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팰리스> 포스터.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김선영)과 ‘수인’(이윤지)은

진상규명을 위해 오랫동안 유가족 모임에서 함께 싸웠다.

지친 혜정은 남편의 목숨값으로 합의금을 받아

분양받은 ‘드림팰리스’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수인은 여전히 유가족들과 농성 중이지만,

그런 수인이 안쓰러운 혜정은 드림팰리스 입주를 권한다.

처음엔 단칼에 거절하던 수인도, 어느새 드림팰리스를 꿈꾸게 되고…

의문의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고 가장이 된 두 여성이자 엄마인 혜정과 수인은 오랜 진상 규명 투쟁 끝에 결국 남편의 목숨값을 받아들이고, 남은 자식들과의 새로운 삶을 위해 ‘드림팰리스’에 당도하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건 환영의 플래카드가 아닌 바리케이드다.

가성문 감독의 문제적 장편 데뷔작 <드림팰리스>는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촉발한 여러 사회 문제와 산업재해 희생자의 유가족이라는 뜨거운 이슈를 첨예하게 조명한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와 함께 공동체의 갈등을 섬세하고 밀도 있게 다루며, 끝을 알 수 없는 몰입감으로 끝내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드림팰리스>는 얼마 전 개봉한 <그 겨울, 나는>(감독 오성호, 2021)과 묘하게 닮아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누구나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살아가는 부동산, 산업재해 문제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드림팰리스>는 돈이 사랑하는 연인을 해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줬던 <그 겨울, 나는>과 결이 상당히 비슷하다. 아마도 80년대에 태어난 감독들이 공유하는 정서가 스크린에 녹아든 것이 아닐까.

여기에 폭발적인 카리스마의 연기자 김선영 배우와 섬세한 연기를 보이는 이윤지 배우의 만남은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특히 김선영 배우는 “40~50대 여자 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 중에서 이런 주제를 다뤘던 영화는 극히 드물며, 2023년에 <드림팰리스>가 개봉한다는 것은 한국영화계 여배우들의 연기씬을 한 층 더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라고 평했다.

<드림팰리스>로 장편 데뷔한 가성문 감독은 안양예고 출신이다. 동기로는 웹드라마 <결혼백서>(감독 송제영‧서주완, 카카오TV, 2022)에서 열연한 황성은 배우를 비롯해 걸그룹 카라의 박규리, 영화 <상류사회>(감독 변혁, 2018)의 김규선 배우 등이 있다. 힙합을 좋아해서 20대에는 레이블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끈은 늘 놓지 않았다. 영화든 힙합이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가성문 감독을 만나 <드림팰리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드림팰리스> 가성문 감독.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장편 데뷔를 축하합니다. 소감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그간 했던 단편이나 각본 작업과 달리 장편 데뷔작이잖아요. 일단은 영화가 모든 스태프들의 고생을 통해 완성되었고, 이제 대중들을 만난다니 엄청 떨리기도 합니다. 어떤 평가를 주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요.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즐거운 마음이 더 크네요.

주변 사람들 반응은 좀 어떤가요?

지인들이 입을 모아서 말하는 건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웃음) 지금까지 단편이나 각본 작업에서 꾸준히 해왔던 것들이 장편 영화에서 열매를 맺게 된 거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주위 사람들이) 기뻐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봐주고 또 응원해주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드림팰리스>는 ‘산업재해 노동자 유가족’, ‘미분양 아파트 입주민회’가 소재죠.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으신 건가요?

실제로 2010년대에 수도권 김포, 인천, 용인 등지에서 벌어졌던 아파트 미분양 물건의 할인 분양 사태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실제 할인 분양이 진행되면서, 기존 입주자들이 할인 분양을 받은 새 입주자들을 막으려고 아파트 입구에 철조망,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소까지 만들더라고요. 한 도시에서는 심지어 새 입주자를 막으려고 분신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고는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거기서부터 영화의 출발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건설회사의 잘못된 수요 예측이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아파트 할인 분양이 시작된 건데요. 입주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우기보다는, 기존 입주자가 새 입주자를 막아서는 행위가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양상이 동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들에게도 비슷한 양상으로 보이더라고요. 권한이 있는 책임자들은 정작 그들의 책임을 방기하고, 남은 사람들끼리 싸워요. 아파트 미분양 사태의 입주자들과 산업재해 유가족들은 얼핏 동떨어진 곳에 있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또 어찌 보면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는 점에서 둘을 엮어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2019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수상작입니다. 역시나 뚜껑을 열어보니 탄탄한 시나리오의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초고는 얼마 만에 완성하신 건지 궁금해요.

일단 초고는 일 년여 정도 썼던 거 같아요. 간헐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틀을 잡고 완성한 건 일 년 정도였죠.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시나리오 작업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공을 들이는 과정이죠.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요, 기술적인 부분과 작가로서의 정신적인 부분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저도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극장 가서 영화가 재미없으면 안 되니 드라마를 잘 쌓아서 관객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잘 짜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저예산 영화라는 점을 염두에 뒀거든요. 화려한 액션씬 같은 건 보여줄 수 없으니까, 인물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는 듯한 현장감, 몰입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이 영화가 소비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죠. 그래서 드라마 쌓는 것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작가로서는요?

보통 영화관 가서 우리가 보는 영화들 대부분이 을이 갑이랑 싸우다가 결국 성취를 이뤄낸다는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드림팰리스>를 조금 다르게 생각했어요. 기존 분양자가 할인 분양 입주자를 막아선다는 것이, 누군가는 선이고 누군가는 악이라는 구분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누군가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이 사건과 갈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캐릭터를 단선적으로 그리지 않으려 공을 들였습니다.

초고와 최종 시나리오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을까요?

김태훈 배우가 맡은 ‘용민’이라는 캐릭터 설정이죠. 모델하우스 팀장이죠. 초고에서 용민은 혜정의 먼 친구로 설정했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좀 더 명확하게 하려다 보니, 용민 캐릭터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용민을 좀 더 기능적인 캐릭터로 바꿨습니다. 제가 생각한 이미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유대인을 실은 기차를 보낼 때, 기차 출발 버튼을 누르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어요. 자기 생각은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요. 그런 사람들이 현실에서 이런 프로세스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잖아요. 그렇게 인물 설정을 바꾸고 나니 이야기가 더 간결해진 느낌도 들고요, 제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관에서 더 중요한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잘 바꾸신 거 같습니다(웃음). 2019년에 시나리오로 상을 받았는데, 2023년에 개봉했어요. 코로나19를 정통으로 맞은 셈인데, 개봉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또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 자신이 가장 어려웠어요. 이런 질문에는 제 탓을 해야 하니까요(웃음). 왜냐면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함께 집단으로 사고해서 만드는 거잖아요. 시나리오의 텍스트가 건물을 지을 때 골조 같은 거라고 예를 들면요. 시나리오에 쓰인 글자들이 바로 제 머릿속에 있는 걸 가리키는 건 아니죠. 글을 보고 상상하는 게 감독, 촬영감독, 배우 다 달라요. 그걸 제가 원하는 대로 맞춰나가는 것이 연출인 거고요.

또 단편보다 장편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더 많아요. 배우나 스태프들도 더 많이 모이고요. 게다가 극장에서는 15,000원을 받는 상품이기도 하니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죠. 그 과정에서 제 신념을 모든 이와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제가 원하는 대로 그림을 끌어내야 한다는 그런 무게감? 아직 젊은 저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무거웠던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고 스스로 용기를 냈고요. 본디 유약한 선비 같은 성격이었던 제게 힘든 선택들이었죠.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하나 들어주신다면요?

혜정과 수인이 창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세트를 지을 수 없으니,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야 했어요. 제 머릿속에는 집 문으로 들어가고 나갈 때 그 창이 늘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미 있었거든요. 그런데 당시 코로나19가 심해서 거리두기가 4단계였어요. 장소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제작진이 제 머릿속에 들어올 수도 없는 건데, 제 머릿속에 있는 공간을 찾아야 했고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공간도 아닌데, 계속해서 찾아달라고 요청해야 해서 미안했죠. 결국 한 공인중개사가 인천에서 그런 집을 찾아주셨습니다.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배우 이야기를 좀 여쭤볼게요. 혜정 역을 맡은 김선영 배우의 연기는 가히 명불허전입니다. 거의 매 장면 등장할 정도로 분량이 많은데도 몰입도가 대단해요. 처음부터 김선영 배우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셨던 건가요?

혜정은 김선영 배우와 닮아있는 구석이 있죠. 하지만 김선영 배우만 닮은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배우를 연상하고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란 이야기죠. 시나리오에 배우가 갇힐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김선영 배우가 혜정과 닮은 걸 분명 알고 접근한 건 사실입니다. <세자매>(감독 이승원, 2020)를 보면서 김선영 배우의 깊은 연기에 감동받았거든요. 혜정의 복합적이고 분열적인 깊이를 해석해줄 수 있는 배우가 한국에 몇 명 있을까요? 그 중 한 명이 김선영 배우였던 거 같습니다.

현장에서 김선영 배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고생을 많이 시켰죠(웃음). 왜냐면 그 상황과 인물이 처한 상황이 너무 비극적이잖아요. 이걸 체화해서 연기해야 하는 배우로서는 매시간이 너무 어려웠겠죠. 감독인 저도 타협할 수 없지만, 김선영 배우 역시 타협이 없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잘 맞았어요. 주변 스태프들은 좀 걱정을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김선영 배우와 저는 뭔가 통하는 데가 있었던 거 같아요. 뒤끝 없고 되게 시원시원한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산업재해 유가족인 혜정은 처음에는 함께 투쟁하지만, 결국 합의금을 받죠. ‘드림팰리스’에 들어가서 녹물이 나오는 아파트를 보고 모델하우스 팀장과 싸우지만 결국 분양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자처해요. 기존 입주자 회의에서 배척당하지만, 나중에는 자기 집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언뜻 보면 혜정이 자꾸만 주변에 동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 수동적인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가 아닌 거 같기도 합니다. 이 지적에 대해 김신영 배우는 “편집된 분량이 많아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감독님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편집된 부분은 감독의 입장에서 이유가 있을 테죠. 그 분량들이 없다고 해서 혜정의 캐릭터가 완성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드림팰리스>에서 이기심과 죄책감을 같이 가진 인물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판타지 영화를 보면 인물이 명확하죠. 주체적이어야 하고요. 그런데 <드림팰리스>는 판타지를 소구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거든요. 현실을 보여주고 질문하는 영화죠. 그래서 ‘주인공이 주체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 영화의 목적과 다르다고 답하겠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혜정은 불완전한 인간을 그리고 싶어서 만든 캐릭터입니다. 이기적이지만, 동정심이나 연민도 들고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혜정은 흔히 우리가 보는 인물과 다른 면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캐릭터를 따라가기 힘든 정도는 아니라고 봐요. 뭔가 복합적인 인물을 따라가면서 보는 매력이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말씀을 듣고 보니 조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혜정이 처음으로 참석한 입주자 회의에서 합리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기존 입주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혜정에게는 과거에 유가족과의 다툼에서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실패의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실을 돌아보면요, 한국 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모습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사회적인 재난, 참사가 벌어지면 일단 진상 규명이 잘 안되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의견이 갈리면서 서로를 탓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여론은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합니다.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참사를 당한 사람들은 당장 닥친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그거에 앞서서 자신들이 선량하다는 것에 대해 입증을 받아야 하는 것도 있다는 거죠. 그런 시선, 아픔이 너무 싫어서 유가족 모임에서 도망친 사람이 바로 혜정이 아닌가 싶어요.

드림팰리스에 입주하고 나서 원하는 마음이 있었겠죠. 다시 한번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건데,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죠.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잖아요. 정말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면 자꾸만 치사하게 도망치는 책임자와 그 안에서 돌아오지 않는 답을 기다리며 수년째 농성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내부 갈등이 생기고, 주변에서 탓할 사람을 찾게 되는 그런 구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기존 입주자 회의 모습을 그렇게 설정한 거죠.

‘수인’ 역을 맡은 이윤지 배우는 인생 캐릭터를 맡은 듯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민낯으로요(웃음). 아역 배우 출신으로 착하고 순수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는데, 의외로 찰떡같이 수인 역을 소화해내서 놀랐어요.

이윤지 배우가 방송을 많이 하잖아요. 관찰 예능에도 많이 출연했고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윤지 배우에 대한 호감이 있었어요. 저 사람의 진심이 화면에 드러나는 거예요. 저 배우는 어떤 식으로 사람을,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것들이요. 물론 방송이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주는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뭔가 기대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와 별개로 연기자로서의 존경하는 마음도 컸어요. 혜정은 다 포기한 사람이라 오히려 더 진취적으로 사는데, 수인은 세상의 화살을 다 맞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버틸 수밖에 없는 사람이거든요. 이쪽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고, 저쪽 사람들에게도 미안해서 계속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이라, 고운 마음,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윤지 배우가 그런 역할을 잘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죠.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실제 만나보니 어떻던가요?

화면에서만 봤던 그런 면들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뵙고 수인 역을 맡아달라고 말씀드렸죠. 20회차 정도로 찍을 만큼 작은 영화라 현장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어요. 오히려 촬영 전에 많이 만났어요. 김선영 배우는 촬영 전에 2박 3일 동안 계속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저와 대화를 나누는 편이었고요. 이윤지 배우는 간간이 만나면서 수인이라는 캐릭터를 맞춰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고, 수인에 관한 생각들도 많이 공유했죠.

혜정이 아들 ‘동욱’ 역을 맡은 최민영 배우는 오디션으로 뽑으셨다고요.

네. 이미지도 어울렸고, 연기도 잘했지만, 특히 마음이 끌린 부분이 있어요. 보통 그 나이에 오디션을 보러 오면, 자기를 보여주려는 의욕이 넘치는 배우들이 많아요. 그런데 최민영 배우는 오히려 여백의 미를 보여줘서 그게 더 좋았어요.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혜정은 유가족 모임을 떠납니다. 남편의 목숨값을 합의금으로 받고요. 가면 잘 살아야 하는데, 거기서도 입주민들과 또 마찰을 빚고, 결국 자신을 내어주고야 일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터지고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딱 떠오른 단어가 ‘총체적 난국’이었어요. 감독님은 이런 상황에서 어디서 희망을 찾으시나요? 영화에서는 어떻게 희망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셨고요?

시나리오 마지막 부분에 혜정이 도로에 유기된 강아지를 발견해요. 아들을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장면이죠. 혜정은 거기서 또 선행을 베풉니다. 그런데 이게 강아지를 위한 선행인지, 자신을 위한 선행인지는 몰라요. 그런 사소한 것들이 희망일 수 있겠죠? 또 남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오해가 풀리는 장면이랄까요. 그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 그나마 혜정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 의미심장하게 남는 거 같아요. 감독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 주민등록등본 떼보면 3장이 나와요(웃음). 어릴 때부터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어요. 좋은 집에 가면 가족이 좀 행복해지고, 안 좋은 환경으로 가면 우울해지더라고요. 이런 기분들이 대화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느껴져요. 집이 좁아지면 엄마가 아끼던 가구를 버리게 되니까요.

우리 사회가 부동산, 집값에 되게 예민하죠. 아파트가 자본주의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실 집의 본질은 그게 아니에요. 혜정이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던 가정, 그것이 바로 집의 본질인 거죠. 영화에서 혜정은 사실 본질과는 다른 부동산적인 문제로 위협을 받게 되는 거잖아요. 부동산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자식이나 동료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요. 자꾸만 주객이 전도되는 문제도 있죠. 집은 재화이니까요. 하지만 집은 재화이기 이전에 삶이 태어나고 죽는 가장 원초적인 사회이기도 합니다. 그런 원초적인 사회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그런 의미로 만든 건 아니지만, 집에 대한 제 가치 판단은 그렇습니다.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영화에서는 비극적 사건이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을들의 전쟁’처럼 느껴지고요. 빌런이 따로 없어서 더 찜찜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드림팰리스>가 핵심적으로 다뤄야 하는 테마가 있다면 ‘빌런은 따로 있다’라는 거였습니다. 우리 삶을 봐도 정말 나쁜 사람은 보기 쉽지 않아요.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영화에서는 서로를 탓하는 혜정과 수인이 보이지만, 이게 서로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진짜 빌런은 따로 있고, 불행은 우리의 잘못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거요. 우리 삶이 실제로 왜 이렇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드림팰리스>에서 우리 삶에 당도한 이런 문제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관찰해보고 싶었습니다. 진짜 빌런은 어디 있는지, 어쩌면 내 옆 사람 탓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아마 비슷한 이야기하게 될 거 같아요. 일종의 불완전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겠죠. 그럼에도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드림팰리스>에는 진중하고 냉소적으로 보여드렸으니까, 다음에는 관객이 위안을 얻어 갈 수 있게 조금은 밝은 이야기가 되겠죠? 제 안에 그런 마음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드림팰리스>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드림팰리스>는 쉽게 말하면 중도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역시 현실에서는 포기와 타협이 일상이죠(웃음). 그런 면에서 무언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어려운 현실 앞에 타협하는 일들에 대해서 ‘그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위안 또는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들이 있었어요. 물론 삶은 고단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고, 그렇기에 포기나 타협은 결점이 아니라고요. 영화에서 혜정은 그 결점을 고치려고 하다가 무너져내리지만요. 조금은 슬플 수 있겠지만, 혜정의 삶을 통해 우리 삶의 포기와 타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많은 사람의 용기로 만들어진 영화에요. 작은 영화지만, 선뜻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부터 지금까지 온 거죠. 이제 마지막 용기가 필요한 시기인 거 같아요. 관객들께서 <드림팰리스>를 보러 극장으로 가는 용기를 내는 거요(웃음).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