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가 5월 광주를 바라보는 방식은 매우 익숙하다.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일부 평자들은 ‘객관성을 담지한 외부자(힌츠페터) 혹은 항쟁에 무심했던 제3자(김만섭)가 항쟁의 정당성에 설득되고 그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라고 평했지만, 사실 외부의 시선을 빌린 스토리텔링은 그 이전에도 꾸준히 존재해 왔다. 민주화운동을 다룬 창작물 중 상당수가 ‘전혀 상관없는 외부인이 봐도 억울한 싸움’임을 호소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주인공은 정치적으로 탈색된 존재가 되곤 했다. 먹고사는 것이 바빠서, 학생들이 왜 데모에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정치적 혼란이 싫어서 싸움으로부터 한발쯤 떨어져 있던 평범한 장삼이사가 마침내 각성해서 싸움에 결합하는 방식의 서사.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을 연기한 송강호가 주연이었던 또 다른 영화 〈변호인〉 또한 정확하게 그 서사를 따르고 있지 않나?
이런 스토리텔링 방식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다룬 작품들에서 자주 쓰이곤 했다. 아마도 역사적 맥락에 관심이 없는 관객, 정치적 색깔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는 관객들에게 보다 쉽게 감정을 이입할 만한 여지를 마련해주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겠지. 주인공들은 그런 관객을 대리해서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존재고 말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다 복잡한 결들이 중첩되어 있는 민주화운동의 맥락은 굉장히 단순하게 탈색되곤 했다. 실제로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 믿으며 투쟁을 불사했던 일부 활동가들의 정치적 색깔은 표백되고, 조금이라도 과격해 보이는 투쟁방식은 고도로 순화되거나 생략되는 일이 잦았다. 여전히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왜곡하고 호도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어느 정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 해도, 명백히 투쟁하는 주체였던 이들을 그저 ‘순결한 희생자’로만 그리는 태도가 과연 온당한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고 불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이 되면 다시 〈택시운전사〉를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딱 한 장면에만 출연하고 마는 단역 캐릭터, 배우 엄태구가 연기한 박중사 캐릭터 때문이다.
박중사는 광주를 봉쇄한 계엄군의 일원으로, 광주와 외부를 연결하는 샛길을 차단하고 있는 검문소의 책임자다. ‘외국인 기자를 태운 서울 택시’를 발견하면 무조건 잡으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검문소의 군인들은 만섭(송강호)과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가 탄 택시를 보고 눈이 희번뜩거린다.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의 도움으로 일찌감치 번호판을 전남 번호판으로 갈아 단 만섭은 계속해서 우긴다. 이 차는 전남 택시이고, 이 손님은 사업하러 온 손님인데 지금 서울 갈 거라고. 힌츠페터도 한사코 자신은 사업하러 광주에 왔다가 너무 위험하길래 돌아가려는 중이라고 우긴다. 하지만 칼빈 소총을 든 군인들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만섭과 힌츠페터를 향해, 박중사는 피곤하다는 듯 ‘일단 둘 다 내리라’고 말한다.
차량을 둘러보던 박중사는 만섭에게 차 트렁크를 열라고 요구한다. 트렁크 안은 차량 방수포와 시선을 돌리기 위한 연등, 양초 따위로 가득 차 있다. “저기, 저 외국 손님 기념품입니다. 석가탄신일이라고…” 이런저런 핑계를 주절대던 만섭의 입은, 박중사가 방수포를 들추는 순간 굳게 닫힌다. 방수포 아래 숨겨져 있던 서울 차량 번호판과 힌츠페터의 카메라 가방이 드러났으니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우리는 여기에서 잡히는구나. 잔뜩 굳어진 표정의 만섭과 힌츠페터 옆에 서 있던 박중사는, 아무 말도 없이 서서 서울 번호판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는, 도로 방수포를 덮고 트렁크를 닫은 뒤 부하 사병들에게 명령한다. “보내줘.” “중사님, 외국인은 일단 잡으라고…” “뭐, 기자도 아니고 서울 택시도 아닌데 뭐 어쩌게? 보내.” 여전히 소총을 내리지 않은 채 경계를 풀지 않는 부하 사병에게, 박중사는 재차 힘주어 말한다. “보내라고.”
얼핏 영화적 창작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라마틱한 이 장면은, 장훈 감독에 따르면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회고를 통해 “한 군인이 알고도 우리를 보내줬다. 당시에는 모른 척하면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필름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그 이야기를 영화 안에 반영한 것이 바로 박중사가 나온 장면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극적이지만 결정적인 저항을 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박중사인 셈이다.
박중사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았을까? 직접 시내로 투입된 것이 아니라서 상세한 사정까지는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아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통신이 두절된 상태라도 사람들 사이에 말이 떠도는 것까지 막을 수 있는 법은 없고, 광주 외곽을 지키고 있던 박중사 또한 군인들이 시민들을 사살하고 있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었겠지. 그렇다면 자신이 이 사람들을 그냥 보내 주었다가 나중에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도 대충은 짐작했을 것이다. 서울 번호판을 트렁크에서 발견한 순간, 박중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 말도 없이 그 번호판을 가만히 노려보던 찰나의 순간 그의 머릿속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을까? 하지만 금수로 변한 군인들이 동료 인간을 짐승 다루듯 했던 그 짐승의 시간에, 박중사는 자신이 입게 될 잠재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만섭과 힌츠페터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일개 중사 신분으로 적극적으로 불의를 막을 수는 없을지언정, 자신이 인간으로 남는 마지막 길은 놓치지 않은 것이다.
43년이 지났다.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수괴였던 전두환은 끝까지 사과 한 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고, 그 죄는 그의 손자 전우원씨가 대신 속죄 중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짐승으로 살다가 간 할아버지와,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닌 죄에 대해 사죄하며 인간이 되는 길을 택한 손자. 이 얄궂은 역사의 흐름을 보며 나는 다시 박중사를 떠올린다. 박중사의 모델이 되었던, 알면서도 힌츠페터와 김사복을 보내준 이름 모를 군인을 생각한다.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우리에겐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외부에서 온 불순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박중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짐승의 시간에, 당신은 인간으로 남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