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베트남 국민들의 움직임이 전 세계를 주목시켰다. 영화 <바비>를 비롯해,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까지 베트남 내부의 반대 여론에 휘말렸다. 무슨 일인고 하니, 각 콘텐츠에서 공개한 '세계 지도'가 문제가 된 것. 각 지도에서 이른바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표시가 문제시돼 베트남 국민들에게 반발을 산 것이다. 남중국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문제가 되는 건가. 남중국해와 특히 이 부분 때문에 고초를 겪은 영화들을 짚어봤다.
기대작에서 개봉 취소로, 영화 <바비>의 현황
먼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바비> 건을 짚어보자. <바비>는 유명 완구회사 마텔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형 브랜드 '바비'를 소재로 삼은 영화다. 바비랜드에 살던 바비가 인간 세상에 오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며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배우로 데뷔해 연출로도 역량을 보여준 그레타 거윅이 감독을, <아이, 토냐>와 빌런 할리 퀸으로 연기력과 인지도 모두 최정상을 찍은 마고 로비가 바비를 맡았다. 참신한 소재부터 예고편에 담긴 재기발랄한 감성, 이름만 들어도 기대되는 조합까지 <바비>는 기대작이라고 확신해도 될 정도의 화제성을 모으며 전 세계 7월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7월 3일, 베트남에서 <바비> 개봉 취소를 발표했다. 이유는 <바비>에 남중국해에 중국의 구단선을 암시하는 표현이 있다는 이유였다. 베트남은 이전부터 중국의 구단선 표기가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발 빠르게 대응하곤 했는데, 영화 <바비> 또한 해당 이유로 개봉 반려된 것이다.
사실 <바비>가 아예 공개 전이라서 베트남이 지적한 구단선 표기가 어떤 부분인지 아직은 미지수다. 다만 예고편에 담긴 세계 지도가 문제 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당 지도는 아시아 대륙 옆에 점선으로 표기가 돼있는데, 이 부분이 중국의 구단선 표기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워너브러더스 측은 “어린아이가 그린 크레용 그림 지도”란 점을 재차 강조하며 이를 구단선이라고 하는 건 확대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에 이보다 심각한 표현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베트남의 대응이 과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 '세계지도'는 유럽 대륙이 아예 없는, 정말 어린 아이가 그린 컨셉이 꽤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
남중국해 구단선이 뭔데?
다만 이 부분은 베트남(과 인근 국가의) 입장에선 긴가민가 하더라도 과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남중국해를 두고 중국이 영유권 주장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남중국해(베트남 동해)는 총 8개 국가와 밀접한 해역인데, 중국은 '이만큼의 해역이 우리 땅'라고 주장하며 이른바 ‘구단선’(9개의 점선)을 그었다. 중국이 주장하는 구단선은 '이만큼이 내 것'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남중국해 전체를 아우르는 크기이고, 당연히 주변국에선 반발할 수밖에 없다. 첫째로, 어떤 근거도 없는 주장(대만의 11단 주장을 근거로 한다)이고 둘째로, 이 주장을 수용한다면 인근 국가의 해역은 대폭 줄어들고 그 내부의 섬과 자원을 모조리 중국이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이미 2016년 국제재판소에서 중국의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을 내렸으나 중국은 끊임없이 구단선을 주장하고 있다.
이걸 우리나라 입장에 대입해보자면 독도를 본인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일본을 떠올리면 쉽다(이해를 돕기 위한 극단적인 비유로만 봐달라). 기본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결됐음에도 본인들만의 근거로 영토 소유권을 주장하는 꼴이 엇비슷하다. 그나마 일본은 독도에 건축물을 무단 설치하진 않았지만, 중국은 구단선을 주장하며 공항과 군사 시설을 건설하기까지 했다.
이런 첨예한 문제이기에 베트남은 구단선을 긍정하는, 혹은 그런 암시만 들어가도 해당 콘텐츠 소비를 적극적으로 막았다. 현재 <바비>와 함께 '블랙핑크'가 보이콧 대상이 된 것도, 블랙핑크 콘서트를 주관하는 회사에서 구단선이 새겨진 지도를 사용했기 때문. 문화계 대형 콘텐츠 두 가지에 동시에 같은 문제로 지적받으면서 베트남 내 반대 여론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개봉 멈춰!”의 또 다른 사례
사실 <바비>가 1번 타자가 아니다. 이전 사례들을 보면 <바비>는 정말 억울하다고 느낄 만하다. 근래 영화에서 구단선 표기를 사용해 개봉 취소를 선고받은 영화는 <언차티드>다.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네이선 드레이크와 빅터 설리반의 보물 찾기 어드벤처를 그린 영화 <언차티드>는 원작 게임의 두터운 팬덤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여러 차례 제작과 개봉이 연기됐음에도).
그러나 작품 내에서 구단선을 표시한 장면이 발견되면서 베트남과 필리핀은 <언차티드>를 개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관객 중에도 관람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밝히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도 중국이 한복을 본인들의 전통의상이라고 주장하는 '한복 왜곡 논란'이 일어나는 등 중국의 문화 세탁에 불만이 쌓였고, <언차티드>의 구단선 표기 반대에 힘을 실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언차티드>는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긴 하나 역사와 고고학을 기반으로 한 어드벤처물이니, 구단선 표시가 더욱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물론 <언차티드> 이전에도 사례가 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노우몬스터>(Abominable, 국내는 개봉 없이 2차 시장에 직행했다)는 소녀 '이'가 오래전 사라진 예티(설인)를 구하게 되고, 그를 에베레스트로 안전하게 돌려보내기 위한 모험기를 다뤘다. 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중국의 '펄 스튜디오'가 참여했는데, (당시 차이나 머니를 지원받은 작품이 그렇듯) 과하게 친중국적 묘사로 눈총을 받았다. 주연급 인간 캐릭터가 전부 중국인이고 악역은 서양인인 것을 비롯해 중국의 유명 랜드마크를 홍보하듯 비추기도 한다. 그 중 가장 문제 된 건 이 글의 주제, 구단선을 묘사한 지도가 영화에 나온 것.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 개봉한지 10일 만에 상영을 중단했고, 이를 접한 필리핀에서도 영화 개봉을 아예 취소했다. 중국을 배경 삼았으니 아시아권을 타깃으로 했을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느라고 여러 국가에서 뭇매를 맞은 셈. 제작진 입장에선 꽤 씁쓸한 결과만 맛봐야 했다.
베트남의 매서운 기세는 영화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넷플릭스가 제공한 호주산 첩보 드라마 <파인갭>도 현재 베트남에서 만날 수 없다. 해당 드라마 중 세계 지도가 나오는데, 남중국해에 구단선이 그어져있기 때문. 이 드라마가 서비스되고 작중 구단선을 옹호하는 묘사가 발견되자, 베트남 정부는 넷플릭스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넷플릭스 또한 베트남 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곧바로 해당 드라마의 베트남 서비스 중단을 선택했다.
이와 같은 선례를 보면 확실히 <바비>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다. 본인들은 재밌는 컨셉이라고 생각한 미술이었는데, 그게 의도치 않게 베트남의 반감을 산 거니까. 물론 베트남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말하듯 ‘아시아’와 ‘점선 표시’는 우연이라기에 조금 미묘하긴 하다.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진 아무도 알 수 없다. 외외로 베트남과 워너 브러더스가 말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문제 된 부분이 길지만 않다면, CG를 사용해 수정하는 것도 결코 어려운 건 아니다. 과연 <바비>와 베트남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될지, 제3자 입장에서라도 지켜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