그 밑에 속해 있으며 그 아랫 단위엔 '패밀리'가 있는데, 윅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프리랜서다. 실은 최고회의는 존 윅이라는 킬러 한 명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설화적 존재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 여기까지가 3편까지의 핵심 라인이다.

이 두 컷으로 그의 위용은 설명 끝이다

지금까지의 존은 상대를 죽이는 세계에 속하는 것만이 중요해 보였다. 그러나 4편으로 넘어 오면서 계층이 존재하는 한, 사회는 곧 조직의 굳센 규율과 원칙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것은 킬러들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존에게 있어 목숨에 대한 명분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히트맨(청부살인업자)이라 할지라도 규율과 원칙을 위반하는 데는 확실한 구실이 있어야 세상의 진정한 생존자가 될 수 있다는 면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그는 마치 언덕 대신 계단을 오르며 형벌을 받는 시지프스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계단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존을 계속 살아가게하는 삶의 준동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지는 진정한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최고회의가 제안하는 '규율과 원칙을 어기는 명분'을 물리쳐야 규율과 원칙에 종속되지 않는 역설을 추구 할 수 있는 것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굉장한 부감샷은 게임 <핫라인 마이애미>(2012)를 연상시킨다(감독피셜로는 <홍콩 대학살>(The Hong Kong Massacre)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연출자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주인공(네오 역) 키아누 리브스의 대역 스턴트 맨이었으며, 동양무술 전문 무술감독이기도 했다. 90년대부터 스턴트계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스타헬스키 감독은 이소룡의 아들인 브랜든 리가 출연한 <크로우>(1994)에서 그 대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스타헬스키는 <불릿 트레인>(2022)의 연출이자 <존윅> 1편(2014)에서 공동감독이었던 데이빗 레이치와 할리웃 배우들의 스턴트 훈련을 위한 전문 스튜디오, 에이티-세븐 일레븐(87eleven)을 만들기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존 윅의 탄생을 위해 건푸(Gun fu, 총+쿵푸)를 적용한다. 심지어 그들은 건푸를 뛰어넘는 <존 윅> 시리즈의 전매특허인 건짓수(gunjitsu, 총+주짓수)를 만들어 선보인다. 격투기 장면이 돋보이는 <워리어>(2011)와 총격이 멋진 <헤이 와이어>(2011) 등의 영화를 만든 경력의 팀다운 아름다운 퓨전인 것이다. 이런 계열의 시조가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1989)임을 생각하면, 채드 감독이 아시아권 영화에서 받아온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건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건카타'의 대명사 <이퀼리브리엄> (2002)

장르물이라는 그릇

액션이라는 서사의 장르는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히 담는 그릇이 된다. 액션이라는 비현실에 집중하려면 현실이라는 기반에 먼저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그럴듯함'이 아니라 '저런 세계'가 작동하는 내적 논리를 일컫는 것이다. 즉,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중요한 것은 마법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마법을 토대로 한 사회는 어떤 모습이며 그 설정이 소년소녀의 성장을 보여주는 기반이 되느냐이다.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범죄 조직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지역과 영업스킬을 기반으로 꽤나 안정적인 사업을 꾸리고 있지만 음의 세계라는 업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리스크가 존재할 것이다. 즉, 킬러라고 하는 회사원들의 윤리관은 없거나 제멋대로인 것이다. 그러니 이들에겐 '규율'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유지하는데 가장 많은 공력을 쏟는 세계가 존재한다. 킬러들의 세상이라는 설정은 세상에 없지만, 가상의 사회의 동력은 우리가 내적으로 공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존 윅> 시리즈는 이런 세계를 만드는 데 꽤 심혈을 기울인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구요, 액션이 끝내주면(=현실적이면) 된다”는 평가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세계를 만드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세계관이라는 그릇을 빚는 데는 많은 공력을 쏟아야 한다. '암살자의 기업화'를 그리는 또 다른 영화, <길복순>(2023) 같은 경우는 이러한 세계를 만드는 데 힘겨움이 역력하다. 멋진 미장센을 배치하고 특급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율에 따른 엄벌' 같은, 설정에 필수불가결한 철학이 아닌 각자의 양심에 기댄 신뢰를 바탕으로 하니 그 구축력이 헐거워지게 된다. 암살이 주업인 기업이, 배우자 외도를 해결하는 흥신소처럼 작동한다.

실은 한국사회 자체가 규율, 규범 및 그에 대한 신뢰와 복종, 엄정하고 상식적인 법집행이 힘을 가지는 사회는 아니다. 법조인을 향한 신뢰보다는 불신이 강하며, 사법보다는 개인의 퇴치가 더욱 필요하다고 느낀다. 실제로 변호사들의 80%가 전관예우의 벽 앞에서 좌절한다지 않는가. 힘이 있으면 규범 따윈 안 지켜도 된다는 인식은 무의식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지만, 조직(회사 등)이 민주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범택시> 같은 컨텐츠가 흥하는 것은 이런 면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규율보다 강한 어떤 것이 있다.

그럴듯함을 향해

<존윅4>의 전령(클랜시 브라운)은 “사람의 야망은 그 사람의 가치를 넘어서서는 안된다”고 했다. (대중)영화가 가질 수 있는 야망은 그 사회의 가치를 넘을 수 없다는 논리에 견주어보면 그럴듯하게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한국 컨텐츠는 <존 윅> 같은 세계관엔 약한 덕분에 <더 글로리>처럼 땅에 붙은 듯한 복수극은 강하다. 척박한 토양이지만 가공의 영토를 만들어 한국에서도 그럴듯한 킬러 무비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