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의 날이 밝았다. 코로나19 이후로, 극장 내 마스크 착용 의무와 취식 제한이 풀린 첫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말대로, 마침내 더욱 자유로워진 영화인들의 축제. 특히 올해는 ‘축제성’을 강화한 현장 분위기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축제의 현장에 기자도 발 한 발짝을 슬쩍 들여놔봤다.

사진=씨네플레이


다르덴 형제부터 휠체어를 탄 할머니, 스타워즈까지… 경계 없이 다채로움으로 채운 레드카펫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 감독 다르덴 형제(왼쪽), 박해일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앞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에는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의 감독 ‘다르덴 형제’ 장-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부터 개막식 사회자인 배우 진구와 공승연,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섹션’에 참여 예정인 박해일, 코리안시네마 부문 상영작 <모라동>의 이동휘, <로스트>의 이수혁, <파미르>의 이주승, 장동윤 등이 참가해 자리를 빛냈다. 다르덴 형제는 포토월에서 k-하트(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기도.

<옥순로그> 김나연 감독(아래 왼쪽), 김옥순 할머니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최고령 레드카펫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코리안시네마 부문 상영작 <옥순로그>의 주인공 옥순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80대 중반에 들어선 옥순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어, 그의 손녀 김나연 감독은 어릴 적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옥순로그>를 연출했다. 추억을 만들고자 시작한 <옥순로그>는 할머니와 손녀를 레드카펫으로 인도하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스타워즈> 캐릭터들도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 속 인사말 “May the Force be with you”(포스가 당신과 함께 하길)와 발음이 비슷한 5월 4일은 ‘스타워즈의 날’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제 기간에 <스타워즈> 팬덤을 위한 '특별 상영: 스타워즈 데이' 행사를 준비했기 때문. 관객들과 악수하며 레드카펫을 거니는 딘 자린과 그로구, 스톰트루퍼, 츄바카, 다스베이더의 모습은 절로 카메라를 꺼내게 했다.

<스타워즈> 캐릭터들도 레드카펫을 밟았다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선을 넘는 전주다운 개막식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 등으로 해외에서 더 유명한 세계태권도연맹 사범단의 축하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송판 하나하나가 격파될 때마다 관객석 곳곳에서 놀라움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들이 발차기하며 경쾌하게 박살낸 송판 조각들은 마치 꽃가루처럼 사방에 흩어져 영화제의 개막을 화려하게 축하하는 듯했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진구(왼쪽), 공승연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의 사회는 배우 진구와 공승연이 맡았다. 진구는 스스로를 '선을 넘는 배우'라고 말하며,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을 강조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선도 넘고, 공간도 넘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그간 영화의거리에 위치한 ‘전주돔’에서 개·폐막식 등의 공식행사를 진행해왔으나, 이번에는 덕진구에 위치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개막식을 개최하였다. 비단 영화의거리 일대가 아닌, 전주시 전역으로 영화제 공간을 확장하고, 각 공간의 역할을 강화해 전주를 거대한 축제 현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주최 측의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어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 상영 전, 장-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감독이 무대에 올랐다. 다르덴 형제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위해 최초로 내한했다. 다르덴 형제는 “<약속>(1996)부터 (우리의) 모든 작품이 한국에 배급된 걸로 알고 있다”라며, “(그 덕분에) 한국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한국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또, 개막식에 참석해 함께 자리한 한국 신인 감독들에게는 “꼭 유명해지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라고 조언을 전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다르덴 형제의 <토리와 로키타>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은 단지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를 넘어, 올해 영화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존재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늘 독립·대안영화를 발굴하는 장으로써 기능해왔다. 그간 실험적이거나 파격적인 영화까지, 경계와 구분 없이 선보이며 영화라는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자 노력한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도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다큐멘터리로 시작해 극영화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하며 사회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해온 다르덴 형제 초청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토리와 로키타>는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이민 온 소년과 소녀가 서로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나가는 과정을 꼼꼼하게 담아내, 현재 유럽에 닥친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낸 영화다.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그간 작품들처럼,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소외된 인물의 이야기다.

개막작 기자회견에서 작품을 설명 중인 다르덴 형제.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다만, <토리와 로키타>는 다르덴 형제의 기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우정'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남매 못지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 탄탄한 우정으로 연결된 토리와 로키타의 관계는 너무나 숭고해서 다소 판타지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의 우정은 그와 정반대에 위치한 사회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장-피에르 다르덴 감독.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다르덴 형제는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아이의 우정을 그려보고자 했다.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있더라도, 이 아이들의 우정이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를 그려내고 싶었다”라며, “아이들의 우정은 어른의 더러움보다 훨씬 고결하다”라고 <토리와 로키타>를 연출한 의도를 밝혔다.


스크린이라는 벽을 넘어 토리, 로키타와 친구가 되는 경험

뤽 다르덴 감독.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다르덴 형제는 이번 <토리와 로키타>의 토리와 로키타를 연기 경험이 전무한 파블로 실스, 졸리 음분두에게 맡겼다. 기자회견에서 다르덴 형제는 이와 같은 캐스팅이 마치 ‘내기’와 같은 것이었다며,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기에 ‘내기’는 성공적인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한 다르덴 형제의 ‘내기’가 성공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연기가 훌륭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연기는 사실주의를 극대화한다. 낯선 얼굴, 연기인지 실제일지 모를 감정 표현. 그들이 화면 속에서 보여주는 감정과 행위는 극의 그것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다큐멘터리와 내러티브 영화의 경계에서 사회를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를 제작하는 다르덴 형제의 작품 세계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이다.

다르덴 형제는 “이 영화를 보며 관객이 마치 토리, 로키타와 친구가 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감정이 우정이다. 이들을 적이 아닌 친구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한다”라고 영화의 감상 포인트를 전했다.


글=전주 ·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