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곧 영화와 동의어이던 시절부터, 영화의 화질을 높이려는 열망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과거 영화 현장에서 가능한 선명하고 깨끗한 화면을 얻기 위해 쓰던 방법은 기존의 것보다 면적이 큰 필름 포맷을 도입하고 실험하는 것이었다. 필름 표면에 발라진 감광제가 빛에 반응해 은입자를 형성하는 화학 작용으로 이미지를 기록하는 촬영의 원리상, 필름으로 제작된 영화에는 곡물 알갱이와 같은 그레인(Grain)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가능한 고화질의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표준 35mm 필름보다 판형, 즉 더 큰 규격의 영화용 필름을 같은 사이즈의 스크린에 투사해서 그레인의 입자 크기를 더욱 조밀하게 줄여버리는 원리로 깔끔한 화면을 얻고자 했다. 디지털카메라 촬영이 상용화된 후, 촬영감독들이 과거 필름의 그레인 룩을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그레인 오버레이를 심심찮게 적용하는 현재의 모습은 가급적 그레인을 줄이고자 별의별 애를 썼던 영화 역사의 시행착오를 떠올려보면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스타 비전의 등장
그레인의 문제는 필름 종류에 따른 감광제 감도의 차이 같은 다른 기술적 요인도 작용하지만, 촬영에 쓰는 필름의 면적이 클수록 상영 때 체감되는 해상력이 개선된다는 걸 알게 된 이들은 다양한 필름 포맷을 발명해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세실 B. 드밀의 <십계>(1956)와 로렌스 올리비에의 <리차드 3세>(1955) 등에 쓰인 비스타비전의 경우가 그러한데, 35mm 필름의 두 배 면적인 넓은 사이즈의 이 특수 제작 필름이 당대의 다른 필름 영화보다 월등한 결과물을 보여주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촬영은 비스타비전으로 하더라도 실제 영화관 상영은 일반 35mm 프린트로 옮겨서 이뤄진 탓에 관객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화질 향상을 크게 체감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고, 시네마스코프처럼 촬영과 영사에 별도의 아나몰픽 렌즈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 가 묻히고 말았다.
대세에서 밀려난 이후에도 비스타비전의 명맥이 아주 끊긴 건 아니었다. 가끔씩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1977)을 비롯한 영화들의 아날로그 특수효과 촬영에 동원되었는데, 이는 특수효과 전문가 더글러스 트럼불이 <미지와의 조우>(1977) 특수효과 촬영분 만큼은 65mm 필름을 동원한 것과 마찬가지 원리로, 합성 과정이 더해질수록 영상이 흐릿해지는 광학효과의 한계를 표준 35mm 대비 월등한 해상력으로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포맷의 특수성 때문에 복원전문가 로버트 A. 해리스는 <현기증> 복원 때는 원본 필름의 이미지를 70mm 프린트로 다시 현상해 비스타비전의 해상력을 가능한 원래대로 보전하려 했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경우는 4K를 넘어선 8K, <십계>는 6K의 디지털 스캐닝 데이터를 복원의 근간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이 비스타비전용 특수제작 필름의 독특했던 점은 운용방식에 있었다. 카메라 기어의 톱니바퀴에 물려서 필름을 회전시키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가장자리에 낸 구멍을 퍼포레이션(perforation)이라 부른다. 표준 35mm가 4 퍼포레이션이라면 비스타비전은 8 퍼포레이션에 해당하는데, 35mm 필름을 직각으로 세워서 프레임 두 장을 겹친 큰 사이즈의 필름을 사용하기 위해선 촬영이든 상영이든, 수직으로 세워서 돌리는 일반적인 필름 카메라와는 달리 필름을 수평으로 눕혀서 돌릴 필요가 있었다.
현재는 영화 역사의 오래된 유물로 잊힌지 오래인 이 포맷의 운용방식을 굳이 애써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 <다크 나이트>(2008) 이래 크리스토퍼 놀란이 애용해 마지않으며, 더 나아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한 IMAX 촬영의 기술적 의도와 원리는 필름 판형만 바뀌었을 뿐, 바로 비스타비전의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장되긴 했지만 촬영 기술 발전의 계보에서 비스타비전은 IMAX 필름 촬영의 직접적인 ‘기술적 조상’ 격에 해당되는 셈이다. 실제로 <다크 나이트> 촬영 당시 많은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던 은행가 트럭 전복신의 경우, 촬영팀은 가능한 많은 촬영 소스를 얻기 위해 7대의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그중 포함된 보조 카메라 2대가 바로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구형 비스타비전 카메라였다.
70mm 포맷에서 IMAX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나 <라이언의 딸>(1970), <클레오파트라>(1963)와 같은 고전기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대형 서사극, 또는 <마이 페어 레이디>(1964)와 <사운드 오브 뮤직>(1965) 등의 뮤지컬 영화에 주로 쓰이던 65mm 필름(흔히 70mm라 부르는 이유는 65mm(2.6인치) 원본 네거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결과물을 상영 때 사운드트랙을 추가, 다시 70mm(2.8인치) 프린트로 현상해 상영하기 때문)은 일반 35mm 필름의 3.5배 크기(슈퍼 파나비전 70 기준) 2.20:1 화면비를 갖는 필름 포맷으로 영화사 초창기 35mm 필름의 표준 화면비 1.33:1(과거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스탠다드 화면비 4:3과 동일)보다 세 배 이상 광활한 와이드 스크린 영상을 얻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프랑스 영화 고전기의 거장 아벨 강스가 대서사극 <나폴레옹>(1927)에서 전투 장면의 광활한 스케일을 살리기 위해 세 대의 카메라를 바짝 붙여서 동시 촬영한 필름을 극장에선 영사기 세 대로 틀어 오늘날의 시네마스코프 비율에 가까운 영상을 얻었던 것을 70mm 포맷은 단 한 대의 카메라로 가능하게 한 것이다. 훗날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셉션>(2010)의 일부 장면, <덩케르크>(2017)와 <테넷>(2020)에서 IMAX 촬영을 제외한 모든 분량을 65mm 필름으로 촬영할 결심을 한 건, 이러한 할리우드 고전기 70mm 대작들로부터 받은 직관적인 감동, 그리고 판형이 큰 필름이 가지는 해상력의 효과와 특성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그는 인생영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와 <블레이드 러너>(1982)를 꼽았는데, 전자는 작품 전체에, 후자는 특수효과 촬영분에 65mm를 적용했다.)
표준 65mm 필름과 IMAX용 65mm 필름의 관계는 대략 앞서 설명했던 표준 35mm 필름과 비스타비전 특수필름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 IMAX용 ‘필름’ 카메라와 영사기(주의할 점은 오늘날 주종을 이루는 IMAX 카메라와 영사기는 거의 대부분 DCP를 트는 ‘디지털’이라는 점이다)에 걸리는 IMAX용 65mm 필름의 판형은 단순한 물리적 사이즈로만 쳐도 표준 35mm 필름 대비 8.3배, 표준 65mm 필름의 3.4배에 달한다. 비스타비전이 35mm 두 장을 세워서 합친 크기라면 IMAX용 65mm는 안 그래도 판형이 거대한 2.20:1 비율의 65mm 필름 세 장을 세워서 이어붙인 것으로 수직의 스케일이 강조되는 1.43:1 비율의 영상을 만들어낸다.
표준 65mm의 좌우 측면에 뚫린 구멍이 5 퍼포레이션이라면, IMAX용 65mm는 3배인 15 퍼포레이션으로 워낙 필름 판형이 큰 탓에 촬영과 영사 모두 수평으로 눕혀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필름 IMAX란 ‘비스타비전의 운용방식’과 ‘65mm 필름의 스케일’을 결합한 셈으로, 현존하는 어느 초고해상도 디지털카메라를 가져와도 아득히 초월하는 현존 최고의 초고화질 영상 포맷을 구현한 것이다.
IMAX용 65mm의 해상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것인지는 디지털 기준으로 수치화해보면 대강 어림짐작해볼 수 있다. 35mm에 담긴 영상 디테일을 남김없이 뽑아내는데 최대 4~6K 스캐닝(이건 순전한 디테일만 이야기한 것으로 렌즈의 성능과 촬영 환경의 변수 등등을 고려하면 필름에 발라진 실질 해상력은 35mm 기준 보통 2~3K 선으로 제약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 미국영화촬영감독협회의 분석)이 필요하다면, 65mm만해도 산술적인 계산상 12K는 되어야 필름 본래의 해상력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IMAX용 65mm는 장장 18K로 HD의 9배, 4K의 4.5배에 해당한다. 현용 최고의 디지털 영화용 카메라이자 <기생충>(2019)에 쓰인 아리 알렉사 65(6.5K)나 <탑건: 매버릭>(2022)에 동원된 소니 시네알타 베니스(6~8K)와 비교해보면, 단순한 숫자상으로도 이 격차는 실로 아득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 70mm 영화마저도 과도한 비용 발생의 문제로 인해 영화계에서 사양길로 접어든 마당에 IMAX 필름을 마구잡이로 쓰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IMAX 필름은 영화가 아닌 극소수의 다큐멘터리나 공연, 기록 영상물, 또는 NASA의 우주항공촬영의 포맷으로 쓰이는 것이 사용처의 전부였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에서 공개된 최초의 IMAX 작품 <타이거 차일드>(1970), 그랜드캐년의 풍광을 담은 <그랜드캐년>(1984), 그리고 논 버벌(non-verbal) 다큐멘터리 <코야니스카시>(1983)에서 촬영감독을 맡은 뒤 독립한 론 프릭크의 <크로노스>(1985), 롤링 스톤즈의 1991년 공연실황을 담은 <스톤즈 앳 더 맥스>(이 작품 이후로 롤링 스톤즈 관련 영상은 IMAX 포맷으로 촬영을 고수하게 된다) 등이 대표적인 IMAX 필름 다큐멘터리의 수작으로 꼽힌다.
엄연한 필름임에도 불구하고 IMAX 포맷을 본격적으로 영화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좀처럼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대개 IMAX란 3~40분 분량의 신기한 자연경관이나 우주를 담은 영상을 풀어놓는 시청각적 유희의 어트랙션으로만 여겨졌지, 드라마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편견에 종지부를 찍고 촬영계의 트렌드를 뒤바꾼 인물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이었다. <배트맨 비긴즈>(2005)를 마친 직후의 그는 이제까지 극영화에 쓰이지 않던 IMAX에서 무한한 잠재성을 엿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미학적 관심은 그가 곧 슈퍼 히어로 영화의 역사를 바꿀 ‘다음 영화’를 작업함에 있어 겪게 될 무시무시한 난항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드라마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의 IMAX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촬영계의 트렌드를 뒤바꾼 인물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2회에 계속)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