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와 공간이 빚어낸 영화적 앙상블
I’ll be back! <터미네이터>의 명대사이자,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 말은, 사실 톰 크루즈에게 더 적합하다. 이제 아놀드 슈워제네게는 잘 돌아오지 않지만, 톰 크루즈는 여름 시즌이면 어김없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탑건: 매버릭>(2022)의 매버릭으로 돌아왔고, 올해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2023)의 에단 헌트로 돌아왔다. 이 정의로운 미국인 히어로는 <미션 임파서블>, <탑건> 시리즈를 제외하고도 늘 선량하면서도, 인류애 가득한 캐릭터를 독차지해왔다. 이러한 톰 크루즈의 이력 중 가장 예외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여성 전문가 강사(라고 쓰고 사이비라 읽어도 무방한) 프랭크로 분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1999)나 청부살인업자 빈센트 역할을 한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2004)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콜래트럴>은 42년 연기 인생, 27년 히어로 인생을 통틀어 자신이 늘 대적했던 빌런 역할을 맡은, 아주 예외적인 톰 크루즈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톰 크루즈의 특별한 선택은 <콜래트럴>의 영화적 순간에 단초를 제공한다. 톰 크루즈의 빈센트와 상대역 제이미 폭스의 맥스, 두 캐릭터가 창조한 중년 사내들의 하룻밤 LA에서의 대결 혹은 밀당이 <콜래트럴>의 세계를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콜래트럴>의 영화적 순간은 두 캐릭터와 이들이 마주친 공간, 회색빛 대도시 LA가 만들어낸 앙상블에 의해 창조된다.
갱스터 영화의 대가 마이클 만의 액션 스릴러 <콜래트럴>은 택시 기사 맥스(제이미 폭스)가 우연히 킬러 빈센트(톰 크루즈)를 태우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그와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도덕적 가치를 수호한다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러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두 캐릭터, 맥스와 빈센트를 대결 구도 속에 밀어 넣는다. 영화의 첫 번째 영화적 순간은 빈센트와 맥스가 LA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소개되는 지점이다.
<사진 1>은 빈센트가 LA 공항에 도착한 장면이다. 하룻밤에 5명의 증인을 제거하는 임무를 띤 청부살인업자 빈센트는 회색빛 슈트, 선글라스, 그리고 수많은 인파에 가려져 정체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내로 소개되고 있다. 첫 번째 신에서 캐릭터의 소개와 더불어, 공간도 제시된다. 빈센트라는 이 미스터리한 사내는 거대한 회색빛 도시 LA, 그중에서도 쉼 없이 사람들의 드나듬이 이뤄지는 공항이라는 공간과 익명성이라는 공통점을 매개로 절묘하게 매치된다. 흥미로운 점은 <콜래트럴>이 LA 공항에서 시작해 LA 지하철로 끝을 맺는 데 반해, 마이클 만의 또 다른 대표작 <히트>(1995)는 LA 지하철에서 시작해 LA 공항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의 첫 번째 신은 캐릭터와 공간이라는 마이클 만 영화의 핵심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진 2>는 공항에서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여 익명의 사내(제이슨 스타뎀)가 빈센트에게 미션이 든 가방을 건네주는 장면이다. 이때 사내의 대사 “Enjoy LA!”는 <사진 1>과 더불어 <콜래트럴>의 공간적 좌표(LA)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사진 3>은 <사진 1>과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다. 공항 신이 끝나고, LA 교외 택시 회사가 소개되면서 빈센트의 담보(collateral)가 되는 택시 운전수 맥스(제이미 폭스)가 소개된다. 맥스가 택시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이상향 몰디브 해변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빈센트가 미스터리한 익명의 캐릭터라면, 맥스는 일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 즉 현실의 캐릭터이다.
빈센트가 맥스의 택시에 타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 4>는 둘의 우연한 만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사와 승객으로 만난 빈센트와 맥스는 LA에 대한 이들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이질성이 강화된다.
“올 때마다 얼른 떠나고 싶은 곳이요."
"너무 산만하고 단절돼 있죠."
"서로를 전혀 모르죠."
"기사를 보니까 지하철에서 승객 한 명이 죽었는데 6시간 동안 아무도 죽은 줄 몰랐데요.”
외지인 빈센트는 끝없이 내뱉는 대사를 통해 LA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반면 LA가 고향인 맥스는 이런 빈센트의 장광설에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흥미로운 점은 선량한 맥스보다는, 냉혈한 킬러 빈센트가 실은 익명의 대도시 LA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결국, 빈센트는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도시 LA를 떠나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진 5>는 맥스의 택시가 빈센트의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부감으로 보이는 LA의 전경이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흐르면서 펼쳐지는 LA 야경은 빈센트의 대사처럼 산만하고 단절된 고독과 소외의 공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폭풍 전야 직전의 평화와 고요의 순간을 제시한다.
<사진 6>은 하룻밤에 5명의 타깃, 법정 증인을 처치해야 하는 빈센트가 첫 번째 타깃을 제거한 다음. 빈센트가 맥스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다. 부동산 건을 처리한다고 잠시 택시에서 빈센트가 내린 사이, 맥스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리무진 카탈로그를 본다. 이때 갑자기 택시 위로 빈센트의 총을 맞은 사내의 주검이 떨어지고, 맥스가 빈센트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다. <사진 6>은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이자 캐릭터의 삶에 대한 철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장면에서 빈센트와 맥스는 극을 지배하는 프로타고니스트(주동인물)와 이를 막아서는 앤타고니스트(반동인물)로 극적 성격화가 이루어진다. 대립각을 이룬 이들의 갈등은 점점 증폭되고, 내러티브를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사진 7>, <사진 8>은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다. 경찰에 쫓겨 LA 시내를 정신없이 질주하던 두 사내가 차를 잠시 멈춰 세우고 뭔가 골똘히 바라보는 장면이다. 미국 록 그룹 오디오 슬레이브의 ‘Shadow on the Sun’이 흐르면서, 차도를 유유히 건너는 코요테의 모습이 보인다. LA 도심에 출연한 코요테의 모습은 TPO가 맞지 않는 기이한 장면이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이 맞지 않는 코요테의 존재는 맥스와 빈센트의 자아가 투영된 ‘거울 쇼트’이다. 각각의 상황에 의해 낭떠러지에 내몰린 중년의 사내가 잘못된 시간에, 잘못한 장소에서 만나, 잘못된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사진 9>, <사진 10>은 두 캐릭터의 마지막 대결이자 갈등이 해소되는 지점이다. 둘 중 하나가 제거되어야만 끝나는 게임에서 맥스가 빈센트에게 승리는 거두는 LA 지하철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엔딩 신에서는 스릴러 영화의 컨벤션이라고 할 수 있는 오버 더 숄더 쇼트(Over The Shoulder Shot)가 지배한다. 이 쇼트는 둘의 대결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어쩌면 둘은 똑같이 고독한 남자라는 사실을 긴장감 넘치게 포착하고 있다. 또한 <사진 9>는 영화 초반부의 <사진 6>과 대구를 이루며, ‘총’이라는 헤게모니가 빈센트에게서 맥스로 이양된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법칙인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엔딩에서 빈센트는 맥스의 총에 맞아 죽기 직전 “I do this for living!(살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대사는 맥스가 꿈을 묻는 빈센트의 질문에 리무진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택시를 몬다고 말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콜래트럴>의 가장 영화적인 순간인 이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함과 동시에, 영화를 단순한 액션 스릴러가 아닌, 회색빛 자본주의 도시에서 ‘벼랑 끝 꿈’을 부여잡은 두 남자의 처절한 드라마로 기억하게 만든다. 그들은 살기 위해 택시를 운전하고, 누군가를 청부 살인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담보 삼아 대결을 펼친 것이다. <콜래트럴>은 액션을 빙자한 자본주의의 슬픈 비극이다.
영화감독 최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