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의 언덕>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비밀의 언덕> 이지은 감독(왼쪽), 문승아 배우 사진 제공=(주)엣나인필름

기자간담회를 보니까 어떤 배우가 얘기하든 감독님이 굉장히 애정 어린 눈으로 보시더라고요. 캐스팅이 굉장히 잘 됐던 걸까 싶었어요. 다른 배우들을 이렇게 캐스팅하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이지은 승아 배우처럼 10대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는 데이터가 없어서 정말 4개월 동안 많은 것들을 뒤졌거든요. 성인 배우들의 경우에는 다 원픽 배우였어요. 다른 대안을 만들어놓지도 않았어요.

(왼쪽부터) 아빠 성호 역 강길우, 엄마 경희 역 장선, 명은 역 문승아, 담임선생님 애란 역 임선우

역시 그게 ‘성덕’의 표정이었군요.

이지은 ‘나는 그 배우가 아니면 안 돼’ (싶었어요).

문승아 저는요? (일동 웃음)

이지은 이따가 얘기해 줄게.(웃음) 그래서 제가 이 역할은 꼭 당신이어야 해요라는 강한 신호를 보여줬던 것 같아요. 그 배우들이 캐스팅이 된 순간 많이 바뀌었어요. 장선 배우, 강길우 배우, 임선우 배우, 이 배우들을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서 아이디어들을 되게 많이 넣었어요. 예를 들어 강길우 배우가 변호사 친구를 만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제가 배우를 캐스팅한 순간 ‘어머 강길우 배우가 막 웃으면서 “젓갈 사러 와” 이러면 너무 웃기겠다’ 떠올렸죠. 이런 식으로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가 같이 하니까, 그 배우를 그냥 그냥 아빠가 아닌 성호라는 매력적인 인간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아이디어들이 막 떠올랐어요. 그 배우에게 재밌게 말하면 그 배우가 그걸 잘 소화해 줄 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장선 배우가 명은이 상장에 그거 젓갈을 묻히는 그것도 장선 배우가 캐스팅이 되고 난 후에 생각난 아이디어였어요. ‘좋은 배우는 이렇게 감독을 움직이게 하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그 흐뭇한 표정이 그런 이유였을 거예요.

<비밀의 언덕> 문승아 배우(왼쪽), 이지은 감독 사진 제공=(주)엣나인필름

지금 문승아 배우님도 지금 감독님을 되게 애정어리게 바라보시는데 혹시 감독님하고 얘기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다든가 그런 게 있을까요?

문승아 애정 어리게 바라본 건 아니고요. 그냥 좀 웃겨서.

이지은 어떤 부분이 웃겨?

문승아 그냥 감독님 얼굴만 봐도. (일동 웃음) 감독님이랑 얘기할 때는요, 감독님이랑 얘기하는 것 같지가 않고요. 아는 언니랑 얘기하는 것 같고 그냥 친구랑 얘기하는 같고 정말 편해요.

이지은 저희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사실 승아 배우 캐스팅된 후에 연기를 정말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일 중요한 건 명은이란 캐릭터는 잘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승아 배우도 알지 못하는, 본인을 발견해 주는 뭔가가 있어야 된다고. 그래서 그걸 현장에서 보여주기 위해서는 승아 배우가 저를 되게 신뢰해야 된다고,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편하게 느껴져야 된다고 생각해서 촬영 들어가기 전에 둘이서 엄~청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어떤 주제 없는 대화를 나눴어요. 저는 명은이보다 문승아라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고 승아 배우도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웃음)

문승아 진짜 감독님이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났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도 몇 번씩도 만나고.

이지은 줌(화상 회의 플랫폼)으로도 만나고.

문승아 저희 집에 진짜 완전 멀거든요. 근데 저희 집 근처로 이렇게 오셔서 만나서 그렇게 얘기를 하고.

영화에서 먹는다는 행위나 말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두 분의 소울푸드는 뭔가요?

이지은 승아 배우가 정말 잘 말할 수 있어요. 소울푸드.

문승아 곱창, 마라탕.

이지은 제가 승아 배우 덕분에 곱창이랑 마라탕을 정말 많이 먹었고요. 제가 마라탕을 몇 단계를 먹어야 되는지도 알게 됐어요. 이제 (마라탕도) 혼자 가서 시켜 먹고 참깨 라면 위에다가 치즈를 넣어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문승아 이번에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곱창에 마요네즈를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치즈 위에다가 매운 곱창 있잖아요. 매운 곱창 올리고 양배추 올리고 당면 올리고 거기다가 마요네즈 한번 이렇게 해서 싸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어요. 이렇게 감독님한테 먹는 거 되게 잘 알려드렸어요. 감독님이랑 식성이 비슷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지은 사실은 승아 배우가 곱창을 되게 좋아하는데 영화에서는 명은이네 엄마가 곱창을 좋아하고.

문승아 대개도 엄청 별로. (영화 초반에 가족들과 대게를 먹는 장면이 있다.)

이지은 근데 제가 (영화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승아 배우는 별로(였던 거죠). 근데 또 명란젓 있잖아요. 남은 거 싸갔어요. 그게 반대여서 그게 너무 재밌는 지점이다. 승아는 실제로 돈가스를 안 좋아해요.

문승아 저 김밥도 싫어하거든요. (극 중 명은은 점심으로 김밥을 자주 먹는다) 곱창, 막창 다 좋아해요.

이지은 근데 곱창 중에서도 특히…

문승아 이지은 (동시에) 야채곱창!

먹잘알이시네요. 승아 배우는 작품을 마치고 실제로 반장을 한 번 해보셨다고 했는데 어떠셨나요?

문승아 반장이 얼마나 힘든지 진짜로 알 것 같아요. 보통 학년제 반장하는 애들도 있고 학기제로 하는 애들도 있는데 한 학기든 1년이든 꼭 한 번씩은 소리를 치는 날이 와요. 이제 그러면서 ‘명은이도 힘들었겠구나, 내가 너무 섣불리 했다’ (싶었어요). 별생각 안 하고 그냥 반장 재밌겠다 싶어서 한 거였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영화에서 감독님의 디테일이 돋보였던 게 인물들이 굉장히 입체적이고 다양하더라고요. 특별히 공을 들인 부분인지요.

이지은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기준점이 ‘모든 인물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였어요. 왜냐하면 미화되지 않은 인간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정말 인간을 그리고 싶었어요. 모든 인물들을 다 인간에 집중했던 거 같아요. 심지어 회장 어머니까지도 옆에서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명은이한테는 다정하고, 뒤에서는 고자질하고. 처음에는 명은이를 따라서 이 영화를 보게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진우(곽진무가 연기한 명은의 삼촌)가 자기 인생에 위로를 주는 역할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아마 모든 인물들에 제가 들어가 있을 것이거든요. 애란 선생님이 뚝딱거리는 모습에 제 모습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웃음) 제가 성인이 되면서 겪었거나 본 어떤 모습들, 혹은 제 모습들이 이 인물들에 투영이 돼있었고 그래서 이 영화만큼은 제가 보고 싶고 제가 만들고 싶은 인물을 충분히 다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이 더 궁금했던 것 같아요.

문승아 혜진이도 대본만 봤을 때 너무 멋있었는데 뒤에는 약간 뒤끝도 있고.

이지은 (웃음) 진짜 세상에 쿨한 사람이 없더라고. 그러니까 진짜 쿨해 보이는 사람도 어떤 순간에는 (달라지고).

승아 배우는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을 프로라고 말한 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승아 배우에겐 연기가 어떤 건지, 혹시 연기 외에 또 해보고 싶은 게 더 있으신지도 궁금하더라고요.

문승아 저도 처음부터 연기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어요. 어쩌다 하게 됐는데 하다 보니까 좋아진 거지. 그래서 지금도 특별히 뭐 하고 싶은 건 없어도 나중에 되면 좋아지는 게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편이거든요. 처음부터 뭔가 하고 싶어서 거기에 빠진다기보다는 거기에 빠지다 보니까 하고 싶고 좋아지는 그런 거거든요. 그리고 프로 그거는요. 선배 배우님들이 “승아 프로네?”라고 자주 얘기하시는데 그 말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이지은 제가 승아 배우가 정말 그렇다고 느꼈던 순간이 첫 촬영 때였어요. 첫 촬영이 할아버지 집에서의 몽타주였는데, 베란다에서 할아버지랑 뭘 만드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승아 배우가 제 마음을 읽는 것 같아요. (오케이했던) 제 말과 달리 “한 번 더 가요. 한 번 더 가요.”

문승아 근데 제가 읽는다기보다 감독님 얼굴에 다 드러나는 편이세요. (일동 웃음) 제 마음에 안 든 것도 있지만 감독님이 “오케이… 가시죠?” 이러면 오케이가 아닌 거잖아요.

이지은 그리고 제가 또 놀랐던 순간은 승아 배우의 머리인데요. 원래 승아가 긴 머리였어요. 명은이 헤어스타일은 미용실에서 뽀글뽀글뽀글 파마머리로 생각해서 승아 배우에게 그 머리를 해달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의상 피팅날 그 머리를 하고 왔는데, 너무 세련되고 너무 예쁜 파마인 거예요.

문승아 거짓말이에요, (그 머리) 진짜 별로였어요.

이지은 너무 예뻐서 속으로는 ‘저거 아닌데’ 싶었지만 그 머리를 자르고 바꾼다는 거는 너무 대단한 거잖아요. 그래서 “너무 좋다” 했어요. 근데 승아 배우가 제 마음을 읽었는지 다음 테스트 촬영 때 머리를 한 번 더 볶은 거예요. 제가 그걸 보면서 리스펙트 한다.

문승아 저는 솔직히 그냥 어차피 망할 거, 좀 더 망하지 싶어서 그냥 감독님 원하는 대로 했어요. 감독님 덕분에 머리 기부했어요.

미담으로 마무리됐네요. 이번 영화가 거짓말과 솔직함의 경계선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감독님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고 느꼈어요. 혹시 두 분이 생각하시기에 완전한 솔직함과 적당한 거짓말, 어느 쪽이 맞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문승아 저는 솔직한 게 더…

이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승아 저는 거짓말해요. 좋은 사람 안 되고 거짓말할게요. (일동 웃음)

이지은 제가 한번 얘기해 볼게요. 저는 그 정답을 내렸다면 (영화) 끝까지 갈 수 있는 동력이 안 됐을 것 같아요. 사실 저 오늘 지금 직전까지도 그거 고민했거든요. 솔직하게 해도 될까, 아니면 그래도 조금 거짓말을 보태서 조금 더 좋은 분위기로 얘기하는 게 좋을까? 저는 아직까지도 맨날 그 고민을 하고요. 사실은 사회생활하시는 많은 분들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거를, 거짓말을 하는 명은이와 솔직하게 말하는 혜진이로 극단까지 가본 것 같고요. 관객으로 하여금 그거를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거를 적절하게 섞으면서 살기도 하고 사실 이 영화조차도 저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션을 하겠다라는 그 중간의 마음이 같이 들어간 것 같아요.

문승아 솔직한 게 좋아요. 저는 혜진이만큼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어요. 드라마 같은 데에서 연인들이 왜 헤어지는지 정확하게 얘기 안 해주고 ‘그냥 모르겠어 너를 위한 거야’ 이러는 게 너무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냥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상처 주고 말지’ 싶어요. 왜냐하면 말을 안 해주면 평생 그게 기억이 나거든요.

명은(왼쪽)과 혜진은 글짓기 대회에 나간다.

영화제에서 GV를 하셨었는데 기억에 남는 게 있을까요?

이지은 성호 역할을 맡은 강길우 배우가 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보신 거예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명은이가 저렇게 학교에서 지내는지 몰랐다” 말하더라고요.

진짜 아빠 같은 말인데요?

이지은 왜냐하면 명은이가 집에서 맨날 삐지고 옷 사달라고 투정 부리고 ‘나쁜 사람들’ 이러는데 학교에서 명은이가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지내는 거니까요. 사실은 제가 그 서로 다른 감수성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실제로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사회생활하는지 본 적이 없고 부모님도 우리가 어떻게 학교생활하는지 본 적이 없잖아요. 그게 되게 기억에 남았어요.

문승아 GV 질문 중에서 어떤 분이 저랑 장재희 배우랑 같이 물어봤었어요. 미래의 명은이랑 혜진이의 글쓰기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리고 명은이와 혜진이한테 글짓기란 무엇이냐라고 얘기했을 때… 저는 앞으로 명은이는 글을 쓰지 않을 거다, 명은이가 글을 쓴 이유는 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자기도 솔직해지고 싶어서 글을 그렇게 쓰게 된 건데 이제 솔직해져봤으니 이제 더 이상은 글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그러고 저는 ‘아 문승아 정말 프로다’ 생각했는데 그다음에 정재희 배우가 너무 말을 잘했어요. 재희는 혜진이한테 글 짓기란 살기 위한 수단이라고, 그 친구가 상처받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데는 글 짓기밖에 없다 그렇게 얘기를 해서 ‘만만치 않네 이 친구’ 싶었던 기억이 제일 남아요.

이지은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되게 깜짝 놀랐어요. 저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두 친구한테 얘기한 적이 없어요. 승아 배우가 명은이를 연기하면서 생각해낸 거라고 생각하고 혜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이제 나보다 승아 배우가 명은이를 더 잘 알고 있겠다. 저는 그 인물의 미래에 대해서까지는 생각을 안 하려고도 하고, 근데 이 친구들은 이미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서 되게 좀 신기했던 경험이에요.

문승아 GV 하면서 생각한 것들이 많아요. 한 번도 생각 안 했는데 즉석에서 질문하시고 재빠르게 대답을 해드려야 되잖아요. 그 사이에 제일 생각이 잘 나는 것 같아요. 그냥 앉아서 조용히 생각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 것도 그렇게 하면 단숨에 좋은 생각이 나고 그럴싸한 생각이 나는 거 같아요.

<비밀의 언덕> 이지은 감독(왼쪽), 문승아 배우 사진 제공=(주)엣나인필름

감독님은 첫 장편이시고, 승아 배우도 아직 한참 더 활동할 나이인데, 두 사람 각자의 롤모델을 꼽자면?

이지은 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님이 베넷 밀러 감독님. <머니볼>이랑 <폭스캐처>를 만드신 감독님인데 인간을 깊게 탐구하면서도 영화를 되게 근사하게 멋지게 만드시잖아요. 저는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너무 멋있어요. 근사해요. 살다가 문득문득 떠올라요. 그래서 베넷 밀러 감독님의 차기작을 기다리며 <폭스캐처> OST를 맨날 듣고 있습니다.(웃음)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오시고 어떤 인물을 어떻게 깊게 파실까 그게 정말 궁금해요.

문승아 그러고 보니까 제가 롤모델이 없네요. 제가 예전에는 엠마 왓슨 배우를 그렇게 좋아했어서 제가 제 롤모델이 엠마 왓슨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더라고요. 생각해 보니까 그냥 좋아하는 배우랑은 다른 거니까 그래서 그냥 롤 모델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요?

이지은 나라고 해줘야 되지 않을까? 시사회에서 감독님이 연기 선생님이라고 했잖아.

문승아 연기선생님이 롤모델은 아니잖아요! 감독님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기선생님이자 배우. (일동 웃음) 제일 좋아하는 감독님.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