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으면 만들어 질주하고, 길 위의 거추장스러운 건 모두 부숴버리는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걸어온 길 위에는 제대로 남아나는 게 없다. 한 가지 있다면, 그건 결코 깨지지 않는 도미닉 패밀리의 ‘가족애’. 제작비 3억 4천만 달러를 쏟아부은 시리즈의 11번째 작품이자 10편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시리즈 전체를 마무리하는 최종장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 끝내지 않고 몇 편으로 나눠 만들 거라는 루머가 돈다. 최종장의 1부로서 이번 영화는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특별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난 20년 넘게 이어져온 도미닉 패밀리의 작전에서 피해를 입었던 모든 악당들이 전부 등장한다. 물론 적의 위치에서 등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시리즈 전체의 줄거리를 다시 복기하기 어렵다면, 캐릭터들의 지난 여정을 요약한 이 글을 한번 읽고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한다.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액션의 향연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사연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니까. 이미 보고 나온 관객이라면 함께 추억 속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
폴 워커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시작점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그로부터 비롯됐다. 2013년 11월 30일,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촬영 기간 중에 자동차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의 그림자는 이번 10편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를 포함해서 시리즈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주인공 브라이언은 영화에서 언제나 헐렁한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으로 등장했다. 운전에 불필요한 그 어떤 것도 몸에 걸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듯한 스타일이었다. 1편 당시 브라이언의 신분은 진급을 하고 싶어서 잠입 수사를 자처했던 위장 경찰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미닉 패밀리의 의리에 점점 빠져들었고 무엇보다 동생 미아에게 첫눈에 반한다. 2편에서는 민간인 신분으로 경찰과 FBI 공조 수사에 투입됐다가 3편부터는 FBI 요원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다 5편에서는 교도소로 가던 도미닉을 구출해 다시 지명수배자가 되기도 한다. 도미닉이 가장 의지하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훌륭한 도적단 파트너다. 지금의 도미닉 패밀리 멤버 구성은 브라이언과 도미닉이 그동안 함께 벌였던 잠입 수사 작전 인맥 덕분에 가능해진 조합이다. 도미닉의 동생 미아 토레토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있다.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
“나는 인생을 400m씩 산다. 그 외엔 다 필요 없다. 그 10초쯤 되는 질주의 순간은 내가 진정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다.”
1편에서 브라이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도미닉이 나지막하게 읊조린 시리즈 최고의 명대사다. 도미닉 토레토는 '닷지 차저'를 모는 돔패밀리의 리더. 시리즈 초창기 때만 해도 브라이언이 언더커버 경찰이란 사실을 알게 되며 불같이 화를 내지만 1편 마지막에 브라이언이 그를 놓아주면서 신뢰가 쌓인다. ‘10초짜리 차’를 서로 빚졌다는 이야기가 여기에서 비롯됐다. 형제 이상의 가족애로 묶인 두 사람의 유대 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건 이 시리즈 세계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미닉은 8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에서 해커 램지가 만든 프로그램 ‘신의 눈’을 훔친 사이퍼의 협박으로 친구들을 잠시 배신하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레티와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을뿐더러 또 오랜 연인 사이인데, 5편부터 등장하는 엘레나와 안타까운 삼각관계를 이룬다.
도미닉의 개인사에 관한 설정은 9편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서 전부 밝혀진다. 새롭게 추가된 것은 아니고 1편 당시에 한 줄 정도로만 소개하고 넘어갔던 아버지와의 일화를 확장한 것. 아버지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받은 도미닉은 이번 10편에서 아직 자전거도 못 탈 것 같은 어린 아들 리틀비에게 운전 기술을 가르치는 터프한 면모를 보여준다.
레티 오티즈(미셸 로드리게즈)
미셸 로드리게즈는 배우 데뷔 시절부터 복싱으로 몸을 다졌고 사격술과 DJ를 취미로 가진 배우다. 그녀의 할리우드 경력의 시작점이나 다름없는 캐릭터 레티는 시리즈 초기에는 마치 도미닉의 소품처럼 등장하는 듯 보이다가 점점 그 역할과 비중이 커졌다. 도미닉 패밀리에서 그녀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4편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처럼 보였다가 기억을 잠시 잃고 오웬 쇼 일당에 휘말려 패밀리를 벗어나 있던 적이 있었다.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레티는 카체이스 액션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많은 격투 액션을 선보이는 여성 캐릭터다. 6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서는 홉스 요원의 부사수 요원 라일리로 등장하는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배우 지나 카라노와 맨주먹으로 싸운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에서는 아부다비 억만장자의 경호원으로 등장하는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배우 론다 로우지와 맞붙는다.
레티 역의 미셸 로드리게즈는 이번 10편에서도 사이퍼 역의 샤를리즈 테론과 놀라운 격투 액션을 선보인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여성 캐릭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 아마도 레티와 연관된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한(성 강) & 지젤(갤 가돗)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처음에 등장했던 설정과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그러니까 분량과 존재감이 점점 늘어난 캐릭터가 바로 한과 지젤이 아닐까. 먼저 한은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라는 시리즈 외전 격인 3편에 등장해 죽음을 맞이했다가, 이후 시리즈에 멀쩡하게 다시 등장해 혼선을 주기도 했다. 이후 설정에 설정을 더하면서 최근 9편에 이르러 과거의 행적이 제대로 언급이 된다.
일단 한은 드리프트 기술이 상당히 뛰어난 드라이버다. 지젤 역시 처음 시리즈에 등장했을 때는 별 볼일 없는 소품 같은 캐릭터였으나, 사실은 범죄 조직의 부하가 아니라 전직 모사드 요원 출신에 비밀을 가진 존재였다는 설정으로 바뀌게 된다. 지젤은 한과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서 한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
로만 피어스(타이레스 깁슨) & 테즈 파커(루다크리스)
두 사람이 도미닉 패밀리에 합류하게 된 건 전적으로 브라이언 덕분이었다. <분노의 질주 2>(패스트 & 퓨리어스 2)에서 브라이언과 오랜 친구 사이였던 로만,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불법 레이스를 벌이던 테즈가 얼굴을 맞댄 후로 둘은 줄곧 패밀리 내 유닛 같은 콤비로서 활약한다.
또 두 사람은 팀 내에서 개그와 입담을 담당하기도 한다. 지루하고 뻔해 보이는 작전 설명, 진행 상황에서 감초 역할을 해줌으로써 지루함을 달래주는 역할. 램지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코믹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물리적으론 당연히 말도 안 되지만, 9편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서 둘은 차를 타고 우주로까지 나가게 된다.
램지(나탈리 엠마뉴엘)
돔 패밀리의 브레인. 램지는 해커 출신으로, 그가 처음 등장하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이후 엮이게 되는 대부분의 사건은 램지가 개발한 ‘신의 눈’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국제적인 테러리스트들이 ‘신의 눈’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상황. 그가 등장했던 초반에는 로만과 테즈가 서로 램지를 두고 저속한 농담을 하면서 누가 먼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내기를 벌이는 듯한 장면도 등장하는데, 정작 램지는 그들에게 일절 눈길을 주지 않는다. 램지는 직접 차를 운전하는 등의 액션을 소화하지는 않지만, 패밀리 전원의 작전 동선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천재 해커지만 차에 대해 잘 모르는 램지처럼, 그를 연기한 나탈리 엠마뉴엘 역시 실제로 운전면허가 없다고 한다.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
커트 러셀이 연기하는 미스터 노바디는 <분노의 질주: 더 세븐>부터 등장하는 미지의 인물로, 미국이 개설한 비밀조직의 수장이다. 경찰이나 FBI보다는 상위 조직으로 보이며 두문불출하는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서 돔패밀리와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미스터 노바디는 벨기에 에일 맥주를 대사에서 자주 언급하는데, 그래서 벨기에 에일 맥주의 전도사쯤 된다.
미스터 노바디는 현재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미스터 노바디가 행방불명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한 탓이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이번 10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 10편에서 브리 라슨이 연기하는 테스가 그와 연관이 있다.
홉스 요원(드웨인 존슨) &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뎀)
드웨인 존슨이 연기하는 안보국 소속 요원 홉스는 5편에서부터 등장했다. 그는 도미닉 패밀리 검거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도미닉과 브라이언 입장에서 보면, 홉스는 경찰과 FBI 몰래 뒷돈을 챙기려는 자신들의 이중 작전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다.
홉스는 굉장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다.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인 '힘' 말고도 안보국 요원으로서 사회적 힘도 갖추고 있다. 홉스가 브라질 수사 때 협력한 엘레나는 나중에 도미닉과 인연이 맺어지기도 했다. 그는 8편부터 기대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데커드 쇼와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리는 케미를 선사한다.
군인이자 정보국 소속이었다가 거물 범죄자로 전락한 데커드 쇼. 그는 도미닉 패밀리에게 당한 동생의 복수를 하려고 활개를 치다가, 또 다른 빌런 사이퍼에 대항하기 위해서 도미닉 패밀리와 잠시 손을 잡기도 한다.
홉스 요원과 데커드 쇼의 케미는 8편에서부터 시작해 스핀오프 영화인 <분노의 질주: 홉스 앤 쇼>까지 이어졌다. 둘은 도쿄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한과도 악연으로 엮여 있는 사이다. 이번 10편에서는 데커드 쇼와 한의 관계가 십분 재활용되는 설정 장면이 등장한다.
사이퍼(샤를리즈 테론)
8편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에서부터 등장하는 사이퍼의 직업은 테러리스트다. 그녀는 도미닉 패밀리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빌런의 끝판왕이다. 시리즈 6, 7편에 등장하는 오웬 쇼 등의 빌런들이 사실상 사이퍼 밑에서 일을 한 셈이니, 사이퍼는 더더욱 끝판왕 같은 존재였다.
도미닉은 레티가 사라졌던(죽은 줄 알았던) 시간 동안 엘레나와 정을 나눴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사이퍼는 그들을 인질로 삼고 도미닉을 협박한다. 그렇게 도미닉마저 흔들리게 한 사이퍼는 이번 10편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에서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이퍼 역의 샤를리즈 테론은 미셸 로드리게즈가 연기하는 레티와 놀라운 액션을 선사한다. <아토믹 블론드> 등 전작들에서 액션에 단련된 샤를리즈 테론은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시원시원한 액션 장기를 사이퍼를 통해서도 대중에 선보인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이대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캐릭터들의 스핀오프가 만들어질거라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아마도 샤를리즈 테론은 반드시 출연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단테(제이슨 모모아)
단테는 시리즈 10편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의 주요 빌런이며, 가장 강력한 역대급 악역이다. 이전까지 도미닉 패밀리와 적으로 만났던 모든 악인들이 단테와 맞서기 위해서 도미닉 패밀리와 손을 잡게 되는 이상한 구도를 형성하게 만든 인물. 물론 그 역시도 도미닉을 때려잡아야 하는 나름의 절실한 이유가 있다. 약간의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다 보니 저지르는 범죄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로서는 다음 편이 될 시리즈 11편에도 등장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피지컬' 하면 빠질 수 없는 제이슨 모모아가 단테로 출연, 도미닉에도 밀리지 않는 아우라를 과시한다.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