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당, 한국혁명당, 조선혁명당, 의열단, 고려공산당… 서른 개가 넘는 단체들이 파벌 싸움을 하는데 거룩한 독립운동이냐? 돈 들어오는 구멍이 다 다르니까 찢어지지.”
방금 김구(김홍파)가 보낸 경무국 대원 명우(허지원)와 세광(이환)을 제압하는데 성공하고 아편굴에 숨어들어간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은, 아편에 취한 채 독립운동의 이상과 현실에 대해 토로한다. 물론 이건 자신이 일제의 밀정이라는 사실을 들킨 것이 수치스러웠던 석진의 자기변명이다. 독립운동의 명분은 거창하지만 현실은 각기 다른 정파들이 갈가리 찢어진 채로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자신은 그 지리멸렬함에 질려 일제의 밀정이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
독립운동의 분열상이 석진의 변절을 변명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분열상에 대해서만큼은 석진이 크게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좌파들이 합류해 좌우연합정부를 설립하는데 성공한 건 1942년의 일이었다. 1920년대 초부터 시도되었던 좌우합작이 성과를 내는데 2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암살〉의 시대적 배경인 1933년쯤에는 이미 김구와 김원봉(조승우)이 좌우합작을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고질적인 정파 싸움을 다 극복하진 못한 때였다. 쑨원의 아들 쑨커가 그랬다던가? “너희(한국) 사람들은 왜 뭉치지 못하느냐.”라고.
하나 그건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그토록 뜻이 다른 사람들조차 ‘독립’을 원했던 것만큼은 매한가지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원봉의 의열단 같은 무정부주의자들도, 안옥윤(전지현)이 몸 담고 있었던 한국독립군도, 석진이 언급한 고려공산당 등의 공산주의자들도,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처럼 독립운동 같은 것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한량도, 심지어는 1920년대 초반까지 존재했던 복벽(왕정복고)주의자들까지, 서로 불신하고 반목하면서도 어쨌거나 조국의 독립이라는 그림 하나만큼은 뜻을 같이 했다는 뜻이다. 비록 남북분단으로 인해 광복 후 통합정부를 수립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통쾌한 액션과 유쾌한 캐릭터 조성으로 천만이 넘는 관객을 모은 활극임에도, 〈암살〉의 기저에 깔린 정서는 우울이다. 가장 가깝고 미더워야 하는 존재들이 선역을 배신하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애틋하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천륜은 지켜야 할 사이인 생부 강인국(이경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옥윤을 죽이려 들고, 함께 작전을 짜고 생활을 도모하며 웃고 떠들었던 동지 염석진은 경무국 대원들을 죽이고 자신이 손수 뽑은 작전요원들을 일제에 팔아넘긴다. 내 편이라고 해서 마냥 믿을 수 없는 불신을, 독립운동가들은 조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그림만 바라보며 견딘다.
그래서 〈암살〉의 내용을 다시 잘 곱씹어보면, 결국 소속도 뜻도 다르던 사람들이 한데 뭉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움직인다는 내용이었다. 우익 김구와 좌익 김원봉이 만나 친일파 처단을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내용, 임시정부 경무국에 차출된 한국독립군 소속 안옥윤과 ‘속사포’ 추상옥(조진웅), 폭발물 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 좌익인 김원봉에게 작전 브리핑을 받고, 경성에 와서는 자신을 ‘일본놈 기무라’라고 소개하는 반식민주의 활동가 기무라(김인우)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허랑방탕하게 살던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과 힘을 합치는 내용. 응당 내 편이어야 할 것만 같은 자들이 날 배신할 때, 나와 다른 소속, 나와 다른 정파, 나와 다른 사상, 심지어 나와 다른 민족인 이들이 손을 내밀어 뜻을 함께 한다는 내용 말이다.
뜻을 이루기 위해 죽어간 이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는 동안, 변절해 일제에 붙었던 이들은 용케도 처벌을 피해 갔다. 미군정청은 행정 경험과 교육 기회를 지녔던 친일파들을 계속해서 활용하는 ‘현상유지정책’을 택했고, 친일파 청산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까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 수립 이후 국회의 절대 다수 찬성을 통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줄여서 반민특위가 설치됐지만, 이승만 행정부의 끊임없는 무력화 시도로 인해 그 힘을 잃었다. 아직도 사람들의 이정재 성대모사 1순위 대사로 손꼽히는 염석진의 변론 씬 또한, 그렇게 무력화된 반민특위 법정을 무대로 하고 있다.
“내 몸속에 일본놈들의 총알이 여섯 개나 박혀있습니다. 1911년 경성에서 테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 맞은 자립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여긴 22년 상해 황포탄에서, 27년 하바로프스크에서, 32년 이즈모호 폭파사건 때, 그리고 이 심장 옆은 33년에. 내가 ‘동지 셋을 팔았다’고 하셨는데, 그 친구들 제가 직접 뽑았습니다. 그 젊은 청춘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보냈는지! 그건 죽음을 불사하는 항전의 거름이었습니다, 재판장님!”
염석진은 증거 불충분으로 소 취하를 받는 데 성공한다. 극중 염석진은 핵심적인 증언을 제공할 예정이었던 검찰 측 증인 꼽추(정규수)가 살해당하면서 풀려났지만, 실제 역사에선 증인을 죽일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반민특위는 반민족 행위자 7천여 명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조직적인 방해와 무력화 시도로 인해 실제로 기소된 사람은 293명에 그쳤다. 그 중 특별재판부가 해체되기 전에 판결을 받은 사람은 78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215명은 미결이었다. 심지어 반민특위 내부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관리를 지냈던 이들,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염석진은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부하직원의 제안을 만류하고, 석진은 혼자 걸어가겠다고 말한다. “아니야, 아니야. 좋은 세상이잖아. 좀 걷고 싶은데.” 중절모를 눌러쓰고 유유히 걸어가는 염석진 옆으로, 반민특위를 해체하라는 시위를 벌이는 군중들이 지나간다. 군중들은 ‘북진통일’, ‘38선은 없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 중이다. 그럴 법도 했다. 이승만 행정부는 친일파 청산 작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국회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로 몰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국회부의장 김약수를 포함한 13명의 국회의원들이 재판을 받으면서, 국회는 위축되었고 친일파 청산 작업이 공산주의자들의 흉계라는 프로파간다는 힘을 얻었다. 친일파들의 사주를 받은 관제 시위도 있었다지만 꼭 그뿐이었을까. 반공주의 프로파간다는 예나 지금이나 힘이 세고, 그러니 반민특위를 해체하라고 자발적으로 시위를 조직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
옥윤과 명우가 16년 전에 수행하지 못한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라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영화의 결말은 판타지에 가깝다. 실제 역사에서 이와 같이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는데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으니, 그 사실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면 씁쓸함은 한층 더해진다. 뜻이 다른 이들이 모여서 ‘조국을 되찾는다’는 목표 하나를 이루기 위해 달려온 역사, 그럼에도 끝내 좌우대립으로 인해 통합정부를 이루지 못했고, 반공주의의 열풍 속에서 친일파들은 처벌을 피해 갔던 역사. 그러니까 〈암살〉의 결말은 끝내 이루지 못한 소망을 영화 속에서나마 대리충족하는 판타지인 것이다. 조국의 이름으로 변절자를 처단하고, 뜻도 소속도 달랐으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차이를 극복하고 사선을 함께 넘었던 이들을 기린다는, 아직도 제대로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판타지 말이다.
이승한 TV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