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개봉을 맞아, 지난 1회에 이어 크리스토퍼 놀란과 IMAX 그 두 번째 이야기.


<다크 나이트> 촬영 현장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다크 나이트>(2008), IMAX 시네마에 도전하다

“IMAX 촬영 결과가 만족스러워요. 세계에서 가장 해상도가 높은 포맷이죠. 또한 굉장히 몰입도 높은 이미지를 만들어내요. IMAX 스크린 화면은 8층 건물 높이로 아주 거대합니다. 다른 포맷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관객을 액션에 빠져들게 해요.”

- 크리스토퍼 놀란(영화감독)

“IMAX로 찍겠다는 감독을 몇 번이나 만나게 되겠어요? 그렇다면 저도 IMAX에 맞춰야겠다고 대답했죠. 커다란 장난감을 꺼내라는 이야기였으니까요.”

- 한스 짐머(영화음악가)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2008) 사전 제작 단계에 돌입하면서 놀란은 제작자 찰스 로벤을 앞에 두고 말했다. “더 큰 규모로 느끼도록 하고 싶고 실제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규모가 커야죠.” 주로 방음 설비가 된 스튜디오 내부의 통제된 세트피스 환경에서 작업했던 그는, 누아르와 SF의 색채가 강했던 영화의 장르적 공간을 차기작에서는 달리 가고 싶었다. 장르를 일신해 실제로 ‘있을 법한(verisimilitude) 현실적인 세계로 확장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작품에 임하면서 참고한 중요한 레퍼런스 작품으로 마이클 만의 <히트>(1995)를 꼽은 것 역시 배트맨이라는 가공의 캐릭터를 그가 본래 속한 만화적인 과장법의 세계에서 현실 속 도시 공간으로 옮겨오려 한 그의 발상이 어디서 힌트를 얻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영화 속 현실의 이미지를 가능한 생생하게 와닿도록 할, 한 발 더 나아가 사실성(reality)이 극한으로 치닫다 못해 아주 스크린을 뚫고 과잉으로 흘러넘치는, 압도적인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을 자아낼 초고화질 매체였다. 아날로그 작업을 선호하는 놀란의 작품 성향상, 그의 시선과 관심이 닿은 건 다름 아닌 IMAX 포맷이었다. 놀란의 아내이자 제작자 엠마 토마스에 따르면 놀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기존 IMAX 영화를 봐요. 우주 비행사들이 카메라를 우주로 가져가거나, 에베레스트산으로 가져가곤 했죠. 그렇다면 시카고의 어느 거리로 가져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때까지 나왔던 IMAX 포맷 영상 작품들을 빠짐없이 챙겨보고 관련 지식들을 습득하면서 놀란은 IMAX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구상을 다져나갔다.

월리 피스터 촬영감독

놀란이 추구하고자 한 건 ‘드라마에 몰입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IMAX였다. 그가 보기에 기존의 IMAX 다큐멘터리는 고공 촬영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아주 높은 곳에서 찍었는데 모든 풍경의 디테일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그 생생함으로 보는 이의 간담이 서늘해지게 한다는 것을 IMAX 최대 장점으로 본 놀란은 아예 IMAX 시퀀스로 영화의 도입부를 여는 걸 고려하게 된다. 이건 관객의 신경을 단번에 영화로 끌어들일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특유의 초고해상도에 스크린을 꽉 채우는 거대한 스케일의 풀프레임 영상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으로 영화 속 세상과 사건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것과 같은 박진감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이것을 단순히 풍경을 펼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강력한 미학적 도구로 쓸 수 있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IMAX 클로즈업 촬영

생각을 굳힌 놀란은 오랜 창작 파트너인 촬영감독 월리 피스터에게 IMAX로 도입부를 찍어보자고 먼저 제안한다. 이전에는 영화용으로는 써본 적 없었던 IMAX 65mm 카메라를 현장에서 다뤄본다는 건, 촬영감독으로서는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기에 피스터는 선뜻 동의했다. 그러나 찍어야 하는 장면이 놀란이 따로 ‘프롤로그’(prologue)라고 부른 초반 6분, 조커가 첫 등장하는 은행털이 시퀀스라는 걸 알게 된 피스터는 경악하게 된다. 이 도입부는 촬영팀의 입장에선 지상과 옥상, 항공을 오가는 공간의 다양성과 은행 내부의 구조적 복잡성 내지 안전 문제 때문에 난이도가 높을 것이 예고된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걸 대체로 고정해서 사용하고, 움직이는 장면도 헬기나 차량에 매달아서야 가능해 자유로운 움직임을 구사하기엔 제약이 많은 IMAX 65mm 카메라로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은행털이 장면 촬영 현장

월리 피스터를 포함한 촬영팀 전원은 극영화 제작 현장에 투입된 전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카메라를 다루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과 노하우를 일일이 몸으로 부딪쳐가며 배워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법도 한 게 IMAX 카메라 중 가장 경량화되어 ‘그나마’ 움직이는데 편하게 조정했다는 MSM 카메라조차도 파나비전 밀레니엄 XL 같은 35mm 카메라와 비교해 그 무게가 5~6배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카메라처럼 손쉽게 움직일 수 없는 물리적 제약 탓에 제작진은 IMAX사에서 파견한 기술직원의 교습과 현장 지도를 받으면서 이 거추장스럽고 묵직한 카메라로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선별하고, 그에 맞춰 적응해나가야 했다.

헬기에 장착한 카메라

예컨대 갱 일당이 와이어를 걸고 건너편 빌딩 옥상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포착하는 항공 촬영도, 헬기에 장착한 카메라의 각도를 측면으로 틀면 되는, 얼핏 간단해 보이는 장면이었지만 그런 기초적인 기동마저 IMAX 카메라의 덩치가 있다 보니 엄청난 도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스테디캠 오퍼레이터 밥 골릭은 MSM을 다뤄보고는 충분히 자유로운 기동이 가능하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정작 5일에 걸친 촬영 중 둘째 날에는 지렛대처럼 카메라를 떠받치던 스테디캠 부품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나가, 카메라와 스테디캠 기사 모두 넘어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기계와 사람 모두 큰 탈 없이 무사하긴 했지만 스테디캠 자체 무게가 15kg인데 IMAX 카메라를 달면 아무리 초경량이라도 45kg에 달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스테디캠 촬영 장면

그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있었다. IMAX용 65mm 필름 자체가 기존에 ‘판형이 깡패’라던 표준 70mm 필름의 사이즈를 3배 넘게 상회하는 엄청난 물건이다 보니 필름통 전체를 한 번 다 돌리고 나면 얻을 수 있는 촬영분이 3분밖에 되지 않았고(표준 35mm 필름 한 통은 1000피트 길이로 10~12분 지속 촬영이 가능), 릴을 교체하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이 문제는 가용한 IMAX 카메라 네 대를 모두 동원해 번갈아 찍는 식으로 해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초점의 경우 심도가 매우 얕다는 렌즈의 특성상 배우들이 활동할 공간 내 동선에 제약이 걸리는 것도 문제였다. 일반 촬영 시 카메라와 배우의 거리가 4m라면 초점 안에 들어오는 영역이 3~60cm인데 IMAX는 잘해봐야 10~12cm 나올까 말까여서 그에 맞춰 앵글과 카메라 움직임을 새로 조정해야 했다. 또한 건물로 치면 8층 높이에 달해 관객의 시야에 프레임 전체가 다 들어오지 않는 상영관 환경을 고려해야 했기에 프레임 상단에 여백을 많이 줄 수도 없었다. <다크 나이트>의 IMAX 시퀀스마다 화면의 스카이라인이 낮게 잡혀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트럭 전복신과 촬영 현장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빚어낸 오프닝 촬영분의 놀라운 퀄리티는 워너브라더스 영화사 간부들을 감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성과에 고무된 제작진은 비용이 얼마나 더 들든 개의치 않고 와이드 앵글, 항공촬영, 고층건물에서의 촬영 등 IMAX 카메라의 활용도를 높여나가기로 결정한다. 현재의 한계 안에서 IMAX 시네마의 가능성을 최대한 밀어붙여 보기로 한 것이다.

메르세데스에 장착한 크레인

트럭 전복신에서 촬영팀은 IMAX 카메라 4대를 메인으로 하되, 비스타비전 카메라 2대, 35mm 카메라 한 대를 추가해 7개 방향의 앵글에서 촬영했고, 다행히 편집에 필요한 분량을 얻어낼 수 있었다. 완성된 장면은 메르세데스 차량에 단 레브 헤드 크레인 1대의 촬영분을 중심으로 편집되었고, 트럭이 뒤집히는 순간은 2개의 앵글을 사용하고, 뒤에 공기압으로 지면을 때려 트럭을 넘어뜨리는데 쓴 피스톤을 CG로 지웠다.

레브 헤드 크레인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의 호송차량을 잡으려는 조커(히스 레저)의 트럭을 배트모빌로 추적하는 체이싱 시퀀스는 IMAX 카메라의 활용도를 실험하는 이 거대한 테스트의 백미였다. 차량 액션 촬영에 동원되던 기존의 장비들이 35mm 내지 65mm 카메라의 기준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레브 헤드 크레인과 차량 옆에 붙여 트럭에 탄 히스 레저의 모습을 찍을 마운트 등을 모두 IMAX 카메라의 육중함을 감당할 수준으로 훨씬 튼튼한 장비를 처음부터 별도로 주문제작해야 했다. 촬영 도중 조커의 트럭이 다른 차를 들이받는 장면에서 레브 헤드 크레인에 단 카메라 한 대가 트럭과 충돌한 차 사이의 벌어진 틈새에 끼어 부서지는 참사가 벌어졌다.(다행히 필름통은 무사해서 사고 때 찍힌 컷의 일부가 본편에 그대로 삽입되었다.) 대당 30만 달러에 촬영 당시 전 세계에 네 대 밖에 없는 카메라를 하나 잃은 제작진은 나머지 세 대의 IMAX 카메라로 남은 촬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IMAX 카메라 파손 장면


악전고투하는 촬영팀 외에도 모든 제작진이 IMAX 카메라의 특성에 맞춰 작업을 재조정해야 했다. 엄청난 초고해상도로 찍는 만큼 그에 덧붙여질 그래픽 작업도 훨씬 세밀한 디테일, 훨씬 넓은 프레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를 한계로 밀어붙였다. 영화 <007> 시리즈를 통한 경험으로 특수효과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크리스 코볼드도 35mm에서는 쉽게 가려지던 와이어나 폭약 장비 등을 세세히 감추는데 골머리를 앓았고, 음향팀의 입장에서도 IMAX 카메라는 달갑지 않은 애물단지에 골칫덩어리였다. 워낙 큰 판형의 필름을 돌리다보니, 모터에서 일어나는 소음이 굉장해서 동시 녹음한 사운드 상당수를 버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IMAX 시퀀스의 음향은 거의 대부분 후시 녹음과 폴리에 의지해야 했고, 배우의 목소리가 담겨야 할 대화 장면을 찍는 건 언감생심 ‘불가능’했다. <다크 나이트>에서 IMAX가 차지하는 30분이 주로 액션 시퀀스에 몰려있고, 나머지 대부분이 35mm인(그리고 놀란이 다음 작품 <인셉션>(2010)에서 일시적으로 IMAX 필름을 버리고 대신 표준 65mm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이유는 동시 녹음이 곤란하다는 태생적 문제 탓이었다.

<다크 나이트>로 생고생을 해서 축적된 프로세스와 노하우는 시리즈를 종결지은 뒤에도 펼쳐질 놀란의 경이로운 작품 활동에 큰 자산이 되어 줄기차게 활용된다.

편집기사 리 스미스는 화면의 모든 요소가 뚜렷하게 보이는 IMAX의 특성을 고려해 컷의 전환이 빨리 이뤄지는 액션영화의 일반적인 방법과는 달리 가능한 컷의 길이를 늘여 피사체의 움직임과 동선이 잘 보이도록 액션 시퀀스의 리듬과 호흡을 바꿔야 했다. 다시 말해 IMAX 포맷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것 하나만으로 영화 만들기의 방법론과 미학을 갈아엎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 장르뿐 아니라 IMAX 시네마의 새로운 장을 연 이정표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 생고생을 한 끝에 축적된 프로세스와 노하우는 다음 작품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뿐 아니라, 시리즈를 종결지은 뒤에도 펼쳐질 놀란의 경이로운 작품 활동에 큰 자산이 되어 줄기차게 활용된다.

<다크 나이트> 홍콩 촬영 현장의 월리 피스터 촬영감독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3부에서 이어집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