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 남짓한 텃밭을 '친환경'적으로 경작해 보겠다 호언했건만, 여름 장마와 잡초로 손을 놔버린 지 한참. 이렇게 포기할 순 없었다. 동기가 필요했다. 내재된 경작 본능을 건드릴. 마침 24만 평에 달하는 대지에 '전통 농법' 만으로 농사를 짓겠다 선언한 초보 농부 부부의 다큐멘터리가 상영 중이었고, 이 정신 나간 이야기는 필시 나를 자극하리라, 부푼 마음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다.


극적인 오프닝

<위대한 작은 농장>은 모든 반려인들의 악몽으로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에 산불이 발생해 불길이 농장 코앞까지 번진 것. 빨리 대피를 해야 하지만, 가축들을 그냥 두고 갈 순 없다. 오프닝은 동물들을 트럭으로 옮겨 싣는 분주함, 불길이 농장까지 번지지 않길 바라는 다급한 무전기 속 대화로 어지럽다.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피와 땀으로 일군 농장과 동물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로 잦아진 산불에 신음하는 캘리포니아, 그리고 작금의 현실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동물들이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현실은 초보 농부 부부가 실행하고자 하는 이 비현실적 계획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미친 여정의 시작, 반려견 토드

명석한 눈을 가진 토드

긴박한 오프닝 후, 영화는 이 미친 여정의 시작점을 비춘다. 바로 부부의 반려견 토드다.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 존 체스터는 애니멀 호더에 관한 다큐멘터리 촬영 도중 토드를 만나게 되고, 곧 사랑에 빠진다. 부부의 좁은 아파트에서 동거하게 된 회색 눈을 가진 이 개는 '돌아', '앉아'를 잘 하는 명석한 친구지만, 밤낮으로 울부짖고 분리불안도 심하다. 마침 요리사인 아내 몰리 체스터도 자신이 키운 농작물로만 요리를 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터. 부부는 의기투합해 아파트를 떠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 계획이 조금 커져버렸다.


전통 농법의 대가와의 만남, 그리고 사랑스러운 동물들

돼지 엠마와 수탉 기름기. 비극적 사랑의 끝은 직접 확인하시길.

이들의 계획에 공감한 몇몇 사람들이 투자를 결정하며, 24만 평의 황무지를 덜컥 매입해 버린 것. 마른 흙만 푸석거리는 이 땅에 정녕 생명이 깃들까? 초보 농부들은 전통 농법의 대가 앨런 박사의 휘하 아래 '죽은 땅 재생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최대한 다양하게 키워야 전체가 연결된다"라는 괴짜 구루의 가르침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부부는 일단 그를 좇아가본다. 먼저 다양성을 늘려야 한다는 앨런의 말에 동물 식구들을 모았다. 지렁이 군단, 돼지 엠마, 닭, 오리, 황소 그리고 가축들을 지킬 목양견 카야와 로지까지. 여기에 더해 농업용수 저수지도 만들고, 과일나무와 피복식물도 심었다. 일손이 필요함을 인터넷에 알리자 전통 농법의 취지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애프리콧 레인 농장'이 세워지기 전, 같은 터에 있던 농장에서 일했던 농사 베테랑들도 소집했다. 외관은 얼추 갖췄으니 이제 모든 것이 순조로울까. 설마 그럴 리가. 여기저기서 예상치 못했던 사고와 죽음, 그로 인한 좌절이 뒤따른다. 취지는 좋았지만 과연 이런 식으로 농사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순환에는 죽음도 있음을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농장. 하지만 실상은...

목가적 풍경이 전시된 영화 포스터에 속지 말자. 카메라는 자주 끔찍한 장면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며, 순환에는 '죽음'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농장의 가장 큰 대학살은 코요테의 닭 습격으로 촉발된다. '닭 모이로 쓰기 위해 과일을 키우는 것 같다'라는 한 인턴의 자조적 한탄처럼, 과일을 키우는 족족 새가 쪼아 먹는 통에 시장에 내다 팔 만한 물건이 없다. 그나마 농장 수입을 책임져준 것이 달걀. 하지만 코요테의 기습으로 닭 260마리 중 230마리가 폐사하며 존과 몰리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문제 요소를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스승 애런이 강조한 '자연이 스스로 순환하는 상태'를 북돋아 이 난관을 헤쳐나갈 것인가. 시행착오 끝, 해답은 '먹이사슬'에 있음을 깨닫는다.

농장의 다양한 동물들

코요테를 사살하는 대신 닭 우리에 목축견을 뒀더니 코요테는 사냥 본능을 두더지로 돌렸다. 마침 두더지가 피복식물을 갉아먹어 골치를 썩던 차였다. 식물들에 끈질기게 달라붙던 달팽이는 오염된 물에 살아 먹거리가 부족했던 오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양식이 되었다. 땅에 가능한 최대치의 다양성을 부여하자, 자연은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로 작은 소우주를 이뤄 스스로 순환하고 있었다.


다시 호미를 들고

'애프리콧 레인 농장'

기후변화로 캘리포니아에서 산불은 '뉴노멀'이 된지 오래다. 부부가 세운 '애프리콧 레인 농장'은 지난 3년 동안 강도 높은 산불을 여러 차례 겪었고, 15킬로 내외의 근거리에서 아찔한 화재도 3건이나 발생했다. 바람이 방향을 조금만 틀었다면 불길은 부부의 농장에 옮겨붙었을 터.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모래 돌풍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연의 변덕이 비켜나가는 요행을 비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모순은,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위대한 작은 농장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일작물을 재배하는 주변 농가들의 땅이 큰 비로 유실될 때, '애프리콧 레인 농장'만은 빗물을 흡수하고 완충지대를 만들어 농작물도, 주변의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체스터 부부의 소박한 계기와 신념으로 시작된 실천이 황무지를 작은 소우주로 탈바꿈시키는 동안 지구는 조금 더 건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뚝심 있는 부부의 실천은 나의 게으른 몸도 움직이게 했다. 오랜만에 집 앞 작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자니,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잡초와 진딧물도 오늘만큼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추신: 위대한 작은 농장, 돌아오다!

<위대한 작은 농장>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위대한 작은 농장: 돌아오다>(2022)도 현재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29분의 짧은 단편 다큐로 '애프리콧 레인 농장'의 2010년부터 20년까지, 딱 10년의 역사를 요약한다. '애프리콧 레인 농장'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다면,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자. 언젠가 그 농장을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30평의 우주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척 바쁠 예정이니.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