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민 케인>을 안 볼 수 있죠?"
"그러는 당신은 <사운드 오브 뮤직> 봤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가 나눈 대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적이 없고, 마고 로비도 <시민 케인>을 안 봤다며 놀림을 당했다. '고전'이나 '명작'이라는 수식을 단 채 오래도록 칭송되는 영화들은 많지만, "그 영화 봤어?"라는 질문에 이들처럼 우물쭈물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혹시 당신에게도 안 봤다기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봤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영화들이 있는가? '솔직히 아직 안 본' 고전 혹은 명작들을 소개하는 '솔아안 시네마'로 안내한다.
* 영화 <폴리스 스토리>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60년 경력의 배우, 성룡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다. 이건 성룡의 작품을 한 편도 제대로 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유효한 명제다. 문맹이라 대본도 읽지 못했던 그는 홍콩 액션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소룡의 요절 이후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액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성룡은 기네스북에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는데, 살아 있는 인물 중 최다 스턴트 액션 기록과 한 작품 최다 크레딧 보유 기록 덕이었다. 이는 성룡이 주연과 감독 및 제작뿐만 아니라 촬영, 스턴트, 음악, 미술 등 영화의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영화인임을 방증한다.
더불어 하나의 작품에서 한 사람이 15개의 크레딧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이 완벽주의자이자 통제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룡이 유독 감독과의 불화설이 잦았던 배우였던 건 그 때문일 터다. 또 이는 성룡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구축한 영화적 세계관이 매우 견고하다는 뜻이다. 그의 영화에는 축소된 스토리만큼 방대한 퍼포먼스가 존재한다. 영화의 근원에 오락적 욕구가 있다면, 성룡의 작품은 이를 완벽히 충족한다. 정말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감상할 조건이 된다면 말이다.
특히 '성룡 표' 액션은 과격함과 비현실성, 그리고 약간의 유머에 초점을 맞춘다. 대역을 최소로 쓰고 스스로 소화한 그의 스턴트는 아찔할 정도로 폭력적이지만 코믹한 터치가 이를 중화한다. 홍콩 누아르가 건 파이트(Gun Fight)와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위시하며 유행하기 전까지, 그의 맨몸 액션은 가히 영웅적이었다. 성룡의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폴리스 스토리>는 이 같은 특징들의 집대성이다. 그가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열혈 형사 진가구(성룡)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제는 코믹 형사물의 전형이 된 진가구는 어딘가 허술하고, 욕심도 없지만 남다른 실력과 불타는 정의감으로 살아가는 캐릭터다. 의욕이 앞서는 진가구 탓에 상사들은 늘 쩔쩔매고, 그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검거 현장 뒷수습에 바쁘다. 보신주의와 관료주의가 팽배한 홍콩 경찰청 내부에서 진가구는 주머니 속 송곳 같은 존재다.
마약왕 주도(추위안) 체포 작전인 '멧돼지 사냥'에 투입된 진가구는 거래 현장에 매복하는데, 동료의 실수로 이를 들키게 되며 조직과의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여기서 현대판 <용문객잔>을 방불케 하는 액션이 꽤 길게 펼쳐지는데, 진가구가 지나가는 길마다 판자촌의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은 속절없이 파괴된다. 주민들의 안위를 챙겨야 한다는 말에 "저놈들은 봐 주면서 할 것 같냐"라고 일갈한 진가구. 양 측이 총을 난사하다 못해 사람 둘이 들어가면 꽉 찰 골목을 자동차로 누비니 결국 가스통을 잘못 건드려 마을이 폭발해 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진가구는 주도를 놓칠 위기에 처한다. 버스를 탈취한 주도 일당의 뒤를 혼신의 달리기로 뒤쫓던 그는 행인에게 빼앗은 우산 하나로 버스에 올라타는 데 성공한다. 진가구의 무게와 버스의 속도를 온전히 지탱하던 우산의 손잡이가 실시간으로 휘어지는 광경은 성룡의 스턴트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거의 목숨을 내놓고 버스 위와 안을 누비며 악당들을 때려잡던 진가구는 주도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거의 한마을을 박살 낸 진가구였지만, 그보다 경찰청이 중요하게 여긴 건 마약왕 검거였다. 진가구는 홍콩 경찰청 대변인이자 모델에 등극한다. 그러나 주도가 호락호락하게 감옥에 들어가 줄 인물은 아니었다. 진가구는 주도 측을 기소할 증거를 갖고 있는 비서 셀리나(임청하)의 경호와 감시를 맡게 된다. 그는 셀리나와 함께 다니는 과정에서 경찰 내부에 있던 주도의 심복에게 목숨을 위협당한다. 여기서 후환을 없애려는 주도 일당은 심복을 살해한 후 진가구에게 누명을 씌우며, 진가구는 일급살인죄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진가구는 자력구제에 나선다. 주도를 잡기 전에는 절대로 잡히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헛타격이라곤 없는 성룡의 원맨쇼는 백화점 추격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수배자 신분으로 주도의 부하들을 전부 때려눕히는 과정에서 그 배경인 백화점은 처참히 망가진다. 자신의 죄가 전부 담긴 증거를 품에 안고 도망치려는 주도를 잡기 위해 진가구는 5층에 달하는 높이에서 샹들리에 봉을 탄 채 1층으로 향한다. 이때 봉 근처에 매달려 있던 전구들이 깨지며 스파크가 튀는데, 차단됐어야 할 전기가 차단되지 않아 성룡은 화상을 입고 일순 등이 마비되는 증상까지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각도로 촬영하며 그토록 담 큰 성룡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영화 속 해당 대목을 보면 백화점의 각 층에서 성룡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 정적이 감지될 정도다. 그렇게 주도 앞에 선 진가구는 주먹으로 악당을 난타하더니 카트에 실어 유리 진열장으로 내던져 버린다.
영화가 나온 지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폴리스 스토리>에서 내러티브의 통쾌함을 말하기는 어렵다. 진가구가 활약하면 할수록 그가 지켜야 할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와 캐릭터를 연기하는 성룡의 안위(?)가 먼저 보이는 탓이다. 다만 <폴리스 스토리>의 불필요한 파괴와 폭력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온전히 성룡의 액션 세계관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가치를 갖는다. 그의 창의성이 만든 비현실적 과격함은 이 영화를 통해 완성됐다.
칼럼니스트 라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