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숲으로 떠나는 영화 소풍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풀벌레 소리가 맞이하는 6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 맥주 한 캔 따고픈 날씨. 초여름의 낭만을 흠뻑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영화적인 순간을 즐기는 것일 터다.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전라북도 무주는 인구 2만 명의 작은 산골 마을이다. 무주는 겨울을 대표하는 설산인 덕유산이 있고, 스키장이 있어 겨울에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름의 무주는 겨울과는 달리 더없이 청량하고, 소박하고, 아날로그한 매력으로 가득하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수더분한 풍경은 번잡한 도심을 떠나왔다는 증거인 양, 곧바로 나를 반긴다.


“나만 알고 싶은 영화제” 영화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낭만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사방이 초록색으로 가득한 무주의 산골에 있노라면 고민은 속세에 두고 온 듯, 묘한 안정감에 사로잡힌다. 무주산골영화제는 2013년에 시작되어, 11년간 영화, 낭만, 로컬, 힐링, 자연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잘 활용해온 영화제다. ‘하늘과 바람을 벗 삼아 숲으로 떠나는 영화 소풍’이라는 슬로건은 영화제가 지향하는 바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동장으로 손꼽히는 무주등나무운동장에서 매년 개최되는 개막식은 더없이 낭만적이다. 너도나도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오순도순 모여앉아 맛있는 음식과 함께 축하무대를 감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뷰티풀 민트 라이프’ 같은 음악 페스티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한다. 아, 물론 여름과 잔디밭 하면 빠질 수 없는 생맥주도 판다. 참고로, 무주산골영화제는 ‘굿즈 맛집’이라고 정평이 나 있어, 영화제 굿즈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음악과 영화가 결합한 독특한 개막작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 10년간 무주산골영화제만의 프로그램 정체성을 담아내면서도, 무주등나무운동장이라는 열린 공간적 특성에 걸맞은, 고전영화와 라이브 연주를 결합한 복합문화공연 형태인 일종의 하이브리드 영화를 여러 협력 파트너와 함께 기획, 제작하여 개막작으로 선보여 왔다.

올해는 고전영화에서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까지 개막작의 외연을 넓혔다. 이번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는 개막작으로 <버텨내고 존재하기>라는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했다. 영화 중간에 라이브 공연이 이뤄졌다는 점. 곽푸른하늘, 최고은, 주소영,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등 영화 속 뮤지션들이 스크린 안과 밖을 오가면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노래를 입체적으로 들려주며 독특한 영화적 경험을 전했다.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제공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1933년 조선인이 세운 호남 지역 최초의 극장이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광주극장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이 광주극장에 초대받은 8명의 개성 넘치는 실력파 인디뮤지션들이 극장 건물 내 다양한 공간에서 들려주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과 그들이 연주하고 부르는 아름다운 음악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있다.


섹션은 ‘창’, ‘판’, ‘락, ‘숲’, ‘길’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무주산골영화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라는 평이 돌기도 한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아이덴티티를 뽐내는 만큼, 마니아들이 많은 영화제라는 뜻일 터. 무주산골영화제의 섹션명 역시 뻔하지 않다. 섹션은 ‘창’, ‘판’, ‘락, ‘숲’, ‘길’로 구분된다.

‘창’ 섹션은 무주산골영화제의 유일한 경쟁 섹션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하는 한국장편영화를 상영한다. 그간 <남매의 여름밤>(윤단비, 2020년 8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김세인, 2022년 10회) 등의 영화들이 이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무주산골영화제 측은 프리미어 상영을 영화 선정의 주요 이유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창’ 섹션에서는 작년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된 수작과 화제작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부문에서는 작년에 공개된 영화 중 관객들과 평단으로부터 가장 두드러진 주목을 받았던 2편의 화제작 이정홍 감독의 <괴인>, 지난 5월 폐막한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당신으로부터>(신동민 감독) 등을 상영했다.

덕유산 국립공원 대집회장.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숲’ 섹션은 무주산골영화제의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낸 부문이다. 해발 700m 덕유산 중턱, 무주구천동 33경의 한가운데, 덕유산 국립공원 대집회장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상영장이 된다. 올해는 녹음이 우거진 덕유산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대표작이 4편 연속으로 상영되었다. 참고로, ‘숲’ 섹션의 야외상영은 모두 무료라는 사실. 올해도 역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낳은 섹션이다.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은 배우 변요한.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판’은 동시대 세계영화의 흐름을 담아내는 섹션이자, ‘넥스트 액터’부터 ‘무주셀렉트: 동시대 시네아스트’, ‘토킹시네마’, ‘키즈스테이지’에 이르는 무주산골영화제를 대표하는 특별한 프로그램도 이 섹션에 포함되어 있다. 그중 ‘넥스트 액터’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잠재력 높은 배우를 선정하여 집중 조명하는 배우 특집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배우 박정민, 고아성, 안재홍, 전여빈이 차례로 선정된 바 있다.

올해의 ‘넥스트 액터’로는 배우 변요한이 선정되었다. 변요한은 이번 무주산골영화제에 참석해, 직접 선정한 3편의 단편출연작(<타이레놀> 등)과 2편의 장편출연작(<자산어보> 등)을 관람하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무주산골영화제의 또 다른 즐길 거리! 음악과 토크가 함께하는 산골 콘서트

이번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에 초대된 가수 김필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라던 적재의 노랫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무주의 밤하늘. 반짝이는 별빛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서정적인 선율일 것. 무주산골영화제는 ‘산골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매년 산골과 어울리는 가수를 초대해 ‘공연 맛집’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올해는 무주등나무운동장에서 김필, 멜로망스, 적재 등의 공연이 펼쳐져,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자연 속에서 귀까지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출처: 무주산골영화제 페이스북

이번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 6월 2일 금요일에 개막해, 6월 6일 현충일까지 5일간 계속된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를 놓쳤다면, 내년에는 꼭 달력에 표시해 놓은 후 잊지 말고 무주를 찾아보자. 내년에는 또 어떤 독특한 프로그램이 계속될지, 영화제의 개성 가득한 아이덴티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 매번 기대가 되는 영화제이기에.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