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최고의 비주얼
김용화 감독은 ‘덱스터 스튜디오’라는 CG업체를 운영한다. 그 첫번째 결과물은 <미스터 고>(2013)였다. 흥행결과는 안 좋았지만 비주얼적 측면 등 도전이라 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그 노하우를 이용한 다음 작품은 <신과함께> 시리즈(2017, 2018) 였다. 저승사자들이 헤매는 지옥의 모습을 시각화한 결실은 쌍천만이라는 결과로 보답받았다. 그리고 그 힘을 업어 달나라 SF이야기인 <더 문>(2023)이 개봉한다.
영화의 비주얼은 홍보의 가장 큰 포인트다. 뚜껑을 열어보니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실제로 덱스터의 CG와 색보정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혁명에도 불구하고 개봉 4일차 기준 29만이라는, 비교적 섭섭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혹평을 남긴 관객들은 입을 모아 영화가 지닌 신파의 요소를 지적한다.
실은 신파는 김용화 감독의 데뷔작 <오! 브라더스>(2003)부터, 그의 영화와 떨어질 수 없는 일종의 질료와도 같다. 그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대중들이 어떤 컨텐츠를 원하는지 꽤나 잘 읽어내는 연출자로서 신파를 활용해왔다. <더 문>에서는 캐릭터 빌드업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체 신파가 뭘까? 단지 슬픈 장면을 말하는 걸까?
신파의 물줄기
일본의 초대 내각 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헌법과 제국주의의 발아를 이끈 무리중의 하나였다. 그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일본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당시 일본은 문호를 개방한 이후에 서양의 문화를 엄청난 속도로 받아들인다. 이는 당연히 일본의 연극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메이지 시대 이전의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에서 시작하여, 청나라와 전쟁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군대의 이야기를 선보였고, 가부키 극에 이어 비슷한 느낌의 멜로 드라마 연극까지 그 시류가 다양했으며 이 또한 변동의 폭이 거대했다.
이것은 새로운 물결, 즉 ‘신파’(新波)로 불렸다. 가부키가 구파(舊波)였다면 이후의 새로운 것들은 신파인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경술국치 이후의 조선에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소설에서 시작한 조선 신파의 흐름은 연극으로 흘러갔다.
그 내용들은 뻔했다. 격정 멜로로 시작하는 주인공은 갖가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다가 급작스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권성징악을 전달하다가 ‘짠! 관객 여러분 이것이 메세지 입니다!’ 하는 통속의 끝을 보여줬다. 우울한 시대에 관객을 들었다놨다 하다가 암청색의 엔딩을 보여주는 것은 당시의 상업제작자에겐 맞지 않는 구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말엽으로 접어들며 친일 연극이 늘어났고, 이는 해방을 맞이하며 멸종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이른바 '쪼'는 살아서 어디론가 향했다. 영화판이었다.
당시에 개봉하는 영화는 연간 250여편에 달했다. 텔레비젼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 거의 유일한 놀이를 담당했던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마음껏 뱉고 왔다. 즉, 울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먹을 것이 모자라 정말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 대중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올드 웨이브가 된 뉴 웨이브
한국 영화는 90년대에 사전 검열이 위헌이 되며 또 한번의 도약기를 만난다. 흔히들 말하는 쌍팔년도(단기 4288년=서기 1955년이다) 감성의 구닥다리 신파는 영화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신파는 모두 사라졌을까?
1761만을 기록한 <명량>(2014), 1441만을 기록한 <신과함께-죄와 벌>(2017), 1426만 관객의 <국제시장(2014), 1132만을 동원한 <해운대>(2009), 그리고 1281만명의 <7번방의 선물>(2013) 등, 최상위 랭크에서 신파를 보지 않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인다.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과장된 연기, 남발하는 음악, 인위적인 설정 등을 통하여 특정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다. 거기엔 웃음도 있지만, 한국 99%의 경우는 눈물이다.
이런 식으로 관객이 근거없는 무장해제를 당하며 눈물이 뽑히면 일단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힘겹던 시절엔 이것이 일종의 정화 의식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쿨하지 못 한 사람이 보이는 리액션, 혹은 억지로 멱살이 잡힌 채 눈물의 감정으로 끌려가는 일종의 폭압쯤으로 취급된다. 이런 면을 보았을 때 신파를 한마디로 규정해 보자면, '감정에 근거가 없는 모든 것의 총칭'쯤 되지 않을까한다.
신파의 힘
내가 기억하는 김용화 감독 최고의 신파는 <오! 브라더스>에 있었다. 극중에서 이제 곧 운명하는 아빠를 10여 년 만에 만나는 청각장애인 딸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는 병이 악화되어 눈이 안 보인지 5년 여가 됐다. 그런데 죽어가는 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처음 뱉는 말은 "예뻐졌네"였다. 눈물의 수도꼭지를 틀지않을 재간이 없었다.
<더 문>의 후반 신파는 극심했다. 인물을 구출하는데 감정에 호소하고, 달 탐사 프로젝트의 과거 지도자들에 얽힌 사연은 정도가 지나쳤다. 영화의 초반에서는 되려 인물을 빌드업하는 장치로 이용되기도 한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사고를 겪는 선우(도경수)는 동료인 상원(김래원)과 윤종(이이경)을 눈앞에서 잃는다. 그런데 그들이 남긴 유품을 보며 엉엉 우는 장면에서 거부감이 올라왔다. 관객은 울 준비가 안 됐는데 인물 혼자서 감정이 앞서나간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필요한 것이었음을 곧 알게된다. 선우는 기체 결함으로 인해 지구측 컨트롤 센터의 재국(설경구)이 명령하는 것에 따라 달착륙을 포기해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는데, 재국의 명을 어기고 달 표면에 착륙하는 것을 선택한다. 재국과의 관계가 어떤 이유로 좋지 않아 명령을 거부하는 것도 있지만, 죽은 동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주인공이라는 영웅이 선택하는 가시밭길인 것이다. 좋든 싫든 이것이 김용화 감독이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식인 것이며 이 역사는 나름의 유구함을 가진다.
정말 필요한 재료
<더 문>은 어렵지 않게 <그래비티>(2013) 와 <마션>(2015)이라는 레퍼런스를 떠올릴 수 있다. 긍정적 의미의 차별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두 레퍼런스 영화는 외적 논리가 아니라 (혹은 감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으로 고립감과 고독감을 가장 큰 재료로 삼는다. <더 문>은 그런 핵심적인 가치를 찾는데 성공한 영화는 아니다. 그 방향으로 애쓰려는 노력도 찾아보기 힘들다.
신파라는 형상을 가장 잘 빚는 연출자에게 그러한 핵심적 철학이 있다면, 아마 다음 작품은 더욱 빛나지 않을까?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