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흉추> 포스터.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침대 매트리스에서 피어난 곰팡이 꽃이 인간의 척추뼈를 탐하며 생명체로 탈바꿈한다. 이 기이한 여정을 이상하고도 아름답게 설득해낸 신예 박세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다섯 번째 흉추>가 8월 2일 극장 개봉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어쩌면 한국 장르영화 뉴 제너레이션의 탄생을 목도하는 첫 증인이 될지도 모른다.

<다섯 번째 흉추>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태어난 곰팡이가 ‘버려짐’과 ‘주워짐’을 반복하며 도시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 사랑과 증오, 분노와 질투, 무책임과 그리움 등 인간 고유의 감정을 학습하고, 인간의 척추뼈를 취해 결국 기이한 생명체로 성장해가는 크리처 무비이다.

지난해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후 3관왕을 거머쥐며, 국내 장르영화 팬들의 뜨거운 환호와 시네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전 세계 20여 개 영화제의 러브콜과 극찬이 이어지며, 걸출한 장르영화 신예 감독의 탄생을 알렸다.

이번 영화로 장편 데뷔한 박세영 감독은 다양한 매체에서 아트&커머셜 커리어를 쌓아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화과 예술사와 조형예술과와 비디오 아트 전문사를 졸업한 박 감독은 패션 브래드 버버리, 생로랑 등 명품 브랜드의 패션 필름을 연출했으며, 특히 <다섯 번째 흉추> 제작비는 ‘BTS X 루이비통 패션필름 <LVMenFW21>’을 공동연출해 마련했다.

출생 몇 년 후 영국으로 가족이 이주하고 8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느낀 한국의 낯섦과 이국적인 풍경을 <다섯 번째 흉추>에 녹이고 싶었다는 박세영 감독은, 이 영화의 시작과 끝 모두에 자전적인 요소가 녹아 있음을 고백했다. <다섯 번째 흉추>가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색보정,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박세영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섯 번째 흉추>로 장편 데뷔한 박세영 감독.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장편 데뷔를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65분짜리 영화로 간신히 장편 데뷔를 한 것 같아요. 아찔하고 좋습니다. (웃음)

<다섯 번째 흉추>에서는 매트리스의 곰팡이가 주인공입니다. 기자간담회에서 반지하 자취 시절 곰팡이를 본 것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곰팡이가 뼈를 먹고 자라간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착안하신 건지 궁금해요.

시나리오를 쓸 때 마포구의 한 원룸에서 살고 있었어요. 2년 살고 계약이 끝나면 또 이사해야 했죠. 여유가 없다 보니 이사에서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햇살이 들어오는 남향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했던 원룸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산을 못 한 게 있었어요. 바로 환기였는데요. 비가 내릴 때마다 방이 습해지더라고요. 습기를 빼는 방법도 마뜩잖아서 방구석 같은 자리에 똑같이 곰팡이가 피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영화 포스터로 가렸어요.

계약기간 2년이 지나서 이사 가려고 포스터를 떼는데, 저는 그냥 곰팡이가 2D로 자라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곰팡이에서 털이 자라나서 포스터에 붙었더라고요. 그게 징그러우면서 애잔하기도 하고,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엄청난 생명력과 삶의 끈질긴, 살아가려는 것들의 힘이랄까요, 그런 것들을 본 것 같았죠.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 거 같아요. 보기엔 불편하지만 살아가려는 끈질긴 힘을 가진, 어떻게든 성장하려고 하는 생명체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이요. 이사 간 다음 자취방에서 영화를 찍었고, 편집은 또 이사 간 새로운 자취방에서 했네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제목이 독특한데요,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이 영화에서 다섯 번째 흉추는 곰팡이 생명체가 유일하게 가져가지 못한 뼈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인간 척추가 요추, 흉추 등으로 구분되는데, 다 합치면 37개 이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중에서 다섯 번째 흉추는 심장과 가장 가까운 뼈이기도 해서, 곰팡이 생명체가 뼈를 무작위로 가져간다는 설정에서 어떤 뼈를 못 가져갔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짓게 된 제목입니다.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초고 이후 완성본까지 40번이나 시나리오를 고쳐 썼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궁금하고요. 완성본과 가장 달라진 부분도 궁금합니다.

초고와 완성본은 완전히 다른 영화였어요. 제목만 <다섯 번째 흉추>로 똑같고요.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매트리스를 버리러 가는 용달기사의 이야기였어요. 그 매트리스와 함께 했던 인물들의 수많은 기억들과 편견, 혐오, 차별 없는 대화를 나누며 소각장으로 가는 이야기였죠. 옴니버스식으로요. 그런데 각본을 붙잡고 있다 보니, 새로운 요소도 추가하고 싶었고 성격도 제가 좀 급한 편이라 좀 바뀌었죠. 단편으로 구상했지만 좀 더 길게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자유롭게 찍어보자는 생각에 좀 더 과하게 장르적 문법도 차용했습니다. 영화가 그런 식으로 변모한 거 같아요.

시나리오 완성까지는 얼마나 걸리신 건가요?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장편 데뷔작을 크리처물로 하셨어요.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고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가난한 고어 영화라고 할까요? 그러려면 가난하게 만든 고어 영화 사례들을 봐야 하는데, 존 카펜터의 영화들이나 일본 핑크 필름들, 저예산 B급 영화들을 참조했죠. 이런 영화들에서 크리처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봤어요. CG가 아닌 실제 모형들을 참고하면서, 저예산으로도 가능하겠구나, 미술감독과 DIY 형식으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산이 넉넉했다면 뼈가 아닌 장기를 취하는 설정으로 가져갈 수도 있었을 텐데, 현실적으로 고어 영화를 저예산으로 만들려다 보니 이런 전략을 취하게 된 겁니다.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저예산 영화인데도 곰팡이 비주얼이 상당하더라고요! 곰팡이 생명체는 어떻게 상상하셨는지, 비주얼적으로는 어떻게 구현하셨는지 설명해주세요.

처음에는 매트리스 외부에만 집중했어요. 카메라가 시공을 초월하는 3차원을 통과하면서 매트리스 안으로 파고들지는 못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찍고 편집하다 보니 상상을 극대화해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한하지 말자, 매트리스 내면의 세계도 적극 탐험해보자는 생각이 든 겁니다. 비주얼적으로 사운드적으로 과하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니고요.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저렴한 뼈 모형을 샀고요, 인근 마트에 가서 싼 고기 부위를 샀어요. 돼지 껍데기도 샀고요. 미술감독이랑 스태프들이랑 종이 이쑤시개로 8시간 동안 찌르고, 물감 뿌리고, 찢고, 분해하고, 본드로 붙이고, 꿰매고, 해부하기도 했어요. 거의 그림을 그리듯 인서트를 많이 땄죠. CG가 아니라 최대한 질감적으로 표현해보자는 의도였죠.

8시간 동안 고기를 찌르고 찢으면서 미술감독과는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웃음)

추가 촬영이었거든요. 별 이야기는 안 했고요, 미안해서 밥 맛있는 거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인당 가격이 좀 되는 밥을 샀습니다.

고기는 아니었을 거 같아요.

마라탕이었던 거 같습니다(웃음).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다섯 번째 흉추>는 시공간 구성도 명확히 표시되어 있어요. 우선 공간에 대해 질문드릴게요. 강북구, 노원구, 한국의 어디로 바뀝니다. 특정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시공간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제게 가장 중요했던 키워드는 ‘로드무비’였어요. <다섯 번째 흉추>는 거기서 파생되는 영화라 생각했고, 로드무비를 장르적 문법으로 삼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한국이라는 공간은 로드무비를 찍기 힘든 것 같더라고요. 비행기를 타지 않는 이상은 갇혀 있는 육지 같다는 생각?

개인적인 부분도 작용했습니다. 저는 다른 지역 태생인데요,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월셋집에 살게 되었어요. 한남동이라는 나름 서울의 중심부에 집을 구했는데, 2년 계약이 지나면 월세가 점점 오르니 외곽으로 나가게 되더라고요. 한남동에서 마포구, 강북구로, 지금은 가평에 살아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 서울에 출퇴근하는 상황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로드무비 역시 자신이 선택한 것이든 떠밀려간 것이든 어디론가 가는 것인데, 제 주거환경이 바탕이 된 점은 분명 있죠. 영화에서는 강북구, 노원구로 시작해서 주상절리로 공간이 변하고요. 비슷한 과정인 거 같아요. 중심부에서 멀어지는.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마지막 공간이 주상절리에요.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건가요?

사실 마지막 공간은 제주도나 백령도에서 촬영하고 싶었어요. 예산 제약이 있다 보니, 삼팔선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친구들이랑 차를 타고 가다가 주상절리를 발견했습니다. 주상절리를 마주했을 때 느낌은요, 음, 우리는 직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주상절리가 그 직선을 가로막는 거였어요. 한국 지형의 결말 같은 느낌처럼 너무 웅장했죠. 남과 북의 경계인 삼팔선과도 멀지 않았고요. 그 웅장함이 이미지적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느껴서 그 공간에서 영화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적 배경에 대한 의미도 여쭤보고 싶어요. 곰팡이 탄생 전부터 아주 세세하게 시간을 구분해 제시하고 있죠.

제가 태어난 지 몇 살이 안 되었을 때, 2000년쯤엔가 온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했어요. 이후 캐나다에 살다가 2007년 말에 한국에 돌아왔죠. 주변 사람들과 그 기간의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면 너무 소외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월드컵이라는 경험도 못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부재했던 한국의 그 시간대를 너무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후부터 다 찾아봤어요. 그 당시에도 미세먼지 문제가 엄청 심각했더라고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그때의 한국과 경험한 지금의 한국을 함께 극대화시켜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섯 번째 흉추>에 한국 야외 경관을 노란색으로 표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어요. 제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미세먼지, 황사로 하늘이 오염된 걸 보고 놀랐거든요. 그런 못생긴, 짙은 공기층을 가진 한국을 보여주고 싶어서 색에 대해 고민도 했던 거죠. 보통 남미 영화라고 하면 대충 노란색 필터 하나 끼우고 찍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한국도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낯설면서도 익숙하게요. 제게 그랬던 것처럼요. 한국을 영화에서 이런 색온도로 표현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연결 지어 생각하려 했던 거죠.

이해가 좀 됩니다. 대단히 실험적인 영상인데, 각 인물 에피소드마다 색감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 같아요. 아, 색감 구분 기준을 질문드리기 전에 등장인물에 관해 하나만 먼저요. 왜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이 다 한 글자인가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남자1, 여자1 이렇게 썼어요. 캐릭터성이 엄청 강한 시나리오도 아니어서요. 그런데 그렇게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더라고요. 시나리오에 경호원, 택시기사 이렇게 쓰여 있으면 안 좋아할 테니까요. 그래서 최소한의 글자를 사용한 이름으로 정했습니다(웃음).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군요(웃음). 에피소드마다 색감을 다르게 한 기준을 설명해주세요.

기술적인 부분을 먼저 말씀드리면, 제가 시나리오, 감독, 편집 등을 다 했잖아요. 후반작업에서 색보정하면 된다는 생각에 RAW 촬영이 되는 카메라를 썼어요. 그리고 색감이라기보다는 조명의 차이인데요. 에피소드별로 조명을 설치하는 방식도 달랐죠. 아 물론 조명감독이 있던 촬영 현장 경우에만요(웃음). 모텔 씬이 가장 돈을 많이 쓴 부분인데요. 오천 원, 만 원 하는 조명을 엄청 사서 썼어요. 싸구려 LED라 색이 안 이쁘더라고요. 그걸 극복하려면 전체적으로 팔레트를 덮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투박하게 색을 하나 입히고 보니, 다른 색들도 예쁘게 변하더라고요. 색보정하면서 발견한 거죠. 그렇게 모텔 씬을 만들고 나니, 다른 에피소드들도 영향을 받게 되었죠. 모든 색감은 모텔 씬에서 시작한 겁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스타렉스 장면도 그래요. 다마스나 카니발 같은 다양한 차를 알아봤어요. 원래 하고 싶던 차는 롤스로이스였습니다(웃음). 태국에 갔을 때 개조된 롤스로이스를 많이 봤어요. 천정에 조명을 촘촘히 단다거나 하는데, 우리는 예산이 부족하니 바닥에서 조명을 쏜 거죠. 모텔 씬에서 썼던 조명을 썼는데, 리모컨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초록색으로 통일되어버렸습니다(웃음). 그래서 의도가 있었다고 말씀드리긴 좀 그렇고요. 그때그때 상황이 터지면 수습하거나 영리하게 타파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음악, 음향도 모두 강렬해요. 음악감독에게 특별하게 주문한 부분이 있나요?

한민희 음악감독에게 처음에는 좀 무례하게 부탁했죠.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들이나, B급 슬래셔 무비들의 음악처럼 해달라고요. 이런 영화들은 예산 문제로 오케스트라를 쓰지 못하니, 신시사이저 하나로 음악을 만들거든요. 진짜 못생기고 거친 소리들인데, 이게 우리 영화의 톤과 아마추어리즘과 맞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거칠게 해달라고 했는데, 한민희 음악감독이 정말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 자상한 분이어서요. 6~8개월 정도 소통하면서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제 영화에서 음악을 했던 함석영 배우가 꼭 하고 싶다고 해서 한 곡은 맡겼고요, 이번에 못했다고 다음 영화는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할 거 같아요(웃음).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말씀하신 것처럼 <다섯 번째 흉추>는 단편 여러 개를 이어 붙인 느낌도 들지만, 전혀 전체적인 통일성을 해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좀 더 길게 찍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나요?

사실 예산이 문제였죠. 늘 부족하니 차 안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로 찍으려고 구상했고요. 이번 영화도 이렇게 찍는구나 했는데, 갑자기 전고운 감독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루이비통과 BTS의 패션 필름을 찍게 되었는데, 공동 연출을 하자고 제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제작비가 생긴 거고, 장편을 찍을 수 있었던 겁니다. 사실 <다섯 번째 흉추>는 BTS가 만든 영화에요(웃음). 그래도 한 시간 반은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대부분 영화제에서 60분 이상이면 장편으로 분류하니 그 자격만 갖추자는 생각으로 했죠.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지느러미>라는 영화를 작업 중입니다. <다섯 번째 흉추>는 맥거핀의 전복이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번 영화는 좀 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극영화의 형식을 취할 계획이에요. 간단히 소개하면 근미래에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 한국의 해안선을 따라 벽이 세워져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에 벽을 세웠던 것처럼요. 지느러미가 있는 어인족이 바닷가에서 벽을 청소하고요, 인간은 벽 안에서 살죠. 어느 날 죽어가는 한 어인이 동료에게 자기 지느러미를 떼 주며, 인간 세계에 숨어 사는 딸에게 전해달라고 해요. 지느러미를 잘 묻어달라고요. 그렇게 동료 어인이 인간세계에 몰래 들어가서 벌어지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후쿠시마 오염수가 이슈인데,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정치적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감독님 이야기를 조금 여쭤볼게요. 어린 시절부터 크리처물을 좋아하셨어요?

아니요. 진짜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신 건가요(웃음)?

캐나다에 있을 때예요. <판의 미로>(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2006)가 개봉했는데, 엄마가 같이 보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디즈니 영화만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죠. 물론 뒤에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 소녀는 그걸 알 수 없으니까요. 다시는 이런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했죠. 엄마도 싫어질 정도로요(웃음). 중학생 때 카메라가 생겨서 단편 비슷한 걸 찍기 시작했는데, 제가 똑같은 걸 만들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혐오하고 싫어했던 걸 무의식적으로 왜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본 거 같아요. <다섯 번째 흉추>가 그런 내용인 거 같네요. 겉으로 보기엔 더럽고 지저분해도, 조금만 참아 보면 안에 엄청난 슬픔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다섯 번째 흉추> 스틸컷. 사진 제공=(주)인디스토리

<다섯 번째 흉추>가 관객에게 어떤 영화로 다가가면 좋겠나요?

겉으로 보기엔 조금 불쾌하고, 지저분하고, 징그럽고 더러운 그러니까 거친 영화일 수 있어요. 그런데 조금만 그 시간을 견뎌 주면 그 뒤에 원인을 모를 슬픔이나 파악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비주얼적으로 스타일적으로 어떤 ‘척’을 하려고 만든 영화가 절대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런 부분이 발생한 거 같아요. 감각적 체험이 더 우선시되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