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가 많이 어렵다. 기대작들의 흥행은 부진하고, 올해 개봉작 중 20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을 한 작품이 없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최근 300만을 넘긴 유일한 작품이 있다. 유명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영웅>이 그 주인공이다. 가슴을 뜨겁게 할 제목과 다르게 <영웅>의 개봉 당시 상황도 많이 좋지 않았다. 한국영화의 계속되는 부진과 코로나19로 여러 차례 개봉일이 연기되어 차가워진 관심, <아바타: 물의 길>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대중의 주목도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럼에도 작품의 힘과 뜨거운 메시지가 점점 입소문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근래 한국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남았다. 극장 개봉을 마치고 최근 넷플릭스와 티빙에도 공개되어 안방에 다시 한번 뜨거운 함성을 불어넣고 있는 이 작품, 과연 어떤 점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는지 원작 뮤지컬과 비교하면서 여러 가지를 살펴본다.
‘그날을 기다리며’ 기약 없는 개봉 연기
코로나19로 모든 영화가 많은 피해를 받았지만, <영웅>만큼 개봉일 결정에 우여곡절을 겪은 작품도 드물다. 2019년에 모든 촬영을 마친 영화는 2020년 여름 시즌과 광복절을 맞이해 개봉을 준비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팬데믹 영향으로 모든 일정이 어그러졌다. 심지어 2020년 여름 개봉을 공지한 예고편까지 나왔기에 안타까움은 더 커졌다. 그해 겨울에는 지금의 사태가 수그러질 것을 예상하고 12월 개봉 목표로 다시 계획을 짰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후 매년 여름, 겨울에 <영웅>이 개봉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지만, 코로나19 감염자 폭증으로 공개 일정은 기약이 없었다.
2022년에는 거리두기도 해제되고, 코로나19가 엔데믹 국면으로 들어가며 그해 여름 개봉을 점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일정도 무산된다. 그렇게 <영웅>이 영화팬들에게 점점 잊힐 때쯤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겨울 개봉을 목표로 홍보를 시작하고, 2022년 12월 개봉 일정을 발표한다. 제작 완료 3년 만에 드디어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 워낙 개봉 일정이 많이 미뤄지면서, 원작 뮤지컬 공연 기간과 거의 같은 기간에 개봉했다. 극중 안중근 역을 맡았던 정성화가 극장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양쪽 작품을 홍보하기도. 극장 개봉을 마치고 이제는 OTT를 통해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영화의 제작 과정보다 더 힘들었던 공개 일정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이 여유로움이 감개무량할 정도다.
원작 뮤지컬과 영화의 다른 점 - ‘음악’
작품의 태생이 뮤지컬이기에, 이 작품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음악과 노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원작의 명곡을 영화가 어떻게 살렸냐도 중요한데, 간단하게 말해 영화에서 노래의 양은 줄었지만, 더 효과적으로 극에 배치했다. 먼저 영화는 원작 뮤지컬의 몇몇 노래를 과감히 뺐다. 후반부 안중근의 궁극적인 뜻을 알려주는 ‘동양평화’는 BGM으로 대체했고, ‘이것이 첫사랑일까’, ‘아리랑’은 실제로 촬영까지 했지만 극의 흐름상 삭제했다. 원작에서 이 노래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조금 아쉬운 선택이지만, 이 같은 연출은 작품을 간결하게 정리하면서도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든다.
물론 영화만의 음악 장치도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이번 작품에서만 추가된 (설희가 부르는) ‘그대 향한 나의 꿈’이 그렇다. ‘이토의 야망’ 중간에 삽입되어, 대의를 위해 지금의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설희의 혼돈스러운 마음이 잘 묻어난다. 무엇보다 김고은의 엄청난 가창력은 영화만의 뜻깊은 발견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영화 <영웅>의 뮤지컬은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도록 구성되었다. 정성화를 제외하고는 극중 출연진이 뮤지컬 전문 배우가 아니기에 몇몇 어색한 구간도 있다. 그럼에도 인물의 심정을 공감가게 표현하며, 가사의 의미를 섬세하게 풀어내어 멜로디보다 극중 상황에 더 빠져들게 한다. 노래를 스튜디오 녹음이 아닌 라이브 녹음 방식을 채택해 현장감을 생생하게 높인 점도 영화만의 장점이다.
원작 뮤지컬과 영화의 다른 점 – 이야기
뮤지컬이란 구성을 떼고 이야기만 살펴보면 영화가 한층 더 간결하고, 설득력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설희의 에피소드다. 영화와 뮤지컬 모두 이야기가 안중근과 설희, 두 인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작품의 핵심적인 서사가 다 있는 안중근 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설희 파트의 비중이 약하다. 영화는 이 단점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해도, 여러 가지 장치로 이야기의 설득력을 좀 더 높인다. 설희의 심정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노래 등이 추가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내면도 좀 더 밀도 높게 그린다. 뮤지컬에는 없었던 그의 가족들이 나오고 특히 안중근 어머니를 비중 있게 다룬다. 아들의 수의를 짜면서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영화에서 가장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배우의 노래 실력이 아닌 감정의 연기임을 다시 일깨운다.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 고뇌하는 안중근의 모습 또한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관객과 인물의 거리감을 좁힌다.
뮤지컬 원작에서 안중근을 사모하던 링링(영화에서는 ‘마진주’)의 마음의 방향도 바꿨다. 사랑의 감정을 자신의 나이대와 비슷한 유동하로 설정해 풋풋하고 설레는 로맨스를 강화한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뮤지컬에서 없었던 에피소드를 늘리고, 좀 더 설득력 있게 캐릭터를 설정해 서사에 힘을 보탠다.
한국영화의 의미 있는 시도 <영웅>
전반적으로 작품의 장점을 적었지만, 몇몇 아쉬운 점도 있다. 가령 뮤지컬에서 다이나믹한 안무로 호평받았던 추격 장면을 영화는 흔한 액션 영화의 긴장감 없는 장면으로 대체했다. 오리지널의 힘을 전혀 전하지 못한다. 몇몇 뮤지컬 장면도 이렇다 할 퍼포먼스 없이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형식으로 바꾸어 밋밋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무대보다 더 자유롭고 거대한 배경을 활용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한 점은 분명 아쉽다. 뮤지컬이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연출로 호평을 받았기에 그런 단점이 더욱 부각된다.
하지만 영화 <영웅>은 한국영화 최초로 유명 원작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겼다는 점은 인정받을 만하다. 영화를 감명 깊게 본 관객에게 뮤지컬을 찾아보게 하는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서로 다른 플랫폼이 하나의 콘텐츠를 통해 발전하고 상생을 도모한 점도 이 영화의 최대 의의가 아닐까 싶다. 아이템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영화에게 <영웅>의 도전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한때 좌초될 뻔도 했지만, 분명 큰 의미를 가진 시도로 다가갈 것이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