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에도 흐름이 있다고 했던가. 2020년대 들어서 갑자기 붐이 일어난 장르가 있다면 레이싱이나 자동차 관련 영화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CGI 사용에 지친 관객들은 점점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기 시작했고, 레이싱과 자동차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실물과 CG를 적절히 배합한 '아드레날린 분비' 장면들을 만들기 적합했다. 2019년 <포드 V 페라리>를 시작으로 아직 제작 중인 조셉 코신스키 감독과 브래드 피트의 제목 미정 ‘포뮬러 1(F1)’ 영화까지. 이런 흐름에 올라타 현재 관객들에게 스피드 쾌감을 안겨줄 영화를 소개한다.
그란 투리스모
감독 닐 블롬캠프
출연 데이빗 하버, 올랜도 블룸, 아치 매더퀴
개봉일 2023년 9월 20일(한국)
현재 북미에서 신나게 엑셀을 밟고 있는 영화 <그란 투리스모>. 제목 Gran Turismo는 일명 ‘GT카’를 이르는 말로, 장거리 운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차량을 뜻한다. 다만 영화 제목은 엄밀히 말하면 그 차량보다 동명의 게임을 이르는 말인데, 이 게임과 관련한 어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기 때문.
원작 게임은 레이싱 시뮬레이터로, 별다른 스토리가 없다. 트랙을 돌고, 랩타임을 경신하고, 새로운 부품으로 세팅을 맞추고, 다시 트랙을 돌고. 이렇게 게임을 반복적으로 하며 실력을 늘리는 전형적인 스포츠 게임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 그럼 이 마땅한 스토리가 없는 게임을 어떻게 영화로 옮겼느냐, 바로 게임 <그란 투리스모>를 플레이하던 게이머가 실제 레이싱 드라이버로 데뷔(!)한 실제 사례를 반영했다.
게임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를 발매한 소니(개발사 폴리포니 디지털은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스튜디오)와 일본의 대표 자동차 기업 닛산은 2008년 'GT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 아카데미의 목적은 <그란 투리스모> 톱플레이어들에게 실제 레이스 드라이버 교육을 하는 것. 어떻게 보면 기가 찬 기획이었는데, 이 기획이 꽤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면서 GT아카데미는 2016년까지 유지됐다. 그리고 그중 9만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GT 아카데미 1등을 거머쥔 최연소 우승자, 2011년 졸업생 잔 마든보로(Jann Mardenborough)가 이번 영화의 주인공으로 지목됐다.
요즘 ‘글로 00을 배운’이란 수식어처럼 게임으로 레이싱을 배운 잔 마든보로의 성공은 닐 블롬캠프의 손에서 영화로 옮겨졌다. 장편 데뷔작 <디스트릭트 9>으로 찬사를 받았으나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이었던 블롬캠프는 이번 영화에서 절치부심하고 '레이싱의 쾌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영화는 로튼 토마토 팝콘 지수 98%와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 1위라는 성적이 입증하듯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북미에서의 반응이 국내에도 전해지며 국내 게이머들과 차량 애호가들에겐 반드시 봐야 할 필견 영화로 눈도장을 찍고 있다.
페라리
감독 마이클 만
출연 아담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쉐일린 우들리
개봉일 미정 (북미 12월 25일)
마이클 만 감독이 장장 8년 만에 꺼내든 신작은 <페라리>. 제목에서 엿보이듯 이탈리아 대표 자동차 기업 페라리, 그것도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CEO를 주인공으로 삼은 만큼 레이싱이 주가 될 것 같진 않으나, 1957년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경주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는다고 하니 아예 정적인 전기 영화도 아닐 것으로 보인다. 밀레 밀리아는 약 1천 마일을 운행하는 장기 레이싱으로 1957년 막을 내리고 1977년부터 밀레 밀리아 스토리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정보 말고는 따로 공개한 내용이 없었는데, 8월 31일 예고편과 포스터를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엔초 페라리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의 모습과 페라리 355S 스파이더 주행 장면이 시선을 확 끈다. 당시 페라리 가문 내에서 여러 사건사고 많았던 만큼 아내를 연기한 페넬로페 크루즈, 엔초 페라리의 불륜 상대 리나 라디 역의 쉐일린 우들리의 열연이 레이싱의 장면들과 교차돼 긴장감을 자아낸다. 여담이지만 아담 드라이버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마우리치오 구찌를 연기한 이후 이번에도 엔초 페라리를 연기하며 실존했던 (그것도 유명 브랜드의) 이탈리아인 사업가를 또 연기한다.
개봉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페라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 경쟁작으로 초청됐기 때문. 베니스 영화제는 꽤 대중적인 영화(직설적으로 말하면 미국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하는 경우가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중 그나마 잦은 편인데, <페라리>가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기대된다.
람보르기니:전설이 된 남자
감독 바비 모레스코
출연 프랭크 프릴로
개봉일 2023년 8월 23일(한국)
페라리가 나왔는데 따라 나오지 않으면 섭섭할 그 이름, 람보르기니. 영화 <람보르기니:전설이 된 남자>는 스포츠카의 대명사와 같은 람보르기니를 설립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를 주인공 삼아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페라리 넘어서기’를 보여준다. 예고편에서도 잠깐 묘사되는데 엔초 페라리가 자신에게 조언하러 온 페루치오를 “트랙터는 잘 모나보군”이라고 비아냥거렸고, 이에 페루치오는 (페라리처럼 자신의 성을 딴) 람보르기니를 설립해 페라리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한다.
분명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인생 스토리부터 수많은 차량이 나오는 것까지, 개봉 직후 차덕들에게 알게 모르게 소문난 영화다. 다만 관객들의 실제 후기를 보면 완성도는 썩 좋지 못한 모양.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이 많은데, 주인공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삶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묘사돼 아쉽다는 평이 많다. 특히 차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허점이 많이 보인다고.
물론 그럼에도 <람보르기니:전설이 된 남자>에 나오는 수많은 올드카들은 보는 즐거움을 준다고 한다. 람보르기니에서 V12 엔진을 최초로 탑재한 슈퍼카 미우라, 양산형 모델 350GT, 4인승 모델 에스파다 등 람보르기니의 초창기 모델과 그 시절 차량들은 한껏 즐길 수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