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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국제 댕댕이 날! 개식용, 공장식 축산, 그리고 생명에 관한 영화들

씨네플레이

강아지는 세상 귀여움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부조리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강아지의 공장식 번식과 사육은 비슷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다른 동물들을 떠올리게 하고, 아우슈비츠(조립라인식 도축은 동물육종에서 영감을 받은 미국의 우생학과 함께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와 같은 악몽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인간성의 상실, 만연된 폭력과 착취의 문화는 동물들이 있는 곳에서 먼저 움텄다. 동물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도 없다.

매년 3월 23일은 '국제 강아지의 날'이다. 뜬장에서 고통받는 모든 강아지가 해방되길 바라며, 오늘은 개식용, 공장식 축산, 그리고 생명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모아봤다.

 


누렁이

케빈 브라이트 감독/ 한국·미국/ 2022년/ 72분

 

당신이 여전히 개고기를 즐긴다면, 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은 무척 불편할 것이다. <누렁이>는 한국계 미국인 태미가 오래전 한 영상 속에서 본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고향인 한국에서 개가 잔인하게 도살되는 장면이었다. 이후 태미는 한국의 식용견을 구조하는 활동을 시작했고, 전국의 수많은 개 농장을 방문하며 오랜 친구이자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 시리즈의 제작자인 케빈과 함께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수차례 한국을 오가며 일반 시민, 식용견 농장주, 육견협회 관계자, 수의사, 국회의원, 동물보호 활동가 등 70명을 만나 한국 개고기 산업의 민낯을 보여주는 영화는 코로나19팬데믹의 여파로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3월 현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사람은 76만 명. 감독은 개고기를 둘러싼 다양한 미신과 오해, 도살의 현장을 비추는 한편 개고기를 먹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목소리와 농가들의 불만도 균형 있게 담는다.

다큐 제작을 결심할 때 케빈 감독은 개 식용 문제에 대한 빠른 대답이나 해결책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공개 후 변화는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지난 1월 9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3년간 유예 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시행된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 한국/ 2015년/ 106분

도로 곳곳, 무방비 상태로 차에 치여 다치거나 죽은 야생동물들을 카메라에 담고(<어느 날 길 위에서>(2006)), 동물원 울타리에 갇혀 몸과 마음에 병이 든 동물들을 지켜보던(<작별>(2008)) 황윤 감독은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통해 자신의 삶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민다.

'돈가스 마니아'인 아들을 키우며 엄마가 된다는 피로 속에 "돼지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눈을 감으려 했지만, 구제역 살처분 뉴스를 듣고 감독은 밀려오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저 많은 돼지들이 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난 왜 돼지를 본 적이 없을까. 그렇게 시작된 돼지 찾기 여정에서 감독이 처음 마주한 돼지들은 끔찍한 살처분 현장에 있었다.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고 분만 촉진제를 맞으며 새끼를 낳으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우리에서 돼지들은 '신선육'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삶을 바꾸는 앎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가족 내 갈등과 모순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음식 선택의 자유가 동물의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는 남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성장기의 아이에게 고기를 먹이지 말아야 하는 걸까. 새끼 낳는 기계가 되어버린 어미돼지들의 아픔에 공감하다가도,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감독은 무엇도 쉽게 단언하지 못한다.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의 영역이 철저히 분리된다. 셔츠 한 벌에 얼룩진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눈물, 전기를 타고 흐르는 고압 송전탑 지역 주민들의 눈물을 우리는 모른다. 깔끔하게 포장된 ‘신선육’을 소비하는 우리에게 영화는 공장식 축산과 윤리적 소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수라

황윤 감독/ 한국/ 2023년/ 108분

황윤 감독
황윤 감독

새만금사업에는 늘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최대 규모의 간척지, 단군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 세계 최대 방조제(33km) 등. 하지만 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강의 기적'이라도 일궈낼 30년의 장구한 세월 뒤, 주민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개발은 모호했고, 피해는 확실했다.

먼저 대가로 내어준 건 군산 앞바다의 수라, 계화도, 해창 등 갯벌이다. 그리고 그 갯벌에 깃든 생명체들이다. 2006년까지 호주에서 출발해 매년 새만금 갯벌을 찾아와 먹이 활동을 하고 다시 시베리아까지 날아가던 붉은어깨도요를 예로 들자면, 방조제가 완공된 후 말라붙은 새만금 갯벌에 내려앉아 대부분이 굶어죽었다. 2007년에 새만금 갯벌을 향해 떠났던 붉은어깨도요의 93%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고, 이는 붉은어깨도요의 전 지구 개체 수 1/3에 해당하는 것이다. 방조제로 마른 해창 갯벌에서 바닷물을 기다리다, 빗물을 해수로 오인해 뻘 위로 나와 한꺼번에 폐사한 조개의 모습은 그 어떤 죽음보다 충격적이다.

쇠제비갈매기
쇠제비갈매기

2006년, <수라> 제작 전 황윤 감독은 갯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구상했다 포기한다. 새만금간척사업이 강행되고, 어민 류기화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잇따라 경험한 뒤였다. 10년 뒤, 감독은 운명처럼 ‘새만금의 도시’ 군산에 이사를 온다. 여기서 새만금시민조사단장 동필을 필두로 여전히 갯벌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만난다. 새만금을 '기록'하는 동필을 만난 황윤은 그를 '기록'한다. 그러자 죽은 줄 알았던 새만금 갯벌들의 아름다움이 되살아나고, 국책사업의 폭력에 대한 역사가 <수라>로 세상에 남게 됐다.

새만금사업은 합법이라는 2006년 대법원 판결 후, ‘30여 년간 바닷물을 막아뒀던 갯벌이 회복되는 데에는 고작 2년’이라던 조사단의 목소리는 국책사업의 거대 계획에 부딪쳐 외롭게 메아리쳤다. 영화 <수라>는 외로운 싸움을 기록하고, 주먹보다 작은 쇠제비갈매기 새끼가 흙빛 바닥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모습을 비추며 그 계획에 감히 균열을 내려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보다 갯벌이 뚫리길, 비행기보다 도요새가 날아들길 기원하는 나를 포함한 6만 명의 관객도 그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옥자

봉준호 감독/ 한국·미국/ 2017년/ 120분

대안 식품으로 개발된 슈퍼돼지 옥자. 생명공학기업 '미란도'가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거대한 돼지다. 적게 먹고, 적게 싸지만, 고기의 재료가 될 살은 포동포동하다. 맛도 좋다. 프로모션을 위해 전 세계 친환경 농가에 나누어져 길러지는 슈퍼돼지 26마리 중 한 마리가 강원도 산골 미자(안서현)의 집에 보내졌다. 10년간 함께 자란 옥자와 미자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하지만 약속의 시간이 지나고, '미란도'는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간다. 고기가 될 운명에 처한 옥자.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맹렬히 돌진한다.

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선 미자의 여정은 공장형 축산의 비인간성에 대한 각성과 분노에 다름없다.

 


군다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 노르웨이·미국/ 2022년/ 93분

호아킨 피닉스가 비질 활동에 참석해 도살장으로 향하는 돼지에게 물을 주고 있다. (사진=LA 동물구조 홈페이지 갈무리)
호아킨 피닉스가 비질 활동에 참석해 도살장으로 향하는 돼지에게 물을 주고 있다. (사진=LA 동물구조 홈페이지 갈무리)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할리우드 대표 비건 배우로 여러 동물 구조 활동에 참여하고, 동물 착취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 <지구생명체>, <몸을 죽이는 밥상>, <도미니언> 등의 내레이션을 맡아 동물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조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수상 소감에서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라며 “인공적으로 소를 수정시켜 번식하게 하고 암소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빼앗고 암소의 젖을 빼앗아 우리의 커피와 시리얼에 부어 먹는 것을 당연한 권리라 느낀다"라고 인간의 잔인함을 비판했다. SAG 어워드에서 영화 <조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애프터파티에 참여하지 않고 LA 동물구조와 함께 비질* 활동에 참여한 일화도 유명하다.

*비질: 공장식 축산의 현장, 정확히는 도살장 앞에 가서 그곳으로 끌려가는 동물들을 마주하는 행위

호아킨 피닉스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군다>는 돼지 '군다' 가족을 중심으로 닭과 소 등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온 가축들이 농장 안팎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흑백 화면 속 영화는 비스듬히 드러누운 돼지 한 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으로 시작한다. 새끼 돼지 열 마리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다. 어미는 갓 태어난 새끼들에게 곧 젖을 물린다. 말없이 돼지 가족을 비추는 10분의 오프닝 시퀀스는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영화의 태도를 함축한다. <군다>는 여느 동물 영화들처럼 동물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귀여움을 강조하지 않는다. 철저히 동물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는 이들의 시선과 동작을 느릿하게 따라갈 뿐이다.

외다리 닭이 닭장 밖으로 조심스러운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가축의 몸도 인간만큼이나 복잡하고 정교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관객은 새삼 느낀다. 햇빛을 만끽하는 돼지의 시간을, 한가로이 초지를 거니는 소의 순간을 그저 오롯하게 담아내며, 영화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인간의 편의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서사를 지니고 있다 말한다.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 행복하길.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 행복하길.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