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힙합은 생일이 있다. 올해 2023년 8월 11일이 바로 힙합 탄생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73년 8월 11일 자메이카 출신의 DJ 쿨 허크가 뉴욕 브롱크스에서 한 파티를 열었는데, 당시 현대 힙합 샘플링 기법의 전신을 만들며 그 시초가 된 것. 이후 힙합은 단숨에 주류 음악으로 올라서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그래미어워드가 힙합에 첫 번째 트로피를 안겨준 것은 그로부터 16년 후인 1989년이었다. 이후 힙합의 대중적 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으며, 힙합 50주년이 되는 올해 2월에는 ‘닥터 드레 글로벌 임팩트상’이 신설되기도 했다. 에미넴과 스눕 독을 발굴한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라 할 수 있는 닥터 드레의 이름을 딴 이 상은 흑인 음악 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뮤지션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8월 11일에는 힙합의 탄생지인 뉴욕시 5개 자치구 전역에서 힙합 탄생 50주년을 맞아 양키 스타디움 등에서 대규모 힙합 문화예술 축제가 펼쳐진다. 스눕 독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의 공연과 함께 힙합의 문화와 역사 등을 몸소 경험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 이벤트 및 문화 전시회 등의 행사가 뉴욕시 전역에서 개최되는 것. 한편, 한국에서도 50주년을 맞아 8월 11일부터 24일까지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지하 2층 하이퍼그라운드에서 ‘힙합 50주년 기념 팝업’을 진행한다. 이날을 맞아 힙합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김봉현 음악평론가가 힙합 탄생 50주년 기념으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힙합 영화 베스트 10’을 보내왔다. 먼저 첫 번째 글은 6위부터 10위까지 5편이다. 아래 작품들 중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국내 극장 개봉했으며, 그외 다른 작품들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0위. <스트레치 앤 바비토>
(Stretch & Bobbito: Radio that Changed Lives, 2015)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 산하 라디오 방송 WKCR에서 ‘The Stretch Armstrong & Bobbito Garcia’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괴짜 베프 바비토 가르시아(Bobbito Garcia)와 디제이 스트레치 암스트롱(DJ Stretch Armstrong)은 힙합에 대한 애정을 공통분모로 삼아 우정을 키웠다. 이 작품은 이 둘을 통해 우탱클랜(Wu-Tang Clan), 노토리어스비아이지(The Notorious B.I.G.), 제이지(Jay-Z) 등의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둘이 라디오를 1998년에 중단하게 된 이유, 더불어 힙합의 팬으로 시작해 업계 종사자가 되며 겪는 고충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9위. <아트 오브 랩>
(Something from Nothing: The Art of Rap, 2012)
힙합 뮤지션 47인이 참여한 이 다큐멘터리는 랩의 라임, 기술, 플로우, 메시지 등에 대한 다양한 래퍼들의 생각을 담았다. 갱스터 랩의 선구자로 추앙 받는 아이스티(Ice-T)가 제작자로서, 또 작품에 직접 출연해 극을 이끌어가는 호스트로서 활약한다. 랩이 왜 시시껄렁한 지껄임이 아니라 존중 받아야할 언어 예술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 에미넴, 닥터 드레, 카니예 웨스트, 스눕 독, 런 DMC, 아이스 큐브, 더그 E. 프레쉬, 빅 대디 케인, 큐팁 등이 참여했다.
8위.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Straight Outta Compton, 2015)
힙합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그룹 N.W.A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닥터 드레(Dr. Dre)와 아이스 큐브(Ice Cube) 등 실제 멤버들이 영화 제작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이들과 20년 넘게 친분을 유지하며 이들을 지켜봐온 F. 게리 그레이가 감독을 맡았다. 그룹 멤버 각자의 배경으로부터 시작해 그들이 모이게 되는 과정, 그룹 내에서의 역할 분담, 성공의 요인, 명곡의 탄생 동기, 갈등과 위기, 끝내 무산된 재결합까지 사실에 근거해 밀도 높게 담아냈다. N.W.A.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비판 역시 간결하지만 정수를 파악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힙합영화인 동시에 힙합을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제목은 사실 N.W.A의 데뷔작이자 갱스터랩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동명의 앨범에서 따왔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위험한 빈민가의 삶을 늘어놓고, 마약과 쾌락을 찬양하며, 백인 경찰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내민다. 이를 가리켜 누군가는 윤리적 비난을 퍼부었지만 사실 이 앨범은 ‘리얼리티 랩’(Reality Rap)이기도 했다. 세상은 위험한 빈민가에 사는 흑인의 삶에 관심이 없으며, 우리야말로 ‘세상이 외면하는 게토 흑인의 실상을 고발하는 저널리스트’라고 했던 것. 그래서일까,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유산이 조명되고 있다.
7위. <프리스타일 - 라임의 예술>
(Freestyle: The Art of Rhyme, 2000)
케빈 피츠제럴드의 2000년도 작품이다. 힙합문화의 한 부분이자 랩의 발화방식 중 하나인 ‘프리스타일 랩’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프리스타일랩의 구술적 전통을 흑인사회의 관습에서 찾는 한편 ‘재즈 솔로’와 프리스타일 랩의 유사성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수퍼내추럴(Supernatural)을 비롯해 당대의 대표적인 프리스타일 래퍼들이 등장해 자신의 철학을 들려주고 있으며, 생생한 길거리 프리스타일랩 현장이 다수 담겨있기도 하다. 프리스타일랩이란 그냥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순발력’과 ‘창의력’을 동반한 고도의 예술적 행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모스 데프(Mos Def)와 탈립 콸리(Talib Kweli)는 블랙 스타(Black Star)라는 팀을 결성해 『Mos Def & Talib Kweli Are Black Star』-라는 앨범을 1998년에 발표했다. 풍부한 언어를 통한 각종 이미지의 생생한 구현, 사회적 문제와 힙합문화에 대한 진지하고도 날카로운 비판, 그리고 주제의식을 일정한 구성과 서사를 이용해 드러내는 작가주의적 면모가 돋보인다. 물론 출중한 랩 실력은 기본이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새로운 물결을 선도했던 작품이며, 힙합 명반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앨범이다.
6위. <스타일 워>(Style Wars, 1983)
토니 실버 감독의 <스타일 워>는 1983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힙합이 처음 생겨난 직후 문화적으로 여러 분야가 구축되고 하나의 ‘현상’을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피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그래피티가 디제잉이나 래핑, 비보잉과 어떠한 연결고리를 지니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당대 내로라하는 그래피티아티스트가 총출동했고 당시의 유행도 간접경험해볼 수 있다. 그래피티에 대한 존중을 담은, 힙합 초창기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스타일 워>의 사운드트랙에는 슈가힐 갱(The Sugarhill Gang), 그랜드마스터 플래쉬 앤드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 등 80년대 초반 유명했던 래퍼들이 참여했다. 특히 고인이 된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힙합뮤지션 람엘지(Rammellzee)의 이름 역시 볼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의 그래피티에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아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힙합뿐 아니라 80년대 초반 거리에서 유행했던 음악을 다수 접할 수 있는 앨범이다.
김봉현 음악평론가,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