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에서 이어집니다.
조지 루카스는 애초에 ‘인디아나 존스’를 삼부작(트릴로지)으로 구상했고 시리즈는 모두의 가슴속에 성배처럼 놓여있을 영화적 유산으로 남을 것이었다. 그러나 AFI에서 열린 해리슨 포드 회고전에 참여했던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해리슨 포드를 보며 그에게 4편을 선물로 주기로 했고 20년이 지나 실현된다.
무려 18년 이후에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4편의 배경은 냉전시대의 정점인 1957년이다. 존스(해리슨 포드)는 동료 맥(레이 윈스톤)과 함께 소련의 한 비행장에서 소련 특수부대 이리나 스팔코(케이트 블란쳇) 일당의 추격을 피해 탈출한다.
일상으로 돌아간 존스는 대학에서 고고학 강의를 하며 평범하게 지내고 싶어하지만 소련에서의 탈출 사건과 고고학 연구에 관련해 자신의 교수직을 해고하려는 정부의 또 다른 압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대학을 떠나려던 찰나, 그의 앞에 청년, 머트 윌리엄스(샤이아 라보프)가 나타난다. 고고학을 선망하는 머트는 크리스탈 해골 관련 여러 가지 비밀들을 늘어놓으며 마야 문명의 비밀이자 고고학 사상 최고의 발견이 될 ‘크리스탈 해골’을 찾아 나설 것을 제안한다. 존스와 머트 일행은 크리스탈 해골을 찾아 마야 문명의 전설의 도시로 향하게 되는데, 이리나 역시 크리스탈 해골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 세계를 정복할 야욕을 품고 그들을 추격한다.
그렇게 시리즈의 4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은 2008년 칸 영화제를 통해 화려하게 귀환했다. 케이트 블란쳇과 샤이아 라보프를 필두로 메이저 캐스팅으로 무장한 신작이었지만 무엇보다 관객들은 누구보다 해리슨 포드의 복귀에 열광했다. 스필버그의 촬영 메이트인 야누스 카민스키가 촬영을 맡았고 루카스-스필버그 팀의 대들보인 존 윌리엄스가 역시 음악을 맡은 시리즈의 4편은 8억 달러라는 경이로운 흥행 기록을 세우며 노장(들)의 귀환을 성대하게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
18년이라는 공백, 그리고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한 안도감 등 <인디아나 존스> 4편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극명히 갈렸다. 제임스 버라디넬리는 이번 영화가 시리즈 중 가장 “생기 없는” 에피소드라고 언급하며 영화 자체로도 미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물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인디아나 존스의 골수팬은 존재했다. 로저 이버트는 "늘 한결 같다 (same old, same old)” 라고 서술하며 “정확히 내가 이 시리즈에서 바랬던 것”이라고 호평했다.
이쯤 되면, 해리슨 포드의 나이(4편 개봉 당시 64세)나 의지와 상관없이 5편의 논의가 당연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물론 포드 역시 딱히 종지부를 찍지 않은 4편에서 멈출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4편의 제작 이후 제작사인 루카스 필름과 연계된 회사들, 그리고 관련한 인사들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단 2012년 디즈니가 루카스 필름을 인수하면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디즈니 소유가 되었고, 조지 루카스는 앞으로 일어날 인디아나 프로젝트의 전권을 루카스 필름의 새 대표인 캐슬린 케네디에게 넘겼다.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에 매진하고 있던 루카스 필름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무기한 유보했다. 그렇게 신작의 윤곽이 점점 흐려지던 상황에서 이번 5편 제작의 촉진을 담당했던 인물은 놀랍게도 해리슨 포드였다. 3편 이후로 사실상 시리즈에서 은퇴했던 그가 4편을 마치고 나서는 5편으로 “적절하고 마땅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렇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대단원의 막, 5편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놀라운 것은 시리즈의 대모, 대부 격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실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출은 제임스 맨골드(<로건>, <포드 V 페라리>)가 맡고, 각본은 맨골드를 포함한 4명의 작가들이 맡았다.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총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s)로만 크레딧을 올렸다.
5편의 배경은 1969년이다. 심드렁한 노년의 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인디아나 존스’ 앞에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이자 대녀, ‘헬레나’와 오랜 숙적 ‘위르겐 폴러’의 세력이 등장한다. 그들의 목표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아르키메데스의 발명품, 운명의 다이얼을 손에 쥐는 것이다. 존스의 소장에 있었던 이 다이얼을 차지하기 위해 폴러와 헬레나, 그리고 다른 무리들까지 존스를 쫓기 시작한다. 이젠 늙고 지친 존스지만 다시 한번 세계를 누비를 여정을 떠나야 한다.
결론적으로 무려 4천만 달러를 투여해 만든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극장 수익 3천만 달러를 간신히 넘기며 흥행에서 참패했다. 엔데믹의 호황 효과도 누리지 못한 듯한 이번 에피소드의 실패 요인은 간단하다. 정작 <인디아나 존스>의 신화를 창조한 두 인물,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숨겨진 고대의 유물을 찾아 나선다다는 것이 기본 골자인 이 모험 시리즈에서 이번 편에서는 난데없이 시간 여행이 등장하며 어드밴처 장르는 일종의 공상과학 판타지 장르로 탈바꿈한다. 이 장르에 특화한 제임스 맨골드의 경향이 눈에 띄는 부분이기도 하다. 새로운 감독이 이번 5편의 프로젝트를 맡아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기 바랐다는 스필버그의 바람이 오히려 인디아나 시리즈의 레거시를 위태롭게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바람대로 새로운 요소는 기존의 뼈대를 담당하는 영화의 스타일과 유연히 조립이 되지 못했다.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유물”을 찾는 이야기가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정체성이라면, 이번 에피소드는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유물을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로 인디아나 존스와 <빽 투 더 퓨처>를 어설프게 버무려 놓은 하이브리드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올해 열린 칸 영화제에서 이번 시리즈의 프리미어와 함께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해리슨 포드의 진심 어린 수상소감과 눈물을 떠올리면 더더욱 이번 영화의 결과가 안타깝기만 하다. 그럼에도 영화를 괜히 봤다고 후회하며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윌리암스의 웅장한 테마곡이 안겨주는 압도적인 설레임이기도 하고, 존스 박사의 낡아 빠진 모자를 보며 느끼는 노스탤지어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편의 의아한 '당돌함'을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