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들> 포스터.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검거의 순간 살인마와 형사의 몸이 바뀐다? 지독한 악연인가, 믿기 힘든 우연인가,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끝날 필연인가? <악마들>(감독 김재훈)은 코미디, 로맨스물의 단골 소재였던 ‘바디 체인지’를 스릴러 장르에 접목해 신선함을 자아낸다.

특히 형사 역의 오대환 배우와 사이코패스 살인마 역의 장동윤 배우는 1인 2역과 대역 없는 액션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더욱 눈길을 끈다. 청량하고 선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장동윤은 살인을 즐기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진혁 역으로 완벽하게 변신했고,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넘나들며 내공을 쌓아온 오대환 배우가 몸을 빼앗긴 형사 역으로 성공적인 주연 데뷔 신고식을 마쳤다.

맛깔나는 연기로 극의 전개를 탄탄하게 받치는 조연들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행>(감독 연상호, 2016),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 2022), <택시운전사>(감독 장훈, 2017)로 ‘트리플 천만 배우’에 등극한 최귀화 배우는 진혁과 그 일당을 잡겠다는 강한 집념과 팀원들을 챙기는 믿음직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다. 몸이 바뀐 진혁과 재환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과정이 생생해 몰입감을 높여준다. 국과수 법의학자 기남 역으로 우정출연한 김원해의 역할은 작지만 극의 진행에 결정적 역할을 해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는 오래된 명제를 증명한다.

<악마들>로 장편 데뷔한 김재훈 감독은 어린 시절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을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2005년 <언니가 간다> 연출부로 영화판에 발을 들였고, 장편 데뷔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벌써 차기작 <필사의 추적>을 크랭크업하며, 긴 준비 기간 동안 축적된 내공을 펼쳐 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빠른 호흡의 <악마들>로 명실상부한 충무로의 슈퍼 루키로 자리매김한 김재훈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악마들>로 장편 데뷔한 김재훈 감독.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2023년 <악마들>로 드디어 첫 장편 데뷔를 하셨어요. 축하드리고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진짜 새삼 긴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좀 들고요(웃음). 어쨌든 이렇게 어릴 때부터 꿨던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해서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악마들>에서 형사와 살인마의 몸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얼굴이 뒤바뀌는 예전 영화 <페이스 오프>(감독 오우삼, 1997)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바디 체인지’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도 많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하루에 4~5편의 영화를 같이 보던 친구들이 있어요. 같이 영화를 하려던 친구들이죠. 모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하루는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던졌어요. 형사와 살인마가 바뀌면 재미있지 않겠느냐고요. 다음날 맨정신에 생각해보니 스토리라인이 딱 서는 거예요. 처음에는 정말 몸이 뒤바뀌는 판타지 영화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영화는 많이 나와서 식상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스릴러 장르를 접목했고, 현실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코미디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는 관객이 판타지적 요소를 받아들이는데, 스릴러물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으니까요.

영화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합니다. 몸이 바뀌는 설정, 뒤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비밀, 그런데 과연 그것이 진실인가에 대해 관객과 치밀한 두뇌 싸움을 벌이는 거 같아요.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무엇인지, 또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악마들>은 배우들이 일대일로 대면하거나 캐릭터들이 부딪히는 순간, 공간이 많은 영화예요. 두 인물이 부딪힐 때의 밀도, 온도라고 할까요, 물론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런 에너지에 신경을 가장 많이 썼습니다. 현장에서 디렉팅할 때도 제가 원하는 밀도와 온도가 표현되는 지점을 찾으려, 배우들에게 더 화나는 느낌으로 해달라고 주문했어요.

레퍼런스라고 하면 <세븐>(감독 데이비드 핀처, 1995)이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릴러의 기본에 충실한 영화로, 당시에도 너무 잘 만들었고, 지금 봐도 바이블이라고 할 정도로요. 여기에 <악마들>은 비주얼적으로 더 세련되게 하려고 컬러감을 더 주는 변주를 했죠.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영화 초반부에 살인을 즐기는 집단이 나오는 걸 보고서 제목의 ‘악마들’은 이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는데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으로 가면서, 혹시 형사도 악마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마치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 2010)처럼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영화라면 주인공이 초반에 한 번의 시련을 겪고 후반에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요, <악마들>에서는 프로타고니스트가 안타고니스트로 변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정말 연출적 의도만 말하면요, 차진혁과 최재환의 영문 이니셜이 ‘CJH’로 똑같아요. 배역은 살인마와 형사로 구분되지만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악이 내재되어 있으니, 그걸 장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이 부분은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 몸이 합쳐지면서 표현이 극대화된다고 봐요.

그러니까 전형적인 프로타고니스트가 아니라 선과 악이 점점 섞여가는 모습인 거죠. 기존 영화의 주인공들은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아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게요. 기존 통념의 영화에서 가진 것들을 형사 재환은 하지 않잖아요? 그게 더 리얼하다고 봤어요. 현실적으로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만, 시행착오도 감당해야 해요. 동료의 죽음마저도요. 그러면서 속에 있는 악이 선과 뒤섞이는 것 같아요.

최대한 현실적으로 인간을 생각했을 때 현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형사 재환은 빈틈도 많고, 작전이 실패하기도 하고요. 이런 설정이 섞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인물인 거죠.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얼마 전에 <귀공자들>의 박훈정 감독님을 만났는데, 여전히 성악설을 믿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사람에 따라 ‘케바케’일 수 있다는 지점까지는 변화했다고요. 감독님도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둘 중에 굳이 나누자면 저도 성악설 쪽입니다. 예전 순자가 성악설을 주창하고 후에 한비자도 따랐죠. 저 역시 그쪽에 가까워요. 그래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어릴 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 거 같기도 하고요. 어린 시절은 악행도 순수하게 저지를 수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이제 배우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사이코패스 살인마 진혁 역에는 장동윤 배우가 그야말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직전에 <늑대사냥>(감독 김홍선, 2022)에서 그런 이미지가 보이긴 했는데요, <태일이>(감독 홍준표, 2021)에서 태일이 목소리도 맡았더라고요. 그렇게 선한 목소리를 말이죠(웃음). 장동윤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작사를 통해서 <늑대사냥>을 진행하고 있어서, 장동윤 배우를 알게 되었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생각한 건 스테레오 타입입니다. 형사라고 하면 보통 약해 보이고, 살인마는 우락부락하죠. 피지컬적인 전형성을 뒤집어보고 싶었어요. 살인마지만 형사보다 왜소하고, 누가 봐도 살인마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형사처럼요. 그래서 누가 봐도 살인마가 악역처럼 생겼으면 느낌이 약할 거 같았어요. 피지컬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형사가 약해 보이는 살인마에의 기세에 눌렸을 때 더 잘 표현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장동윤 배우는 원픽이었나요?

네. 처음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장동윤 배우는 당연히 자기가 형사 역인 줄 알았대요(웃음). 나중에 설명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동안 착한 역할을 주로 해서, 악역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었다고요. 그런 점도 잘 맞아떨어졌어요.

현장에서 가장 많이 준 디렉션은 어떤 것이었나요?

<악마들> 시나리오에 대사가 많았는데요, 현장에서 오히려 대사를 많이 덜어냈어요. 눈빛과 표정으로 더 표현해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스크린으로 보이는 영화이고, 클로즈업도 많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배우의 눈빛과 기필코 죽이겠다는 에너지, 밀도로 표현되었으면 했어요. 그런 점들을 배우들에게 많이 요구했습니다. 다행히 장동윤 배우뿐만 아니라 오대환 배우 역시 너무 잘 표현해줬거든요. 눈빛이 가장 중요한데, 광기 어린 눈빛이었다가 착하다가, 불쌍하다가…. 같은 사람인데도 정말 다른 느낌이 나도록 잘 표현해주셔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장동윤 배우는 최근 <내 귀가 되어줘>라는 단편을 연출해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했더라고요. 보셨나요? 배우 장동윤의 감독으로서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아직 못 봤어요. 그런데 장동윤 배우가 시나 글을 쓰는 걸 봤는데, 솜씨가 굉장히 뛰어나더라고요. 문학청년이었던 과거도 있고, 워낙에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대요. 글도 잘 쓰는 데다, 배우로 현장 경험도 많을 테니, 그렇다면 글을 영상화하는 작업에도 익숙하겠죠? 이정재(<헌트>), 김윤석(<미성년>) 감독의 좋은 전례가 있듯이 장동윤 배우에게도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봅니다.

형사 재환 역의 오대환 배우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이미 형사 역으로 많이 출연한 배우인데요, 대부분 조연이었어요. 물론 최근 <강릉>(감독 윤영빈, 2021)에서 주연급으로 연기하기는 했지만요. 조연 이미지에 갇혀 있는 느낌도 있어서, 주연 발탁을 두고 망설이지는 않으셨는지, 또 캐스팅을 제안했을 때 오대환 배우는 어떤 반응이었는지 궁금해요.

캐스팅할 때는 늘 고민이 많죠. 기자간담회 때도 말씀드린 부분인데, 제 영화를 보는 관객이 배우를 보고 다른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아요. 좋은 배우는 물론 많습니다. 대사지만 유행어도 있는 배우들요. 오대환 배우는 그런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 새로운 느낌이라는 생각에서 적합했어요.

이전에 유해진, 조우진 배우처럼 조연에서 성공적으로 주연으로 옮겨간 사례가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하시고, 앞선 선배 배우들 사례에서 힘과 자신감을 얻었죠. 선과 악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다 보니 오대환 배우가 눈에 띄었고요. 주연으로 첫 영화다 보니, 관객에게 새로운 느낌도 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오대환 배우는 시나리오를 읽고 반응이 어떻던가요?

극 초반 부분을 읽고 몸이 바뀌는 영화인 줄 알고 실망했대요(웃음). 중반부터 완전히 빠져들어서 마지막까지 후루룩, 그 피곤한 와중에도 다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색다른 느낌의 영화여서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두 배우의 합이 워낙 좋아서요. 촬영 현장에서 재미있던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재밌었다기보다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장동윤 배우 첫 촬영이 감옥에서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이었어요. 나무로 된 벽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세게 부딪히면 정말 아프거든요? 정면 컷은 한 번 정도만 찍고, 뒷모습을 많이 찍어야겠다고 계획했죠. 그런데 현장에 장동윤 배우가 와서, 스태프들과도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굉장히 집중하더라고요. 제가 시킨 것도 아닌데 머리를 강하게 부딪히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벌써 진혁의 캐릭터에 몰입이 된 거였죠. 의도했던 것보다 배우가 더 잘 살려줬던 기억이 납니다.

오대환 배우는요?

영화 장르가 장르다 보니, 재미있다기보다는 힘든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해질녘 차 안에서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이었는데요. 해가 지는 찰나 그러니까 이른바 ‘매직 아워’에 찍어야 하니까 물리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요. 보통 미리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해뒀다가 찍는데요. 현장이 어디 그런가요. 직전 촬영이 밀려서 매직 아워 시간 안에 세팅까지 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그야말로 가혹한 순간이었어요. 그런데도 그 짧은 시간에 감정 표현을 너무 잘해주셨어요.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배경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까지 완벽하더라고요.

사실 그 장면은 저희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요. 기차가 잘 다니지도 않았고, 시간표 체크도 못 했거든요. 그런데 촬영할 때 기차가 오대환 배우 뒤로 지나가는 겁니다. (화면 안에) 잘 걸려줘서 너무 기분이 좋았죠. 오대환 배우도 놀랐고요. 보통 그런 씬에서는 배우에게 감정 잡을 시간을 충분히 주고, ‘레디 액션’이라는 말조차도 조용히 하는데, 정말 시장 같은 분위기에서 촬영했음에도 최고의 장면을 건질 수 있었죠.

몇 회차로 찍으신 건가요?

30회차요. 작년 3월부터 5월까지 꽉 채워서 찍었습니다.

후반 작업을 오래 한 건가요?

<악마들> 찍고 제가 또 다른 영화에 들어갔었어요. 그 영화 촬영을 하면서 텀이 좀 벌어진 감이 있네요. 그래도 통상적 기준에서 보면, 영화를 찍고 1년 정도 후 개봉하니 엄청나게 오래 걸린 건 아닌 거 같아요.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이제 감독님 이야기를 좀 여쭤볼게요. 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꾸신 건가요?

중학교 때부터죠. 정확하게 말하면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90)을 보고 나서였어요. 극장을 나오면서 막연하게 저런 걸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물론 보면 안 되는 나이였는데, 부모님이랑 같이 가면 되던 시절이었고요. 그때 받은 이미지가 강렬했어요. 영화감독이라는 개념은 없었는데, 그냥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죠.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는 어디서 어떻게 하셨어요?

타란티노 감독님이 “많이 보는 게 가장 큰 공부”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너무나 동감하는 말이고요. 어릴 때부터 비디오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지금처럼 OTT 시대가 아니라 VHS 테이프로 영화를 봤죠. 제가 살던 동네에 한석규 배우가 살아서, 비디오 가게에 오시기도 했습니다. <쉬리>(감독 강제규, 1999) 찍은 지 얼마 안 되었던 때인데요. 한석규 배우가 봤던 영화도 따라서 다 봤고요. 제가 그때 한석규 배우께 수줍게 “저 영화감독이 꿈이에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 영화감독 되면 출연해줄게”라고 하셨는데, 아마 기억 못하실 거예요. 워낙 오래된 일이라.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영화판에 들어와서 만나신 적은 없어요?

단체로 먹는 술자리에서 뵙긴 했는데, 찾아가서 말씀드리긴 좀 애매한 자리여서요.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죠.

저도 정말 한석규 배우 좋아하는데요. 꼭 영화 작업하길 기대하겠습니다(웃음). 첫 질문에서 살짝 말씀드리긴 했는데요. 2005년에 영화판에 들어와서, 여러 영화 작업을 하셨죠. 그러다 조감독으로 2010년대 초중반 세 작품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감독 이광재, 2010), <돈 크라이 마미>(감독 김용한, 2012), <해적: 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2014>을 하시곤 <파리의 한국남자>(감독 전수일, 2016)에서 연출부를 하신 게 다예요. <악마들>로 데뷔하시기까지 텀이 좀 있는데, 어떻게 지내신 건가요? 혹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졌다거나, 영화를 접으려고 하셨다거나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영화를 그만두려는 생각은 사실 매년 했던 거 같아요. 그 당시는 ‘열정페이’라는 말이 없었는데, 그조차도 받지 못하고 일하던 시기예요. 제가 프리프로덕션부터 온전하게 참여한 한 영화가 있어요. 10개월을 매달렸는데, 총 정산금으로 250만 원을 받았어요. 차비하기에도 모자란 돈이었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영화사에서 정말 힘들게 일하고, 주말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주업이 영화 조감독인데, 사실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말씀하신 대로 그 당시에는 영화가 엎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고요. 제 필모그래피의 사이사이 빈 공간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보면 되죠. 데미지가 크니까, 또 반복되기까지 하니까 지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매년 있었죠.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극복하게 해준 힘은 무엇일까요?

가장 의지가 되었던 건 동료들이죠. 현장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요. 지금은 사실 많이 떠났어요. 한 명 한 명 떠날 때마다 슬프고 아쉬웠죠. 그런데 유지하는 것도 용기지만,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봐요. 저랑 다른 종류의 용기를 낸 거죠. 존중하고 서로 응원해주면서 둘러보니 저밖에 안 남았더라고요(웃음). 저도 일찍 포기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텐데. 떠난 친구들이 저를 응원하니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 같기도 합니다(웃음).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요? 영화 두 편 찍고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정주리 감독님은 아직도 집에서 언제까지 영화 일을 할 거냐는 이야기를 들으신대요.

사실 반대는 전혀 없었어요. 부모님이야 당연히 안정적이고 편한 생활을 추천하시죠. 아버지가 군인이신데, 평생을 틀에 박힌 생활을 하셔서 그런지, 오히려 저에겐 하고 싶은 일 하라고 응원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지금 아버지께서 퇴역하시고 책을 쓰시는데요, 다행히 꿈을 추구하는 인생, 그런 집안 분위기입니다. 사실 예전 영화판은 시스템이 안 갖춰진 바닥이다 보니, 월급도 없었거든요. 저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고요.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생활일 수밖에 없죠.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스필버그 감독님처럼 장르는 다양하지만,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어요. 관객이 제 이름을 몰라도요. 혹 제 이름을 아는 관객이라면, 아, 저 감독 영화는 극장에서 보면 재밌다는 브랜딩이 되는 감독이면 좋겠습니다.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꼭 찍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상업영화를 추구하다 보니까요, 여름 시장에 개봉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영화를 찍고, 또 흥행도 되면 좋겠어요. 그게 목표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되려면 사람들이 극장에서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요. 저는 이제 시작이니까 큰 사이즈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다크 나이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2008) 같이요.

다시 ‘배트맨’이네요(웃음).

제가 시작을 거기서 했으니까요(웃음). 그냥 관객이 봐도 재미있고, 분석하면서도 봐도 재미있는? 그런 양면을 다 가진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바람이죠.

아까 잠깐 차기작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벌써 크랭크업한 건가요?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촬영했어요. 제목은 <필사의 추적>이고 올해 추석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 중입니다. 코믹추적액션 영화인데요, <악마들>과는 분위기가 180도 다릅니다(웃음). 제가 쓴 각본은 아니고, 연출 의뢰를 받았어요. <악마들> 1차 편집본을 잘 봐주신 제작사에서요.

변신이 너무 빠르신 거 아닌가요?

<악마들>에서 사람을 죽이면서 저도 정신이 피폐해진 느낌이 있었거든요. 항상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일까, 후반 작업에서도 칼로 찌르는 장면도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장면도 수십 번 봐야 하니 정신적으로 힘들었죠. 쾌활한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때 이 시나리오가 들어왔던 거죠. <악마들> 촬영을 마치고 바로 각색에 들어갔고요.

<악마들> 스틸컷. 사진 제공=TCO(주)더콘텐츠온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저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은 감독은 아니고요.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해주시고 극장에서 볼 때 즐겁게 관람하는 시간 되면 좋겠습니다. 한국이 스릴러가 전통적으로 강세가 있는 장르인데 <악마들>이 그 명맥을 잇는 영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혹시 잔인한 장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래도 결국 그 장면들로 극악무도한 살인마들이 죗값을 치르는 거라 생각하시면, 조금이나마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