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포스터. 사진 제공=넷플릭스

40년 전 혜성 충돌로 한반도는 사막화되었다.

부족한 자원으로 계급화는 더욱 견고해졌고,

생존자는 난민, 일반, 특별, 코어구역에 분류되어 생활한다.

생존에 필수인 산소와 생필품마저 배송받아야 하는 극한 상황.

하지만 신분증인 QR코드가 없는 난민은 인력 시장을 떠돌거나

헌터가 되어 택배 물품을 노린다.

산소가 통제된 세상에서 택배기사 ‘5-8’(김우빈)은

낮에는 택배기사로, 밤에는 난민을 돕는 블랙나이트로 활동한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택배기사>는 혜성 충돌 이후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 전설의 택배기사 ‘5-8’과 난민 ‘사월’(강유석)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5월 12일 공개 후 3일 만에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며, 독보적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택배기사>에서는 계급에 따라 사람들이 사는 공간을 구분했다. 산소마저 통제되어 더욱 견고해진 계급화 사회에서 사막화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난민구역, 획일화된 형태의 일반구역, 지하에 존재해 오염에서는 안전하나 햇빛을 보지 못해 우울한 느낌을 주는 특별구역, 유일하게 녹음이 있는 공간인 코어구역이 그것. 사람들의 신분에 따라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 나뉘어 살게 된다.

영화 <일단 뛰어>(2002)로 충무로 최연소 감독으로 데뷔한 조의석 감독은 <조용한 세상>(2006), <감시자들>(2013), <마스터>(2016) 등의 각본 및 연출을 맡으며 실력을 입증해 왔다. <택배기사>는 <골든 슬럼버>(감독 노동석, 2018) 각본 작업 이후 5년 만의 복귀작이며, 드라마 데뷔작이다.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조의석 감독을 만나 <택배기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택배기사> 조의석 감독. 사진 제공=넷플릭스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어떤 점이 해외 팬들에게 어필했다고 보세요?

무서워서 반응을 못 보고 있는데요. 너무 떨려서요. 영화는 예매율이 나오고 첫 주 관객 수를 보면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데, 드라마는 너무 달라서요. 잘 봐주셔서 감사하죠. 사실 영화만 하다가 처음으로 시리즈를 한 건데, 정말 잘 모르겠어요. 그냥 K-콘텐츠에 대한 호기심과 호응 같은 게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택배기사> 이전에 좋은 K-콘텐츠를 만들어준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더 호응해주시는 거 같기도 하고요. 다만 처음으로 도전하는 시리즈인 만큼 잘 해내고 싶었고 에피소드마다 기승전결과 액션 신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한국어 제목은 원작 웹툰을 따라 ‘택배기사’로 했는데, 영어 제목은 ‘Black Knight’(블랙 나이트)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낮에는 산소와 필수품을 전달하는 택배기사가 밤에는 난민들을 보호하는 블랙 나이트가 되어 활동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어요.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를 뒤집어쓴 택배기사들이 황폐화된 도심 속 헌터들을 뚫고 난민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는 거죠. 블랙 나이트는 난민의 삶을 돕기도 하며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택배기사>는 장르적 특성이 강한 작품이죠.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에피소드별로 리듬감을 잃지 않도록 애쓰신 거 같아요.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시리즈는 처음 하는 거라 영화보다는 호흡을 좀 느리게 가져갔어요. 세계관과 캐릭터 소개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많았고요. 그런 면에 있어서 좋게 본 분들도 있지만, 오히려 초반 1, 2화 에피소드에서 빌드업 과정에서 호흡이 좀 떨어진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는 거 같아요.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택배기사>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구축하셨습니다. 얼핏 보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감독 조지 밀러, 2015)도 생각나고요, 만화 「북두의 권」도 떠오르더라고요.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매드맥스>나 <헝거게임> 시리즈 같은 영화들을 굉장히 많이 참고했습니다. 사실 디스토피아물이 인기가 많은 장르는 아니죠. 얼마나 캐릭터들이 힘들어야 할지, 계급들에는 어떤 차별점을 줘야 할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게 힘들었죠. 원작의 세계관과 더불어 새롭게 만든 서사들이 차별성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각본, 감독을 겸한 작품이 많았는데요, <택배기사>는 감독님 오리지널이 아닙니다. 원작 웹툰이 있죠. 각색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원작 웹툰은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관이 무척 독특했고 재미있어서 한번 도전해보고픈 생각이 들었어요. 각색하면서는 캐릭터를 압축하는 작업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들도 만들었어요. 이솜 배우가 연기한 설아나 대통령 역할을 맡은 진경 배우, 또 이이담 배우가 맡은 4-1 캐릭터도 있고요. 원작 작가께서 각색을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열심히 바꿔봤습니다.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여자 캐릭터들이 많아졌네요. 그런데 원작 웹툰에서 ‘사월’은 여자잖아요. 시리즈에서는 남자로 바꾸신 이유가 있을까요?

꼭 남녀 비율을 맞추려고 한 건 아니고요, (추가한 캐릭터들은) 여성 캐릭터가 맞다고 생각한 거죠. 센 여자들을 좋아해서요(웃음). 사실 사월은 원작 웹툰에서 어린 소녀로 나오잖아요. 기획 단계에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5-8과 사월이 같이 나오면 왠지 멜로 라인이 생길 것 같더라고요. 제가 제일 자신 없는 장르가 멜로, 호러, 에로입니다(웃음).

사월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 캐릭터죠. 강유석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셨나요?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어요. 오디션장에서 강유석 배우를 만났는데요, 사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해도가 가장 높았고 연기도 제일 좋아서 낙점했습니다. 까불까불하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하고 단순해 보이기도 하고, 여러 색깔을 갖고 있는 배우더라고요.

<택배기사>의 대표 캐릭터 5-8을 맡은 김우빈 배우와는 <마스터>(2016) 이후 두 번째 만남이죠.

김우빈 배우가 인성이 좋은 거야 워낙 유명하잖아요. 정말 큰일 이겨내고 돌아와서 대견하기도 했고요. 사람이 바뀌지 않았더라고요. 눈빛이 되게 깊어졌어요. 죽음을 목전에 뒀다가 살아 돌아온 거니, 또 태도에서도 좀 뭐랄까,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많아졌다고 할까요? 촬영이 끝나면 스태프들 어깨 두드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보다 더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5-8의 매력은 어떻게 드러나게 하려고 하셨나요?

쿨하고, 멋있고, 정의롭고 등등 좋은 건 다 ‘때려 넣고’ 싶었어요(웃음). 과할 정도로요. 그래서 김우빈 배우가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나’라고 말할 정도였죠.

송승헌 배우와도 오랜만에 만나셨어요.(두 사람은 <일단 뛰어>에서 함께 했다)

워낙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라 호흡이 굉장히 좋았죠. 캐릭터 분석도 정말 많이 하고, 대사도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저는 늘 역할을 맡은 배우가 그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가장 깊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송승헌 배우는 그런 점에서 탁월했습니다. 아, 그리고 송승헌 배우를 오래 알았지만, 이번에 <택배기사> 하면서 새삼 잘 생겼다고 다시 느꼈어요.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아서 “선배님 도대체 뭘 드시는 거예요?”라고 묻기도 했고요(웃음).

주로 남자 배우들과 선 굵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세요. 데뷔작 <일단 뛰어>에서 송승헌 배우는 이번 <택배 기사>에서도 함께 했고요, <마스터>의 김우빈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작들에서는 강동원 배우랑도 두 편을 하셨고요, 김상경 배우 등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남자배우들과 함께 하셨는데요, 특별히 남자배우와의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그런데 <감시자들>(2013)에서 한효주 배우가 나오긴 하니 꼭 남자 배우만을 선호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배우들 열정에 감탄한 순간이 있다면요?

촬영 기간이 겨울이었어요. 마스크를 쓰면 아무래도 성에가 생기잖아요. 그런 것들을 다 극복하고 연기와 대사, 호흡을 잘 가져가 준 것들이 매 순간 고맙더라고요. 또 현장에서 리허설하는데, 대본만큼 느낌이 안 나오면, 동선이나 대사를 바꾸는 것도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했어요.

택배 차량이 오가는 사막 씬의 실제 로케 장소는 어디인지, 어떻게 발견하셨는지 비하인드도 궁금합니다

전국 곳곳에서 촬영을 했는데요. 사막 장면 배경은 경북 안동입니다. 5만여 평 정도 되는 부지에 도로를 만들고 블루 매트를 깔아서 촬영했어요. 겨울이라 바람이 세게 불어서 블루스크린이 다 찢어질 정도였어요. 그래서 컨테이너를 ‘ㄷ’로 두고 그 안에서 촬영을 했죠. 배우들은 블루스크린만 보고 연기를 해야 하니까, 지금 찍는 장면은 어떤 장면이라고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특히 모래가 흩날리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 몽골 사막에서 소스를 찍어 왔는데요, 그게 없었다면 정말 고생했을 겁니다. CG팀 고생이 많았죠.

구상했는데 현실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배경도 있나요?

오름 장면이 있었는데 빠졌죠. 원래 사월이가 오름을 타고 노는 캐릭터인데, 회의하다 보니 구현하기가 힘들다고 해서요.

액션 씬들이 좋더라고요. 만화적인 액션이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생동감이 있다고 할까요?

원작 웹툰의 액션씬은 너무 만화적이고 판타지 요소가 많았어요. 그보다는 리얼하게, 라이브하게 가자는 생각이 있었죠.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가장 공들였던 장면은요?

아무래도 사월의 1, 2, 3차전 액션 장면이죠. 가장 애정이 가는 장면은 5-8과 설아가 처음 만났을 때 장면이 지금 떠오르네요. “노상방뇨하고 왔다”는 그 장면 느낌이 좋아서요. 그런데 볼 때마다 달라져요(웃음).

역시 택배기사 선발 경연 장면이네요. 어떻게 구성하셨나요?

일단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죠. 그래서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고요. 3D로 모델링 한 거를 보면서 차들이 탈락하는 것들을 다 정했어요. 촬영감독과 함께요. 주변에 빌딩도 CG로 다 그려 넣어야 했는데요, 실제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은 맨바닥, 흙 도로에서 달리기만 한 거죠. 그래서 막상 촬영 현장에서 카체이싱 장면은 심심했는데, CG 작업으로 건물도 보이고 차도 탈락하는 게 보이면서 액티브한 장면이 완성되었습니다. CG 작업만 6개월 정도 걸렸던 거 같아요.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택배기사>에는 여러 메시지가 있어요. 환경오염, 자본주의 폐해, 인간의 이기심 같은 것들인데요, 감독님께서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요

사월의 마지막 대사 중에 “누구나 공평할 수 있는 세상은 없다”는 게 있어요. 여기에 5-8이 이렇게 답하죠. “그건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라고요. 이 두 대사가 저한테는 키가 되는 거 같아요. 너무 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행복한 세상이 올 수 있지도 않을까요? <택배기사>가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5-8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캐릭터이니까요.

촬영하던 시기에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마스크를 썼고, 백신 접종도 있었어요. 최근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서 촬영 현장이 더 남달랐을 거 같습니다.

그렇죠. 배우들도 환경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들 하더라고요. 정말 이렇게 되면 큰일이겠다고요. 촬영하면서 하루에 한 명씩 코로나19로 스태프들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드라마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스태프들도 많았고요.

스물여섯에 <일단 뛰어>로 충무로 최연소 감독으로 데뷔하셨어요. <마스터>와 <감시자들>로 연타석 홈런을 치기도 하셨고요.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영화만 하시다가 드라마로 첫 외도입니다.

영화 두 편 찍는 줄 알았어요(웃음). 너무 힘들었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건 어떤 현장이나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시리즈로 찍으니 에피소드 6개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에피소드마다 기승전결을 만들어야 하고 거기에서도 전체 이야기의 기승전결 잊지 않아야 했으니, 정말 힘들었어요. 촬영 때는 1회, 6회 번갈아 가면서 하니 더 힘들었고요. 그래도 시리즈는 계속 도전할 생각입니다. 제안받은 것들도 있고요. 새로운 도전이었고, 개인적으로도 많이 배웠습니다.

<택배기사>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아직 <택배기사>를 보지 않은 시청자에게 관람 팁을 준다면요.

캐릭터에 기대서 시리즈를 보게 된다면 그게 재미가 될 수 있어요. 사월의 성장기를 중심으로 볼 수도 있고,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고 싶어 하는 5-8 캐릭터를 중심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택배기사> 파트 2는 나올 예정일까요?

일단 파트 1이 잘 되어야 이야기가 나올 거 같은데요(웃음). 5-8 캐릭터가 매력적이니 스핀오프를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는데, 일단 시청자들 사랑을 많이 받아야 가능한 이야기니까, 많이들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영화판에는 언제 돌아올 계획이세요?

일단 다음 작품은 시리즈를 해야 할 거 같아요. 아이템이 여러 개 있는데, 영화로 담기보다는 시리즈로 가면 좋겠다는 아이템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영화랑 시리즈를 번갈아 할 거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로 빨리 돌아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한국 영화 시장이 너무 안 좋은데, 회복되고 돌아오면 너무 비겁해 보이잖아요(웃음).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