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쌍천만 감독’ 김용화 감독이 돌아왔다. 2018년, 그를 쌍천만 감독에 등극시킨 <신과함께-인과 연>(신과함께 2) 이후 5년 만의 귀환이다. 저승을 누비며 한국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았던 김용화 감독이 선택한 다음 목적지는 우주, 그중에서도 달이다.
8월 2일 개봉하는 <더 문>은 국내 최초로 유인 달 탐사를 소재로 한 우주 배경의 영화다. 사고로 혼자 달에 고립된 우주 대원 황선우(도경수)와 필사적으로 그를 구하려는 전 우주센터장 김재국(설경구), 미국 항공우주국(NASA) 디렉터 문영(김희애)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김용화 감독은 데뷔작 <오! 브라더스>(2003)으로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적으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이후 외모 지상주의 세태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 <미녀는 괴로워>(2006)는 662만명,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진한 감동을 선사한 <국가대표>(2009)는 848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제조기’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첫 시련은 <미스터 고>(2013)였다. 기술적 성취를 이뤘지만, 관객 동원은 132만명에 그쳤고, 혹평이 넘쳤다. 4년의 기다림 끝에 야심차게 던졌던 도전이 실패하며, 김용화 감독은 심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후 김 감독은 영화감독에서 기업인으로 변신한다. 한국영화의 시각효과를 한 단계 발전시킬 덱스터를 설립한 것. 이후 <신과함께> 1, 2편으로 그의 도전은 증명되었다.
김용화 감독의 7번째 영화 <더 문>은 한국 우주 과학 기술을 현실적으로 고증하며 최정상의 VFX 기술력으로 가장 사실적이고 스펙터클한 비주얼의 우주를 경험케 한다. 여기에 생존이라는 근원적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뜨거운 공감으로 그린다. 한계 없는 도전을 이어가는 압도적 흥행 메이커 김용화 감독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과 함께> 1, 2편으로 한국 최초 ‘쌍천만 감독’ 등극 이후 5년 만의 신작 <더 문>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저승을 누비시더니 우주로 가셨어요. 어떻게 도전할 생각을 하신 건가요?
더 늦어지면 제가 영원히 쳐다볼 수밖에 없는 영화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죠. 특히 우주라는 측면은 기술적 완성도가 중요한데요. 그런 면에서 덱스터 스튜디오가 가진 현재 기술력으로 가능할지를 살펴봤죠. 이제는 우주로 나가도 되겠구나 하는 판단이 섰어요. 아이맥스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영상이 기대한 만큼 나왔더라고요. 촬영에서도 샷 수를 늘리기보다는 줄이고, 해상도에 전력을 다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략적 판단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문>의 시작은 어디인가요?
아이디어는 10년 전쯤에 떠올랐어요. EBS에서 한국천문연구원의 한 박사님의 특강을 우연히 봤어요. 학생 패널 중 한 명이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오해가 생기면 어떻게 푸세요?’라고 물었는데, 박사님이 ‘그냥 별을 바라보면서 오해 생긴 사람의 잘못, 내 잘못을 솔직하게 말해요. 별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 자신의 상황이나 존재가 거대한 우주에서는 먼지처럼 느껴진다’라고 답하더라고요. 별을 보면서 이야기하면 그런 사소한 오해와 갈등이 풀어진다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신과함께-인과 연>(신과함께 2)를 마치고였죠. 그런 생각을 우주를 배경으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하고요.
우주에서도 달을 소재로 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달에서도 앞면과 뒷면을 구분해서 극을 끌고 가셨어요.
달을 가야 하는 이유가 명확한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달에 지구에서 굉장히 오랜 기간을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발견되고 있어요. 우주 패권에서도 달이 첫 번째 목표지가 된 상황이죠. 그리고 우리는 평생 달의 앞면만 봐요. 달의 자전 속도와 공전 속도가 같거든요. 달의 앞면은 로맨틱합니다. 우리에게 수많은 동화를 안겨줬죠. 그런데 달의 뒷면에는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끔찍할 정도로 엄청난 수의 분화구가 있어요. 용암 폭발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유성우에 맞아서 곰보가 된 겁니다. 그런 아이러니라는 게 달의 앞, 뒷면을 구분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로는 달이 행성이면서도 지구의 영향을 유일하게 받는 위성이라는 설정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양면이 존재하는 소재에 끌려요. 제가 드라마적으로 추구하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슬픔과 웃음처럼요. 잘 섞일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잘 섞일 수 있는 감정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아, 그리고 달 뒷공간에서 벌어지는 탈출에 대한 서스펜스가 클 것이라는 생각도 물론 있었습니다.
시각효과 관련 질문을 드리기 전에 시나리오 질문을 먼저 드릴게요. 감독님을 쌍천만 감독으로 등극시킨 일등공신 <신과함께> 1, 2편은 성공한 웹툰 원작이 있었죠. <더 문>도 원작이 있는데, 각색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있을까요?
사실 소재적 측면에서 큰 걸 바꾼 건 없어요. 플롯은 다 비슷하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원작에서는 그 감정적 수위가 높았고, 관계성 회복에 집중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까지 하기는 자신이 없어서, 제가 느끼고 경험했던 걸로 축소했습니다. 8개월 정도 걸린 거 같네요.
감정적인 부분을 축소했다고 하셨는데,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원작에서는 극 후반부에 우주인 황선우(도경수)와 김재국 박사(설경구)가 유사 부자 관계가 됩니다. 영화를 보고 그런 점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데, 과연 관객이 동의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떠났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원형적인 틀 안에서 액션, 서스펜스, 스릴을 충분히 즐기게끔 해드리자. 전체적인 서사는 이 정도로만 한정하자는 생각이었죠.
개봉을 앞두고 반응은 어떤가요?
제가 예상했던 비율로 나오는 거 같아요. 좋아하는 분들 계시고, 중간으로 보는 분, 안 좋아하는 분, 이렇게요. 만족치는 다 다르죠. 다만 <신과함께> 시리즈 때보다는 훨씬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요. <신과 함께>의 후광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웃음). 다만, 소재가 판타지인만큼 진입장벽은 높은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시도된 적이 없고, 또 한국 SF 영화에 대한 불호, 불신이 크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신뢰도가 떨어진다면, 그걸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었죠. 사실 극복하는 방법은 개봉뿐이라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문>의 제작비는 약 280억 원으로 알려져 있죠. 수치상으로 보면 높은 금액이지만, 영화에 사용되는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 등을 고려했을 때는 그야말로 알차게 사용한 것 같아요. 시각효과에는 얼마를 썼나요?
VFX에만 61억 원 정도를 썼어요. 그 이상의 예산을 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정말 낮은 비용이라 힘든 부분도 있었죠.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샷 수를 줄이고 남아있는 샷의 완성도를 더 높은 품질로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샷 수를 좀 더 줄이더라도 압도적인 화면이나 하나의 장면으로도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는 쪽에 승부수를 둔 거죠.
샷 수를 줄이고 퀄리티에 집중하셨다고 했는데, 편집에서 덜어낸 부분도 있나요?
많죠. 예를 들면 우주에서 도킹 과정이 저렇게 쉽게 이뤄지진 않아요. 궤도에 진입하는 것만도 열 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주선이 출발하고 이튿날에야 궤도에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웃음). 궁금한 요소들이 생길 때면 천문연, NASA에 메일을 보냈어요. 이런 이슈가 있는데 과학적 고증에서 큰 오류가 되는가를 문의한 거죠. 그런데 다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답변을 하더라고요. 영화가 도킹 장면을 보여주는 데만 열 시간 넘게 길어지면 안 되니까요(웃음). 영화는 삶의 은유이고, 삶은 그런 요소들을 극복해가는 것이니 그냥 하라고 용기를 주시더라고요. 영화가 근미래 시점인데, 그때쯤이면 도킹이 더 쉬워질 수도 있다면서요(웃음).
아까도 잠시 언급하셨는데, 한국 관객에게 SF는 접근하기 쉬운 장르는 아니에요. 한국 관객의 특수한 정서를 SF라는 장르에 접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저는 그냥 ‘용서와 구원과 위로’ 이 세 가지만 관객에게 전할 수 있다면, 배경은 저승이든 우주든 큰 상관이 없을 거라는 치기 어린 생각을 했어요. 막상 만들고 보니 SF라는 장르 자체가 진입 장벽이 높겠다는 생각이 개봉 3개월 전부터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만들던 5년 동안은 아무 생각이 안 들다가 말이죠(웃음). 모 일간지에서 3천 명을 대상으로 기대되는 영화를 조사했는데 <더 문>이 2위를 했어요. 근데 기대하지 않는 영화에서도 1위를 차지했더라고요. 이유가 한국에서 SF영화를 잘 만들지 못할 거라는 답변이 있어서, 좀 위축이 되긴 합니다. 좀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관객 반응이 갈릴 수 있죠. 그래도 언론시사회 이후 <더 문>의 비주얼적 측면이 호평을 받고 있으니, 그렇게 걱정을 하실 건 아니지 않을까요?
저도 희망적인 말씀을 더 드리고 싶은데, 올해 여름 극장가에 대작이 많아요. 또 코로나 때문에 관객들이 쉽게 극장으로 발걸음을 하지는 않는 거 같고요. 바라건데, 트리거가 하나 걸려서, 모든 감독이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요(웃음). 저는 비주얼적으로는 큰 관심이 없어요. CG도 그만 쓰고 싶어요. 감정적인 측면에서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보편적으로 소비가 많이 되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니, 그런 소통이 관객들과 있으면 좋겠어요.
감독님은 비주얼적 측면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미녀는 괴로워>(2006), <미스터 고>(2013), <신과함께> 1,2 등 전작부터 이번 <더 문>까지, 시각효과 부분에 있어서는 명실상부하게 한국 최고의 감독이시죠. 한국 영화에 기여한 부분도 분명 있고요. 한정된 예산으로 시각효과를 극대화하는 감독님만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요.
<신과함께> 편집할 때 아내가 몰래 와서 봤대요. 나중에 영화가 너무 좋은데, 저런 CG 장면들은 다 빼면 안 되는거냐고, 충분히 감정선이 좋은 영화인데 너무 차고 넘치는 거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예산이 좀 투입된 씬이었거든요. 저는 그때 모든 기준이 생긴 것 같아요. 영화란 본질적으로 정서의 매체이지, 비주얼의 매체는 아니란 걸요. CG는 거들 뿐이죠. 어릴 때 봤던 모든 영화가 CG를 보러 간 게 아니라, 위로를 받으러 간 건데, 감독이 되어 영화를 만들면서 왜 그걸 잊었나 싶어서 과감하게 들어냈어요.
말씀드렸듯이 <더 문>에서도 샷을 줄였고요. 과감하게요. ‘어마무시’한 샷들이 있었어요. 그런샷들이 4K로 막 찍혀 나오니까 황홀했죠. 그렇지만, 그런 때일수록 제가 이 영화를 처음 기획했던 때를 생각했어요. 결국 감정은 하나다, 덜어내자, 그러면 영화가 더 좋아질 것이다. 이렇게 믿었습니다.
<더 문>에서 엄청난 기술적 성취를 이루셨는데, 너무 박하게 스스로를 평가하시는 건 아닌가요?
<더 문>의 기술적 성취가 부각되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기술을 좀 더 분위보다 위로 올려놓기 시작하면, 영화 본래의 가치가 퇴색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영화는 감정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극적 개연성과 설정의 개연성이 달라지죠. <미스터 고> 역시 당시 그 예산으로 엄청난 걸 해냈어요. 패착이 뭐였느냐고요?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걸 봐, 이 기술적 성취를 봐’라는 거였어요. 세상에 흠결이 없는 영화가 어디에 있겠느냐만, <더 문>은 위로의 감정이 잘 전달되는, 감정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CG도 엄청 잘하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해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요.
잘 알겠습니다. SF 장르에 대한 이야기르 좀 더 나눠보죠. 우연한 사고로 우주에 홀로 남겨진 한 남자를 귀환시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션>(감독 리들리스콧, 2015)이 떠오르더라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더 문>과 <마션>이 전혀 달라요. 황선우는 철저히 주어진 미션을 성취하는 데 집중하고, 마크(멧 데이먼)는 구출을 기다리며 감자를 수확하고 노래를 흥얼거리죠. 영화 후반부 황선우의 극적인 구출 역시 SNS라는 장치를 넣긴 했지만, 미국과 NASA를 움직이기에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주개발을 대하는 헐리웃영화와 한국영화의 극과 극처럼 보이는 스탠스가 비교되는 지점이기도 한데요, <더 문>을 비롯해 한국SF 영화가 배우의 감정선에 집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마션>의 방식이 더 과학적일 수는 있겠지만, 저는 좀 더 극적인 영화를 좋아해요. 정치적인 요소까지 고려한다면 그렇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봐요. 국제 경찰이 우주에 있지 않다면, 어떤 우주인에게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그에게 안전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도 듭니다.
크게 말하면, SF 영화의 기존적 속성 중에 캄(calm)하고 답답한 부분이 있죠. 저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제게는 전혀 고려될 요소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우주 영화에서는 그 고질적인 부분을 답습하기보다는 다이나믹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플롯을 가져오는 것이 관객을 더 크게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말씀하신 SNS 부분도 제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실종된 우주인의 좌표도 알 수 있고 그 우주인의 상태가 안전하다면, 미국만큼 정치적인 나라도 여론을 살피고 구출에 동의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거죠. 물론 노골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했고요.
NASA에서 명령을 어긴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감정적인 설정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그게 접점의 차이라고 봐요. 사실 윤문영 박사(김희애)가 NASA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다고 봤어요. 그가 NASA에서 겼었을 인간적인 수모까지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지만, 미국에 진출한 동양인이 직업적으로 경험하는 한계가 분명 있었을 테니까요. 원작 시나리오에서 김재국과 윤문영이 헤어지는 과정이 드러나 있어요. 영화에서는 들어냈지만요. 여하튼 윤문영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면 실행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현실에 대입시켜 보면, 사실 지금은 구출하지 않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같은 날 개봉하는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역시 구출하는 이야기인데, 현실과는 너무 대비되는 스토리죠. 왜 우리 시대의 감독님들은 ‘구원’을 주제로 삼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인간 본연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 재미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데요, 구원이라는 함의까지 포함된다면 그 어떤 이야기보다 파워풀하다고 봅니다.
앞선 질문들은 어쩌면 감독님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신파라는 지적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예전 인터뷰들에서는 신파라기보다는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라고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저를 포함해서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위로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면서 원통한 사연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개개인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요, 뉴스만 봐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는 영화를 통해 위로를 드리고 싶은 겁니다. 무언가 감정적으로 과했을 때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신파라고 지적하시는 거 같은데, 어떻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 있어 눈물이 없을 수 있나요? 저는 영화는 희노애락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대표>(2009)까지는 감정을 터칭하고 조련하는 데 능숙한 감독이었다면, <미스터 고>부터는 기술의 신기원을 여는 도전에 나서셨죠. 이런 변화가 오기까지, 4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국가대표> 찍을 때 두 개의 인생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감독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룬다는 것, 둘째로는 상업영화에서 비극적인 부분을 강조하지 않고 감독상을 받아보겠다는 목표가 있었죠. 그게 <국가대표>로 성취되었어요. 경제적으로 돈도 많이 벌었고요, 감독상도 많이 받았어요. 어느 날인가, 상을 다 꺼내서 침대에 펼쳐놨어요. 그걸 보고 엄청 웃었어요. 감정을 복기해보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이걸 받으려고?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면 오독의 여지도 있겠지만, 이걸 받으려고 살아왔나, 그 모든 걸 희생했나? 너무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든 겁니다.
그 희생이라는 것이, 작은 걸 보면서 만족한다거나, 친구가 도움을 요청할 때 도망치지 않고 진심으로 해줘야 했다거나, 불효자인데 효자인 척을 했다거나 그런 부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이 트로피들이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드니 인생이 ‘하찮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막 울었어요. 뒤에 있던 매니저가 같이 울더라고요. 제가 감동을 받은 줄 알았대요(웃음).
그 경험 이후에 목표가 바뀐 거군요.
그렇죠. 제 삶의 자아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더는 이런 걸 목표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앞으로는 좀 더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 누군가는 그게 자아실현의 마지막 단계라고 했죠. 제 인생의 좌표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대 최고의 수퍼바이저들을 모았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나 조지 로카스 감독 등 전 세계의 VFX 기술을 이끄는 감독들도 회사를 설립해서 영화계의 발전에 한 걸음씩 돕고 있는 것처럼, 수퍼바이저들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런 역할을 한다면 따르겠다고요. 벌었던 돈을 다 투자해서 만든 회사가 바로 덱스터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두도 못냈던 영화를 찍게 된 것이고, 비로소 <더 문>에서 우주로 갈 수 있었던 거죠.
잘 알겠습니다. 코미디, 고릴라 야구선수, 저승에서 우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감독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똑같은 걸 만드는 게 너무 재미없어요. 제가 보고 싶어하는 걸 관객들도 좋아할 거란 생각을 매일 합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다른 경험이잖아요. 드라마는 이미 120년 전에 끝난 플롯이에요. 그걸 좀 더 밀도 있게 갈 것인가, 거칠게 할 것인가 완성도 차이죠. 픽사의 창립자이자 멘토인 존 라세티가 말했죠. ‘그게 어디에서 벌어지는 일인가’라고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해내기가 어렵지만, 잘 만들기만 하면 관객이 지지해줄 거라는 확신도 있고요.
영화표 한 장이 만오천 원인 시대에요. 관객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의미에서 감독님은 극장용 감독이라 생각하시나요?
4K가 완벽하게 랜더링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늘 있습니다. 비교해 보자면, 과거에는 TV 드라마에 쓰이는 예산이나 준비, 완성도 때문이라도 영화에서 느끼는 만족감의 차이가 컸어요. 지금 <D.P. 시즌2>를 보면 관객 기대치나 분위기가 웬만한 영화를 능가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이면 자명해지죠. 극장에 와서 뭘 하겠느냐고요. 극장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하드웨어도 같이 발전해야 해요. 집중력 있게 관객과 소통하려면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어야 합니다. 시청각적 차별화가 그래서 중요해요. <더 문>을 보면서 관객이 우주에 있는 것처럼, 우주선을 탄 것처럼 느끼게 해줘야죠. 그런 체험형, 몰입형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OTT 진출 계획은 있나요?
OTT 제안도 계속 받고 있어요. <오징어게임>(감독 황동혁, 넷플릭스, 2021)이나 <D.P. 시즌 2>(감독 한준희, 넷플릭스, 2023)와 같이 잘 만든 작품도 있지만, OTT는 뭔가 휘발되는 느낌이 있어요. 제 스스로는 그런 느낌 때문에 좀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노력이 길게 들어가야 하는 영화적 속성에 더 매료됩니다. OTT를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큰 작품 두 개를 제안 받았고, 하나는 심각하게 고려 중입니다. 전체 시리즈를 맡을지, 총괄하면서 엔딩 파트에만 참여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 <더 문> 개봉하고 상황을 좀 보려고요.
차기작 공간은 어디가 될까요?
다시 저승이 될 수도 있고. 방금 말씀드린 대로 OTT일 수도 있겠죠. 결정된 건 없습니다. 다만 로맨틱 코디나 <스타 이즈 본>(감독 브래들리 쿠퍼, 2018) 같은 음악영화를 너무 하고 싶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보컬로 활동했거든요. 그때 베이스 치던 친구가 <국가대표> 음악을 맡기도 했죠. 만약 <스타 이즈 본> 같은 시나리오가 들어온다면, 짧지만 빠르게 찍고 싶어요.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보디가드>(감독 믹 잭슨, 1992)까지 있겠네요. 이런 음악 영화들은 영원히 소구될 거 같아요. 너무 잘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래도 물론 시장에서 제게 제안하는 작품들은 기술적인 부분이 부각되는 영화일 거 같네요(웃음).
한국영화사에서 기술적 성취를 이룬 감독이시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감독으로 관객들에게 남고 싶으세요?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한데요, 감정과 기술을 가장 잘 접목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 롤모델이기도 하거든요. <트루 라이즈>(1994) 같은 영화 보세요. 코미디도 너무 잘 하시잖아요. 한가지 감정이 지속되는 게 부담스러운데, 그런 면에서 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가장 존경합니다. 영광스럽게 대담도 한 번 했고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인생의 마스터피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만든 영화가 <더 문>입니다. 끝내주는, 극강의 체험적 영화로 만들었으니, 극장에서 <더 문>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