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8회째를 맞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오는 8월 4일부터 6일까지 개최된다. 스트록스, 엘레가든, 키린지 등 해외 밴드들과 더불어 국내의 굵직굵직한 뮤지션들이 3일간 무대를 채울 예정이다. 올해의 헤드라이너라 할 만한 스트록스와 더불어 펜타포트에 참여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용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The Strokes

"When It Started"

<스파이더맨>

Spider-Man, 2002

사실 <스파이더맨>을 봤어도 스트록스 음악이 나온 걸 모르는 이들은 아주 많다. 피터(토비 맥과이어)가 거미에게 물린 후 몸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고 학교 가는 길에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MJ(커스틴 던스트)를 보고 혼잣말을 하는 신, MJ 옆에 선 친구의 차에서 스트록스의 'When It Started'가 작은 음량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차에서도 음악을 크게 틀지도 않았고 피터가 웅얼거리기 때문에 그나마도 잘 안 들린다. 2001년 7월 30일 호주에서 처음 발매된 스트록스의 데뷔 앨범 <Is This It>은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순차적으로 나왔다. 새하얀 누드에 가죽장갑을 낀 커버가 선정이라며 다른 이미지로 대체된 미국 시장에선 9월 25일 출시되는 일정이었다가 9.11 테러가 터지고 9번 트랙 'New York City Cops'가 빠지고 새로 만든 'When It Started'로 대체됐다. 피터와 MJ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설정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신통한 운명이다.


The Strokes

"What Ever Happened"

<마리 앙투아네트>

Marie-Antoinette, 2006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듀오 에어를 <버진 수어사이드>(1999),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기타리스트 케빈 쉴즈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 음악감독으로 기용할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명곡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감각을 뽐내며 특유의 음울하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한껏 돋보이게 했다. 피아니스트 더스틴 오할로란이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든 세 번째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음악 선곡에 더 무게가 실렸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영화화한 만큼 실제 베르사유 궁전에서 촬영해 18세기 프랑스를 구현한 것이 무색(?)하게도 뉴 오더, 갱 오브 포, 큐어, 수지 앤 더 밴시즈, 에이펙스 트윈, 스퀘어푸셔 등의 트랙들을 턱턱 붙여놓는 과감한 선곡이 인상적이다. 루이 16세(제이슨 슈왈츠먼)와의 섹스가 실패하는 걸 집요하게 늘어놓던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커스틴 던스트)가 페르젠 백작(제이미 도넌)과 사랑에 빠지고 침실과 풀밭에서도 몸을 섞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페르젠이 궁전을 떠난 후, 마리가 홀로 그를 그리워할 때 스트록스의 'What Ever Happened'가 흐른다. 나른한 이미지와 달리 스트록스의 음악은 씩씩하기만 해서, 마리 속에 요동치는 사랑이 얼마나 거센지 더 잘 느껴진다.


The Strokes

"Someday"

<클릭>

Click, 2006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해 개봉한 애덤 샌들러 주연의 코미디 <클릭>. 프랭크 코라치 감독은 샌들러와 작업한 전작 <웨딩 싱어>(1998)에 이어 <클릭>에서도 여러 명곡들을 활용해 잔재미를 보탰고, 스트록스의 'Someday'도 그중 하나다. 주인공 프랭크(애덤 샌들러)는 수상한 남자에게 구입한 만능 리모콘을 마음껏 써대고 결국 리모콘이 오작동 하면서 갖가지 트러블이 생기게 된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등 별별 상황이 자동으로 빨리감기가 되는 바람에 프랭크는 샤워도 못한 채 출근하게 되고, 가운만 걸친 채 자전거를 타고 브루클린 대교를 건너 회사에 출근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스트록스의 'Someday'와 함께 펼쳐진다. 스트록스의 데뷔 앨범 <Is This It>의 마지막 싱글로 발매된 바 있는 'Someday'는 <피치포크>가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노래 리스트에서 53위에 랭크되는 등 스트록스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손꼽힌다.


Ride

"Drive Blind"

<미스테리어스 스킨>

Mysterious Skin, 2004

페스티벌 개막을 2주 앞둔 시점, 2일차인 8월 5일 무대에 설 예정이었던 밴드 라이드가 기타리스트 앤디 벨의 손목 부상으로 불참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슈게이징 장르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손꼽히는 라이드의 첫 앨범 <Nowhere> 전곡을 연주하는 셋리스트였기에 많은 팬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비록 라이드의 무대는 못 보게 됐지만, 그들의 음악을 사용한 영화는 한편 소개해보자. 1990년대 뉴 퀴어 시네마의 기수였던 그렉 아라키 감독은 <완전히 엿먹은>(1993)에 'Vapor Trail', <둠 제너레이션>(1995)에 'Leave Them All Behind'를 사용한 데 이어, 조셉 고든 레빗(이 <500일의 썸머>보다 5년 전에 촬영한)의 성장영화 <미스테리어스 스킨>에 라이드의 'Drive Blind'를 썼다. 19살 생일을 맞은 에릭이 다락방에서 브라이언에게 회색 카디건을 선물받고, 그걸 꿈꾸던 닉(조셉 고든 레빗)이 깨어나는 대목. 닉이 이어폰을 벗자 소리도 확 줄어드는 디테일까지 살렸다. 'Drive Blind'는 라이드가 1집 <Nowhere>를 발표하기 9개월 전에 내놓은 첫 EP에 수록됐다.


자우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그때 그 사람들>

2005

올해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자우림이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 참여하는 김윤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 김윤아는 무려 배우로 참여한 바 있다. 심수봉을 모티브로 한, 만찬장에 초대된 가수 역할을 맡아 일본 엔카 2곡을 멋들어지게 부른다. 한편, <그때 그 사람들>은 김윤아의 목소리로 열고 닫는다. 부마항쟁 자료화면과 함께 영화로 들어가는 김윤아의 카랑카랑한 내레이션이 담긴 프롤로그에 이어, 박정희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엔딩 크레딧엔 자우림의 노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흐른다. 본래 버전은 그렇지만 영화 개봉 전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과 딸 박근혜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오프닝과 클로징의 자료화면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타협해 (하지만 단순 새까만 화면이 아닌 그 사유를 명시했다) 개봉될 수 있었다. 엔딩 크레딧 속 노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그때 그 사람들> 개봉 당시 자우림의 최근 앨범이었던 5집 <All You Need Is Love>에 수록된 트랙으로, 밴드의 베이시스트 김진만이 작곡하고 김윤아가 가사를 썼다.


체리필터

"플란다스의 개 #2"

<플란다스의 개>

2000

올해로 결성 26주년을 맞은 밴드 체리필터는 봉준호 감독과 연이 있다. 2000년 개봉 당시 서울 관객 10만 명만을 동원한 비운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의 엔딩 크레딧에 체리필터의 '플란다스의 개 #2'가 쓰였다. 체리필터와 봉준호라니, 도무지 접점이 잡히지 않지만 크레딧을 뜯어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플란다스의 개> 음악감독 조성우다.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든 조성우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역시 체리필터가 송대관의 '해뜰날'을 리메이크한 노래가 쓰인 바 있다. 조성우가 지휘한 <플란다스의 개>의 음악은 이정식 이주한 등 당시 한국 재즈를 대표하던 연주자가 참여한 가벼운 재즈 넘버들이 주를 이뤘고, 재즈가 수식하는 현남(배두나)이 친구와 등산하는 에필로그가 끝나면 체리필터의 '플란다스의 개 #2'가 비집고 나와 직전까지의 분위기를 뒤집는다.


장기하

<밀수>

2023

지금 절찬 상영 중인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의 음악감독은 장기하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에 함중아의 '풍문으로 들었소' 리메이크로 참여했지만, 음악감독을 맡은 이번이 처음이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느낌을 가장 잘 소화하는 뮤지션이라고 판단한 장기하에게 직접 연락해 음악감독을 제안했고, 장기하가 흔쾌히 수락하면서 시작된 협업이다.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의 3분이 넘는 오프닝 연주까지 통으로 쓸 만큼 70년대 한국 대중가요를 곳곳에 배치해 영화 분위기를 살리겠다는 야심이 장기하의 음악까지 더 해져 제대로 된 구색을 갖추게 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