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 3>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한국 드라마 최초 시즌 3 방영에 성공한 '김사부', 그 인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석규의 열연, 김사부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 이런 것들이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겠지만 시즌 3까지 꽉 채워준 건 김사부와 함께하는 '돌담병원' 멤버들의 힘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장기 드라마의 매력이 아니던가. 돌담병원 멤버 중 빌런에서 '멍충미' 돋는 동료로 변화하는 양호준도 그런 캐릭터 중 하나. 오늘은 양호준으로 '천하의 나쁜 놈' 소리 듣다가 조금씩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고상호를 만나보자.
빌런→개그캐? 이걸 납득시키는 고상호
양호준이란 캐릭터만 두고 보면, 시즌 2(<낭만닥터 김사부 2>) 시절과 이번 시즌 3(<낭만닥터 김사부 3>)의 온도차가 미묘하다. 시즌 2에선 누가 봐도 밉상이고 시종일관 주역들을 방해하는 인물이 양호준이었다. 실력이 없는데, 그 부족한 실력을 노력이나 공부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꼰대짓과 본인 밥그릇 챙기기 같은 정치로 살아남는 그의 모습은 정말 꿀밤 한대라도 때리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그리고 실제로 그가 차은재에게 맞는 장면은 시즌 2 전체에서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고상호 본인 말로도 작품과 상관없는 글에서마저 양호준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니 그 밉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
그런데 시즌 3에 와서는 시즌 2 말미에 정의 구현을 당해서인지, 자신이 충성하는 박민국이 김사부(한석규)의 편에 서서인지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다른 의사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고 민폐를 끼치는 건 여전하지만, 적어도 시즌 2 때처럼 악의적인 건 아니다. 이전엔 박민국의 행동대장이었다면 이제는 거의 동네 바보형 같은 취급을 받기도. 특히 시즌 3에서 돌담 병원 치킨 파티 장면에서 완전 순한 미소를 드러내며 돌담 병원 멤버들과 그래도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캐릭터의 위치가 뒤바뀌는 상황은, 자칫 '캐붕'(캐릭터성 붕괴)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양호준은 캐릭터성은 유지하되, 드라마 전체에서의 캐릭터 위치만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작가의 훌륭한 필력과 고상호가 양호준이란 인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결과인 셈이다. 고상호는 양호준이 '박민국에 대한 충성심'과 '부족한 실력을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빌런 짓을 해왔음을 시즌 2에서 연기로 보여줬고, 그 결과 그 두 가지 목적이 사라진 시즌 3의 양호준이 '종종 선 넘고 민폐인데 그래도 아주 나쁘진 않은 사람'인 걸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15년차 베테랑 '신인'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는 시청자들에겐 정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고상호. 다만 이 드라마를 아직 안 본 사람들에겐 그가 다소 낯설 수 있다. 2019년 <아스달 연대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드라마 출연작은 아직 10편도 되지 않았다. 영화계에서도 짧게 등장한 <하루> 빼고는 따로 출연한 작품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양호준이 더 신선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고상호는 벌써 데뷔 15년 차의 베테랑 배우다. 그동안은 연극/뮤지컬 등 무대 활동에 주력했기 때문에 아직은 대중들에게 낯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마인>이란 작품으로 데뷔한 그는 <브로드웨이 42번가>, <영웅>, <그날들> 등 대극장 뮤지컬의 앙상블로 경력을 쌓았다. “내가 어떻게 상대를 받쳐줘야 공연이 잘 흘러가는지”(「더 뮤지컬」 197호 발췌) 몸소 배운 고상호는 2015년 <명동로망스>에서 1956년 명동으로 타임슬립한 장선호 역을 맡아 전환점을 맞이한다. 본인 스스로 “배우로서 1막”을 연 <명동로망스> 이후 <비스티>, <트레이스 유>, 그리고 (대표작에 가까운) <미드나잇>을 만나며 지금까지에 이르게 된다.
근 10년 동안 무대에서는 해마다 얼굴을 비춘 고상호지만, 앞서 말했듯 매체 출연은 근래 있었던 일이라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어색하다고. 하지만 공연 잘하는 배우가 매체에 가고, 드라마에서 인지도 있는 배우가 무대로 오는 선순환을 꿈꾸며 그런 상황을 만들어 가는 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란다.
송중기와의 재회, 연이은 빌런
그런 고상호를 또 만날 수 있는 드라마는 무엇이 있을까. <낭만닥터 김사부> 외에 가장 화제가 된 드라마는 <빈센조>다. 앞서 말한 <아스달 연대기>에서 함께 한 송중기와 재회했는데, 당시 송중기가 먼저 알아봐주고 다가와줬다며 “배울 점이 많은 배우”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에선 서울남동부지검 소속 검사 정인국으로 출연했는데, 피카레스크 장르(주요인물이 악인인 장르)를 표방한 드라마답게 검사이면서 중간에 악인으로 돌아선다. <낭만닥터 김사부 2> 직후 출연작이라, 두 작품을 연이어 본 시청자라면 그의 빌런 짓에 이를 악물었을지도.
빌런 캐릭터를 찰지게 소화해서인지, <모범택시2>에서도 노인 전문 사기꾼 유상기로 출연해 공분(?)을 산 바 있다. 아마추어 트로트 가수 역할이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었는데, 뮤지컬 배우 출신답게 간드러진 가창력을 뽐냈다. 노인 전문 사기꾼들 특유의 친근감을 앞세워 접근하는 방식 또한 능글맞게 소화했다. 수많은 빌런이 출몰하는 <모범택시 2>이지만 고상호표 능청스러운 트로트 가수 연기와 노래는 많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무한 반복되고 있다고.
제주의 아들
드라마나 캐릭터와 별개로, 고상호에겐 꽤 재밌는 별명이 있는데 바로 '제주의 아들'이다. 본가가 제주도에 있어서 붙은 별명인데, 이렇게 유명해진 데는 또 사연이 있다. 2019년 그가 결혼할 당시 제주도에 사는 아버지가 아들의 결혼 소식을 제주 지역 방송에 광고로 내보냈고(제주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고) 이걸 한 팬이 보고 “고상호 결혼함?”이라고 인터넷에 올린 것. 배우 본인이나 소속사의 발표가 아닌 지역 광고로 결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주의 아들'이란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실제로 고상호는 드라마 출연 이후 “제주도에 사는 부모님께서 좋아하신다”며 “특히 아버지는 아들이 TV 나온다고 마을에 자랑 중이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낭만닥터 김사부 3>가 촬영을 끝낸 지금, 고상호는 다시 뮤지컬 무대로 돌아갈 준비 중이다. 조선 시대 화재 진압을 담당한 '멸화군'을 주인공으로 한 <멸화군>에서 멸화군 대장 중림 역으로 박민성, 조성윤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됐다. <미드나잇: 앤틀러스>, <모범택시2>, <낭만닥터 김사부 3>에 이어 올해 벌써 4번째 작품으로 향하는 고상호의 바쁜 발걸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