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의 영문 타이틀은 'BEEF'다. BEEF, 소고기만 뜻하는 게 아니다. '불평하다'라는 의미를 가졌고, 속어로는 '싸움'을 뜻한다. 드라마는 제목 그대로 사소한 계기로 분노 버튼이 눌린 두 사람,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벌한 복수극을 다룬다. 서로의 삶과 인간관계를 갉아먹으며 파국으로 치닫는 이 블랙코미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인간들의 막장 싸움극 아니냐고?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것은 분노, 공허, 그리고 삶의 의미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다. 각 에피소드 제목들에 담긴 의미도 심상찮은데, 감독 이성진은 영향력 있는 텍스트와 영화를 참조해 에피소드에 맞는 제목을 만들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성난 사람들> 회차별 제목과 연관 텍스트를 정리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니, 직접 드라마를 보고 의미를 곱씹자. 1화~5화 제목에 얽힌 의미 소개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6화 마법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성난 사람들>

사람은 마법의 원을 그리지, 자신에게 안 맞는 것들이 못 들어오게.

삶이 원을 깨면 자신이 우스워지지.

그래서 새 원을 그리는 거야.

잉그마르 베르히만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中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에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카린(해리엣 안데르슨)은 유명 작가인 아버지 데이비드(군나르 비욘스트란드)가 자신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관찰해 소설에 인용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심한 착란 상태에 빠진 그녀는 남동생 프레드릭(라스 패스가드)을 유혹한 뒤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다. 예술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도피하는 삶을 살아온 데이비드는 비극적 사건 앞에서 비로소 '마법의 원' 속으로 숨기 바빴던 자신의 이기적 예술 활동을 되돌아본다.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에서 발췌한 6화의 제목은 우리의 삶이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할 때,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에이미는 자신이 구축한 '마법의 원' 안에 갇혀 있다. 원 안에 숨어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대니에게 돌리기 바쁜 에이미의 모습에 가족을 외면하고 예술로 도피했던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의 비겁한 아버지 데이비드가 겹쳐 보인다.


7화 나는 새장이라네

<성난 사람들>

나는 새를 찾는 새장이다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의 잠언집 카프카의 아포리즘에서 발췌한 이 문장은 인간을 끊임없이 의미를 찾는 빈 그릇으로 묘사한다. 인생에 방향과 의미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대니와 에이미는 마치 빈 새장 같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대니는 새를 찾아 교회로 달려가고, 회사 매각 거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에도 에이미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끌어안고 산다. 오랜만에 교회에 나간 대니가 찬송을 듣다가 눈물을 쏟는 장면과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 에이미의 모습은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리한 외로움과 고단함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8화 독창적인 선택의 문제

<성난 사람들>

한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은 항상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기초한다. 그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여한 성격,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경험 세계에서 도덕적 태도의 동기를 끌어낸다. 이제 아이는 이 성격과 경험 세계가 어떻게 발전될지 모른 채, 그것을 조금씩 구축해 나간다. 아이는 자신이 경솔하게 행사하고 있는 이 자유의 불안한 측면에 대해 무지했다. 그는 조용히 변덕, 웃음, 눈물, 분노에 몸을 맡겼다. 마치 내일도, 위험도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그에게 남겼다. 독창적인 선택의 문제 평생에 걸쳐, 순간순간 계속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 「애매함의 도덕에 관하여」 中, 필자의 번역으로 오역 가능성 다분함.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의 책 제2의 성」에서 여성이 ‘여성’이 되는 과정을 아주 어린 시절인 유아기 때부터 분석하며 성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보부아르는 그의 다른 책 애매함의 도덕에 관하여에서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과거 경험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환기한다.

애매함의 도덕에 관하여」에서 영감을 받은 8화의 제목은 어둠 속에 갇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길 제안한다. 에이미는 정착 초기 늘 다투던 부모 밑에서 성장하며 내면의 어둠을 키웠고, 이방인으로 자란 대니는 동생마저 잃을까 두려워 그의 대학 입학허가서를 몰래 버린 과거로 죄책감을 안고 산다. 과하게만 보였던 이 둘의 분노가 비로소 납득이 된다.


9화 환상을 만드는 것

집착은 환상을 만들어 낸다. 실재를 원한다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시몬 베유의 책 「중력과 은총」 中

「중력과 은총」에서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일종의 상실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을 탐구한다. 9화에서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 형이 자신의 대학 입학 허가서를 버린 사실을 알게 된 동생은 대니를 떠나고, 강도 사건이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자 조지는 딸 주니(레미 홀트)를 데리고 에이미를 떠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상실을 경험한 후에야,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자초한 혼란을 직시한다.


10화 빛의 형상

서로에게 악담을 하다 비켜달라는 다른 운전자에게 합심하여 '쌍욕 앙상블'을 퍼붓는 두 사람

사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습니다.

칼 구스타프 융

마지막 에피소드 제목 ‘빛의 형상’은 칼 융이 썼던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어두움을 의식하면서 온다”의 일부로 이성진 감독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장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말했다. 상대방 욕실에 오줌을 갈기고, 차량을 부수고, 납치, 강도질도 모자라 총격전으로 치달았던 복수는 사실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이해하기 위한 과격한 여정이었다.

대니와 에이미는 각자의 이유로 인해 불행했고, 종종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K-장남' 대니는 부모님과 백수 동생을 건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렸다. 에이미는 백인 부자 친구들 앞에서는 '선불교의 온화함을 지닌' 동양인 친구를 연기했지만, 불행했던 유년 시절은 그녀의 내면에 어둠을 심어 놨다.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던 두 사람은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도 몰랐다. 매번 희생하지만 그 누구도 진실로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대니와 에이미는 동족이다. 비슷했기에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했다. 하지만 가면을 벗고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둘은 즉각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각자의 영혼이 몸체를 바꿔 독백하는 장면은 둘 사이의 온전한 이해의 순간을 표현한다. 참 힘들었지만, 대니와 에이미는 마침내 하나로 포개진다.


10화에 걸쳐 <성난 사람들>의 이성진 감독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될만한 걸출한 텍스트를 펼쳐 놓는다. 언제라도 버튼만 눌리면 터져버릴 분노를 안고 사는 당신, 대니와 에이미처럼 변화하고 싶다면 에피소드 제목에 얽힌 텍스트들과 영화를 찾아보자. 소모적인 복수극 없이도 우리는 좋은 글과 영화로 변화할 수 있으니.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