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공개되어 현재 9화까지 공개되며 중반에 접어든, 강풀 원작의 디즈니플러스 20부작 드라마 <무빙>이 순항 중이다. 한국을 비롯해 대만, 싱가포르, 일본, 홍콩에서도 공개와 동시에 1위 콘텐츠로 랭크되며 화제성을 입증하고 있다.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 <무빙>, 당신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계속 보시겠습니까.



느린가? 느리다. 느슨한가? 아니다. <무빙>이 공개되고 터져 나온 가장 큰 불평은 지나치게 느리고 느슨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무빙>은 지난 몇 년간 OTT에서 공개된 한국 장르 드라마와 비교하면 확실히 조금 느리다. 느슨하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를테면 <무빙>은 모두가 이야기하는 마블코믹스보다는 2006년 NBC 드라마 <히어로즈>의 한국적 대답에 가깝다. <히어로즈>는 지나치게 판을 빨리 확장하며 금세 이야기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잊혀졌다. 원작이 지닌, 그러니까 강풀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할리우드적인 장르를 한국 소시민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재주다. 소시민적 히어로물 <무빙>은 판을 급하게 확장하지 않는다. 대신 한명 한명 캐릭터가 가진 서사와 감정을 최대한 꾹꾹 눌러 담으며 천천히 달린다. 덕분에 우리는 모든 캐릭터에 감정을 투자하게 된다(그래서 이 드라마의 초반부는 훌륭한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원작에는 없던, 초반부의 액션을 책임지는 프랭크(류승범)라는 캐릭터를 고안해 비교적 느린 페이스를 보상하는 방식도 훌륭하다. 아직 절반 이상이 남았지만 초반부에 쌓은 감정을 싣고 제대로 활강한다면 올해의 드라마 중 하나가 될 것이 틀림없다.

김도훈 영화평론가, 유튜브 <무비건조>


<무빙>의 아들 봉석(이정하)과 엄마 미현(한효주)

히어로물에서 사춘기 성장물과 멜로, 가족관계 드라마 이런 모든 장르를 설레하며 보게 될 줄이야. 강풀의 원작에서 그간 우리가 익히 보아 온 ‘선한’ 캐릭터가 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각각의 장르적 재미를 책임지며 서서히 빌드업 되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정하! 그리고 고윤정이라는 신선한 배우의 발굴, 그리고 류승범, 한효주, 조인성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의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을 발견하는 건 다시 한번 극본과 연출의 ‘다름’이 보는 이들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이 무엇인 지 일깨워 준다. 웹툰이 영상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채움과 비움의 기술이 탄탄히 반영된 결과값. 그간 강풀 원작의 많은 영화화가 기대 이상의 결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과 달리 작가가 직접 쓴 시나리오에 와서 그 간극이 채워진다.

강풀의 <무빙>은 우리가 ‘히어로물’의 시효가 끝났다고, 특히 ‘한국형’이라는 것이 지루해 진 틀로 여긴 지점에서 한국의 지정학, 역사적 특수성을 짚어가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독창적 장르물이다. 공개를 앞둔 20부작의 나머지 절반이 어떻게 ‘무빙‘될 지, 요 근래 가장 다음을 설레며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이자, 웹툰작가 강풀이 시나리오 작가로 다음을 이어나가길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화정 영화평론가, 유튜브 <무비건조>


<무빙>의 딸 희수(고윤정)와 아빠 주원(류승룡)

“이 초라한 초능력 이젠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10년 전 노래 가사로 감상을 대변하겠다. 휘황찬란한 초능력으로 인류를 구하는 히어로는 더 이상 끌리지 않는다. 나는 지겨운 하루들을 살고, 내 주위엔 평범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데, 날 때부터 특별하고 대단했던 존재들만 나오는 히어로물은 너무나 지겹다. <무빙>은 한국형 히어로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초능력의 탈을 쓴 휴먼 스토리다(적어도 7회까지는 그렇다). <무빙> 속 그들이 가진 초능력은 비범할지언정, 그들의 모습은 초라하리만치 평범하다. 약간의 초능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입시를 준비하고, 버스기사를 하고, 치킨집을 하고, 돈가스집을 하며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히어로물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어쩌면 이런 시리즈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소변기에 대변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현실적인 K-고등학교 화장실에서 공중부양을 하는 봉석의 모습은 어디서도 느낀 적 없는 이질감을 선사한다. 현실과 환상의 조화, 그리고 적절한 액션과 웃음의 조화는 극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끌고 간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8회부터는 사실상 새로운 시즌 혹은 아예 다른 작품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색채가 달라진다. 여기서부터는 정원고 3인방은 온데간데없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 우리가 익히 알던 히어로물 혹은 첩보물을 연상시킨다. 다만 화려한 액션이나 CG보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무서운 빌런보다, 으리으리한 캐스팅보다, 초능력을 안고도 슬기롭게 살아가는 정원고 3인방을 보고 싶다.

김지연 씨네플레이 기자


<무빙>의 빌런 프랭크(류승범)와 8화부터 활약을 시작하는 두식(조인성)

“죽어서도 신선한, 신선한 치킨입니다. 안녕하세요!” 실제로 가게 이름이 ‘신선한 치킨’인 치킨집 사장 주원(류승룡)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렇게 깍듯하게 인사한다. 마치 <극한직업>(2019)에서 졸지에 치킨집 사장이 된 경찰 고반장(류승룡)이 어떤 순간에도 친절하게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네! 수원왕갈비 통닭입니다”라고 인사하던 장면을 패러디한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주원과 그의 딸 희수(고윤정) 모두 무한 재생능력으로 말 그대로 ‘죽어서도 신선한’ 초능력자들이기 때문에 무척 의미심장한 인사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거기서 발생하는 패러디적 재미는 이후 한 번 더 이어진다. <극한직업>의 마지막 대결 장면에서 고반장은 좀비처럼 일어나 “우리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해!”라고 외쳤던 장면처럼, 프랭크(류승범)와 싸우는 주원은 가공할 재생능력으로 우뚝 일어선다.

강풀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거대 서사를 자유로이 구사하면서도 잰 체하지 않는 특유의 소박함, 그리고 그와 한 몸처럼 붙어있는 유머다. 학교에서 뜻하지 않게 자신의 초능력을 드러내며 말썽을 일으킨 어린 아들 봉석(이정하)을 보며 엄마 미현(한효주)은 “공감 능력이야말로 최고의 초능력”이라고 타이른다.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봉석에게 희수도 “뭐가 이상해? 특별한 거지”라고 말한다. 얼핏 슈퍼히어로물과 학원물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미드 <히어로즈>가 떠오르지만, 뭔가 우리의 정서를 건드리는 묘한 가족애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매일 밤 학교에서 돌아오는 강훈(김도훈)을 기다리는 재만(김성균)도 궁금하고, 초능력을 숨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돈가스집 사장 미현의 모습도 그렇다. 아무튼 지금껏 공개된 에피소드들 중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5화에서 희수가 말그대로 17대 1로 일진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탄광촌의 아빠’와 ‘진흙탕의 딸’이 이루는 대구가 절묘했다. 앞선 대사들로 보건대 실제로 폐쇄공포증이 있는 아버지는 딸의 정착을 위해 무지하게 힘들게 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힘든 전쟁을 치루고 있는 부녀(父女)의 간절함이 보였다. 그리고 고3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얌전히 있어야 하지만, 절대 그러지 못했던 딸 희수의 공감능력이 그처럼 싸우게 했다. 그로 인해 희수는 결국 전학을 가야 했다. 내레이션으로 “아무도 안 본 것으로 하면 없는 일이 되는 건가”라고 되물으며 “학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했는데 ‘적당한’ 조치를 취했다”고 탄식한다.

앞서 공개된 7화까지, 무게중심을 잡아준 프랭크(류승범)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어려서 이른바 미군 부대의 양공주였던 엄마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미군에게 끌려가는 자신을 보고 모르는 척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적 있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 초능력자들을 처단하는 과정에서도 부모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식이 어디 있는지 얘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왜 자식을 보고도 자식이 아닌 척하지?”라고 되묻는다. 부모는 왜 자식을 모른 척 할까, 라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른 척했던 프랭크의 엄마와, 자신이 죽더라도 자식을 살리기 위해 모른 척하는 현재의 대비가 결국 <무빙>이 여타의 히어로물과 확실한 차별점을 만든다. 이미 웹툰도 해냈지만 이번 드라마도 그걸 해낸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