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8월 새만금에서 열리는 세계잼버리대회(세계스카우트연맹 주관 야영대회)로 우리 지역이 들썩인다. 17년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고(지금은 재가동 중이다), 18년 GM 군산공장이 철수하면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은 5년의 시간 사이로 비상사태의 영구화와 각자도생의 공포가 군산 곳곳에 스며들었다. 새만금 개발과 맞물린 대형 국제 이벤트의 개최는 이런 우울함을 잠시나마 환기시키기 충분하다. 세계 잼버리를 지렛대 삼아 새만금 관련 현안 사업들이 속속 풀리길 기대하며 농어촌공사와 전라북도는 해창 갯벌을 매립해 잼버리용 부지도 마련했다. 최근에는 수라 갯벌에 새만금 신공항 건설까지 가시화되며 지역 부동산 카페에서는 '이제 우리 지역도 발전하는 건가요'라는 댓글이 줄잇는다. 사실 나도 새만금사업의 수혜자 중 하나다. 집 앞은 새만금포항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가 끝나는 2025년이면 지금은 1시간 걸리는 전주-새만금 구간을 30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환경이냐 개발이냐는 '지방정치'에서 가장 논쟁적이다. 탈핵이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된 반면 새만금과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은 여전히 지역 공약으로 인기다. 고작 2주일의 행사를 위해 갯벌로 복원될 수 있는 곳을 매립해버리다니, 크게 놀라는 사람 맞은편에는 철새들이 제 계절에 하늘을 무사히 가로지르는 일이 뭐가 대수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다. 무책임한 정치인, 개발을 지지하는 주민들, 갯벌을 지켜내고자 하는 활동가와 어민들, 개발의 부스러기라도 주우려는 협잡꾼들, 미국의 중국 견제라는 국제 정세까지. 새만금은 우리에게 단순히 개발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억울함, 기쁨, 절망, 희망, 분노, 탐욕, 반목이 어지럽게 엉켜 꿈틀대는 유기체다.
새만금사업이 이미 한참 전에 종료된 국책사업인 줄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들이라면 <수라>를 보고 새삼 놀라게 된다. 무리도 아니다. 이 사업은 무려 1991년에 시작됐으니.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가 전북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해 급조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토건 사업의 처음 목적은 갯벌을 농지로 간척해 농업용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업 초기 100% 농업용지 조성이 목적이었던 토지이용계획이 정권에 따라 갈지자걸음 하더니 이명박 정부 때 산업관광 7, 농지 3으로 그 비율이 바뀌었다. 30년이 지났지만 새만금 사업은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2050년 100% 완료를 목표로 2022년 기준 전체 매립 예정지 중 47.1%가 매립됐다. 방조제를 세우는 데에만 20년이 걸렸다. 온갖 장밋빛 전망이 공허한 환상처럼 보이는 이유다.
새만금사업에는 늘 '최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최대 규모의 간척지, 단군이래 최대 규모의 공사, 세계 최대 방조제(33km) 등. 하지만 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강의 기적'이라도 일궈낼 30년의 장구한 세월 뒤, 주민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개발은 모호했고, 피해는 확실했다.
먼저 대가로 내어준 건 군산 앞바다의 수라, 계화도, 해창 등 갯벌이다. 그리고 그 갯벌에 깃든 생명체들이다. 2006년까지 호주에서 출발해 매년 새만금 갯벌을 찾아와 먹이 활동을 하고 다시 시베리아까지 날아가던 붉은어깨도요를 예로 들자면, 방조제가 완공된 후 말라붙은 새만금 갯벌에 내려앉아 대부분이 굶어죽었다. 2007년에 새만금 갯벌을 향해 떠났던 붉은어깨도요의 93%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고, 이는 붉은어깨도요의 전 지구 개체 수 1/3에 해당하는 것이다. 방조제로 마른 해창 갯벌에서 바닷물을 기다리다, 빗물을 해수로 오인해 뻘 위로 나와 한꺼번에 폐사한 조개의 모습은 올해 본 영화 장면 중 가장 충격적이다. 새만금개발로 새들과 무척추동물을 포함한 1,000종 이상의 생물들이 절멸했다고 전해진다.
인근 어촌마을 주민들에게도 비슷한 비극이 닥쳤다. 조개를 캐던 어민들의 손은 이제 시에서 내어준 환경 정비용 빗자루를 잡는다. 방조제로 갯벌이 마른 뒤에도 몇 년 간은 갯벌에서 조개 캐는 꿈을 꿨다는 여성 어민의 인터뷰는 이들이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게 한다. 농어촌공사에서 방조제 수문 시간을 공개하지 않아 언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던 이유로 여성 어민 류기화는 익사했다. <수라>의 황윤 감독이 언니처럼 따르던 어민이었다.
바닷물이 마르니 모든 게 끝났다 생각했다.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아직 생명이 있었다. 2006년 마지막 물막이 공사 이후 수명을 다한 줄 알았던 갯벌에는 여전히 귀한 새떼들이 모여들었고, 멸종 위기종을 비롯해 별처럼 많은 생명체들이 발랄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새만금시민조사단이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동필 새만금시민조사단장이 있다. 동필은 20년 동안, 갯벌에 멸종위기종들이 살고 있다는 증거를 모아 왔다. 둑에 막혀 말라버린 갯벌에서 수년을 견디다 기어코 모습을 드러낸 멸종위기 2급종인 흰발농게의 모습을 기록했다. 오래전 보았던 도요새의 군무,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본 죄로 조사단 활동을 계속한다는 그의 말에서 인간의 천박한 욕망 따위가 해할 수 없는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일렁인다.
그리고 그런 동필을 포착하는 것은 감독 황윤이다. 2006년, <수라> 제작 전 윤은 갯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구상했다. 하지만 새만금간척사업이 강행되고, 어민 류기화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잇따라 경험하며 결국 촬영을 포기했다. 10년 뒤 윤은 운명처럼 ‘새만금의 도시’ 군산에 이사를 오고, 동필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떠난 그 자리에서 묵묵히 갯벌을 지켜 온 사람들의 진심과 간절함에 다시 카메라를 잡는다. 새만금을 '기록'하는 동필을 다시 황윤이 '기록'하자 죽은 줄 알았던 새만금 갯벌들의 아름다움이 되살아나고, 국책사업의 폭력에 대한 기록이 세상에 남게 됐다.
영화의 첫머리, 낯선 이름 두 개가 발견된다. 제작지원에 이름을 올린 '순천시'와 '파타고니아'다. 새만금 이야기에 왜 순천시가 지원을? 조금 의아했지만 곧 순천만 갯벌이 떠오르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미국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이의 목표는 놀랍게도 환경 보호다. 지속적으로 환경단체를 지원해 왔으며, <수라>를 통해 최초로 한국 영화 제작 지원을 했다. 이 두 곳의 이름은, 개발과 자연이 함께할 수 있는 증거에 다름없다. 상상해 봤다. 근거 없이 부풀려진 장밋빛 산단 개발보다, 그 황금 같던 30년의 세월을 해창, 수라 갯벌의 자연을 유지하면서 관광지를 개발했다면, 그 갯벌과 연계해 내륙에 친수 시설 중심의 공원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첫머리부터 우리가 눈 돌려야 할 곳을 명확히 가리킨다.
다행히 시민들의 싸움으로 해수 유통이 확대됐고, 서해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며 방조제 안쪽의 썩은 바다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바쁜 동필을 대신하는 다음 세대의 모습도 희망적이다. 걸음마를 뗄 때부터 동필을 따라 도요새를 찾으러 다녔던 아들 승준은 어느새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생명의 증거를 찾아다닌다. 영화 말미, 승준이 포착한 멸종위기 2급 새인 쇠검은머리쑥새의 노랫소리는 수라 갯벌은 공항이 들어서면 안 되는 곳임을 천명한다.
새만금사업은 합법이라는 2006년 대법원 판결 후, ‘30여 년간 바닷물을 막아뒀던 갯벌이 회복되는 데에는 고작 2년’이라던 조사단의 목소리는 국책사업의 거대 계획에 부딪쳐 외롭게 메아리쳤다. 영화 <수라>는 외로운 싸움을 기록하고, 주먹보다 작은 쇠제비갈매기새끼가 흙빛 바닥에서 어미를 기다리는 모습을 비추며 그 계획에 감히 균열을 내려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보다 갯벌이 뚫리길, 비행기보다 도요새가 날아들길 기원하는 나를 포함한 2만 명의 관객도 그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글을 쓴 6월 26일 기준 <수라>의 관객 수는 약 2만 명을 달성했다. 총관객 1만을 넘기기 힘든 다양성 영화의 현실을 고려할 때 5일 만에 이룬 이 성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