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잠깐 농담 같은 건데, 저는 〈화양연화〉를 보면서 혼자, 이건 실제가 아니고 혼자 상상한 거예요. 사실 이 영화에서 애초에 그녀의 남편과 그의 부인은 불륜이 아니다. 그 둘은 각각 첫 눈에 반했고 그 죄책감 때문에 서로 합의 본 거다. ‘우리 그런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자.’ 이런 상상을 혼자 한 거예요.”
JTBC 〈방구석 1열〉에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국내에 배급한 모인그룹 정태진 대표가 출연한 날, 고정패널 변영주 감독은 웃으면서 자신의 독법을 조심스레 꺼냈다. ‘배우자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모운(양조위)과 소려진(장만옥)은 그 관계가 어떻게 시작된 걸까 하는 마음에 비밀스레 만남을 이어가고, 어느덧 서로를 향해 깊어진 감정을 발견한다’는 영화의 공식 줄거리와 달리, 어쩌면 배우자의 불륜은 애초에 없었으며 서로에게 끌리던 모운과 려진이 떠올린 핑계에 불과한 게 아닐까.
왕가위 감독과 오랜 세월 함께 일했고 〈화양연화〉 프로덕션 과정도 옆에서 지켜봤던 정태진 대표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변영주 감독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는 변영주 감독의 말이 끝나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빙고! 그래서 거울 씬들이 많이 나와요.” 흔쾌히 변영주 감독의 해석을 긍정하는 정태진 대표를 보며 나는 문득 영화 속에서는 목소리만 나오는 모운의 아내 주 부인과, 려진의 남편 진 선생을 떠올렸다. 목소리 연기는 다른 배우들이 했지만, 실제 촬영장에서 카메라의 사각에 서서 서로의 연기를 받아줬던 건 양조위와 장만옥이었다고 했지, 아마. 그러니까 애초에 영화의 내용 안에서도, 촬영장 안에서도 ’나 몰래 바람을 피우는 배우자’ 같은 건 없었던 거다. 거울 속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불륜에 유달리 민감한 한국 관객들이 〈화양연화〉에 관대했던 건 영화의 공식 줄거리 덕분이었다. 그래, 모운과 려진이 먼저 바람을 피운 게 아니잖아. 바람은 그들의 배우자들이 먼저 피운 거고, 두 사람은 피해자였어. 이렇다 할 스킨십도 거의 없는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향한 연민에서 출발한 순정한 사랑인 거야. 서로를 향한 마음이 커 가는 와중에서도 두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 잡으려 하잖아… 그래서 〈화양연화〉를 리뷰한 네티즌들의 평을 찾다보면 거의 강박적으로 이런 단서들이 등장한다. “불륜을 미화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들의 사랑을 맞바람이라고 부르기엔 이들이 억울하겠지만…”, “그저 같은 처지의 상대를 만나 위로를 주고 받고 싶었던 것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두 사람의 로맨스가 불륜이나 바람처럼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라고, 내가 그런 행위를 보면서 이렇게 탄복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단서조항들.
그러나 변영주 감독의 해석을 정태진 대표가 확인해주면서, 사랑 앞에서 애써 도덕적이고자 했던 공식 줄거리는 산산이 조각난다. 모운과 려진은 그냥 서로를 사랑했던 것이다. 국수를 사러 갔다가 스쳐 지나가던 좁은 골목에서, 소매가 닿을 듯이 좁았던 그 계단에서 오고 가던 찰나가 쌓여서 서로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다. 다만 옆에 배우자가 있었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던질 거짓말이 필요했을 뿐. 애써 단서조항을 달아가며 〈화양연화〉를 곱씹던 리뷰어들은 어떤 표정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모든 게 더 간결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만남을 계속 했지만, 본질은 처음부터 사랑이었던 거지. 배우자들이 이런 식으로 만남을 가졌던 걸까 궁금했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절절하게 만날 수는 없는 거지.
“우리만 결백하면 된 거 아닌가요?”, “우린 그들과 다르니까요.” 알리바이가 현란해질수록 두 사람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알리바이가 그와 같으니 두 사람은 선을 넘을 수 없다. 려진은 소설을 집필한다는 이유로 호텔방을 잡고 그 안에 틀어박힌 모운을 찾아가지만, 보는 사람 하나 없이 두 사람만 있는 그 호텔방 안에서도 두 사람은 솔직해지지 못한다. 모운은 자신이 쓴 소설을 려진에게 보여주고, 려진은 그 원고를 읽고 감상을 들려주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웃고 떠드는 것이 전부다. “그들은 어떻게 사랑에 빠진 걸까” 알아보겠다는 핑계로 시작은 할 수 있었을지언정, “그들과 다르”다는 제약 때문에 끝까지 가 볼 수는 없었던 사랑. 그래서 모운은 자신이 진심으로 려진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싱가포르로 전근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선택한 알리바이가 더는 유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진실을 안 나는 〈화양연화〉를 다시 본다. 영화는 시작부터 줄거리를 아예 자막으로 걸어둔다. “난처한 순간이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남자에게 기회를 주지만 남자는 다가설 용기가 없고 여자는 뒤돌아 선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부, 그 숨막히는 슬로우모션 장면들이 등장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순간의 장만옥의 손, 그 손 안에서 앞뒤로 천천히 흔들리던 도시락통, 몸에 타이트하게 붙은 치파오 탓에 걸을 때마다 도드라지던 무릎과 다리, 그리고 그 때마다 여지없이 걸리던 슬로우모션. 카메라는 알고 있었다. 모운과 려진이 배우자들의 핸드백과 넥타이 핑계를 대면서 만나기 전부터, 이미 모운은 려진을 숨막히게 바라 보고 있었다는 걸. 손놀림 하나하나, 발걸음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생각했을 때, 비로소 엔딩의 앙코르와트 사원 장면이 절실해 진다. 모운은 오래 된 나무 대신, 그보다 더 단단해서 더 오래 살아남을 앙코르와트의 기둥을 택해 그 앞에 선다. 그리곤 기둥에 난 구멍 안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거기서 토로한 건 고작 ‘바람이 난 배우자의 심리를 알고 싶은 마음에 상대방 남자의 아내와 오래 만났다가 마음이 싹텄다’ 같은 게 아니다. 모운이 기둥 앞에서 토로했던 건, 처음부터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제대로 직시할 수 없어서 배우자의 바람이라는 핑계를 댔으나, 그 핑계 탓에 더는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려 멀리멀리 도망가버렸던 자신의 비겁함이었다. 제대로 안아 본 거라고는, 이별을 연습하다가 정말로 엉엉 울어버린 려진을 달래던 그 포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비겁함. 그 정도의 감정과 회한은 되어야 앙코르와트의 기둥에 숨기고 싶지 않겠나.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