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핏줄보다 더 진한 마음으로 품은 가족과 집이 인생의 유일한 이유이자 즐거움인 30대 지역신문 기자 나영(권유리)이 갑작스런 엄마의 재혼과 동생의 독립선언으로 일상의 균열을 마주한다. 집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밖에 없던 나영은 어느 날 취재차 들른 볼링장에서 새로운 즐거움에 빠진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영은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
삶의 낯선 변화를 마주한 이들에게 따뜻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영화 <돌핀>(감독 배두리)이 3월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캐나다밴쿠버아시아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받았다. 특히 소녀시대로 아이돌계 ‘톱’을 찍은 권유리 배우가 <돌핀>의 여주인공 ‘나영’으로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다. 낯선 삶의 변화를 감당해가는 나영이를 섬세하게 연기해 호평받았다.
<돌핀>으로 장편영화 데뷔하는 배두리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15기 출신이다. 단편 <폐점시간>(2009), <놀이>(2010), <어젯밤>(2012) 등을 연출했다. 김자영 배우가 출연한 <어젯밤>은 한예종 졸업 작품으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되며 크게 주목받았다. 극적인 내러티브 대신 섬세한 심리 묘사가 탁월한 작품으로, 중년 여성의 삶을 묵직하게 그린 연출로 호평받았다.
배 감독은 첫 장편영화 <돌핀>에서 삶의 변화가 두려운 30대 여성이 볼링이란 스포츠에서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을 통해 용기를 얻어 세상으로 튀어 오르는 이야기를 담았다.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포착하는 따뜻한 시선과 밀도 있는 연출, 촘촘한 스토리텔링으로 지방 소도시의 현실 문제와 가족 관계를 균형 있게 담았다. 배두리 감독을 만나 영화 <돌핀>에 대해 들어봤다.

<돌핀>이 3년 만에 개봉합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1년 가을에 찍었으니 햇수로 3년이 되었네요. KAFA 저희 기수가 총 여덟 작품을 찍었는데요. 다른 영화들 개봉하고 기다리다 보니 좀 늦어진 감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3년 전에 찍었던 영화가 드디어 개봉한다고 하니 떨리기도 하면서 기분도 좋고 그러네요.(웃음)
2012년 단편 <어젯밤> 이후로 10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학교 졸업하고 외국에 잠시 있었어요. 더블린에 갔다가 2년 조금 넘게 머물렀고, 취직도 하면서 사회생활도 좀 했고요. 그래도 짬짬이 시나리오를 쓰려고 많이 노력하면서 보냈습니다.

<돌핀>은 어디서 출발한 영화인가요?
일단은 첫 시작은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자기만의 울타리 안에 사는 사람이요. 꽤 오랫동안 제 안에 갖고 있던 이야기인데요. 그런 사람에게 삶의 변화가 찾아왔을 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한번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개인적으로 제가 볼링을 접하게 되었어요. 볼링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고, 볼링을 이 사람에게 접목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이야기로 새로운 방향의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에는 얼마나 걸리셨나요?
쓴 기간은 겨울 한철이에요.
영화에서 볼링의 매력을 말하는 대사들이 많더라고요. ‘머리 비우는 데 좋다’라는 대사도 기억이 나고요. 감독님께 볼링은 어떤 매력이 있는 스포츠인가요?
뭔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잖아요. 술 한잔하고 재미로 치기도 하듯이요. 그런데 저는 좀 진지한 마음으로 치기는 했습니다. 선수가 되자는 것까진 아니지만, 볼링이란 스포츠 자체의 매력에 빠져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어요.
더블린에서요?
아니요. 한국에서요.(웃음)

권유리 배우도, 길해연 배우도 모두 입을 모아서 ‘나영’이랑 감독님이 ‘똑’ 닮아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시나리오에 자전적인 부분이 녹아 있나요?
일단 나영이의 가족사는 제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고 픽션입니다. 영화에서 나영이가 볼링에 빠지는 건 제 개인적인 것들이 녹아 있는 부분이고요. 전체적으로 주제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물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야기인데, 저 역시 한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볼링이란 스포츠를 만나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고요.
나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신다면요.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자기의 울타리를 스스로 쳐놓고 나가지 않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가진 걸 지키는 사람이니 보수적이라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살다 보면 변화가 찾아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에게 변화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자기만의 울타리를 넘어갈까 하는 모습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걸 나영이를 통해 그려보려 한 거고요.

나영이 직업을 ‘지역신문 기자’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실제로 나영이는 정말 가족과 마을을 위하는 사람이에요. 마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항상 속속들이 관심이 많은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에 걸맞게 직업도 지역신문 기자로 설정하면 나영의 성격과 관심사에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길해연), 동생 성운(현우석), 외지인 해수(최희섭) 등 주변 캐릭터들도 재밌어요. 그중에 볼링장 주인(박미현)이 제일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이런 어른의 모습이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의 모습인가 싶었습니다. 참고한 실존 인물이 주변에 있으셨나요?
안타깝지만 제 주변엔 없었어요.(웃음) 나영이가 볼링을 하는 데 조력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캐릭터죠. 그런 대사도 있어요. 볼링장에 누나가 없을 때는 성운이가 온다는. 집이 뭔가 나영이의 정수라는 느낌이라면, 볼링장은 새롭게 리프레시 되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돌핀>을 보면서 감독님이 세 개의 소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집’이요. 영화 말미에서 나영이와 엄마가 언쟁을 벌이죠. ‘나를 거둬준 곳이자 동생을 낳은 곳이 집’이라는 나영이와 ‘먹고 쉴 수 있으면 그게 집’이라는 엄마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립니다. 감독님은 영화에서 집에 어떤 의미를 투영하고 싶으셨나요?
집은 나영이의 울타리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잃은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처음으로 평안과 안식을 얻은 곳이죠. 그런 마음의 상처가 더 집을 버리지 못하는 데 크게 작용한 거 같아요. 어찌 보면 행복한 집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옭아매는 집이라는 측면도 있어요. 누구든 집을 나와야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나영이에게는 그게 가장 큰 숙제가 아니었을까 싶고요.
나영이가 결국 집을 떠나지 못하니, 숙제는 해결 중인 걸까요?
열린 결말이죠.(웃음)

두 번째 소재는 가족입니다. 첫 번째 소재인 집과 맥이 같아요. 나영이 가족은 불안불안합니다. 대화만 시작하면 충돌해요.
나영이는 대안가족인데, 이걸 특별하지 않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든, 살 부대끼고 살면 가족인 건데, 대안가족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건 없다는 거죠. 물론 자연적으로 구성된 가족과 다른 면은 있겠지만, 그걸 너무 부각해서 보여주기보다는 그들도 다른 가족처럼 부대끼며 살면서 똑같이 싸우고 화해하면서 산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똑같이 살아가는 와중에 생기는 작은 균열들, 과거에서 기인한 상처들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감독님에게 이상적인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것이 있는지 저는 모르겠어요.(웃음) 이런 가족도 있고 저런 가족도 있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면 좋겠습니다. ‘가족은 이래야 해’, ‘이런 게 가족이야’라고 정의 내리는 게 아니라요.

세 번째 소재는 ‘고향’입니다. 나영이 동생 성운이는 그 나이 무렵 청춘들이 늘 그렇듯 상경을 꿈꾸죠.
이건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부분이에요.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안산시에 살았습니다. 거기를 좀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새로운 곳에 가는 건 무섭고 두려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너무 멀리까지 가버리긴 했는데.(웃음) 공간이 중요했어요. 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이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 떠나는 사람, 지키려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나영이와 해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웃음)
둘 사이가 썸이냐, 아니냐고 많이들 궁금해하시긴 하는데요.(웃음) 저랑 배우들끼리는 썸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연기했어요.
정말요?
정황상 썸이라는 느낌이 많으니 그리 봐주시는 거 같기도 한데요. 썸으로 봐주셔도 좋고,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봐주셔도 좋습니다. 처음에 의도했던 거는 이거죠. 뭔가 지키려는 나영이가 잘 모르는 존재인 외지인이 왔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두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뭉쳐가는 모습은 어떤지를 좀 그려보고 싶었어요.

나영 역에 ‘의외로’ 권유리 배우가 참 잘 어울리더라고요. 첫인상은 어땠나요?
일단 유리 하면 다들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생각하죠.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보쌈-운명을 훔치다>나 <이별유예, 일주일>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서정적인 이미지라고 할까요? 나영이랑 맞을 거 같았습니다. 권유리 배우라면 뭔가 기존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아닐 새로운 얼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미팅에서 그 느낌이 맞았던 거 같아요. ‘단단한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내면의 단단함이 강하게 느껴졌어요.
촬영 현장에서 권유리 배우는 어떤 사람이던가요?
가장 강한 인상은 ‘영민한’ 사람이란 거죠. 정말 캐치도 빨라요. 아시겠지만 현장에서는 뭔가 상황이 계속 바뀌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순간 대처하는 능력이 정말 좋더라고요. 집중력도 대단했고요.
권유리 배우는 돌핀의 주제를 ‘순환’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감독님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으셨나요?
저도 비슷한 맥락인데, 대사로 따지면 ‘핀은 계속 내려온다’처럼요. ‘돌핀’이 제목이고, 물론 튀어 오르는 순간이 중요하긴 하지만요. 영화 말미에 두 번째 돌핀 상황이 발생하는데, 나영이가 직접 그 순간을 보진 못해요.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다음 핀이 내려오고 있죠.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 지점이에요. 다음 핀이 내려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권유리 배우가 말한 순환이라는 것에 대해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지만, 나영이는 변화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변화가 다른 이들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생긴 변화에요.
나영이가 스스로 부딪히면서 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 사이에 주변에서 고향을 떠나려는 사람들, 이런저런 사람들의 영향도 받았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자기 스스로 몸을 부딪혀서 그렇게 깨달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변화라는 건 자기 스스로 받아들여서 변해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감독님에 대해서 질문을 드릴게요. 언제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꾸셨나요?
고등학생 때 케이블 채널에서 <지구를 지켜라>(감독 장준환, 2003)라는 영화를 봤어요. 이런 영화가 있구나, 영화감독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처음 했죠. 그런데 저는 스스로 예술적인 사람이라 생각해본 적 없어서 수능 보고 일반대학에 진학했습니다. 2년 정도 다녔는데, 그 시기에 영화를 많이 봤어요. 그러면서 꿈을 좇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예종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반대라기보다 놀라셨던 거 같아요.(웃음) 이후로는 항상 응원해주시고 지원해주셨고요.
더블린에 갔을 때도 변함없는 지지를 하시던가요?(웃음)
그때는 걱정을 많이 하셨죠.(웃음) 저 스스로도 걱정스러웠던 시기였기도 하고요. 시나리오를 쓰고는, 붙잡고는 있는데, 현실적으로 정말 영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컸으니까요
그런 마음을 불식시키게 된 계기가 있나요?
KAFA 지원이 계기가 되었어요. 볼링을 열심히 치던 상황이었는데, KAFA 공고를 보고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동안 생각했던, 벌려뒀던 이야기를 잘 정리하기 시작했죠.

알겠습니다. <돌핀>은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는 영화라 일부 관객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극적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영화들을 저도 좋아해요. 그런데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과연 이런 구조가 적용이 될까, 오히려 감정이 스며드는 것처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떤 한 모멘텀으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이니 정해진 공식처럼 가진 않았던 거 같아요.
<듄 2>(감독 드니 빌뇌브)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변화를 위해 각성을 하는데요?(웃음)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런 걸 찍었어야 했는데 말이죠.(웃음)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아이템만 있는 상황이고 흩뿌려져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발전시켜 나가는 초기 단계죠. 뭔가 꿈에 젖어 사는 한 여자의 이야기일 거 같긴 한데요.
혹시 이번에도 자전적인?(웃음)
아닙니다. 자전적인 건 한 번이면 족합니다.(웃음) 좀 설명하기 그런데, 엄청 허황된, 망상에 가까운 꿈을 꾸는 여자의 이야기라 <돌핀>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일 거 같아요.

또 10년이 걸리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웃음) 최대한 빠른 시간에 찍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돌핀>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돌핀>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저마다의 모습, 각자의 사정들, 그런 변하는 모습들을 담담하게 풀어낸 영화입니다. 봄에 편안한 마음으로 보시기 좋을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생기는 작은 행운 ‘돌핀’이 나영에게 그러했듯이 관객분들에게도 이 영화가 변화를 맞이하는 삶의 순간에서 작은 용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3월 13일 개봉하니 꼭 극장을 찾아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