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는 언제나 위기였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고 OTT 시대와 맞물리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2023년 들어 <범죄도시3>를 제외하고는 믿었던 기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 위기론은 가중되고 있다. 이럴 때 언론에서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 ‘한국영화가 홍콩영화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라는 말일 텐데, 정작 그 말의 핵심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일단 홍콩영화를 오래도록 사랑해온 개인 입장에서는,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영화는 그 전철을 밟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홍콩영화의 최전성기에 가닿은 적이 없다. 그건 프로축구 선수 아무나 데려다 놓고 호날두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충고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 ‘급’이 맞지 않는 대상에게도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어쨌건 나도 ‘국뽕’에 매료되는 한국인으로서 저 말의 핵심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자국 영화 점유율’과 ‘해외시장 수익’이다. 홍콩영화의 최전성기는 바로 오우삼의 <영웅본색>(1986)이 개봉하고 스필버그의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1993)이 홍콩에서 개봉하기까지, 채 10년이 안 되는 시기였다. 물론 앞뒤로도 전성기라면 전성기였지만, 그때가 진정 ‘최전성기’였다. 그 이전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총 5편이 제작된 <최가박당> 시리즈도 있었다. 개봉하는 해마다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쾌찬차> <프로젝트A>의 성룡과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주윤발에게도 넘사벽이었다. 그처럼 1980년대 들어 홍콩영화는 내수시장에서 할리우드 대작마저 압도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즈음 북경어로 제작된 영화보다 광동어 영화가 훨씬 더 많아져서 그 제작편수가 역전된 일도 더해진다.
나도 ‘국뽕’에 매료되는 한국인으로서 ‘최전성기’라는 표현의 핵심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자국 영화 점유율’과 ‘해외시장 수익’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북경어와 광동어의 차이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홍콩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이 ‘자국 영화’라는 개념에 훨씬 더 들어맞는 자부심 넘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영화가 가장 부러워해야 할 부분은 역시, 당시 전 세계 화교 커뮤니티를 포함해서 한국, 일본, 타이완, 동남아 등 해외에서 얻는 수익이 홍콩영화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1920년대 들어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의 지사가 유럽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했고, 미국 영화산업 총수익의 1/3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게 된다. ‘할리우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조그만 지역이었지만 그즈음부터 국경을 초월한 ‘영화’의 고유명사가 됐다. 한때 홍콩을 ‘아시아의 할리우드’라 불렀던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해외시장 수익은 여전히 좀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이나, 자국 영화 점유율이라면 솔직히 우리도 그 못지않다. 한국 극장가는 2013년 처음으로 연 관객 수가 2억 명을 돌파했고 이후 2019년까지 무려 7년 연속 2억 명을 돌파했다. 심지어 2019년에는 역대 최다인 2억 2364만 명까지 기록했다. 게다가 그 안에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넘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인 2012년부터 8년 연속이었기에 ‘한국영화를 보는 한국인’이 바로 우리 영화계를 지탱하는 크나큰 힘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뒤집혔다. 2020년에는 5952만 명으로 관객 수가 거의 70% 가까이 감소했고, 2021년에도 관객 수는 6053만 명 정도에 그쳤다. 물론 한국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생한 건 아니지 않나,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극장 의존도’다. 한국은 영화산업 전체 매출에서 극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5%가 넘을 정도로 절대적이어서, 다른 나라보다 피해가 더 컸다. 한국인의 ‘영화사랑’은 그야말로 ‘극장사랑’의 다른 말이었던 것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한국영화는 229만 명을 동원하며 19.5%의 점유율로 20%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면 5월 점유율로는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마블 신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5월 3일 개봉, 420만 관객)와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5월 17일 개봉, 177만 관객) 등 외화 흥행작에 밀려 한국 영화가 부진을 면치 못했다고 말하기에는 사실상 화력이 부족했다. 5월 1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가 11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로서는 이달의 흥행 1위였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가 넘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 8년 연속이었기에
‘한국영화를 보는 한국인’이 바로 우리 영화계를 지탱하는 크나큰 힘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뒤집혔다.
그러다 6월이 되자마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5월 31일 개봉한 영화이긴 하나) <범죄도시3>의 흥행 덕에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대폭 올라갔다. 역시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6월 한국영화를 본 관객은 941만여 명으로, 약 6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6월 한 달간 <범죄도시3>를 본 관객은 약 874만 명으로, 드디어 7월 1일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첫 천만 영화이자 역대 21번째 천만 돌파 한국영화가 됐다. 그러다 지난 8일에는 1043만 명을 넘어서며 688만 관객의 <범죄도시>(2017), 1269만 관객의 <범죄도시2>까지 합해서 3편 이상 시리즈로 만들어진 한국영화로서는 최초로 총 3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새 역사를 썼다. 상반기 내내 ‘이러다가 한국영화 망하는 거 아냐?’라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한국영화 점유율이 한 달 만에 3배 이상 껑충 뛴 것이다.
지난 상반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를 끌어주길 바랐던 윤제균의 <영웅>(개봉은 지난해 12월 21일), 이병헌의 <드림>의 흥행 부진에 더해 이 시기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임순례의 <교섭> 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범죄도시3>는 사실상 상반기 한국영화의 구세주였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각각 5백만 관객을 돌파하는 흥행을 기록한 것으로 2023년 상반기 극장가를 정리하고 끝냈을지도 모른다. 극장이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아가는 가운데 한국영화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을 해소해줘서, 그리고 나와 같은 이름의 빌런이 등장해서 <범죄도시3>는 반가운 영화였다. 그럼에도 6월 한 달간 한국영화를 본 관객의 92%가 그냥 <범죄도시3> 관객이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한국영화가 잘 된 게 아니라 <범죄도시3>만 잘 된 거라는 근심이 여전한 것이다.
한국영화를 본 6월 관객의 92%가 그냥 <범죄도시3> 관객이라는 사실도 잊으면 안된다.
한국영화가 잘 된 게 아니라 <범죄도시3>만 잘 된 거라는 근심이 여전하다.
이제 7월 26일에 개봉하는 류승완의 <밀수>(배급 NEW), 8월 2일 개봉하는 김성훈의 <비공식작전>(배급 쇼박스), 역시 같은 날 8월 2일 개봉하는 김용화의 <더 문>(배급 CJ), 8월 9일 개봉하는 엄태화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배급 롯데)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들 중에는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름 대전에 갑자기 끼어든 영화도 있다. ‘한국영화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하며 극장에 활기가 돌 것’이라는 기대와 ‘개봉 시기가 이 정도로 겹치면 2편 넘게 성공한 사례가 드물었다’는 출혈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차한다. 어쨌건 ‘주사위는 던져졌다’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 사이에서 많은 한국 영화인들의 고민과 희열이 여름 내내 계속될 것 같다. 시사회를 통해 금주부터 정체를 드러낼 이들 영화를 [씨네플레이]가 여러 글과 인터뷰, 그리고 영상으로 차근차근 팔로우할 생각이다. 지켜봐주시길.
씨네플레이 편집장 주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