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환경영화제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규모도 크지 않은 데다가 팬데믹의 영향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전면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며 화려하게 귀환한다. 지난 19년간 수많은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이 중에서는 <미나마타: 피해자와 그들의 세계>(츠치모토 노리야키, 1971)와 같은 환경 다큐멘터리의 경전과도 같은 작품도 있었지만 <그날이 오면>(스탠리 크레이머, 1959), <동쪽>(샹탈 애커만, 1993)을 포함해 인간과 공간, 현재와 미래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아트하우스 영화, 할리우드 고전 등의 흥미로운 작품들이 큐레이션 되었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의 프로그래밍은 조금 더 진입장벽을 낮추고,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환경’ 이야기 그리고 지구 동거인들의 ‘공생’을 고민하는 영화들과 영화제를 찾는 시네필의 구미에 맞는 영화들까지 다색다형(多色多形)한 영화들이 한데 모였다. 다음으로 소개할 다섯 편의 영화는 올해 상영작들 중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들이다.


1.

블루백 (로버트 코놀리, 2022)[개막작]

팀 윈튼의 베스트셀러, 「블루백」을 영화화했다. <더 드라이>(2021)로 알려져 있는 로버트 코놀리의 <블루백>은 산호를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에비’(미아 와시코스카)와 그녀의 엄마인 ‘도라’(라다 미첼)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에비의 유년 시절로 수차례의 플래시백을 통해 회귀한다. 고래 포획꾼이나 개발자들에 대항하면서도 딸에게 바다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게 해주려는 도라의 끊임없는 노력은 현재의 에비가 살아가는 동력이 되었음을, 에비는 서서히 기억하게 된다. 바다 생태의 심각성을 고발하면서도 영화는 절대적으로 서정적이고 멜로드라마적 이미지와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라와 에비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바닷속 세계는 치명적으로 아름답지만, 인류의 잔혹함과 무지로 인해 불안과 위험이 가득한 곳으로 서서히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에비와 도라는 위기의 바다와 생명체를 구하는 노력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하게 되는 가족이자, 투사들이다.

<블루백>

바다 촬영을 위해 호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아름다운 바다를 모두 포섭해 촬영을 감행한 <블루백>은 반드시 스크린으로 봐야 할 영화다. 전작 <더 드라이>에서도 기후 위기를 배경으로 쓴 감독 로버트 코놀리는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것뿐만 아니라 촬영 과정조차도 친환경 방식을 고집한다. 전경이 아름다운 <블루백>은 장면이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과정도 아름다운 영화다. 최근 할리우드가 영화제작도 친환경 인증(seal) 을 붙이는 제도를 도입했다. 아직까지 의무화되지 않았지만 영화를 위해 동물이 희생되면 안 되는 것처럼, 자연 역시 다치게 해서는 안 되는 시대임을 최전선에서 알리고 있는 영화다.


2.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미공개 다큐멘터리 3편:

<또 하나의 교육>,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 <오염은 어디로 갔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연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에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이 세 편의 다큐멘터리는 모두 환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중 첫 번째 이야기인 <또 하나의 교육>은 나가노현 이나초등학교 1학년 ‘봄’반 학생들이 수업 대신 한 마리의 아기 젖소를 기르는 이야기를 다룬다. 9개월간 이어진 젖소 키우기는 여러 매체에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초등학교를 찾아가고, 3학년이 된 학생들은 다시 한번 아기 소 ‘로라’ 키우기에 도전한다. 아역 연기 연출에 탁월한 고레에다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또 하나의 교육>

두 번째 이야기,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는 환경청의 고위관리인 야마노우치 도요노리와 생활 보호 대상자 하라시마 노부코의 자살을 둘러싼 미스터리에서 출발한다. 도쿄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관료는 어째서 자살을 택했는가. 노부코는 왜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는가. 감독은 두 사람이 남긴 문서, 일기, 녹음테이프, 유서 등 다양한 기록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하며 사건을 추적한다.

마지막 에피소드, <공해는 어디로 갔는가>는 디즈니랜드의 10배에 달하는 일본 최고 규모의 가와사키 제철소와 대기 오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제철소가 들어선 뒤 주민 대부분이 심한 천식을 앓게 되고 이로 인해 제철소와 주민 간의 재판이 17년간 이어지고 있는 상황.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인 60년대에 공해 행정을 발전시킨 한 공무원의 궤적을 따라가며 대기 오염과 국가 정책의 관계를 긴장감 있게 파헤친다.


3.

딥 라이징 (마티유 리츠, 2023) :

최근 환경운동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 제이슨 모모아(<아쿠아 맨>)가 제작과 내레이션을 맡은 다큐멘터리이다. <딥 라이징>은 해저 자원을 화석연료의 대체품으로 변환시키고자 하는 기업과 이를 우려하는 환경전문가들의 시선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해양 채굴의 역사와 그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역학 관계를 그리는 수작이다. 미국의 해양자원 착취의 역사를 비판하는 시각도 함께 보여진다.

샌더 멀소우(Sandor Mulsow) 해양 지질학 교수, <딥 라이징> 제작자 제이슨 모모아, 마티유 리츠 감독


4.

더 피쉬 테일 (오키타 슈이치, 2022) :

<남극의 쉐프>, <모리의 정원> 등으로 알려진 오키타 슈이치의 최근작이다. 어린 시절부터 물고기라면 뭐든지 좋아하고 물고기에 대해서 뭐든지 알고 싶어 하는 ‘미보’를 주인공으로 그린 동화 같은 영화다. 미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적성을 살려 일을 찾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물고기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는 미보는 친구 히요의 소개로 TV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 미보의 모티브가 된 사카나(=물고기) 군은 물고기의 생태와 요리법에 대해 해박하며 해양 생태계와 관련한 강연 및 저술, 방송 등을 통해 일본 내에서 잘 알려진 실제 인물이다. 그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미보의 성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본다.


5.

맥주: 러브 스토리 (프리드리히 모저):

바야흐로 수제 맥주의 전성시대대다. 그러나 기후 위기로 인해 맥주 생산에 필요한 많은 것들이 위기를 맞았다. 무엇이 좋은 맥주를 만들까? 좋은 맥주는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 것일까? 작은 브루어리들은 어떻게 살아남는 것일까? <맥주: 러브 스토리>는 지구에서 두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음료인 맥주와 그 산업을 다양한 시선에서 깊이 있고도 흥미롭게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