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의 설렘은 있다. 관객이라면 영화제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두근거림을 기억할 것이다. 이번 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도 그런 처음의 설렘을 안고 관객과 만난 배우들이 다수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권유리와 김재경이 아닐까 싶다. 각각 소녀시대, 레인보우 소속으로 걸그룹 활동을 거쳐 지금은 배우로도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권유리는 코리안시네마 섹션 <돌핀>으로, 김재경은 한국경쟁 섹션 <너를 줍다>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는데, 두 사람 모두 첫 영화제 행보여서 영화제의 중반이 지난 시점에도 GV 행사에 참석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의 출연작과 GV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간단하게나마 현장에서 전한다.
<돌핀>
나영(권유리)은 평생을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다. 엄마 정옥(길해연)과 이제 성년이 되기 직전의 동생 성운(현우석), 그리고 두 가족만큼 절친한 동료들까지 있는 이곳 생활이 나영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엄마가 재혼을 하고, 동생도 서울살이를 꿈꾸면서 나영의 생활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 제목 '돌핀'은 돌고래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볼링에서 도랑에 빠진 볼링공이 막판에 톡 솟아올라 핀을 넘어뜨리는 그것을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모습 같아 '돌핀'이라고 부른다(정식 용어는 아니나 감독은 누군가 그런 현상을 돌핀이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고 한다). <돌핀>은 나영을 중심으로 두 가지 전개를 취한다. 하나는 정옥이 그동안 살았던 집을 팔겠다고 하는 것, 그리고 하나는 나영이 얼떨결에 친 볼링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 덕분에 <돌핀>은 가족 드라마를 바탕에 두고 나영이 볼링으로 한 단계 변화하는 성장드라마까지 겸비한다.
보통의 가정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돌핀> 만의 독특한 지점은 하나 더 있다. 정옥, 나영, 성운. 정말 완벽한 가족 같은 모습의 세 사람이지만 사실 나영은 정옥의 친딸이 아니다. 영화는 이를 정확하게 설명하진 않지만 은연중에 세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복잡한 가족임을 꾸준히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GV에서도 이런 가족상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권유리는 “상황은 다르겠지만, 여느 가정에도 다 있을 법한 얘기”라고 말했다. 나영과 가족들이 심한 말다툼을 해도 다음날엔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듯 자신 또한 엄마와 싸우고 다음 날 같이 밥을 먹으며 풀리기도, 반대로 응어리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는 나영 가족의 형태가 자신도 낯설다고 느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새삼스럽지 않았고 각 캐릭터들을 연민으로 바라보게 됐단다.
(권유리는) 계절로 치면 가을 같은 배우
-배두리 감독
'배우들의 캐스팅' 관련 질문을 받은 배두리 감독은 권유리를 처음 만났을 때 '가을 같은 배우'라고 느꼈단다. 적당히 톤다운된 목소리가 좋았고, 대화를 나눠보니 굉장히 단단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런 단단하고 우직한 구석이 나영이와 닮아 보여서 권유리라면 나영의 그런 모습을 잘 살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배역을 맡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무한대로 변하는 배우가 될 것
-길해연
정옥을 맡아 권유리와 모녀로 호흡을 맞춘 길해연은 감독의 대답 이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한 권유리, 현우석의 '칭찬 타임'을 자처했다. 그는 권유리를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말한 후 “옆에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농을 덧붙였다. 길해연은 권유리가 “연기에 대한 에너지와 열정, 변화하고 싶은 욕구를 성실함으로 드러낸다”면서 “훌륭한 태도를 가진 배우라고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한대로 변하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길해연이 남긴 '현우석 칭찬'까지 전하자면, <돌핀> 전에 함께 한 <아이를 위한 아이> 촬영 당시 '쟨 나이가 몇 살이니' 생각했다고. 진득하게 연기에 목매는 모습이 꼭 할아버지 같았단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다시 만난 현우석이 “말랑말랑”해졌다며 “저번에 만났을 때랑 또 다른 모습으로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길해연은 “두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달라”면서 관객 호응까지 유도해 후배 배우들을 독려하는 대선배다운 모습으로 자리를 빛냈다.
오래 꿈꿨던 관객과의 대화, 감사하다
권유리는 GV 마지막 인사로 나영이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런 관객과의 대화(GV)를 오래전부터 꿈꿔왔는데 이렇게 자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덧붙였다. 길해연은 이날 GV 참석을 위해 본인도 서울에서 부지런히 왔지만, 권유리는 미국에서 왔다며 참석자 모두 GV에 참석하고자 열의를 불태웠음을 넌지시 전했다.
<너를 줍다>
지수(김재경)는 남들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진다. 그 쓰레기들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지수가 상대방을 미리 알아보는 자신만의 방식이다. 어느 날, 지수는 여느 때처럼 쓰레기봉투를 뒤지다가 쓰레기 버리는 방법마저 깔끔해서 '예의'가 느껴지는 한 남자의 흔적을 발견한다. 옆집 우재(현우)의 쓰레기봉투다. 지수는 우재에게 점차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마치 스릴러의 스토리처럼 느껴지는 <너를 줍다>는 의외로 한 여자의 고군분투에 가깝다. 남의 쓰레기를 분석하는 다소 소름 끼치는 일은 지수에겐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에 가깝다. 회사에서 유능하지만 집에선 쓰레기를 뒤지는 자신과 달리 쓰레기마저 깔끔하게 정리하는 상대가 궁금해질 수밖에. 지수와 우재의 만남은 로맨틱함과 긴장감이 뒤섞인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관객들을 점점 몰아간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도 어려운 문제
극중 지수의 이상한 버릇은 믿었던 상대가 준 배신감의 발로다. GV 현장에서도 심혜정 감독과 김재경 두 사람에게 '관계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김재경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어려운 문제가 사람과 사람과의 문제인 것 같다”며 “저도 가장 흥미로운, 또 어려운 소재가 사람이어서 연기라는 걸 재밌게 느끼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진정한 관계와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겠냐며 사뭇 진지한 시선을 털어놨다. 심혜정 감독은 웃으며 “나도 잘 모르겠다. 각자가 생각하시면 좋겠다”고 말한 후 “다만 그런 관계가 힘들어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 영화 이후 종이대본 안 받는다
극의 주인공 지수가 쓰레기를 뒤지는 모습이 자주 나오다보니 '두 분은 이 영화를 찍고 쓰레기를 잘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재경이 바로 “파쇄기를 구입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너를 줍다> 시나리오를 본 후부터 종이대본 받는 걸 가급적 피하고 있단다. 사실 종이대본을 파쇄하지 않고 버리면, 유출의 위험이 있기 때문. 심혜정 감독 또한 “예전엔 택배박스를 그냥 버리곤 했는데 이제는 (신상정보를) 매직으로 지워서 버린다. 지수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유쾌한 대답에 객석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영화제 처음, 초대해 준 전주영화제와 함께한 관객들에게 감사하다
영화제 참석이 처음인 김재경은 GV 마지막 인사로 <너를 줍다>를 경쟁작으로 선정한 전주국제영화제 측에 감사 인사를 보냈다. 또한 멋진 작품에 자신을 끼워준 심혜정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고, 심혜정 감독 또한 곧바로 배우님이 이렇게 훌륭하다며 화답했다. 김재경은 마지막으로 귀한 시간을 내준 관객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글=전주·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전주국제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