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의 극장가
2022년 4월의 18일, 드디어 실외 거리두기가 해제됐다. 곧 4월 25일을 기해 실내 취식이 가능해졌다. 이제 극장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의 종식인 것일까? 물론 그렇진 않지만 적어도 이는 엔데믹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당시에 개봉 스타트를 끊은 블록버스터는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다. 뒤이어 한국영화인 <범죄도시2>가 2500여 개의 관으로 크게 개봉하며 첫날 관객 46만 관객을 기록한다. 그리고 <범죄도시2>는 1269만 관객을 기록하며 당해 1위, 역대 13위의 흥행을 기록한다.
이를 지켜본 대형 배급사인 CJ ENM, 롯데 엔터테인먼트, 쇼박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네 곳은 각자의 텐트폴 영화를 1주 간격으로 개봉 스케줄을 확정한다. 모두 200억 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들이었고 당연히 그 사이엔 외화도 개봉했다. 2위를 해서는 안 되는 작품들이 2주의 간격도 지니지 못한 채 폭격처럼 개봉하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영화계가 가장 활황이었던 2019년을 보자. 여름 시즌에 나온 한국영화는 <엑시트> <봉오동 전투> <사자> 등 세 편이며 개봉 시기에서도 단 두 주에 걸쳤을 뿐이다. 2022년의 여름 영화시장엔 <외계+인 1부> <한산> <비상선언> <헌트> 네 편이 7월 20일을 시작으로 한 주에 한편이 개봉했다. 티켓값이 오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의 이슈가 있었고 관객의 취향이 좀 변한 지점이었다. 두 편은 준수한 성적을 올렸고 두 편은 흥행에 실패했다. 전작에서 단 한 번도 흥행과 비평에서 높은 성적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던 연출자들이었기에 그 충격이 더 했다.
4편의 영화가 다소 무거웠던 덕일까? 관객들은 성수기 이후 개봉한 가벼운 코미디인 <육사오(6/45)>에 주목하기도 했다.
2023년의 빅4
실은 한국영화 개봉 시기에 있어서 '빅4'라는 단어는 잘 거론되지 않았다. 아무리 큰 시즌이라 한들 동시라고 할 수 있을 타이밍에 4편이나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올해엔 7월 26일 <밀수>를 시작으로, 다음 주에 <더 문>과 <비공식작전>이. 그다음 주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개봉했다. 올해 역시 두 편은 흥행하고, 두 편의 흥행은 섭섭했다.
2022년 여름의 빅4는 모두 팬데믹 중에 촬영됐지만, 기획은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즉, OTT의 범람이 너무 강해지기 좀 전이었고, 극장 관람 가격이 부담이 될 정도로 오르기도 전이었으며, 입소문보단 아직까진 마케팅에 기대던 시기였는데다, <기생충>(2019)의 국뽕이 아직 살아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2023년에 공개된 큰 영화들은 양상이 좀 다르다. 코로나를 맞이해 제한 상영 시간을 맞이한 극장 운영을 보았으며, 모든 창작자들이 넷플릭스로 가길 원하는 세태를 목격했고, 관객들이 올라간 티켓값에 볼멘소리를 내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OTT의 편의성을 그들 스스로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팬데믹의 시간을 머금고 만들어진 영화들은 사회의 어떤 요소들을 반영했을까?
<더 문>은 국가의 컨트롤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미 그 자리를 탈피한 외부인을 데려와 해결을 시도한다. 게다가 외국의 우주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여기서 논리보다는 감성을 앞세운다. 신파를 특기로 활용해왔던 김용화 감독의 장기는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비공식잔전>의 김성훈 감독은 이미 <터널>(2016), 드라마 <킹덤>(2019)등을 통해 이미 국가 시스템의 휘발을 이야기해 왔다. 심지어 <비공식작전>의 국정원은 훼방을 놓는 존재로 등장한다. 여기서 진공을 채우는 것은 야망을 품었지만 인간미를 회복하는 개인이었다.
<밀수>의 배경은 갱스터가 곧 법인 가상의 세계다. 심지어 가장 큰 빌런으로 나오는 존재는 밀수범도 살인범도 아닌 공무원이다. 그리고 공권력이 없는 상황에서 소시민이었던 개인이 사태를 해결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예 모든 컨트롤 타워가 없어진 세상을 그린다. 그리고 대안으로 세워진 컨트롤 타워에 대한 성찰적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제시해야 하는 질서의 부재, 그리고 시스템의 실종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야기하면서 해결책의 전망에 관한 것은 비관적 태도로 제시한다. 이른바 제각기 살아 나갈 방법을 꾀해야 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시종일관 그런 분위기를 풍기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엔딩에서 현실에 대항할 희망적 태도를 보여준다.
2022년 여름 영화의 흥행작에선 모두 군인과 경찰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현실에서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반증일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작년은 불안했던 경제 상황을 반영했다면, 올해는 필수 불가결한 것의 증발로 인한 불안의 상태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各自圖生의 기원
이 한자어를 직역하면 '제각기 살길을 찾는다'는 뜻이다. 대개 우리의 사자성어는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 많지만 이 표현은 순수하게 조선에서 맨 처음 나왔다. 때는 일천오백구십사년 선조 27년. 9월하고도 6일이었다. ‘일본군이 부산, 김해 등지에 침입함을 백성들에게 미리 알리니 이에 백성들은 '각자도생'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이태원에서 참사가 있었다. 7월엔 수해로 많은 사람이 도로에서 매몰되는 비극이 있었다.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서 아무런 연고가 없는 행인이 사망하고, 출근길의 여성은 대낮에 맞아 죽었다. 국정 상황실은 자신들은 단지 참모조직일 뿐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했다. 국민이 믿고 있는 최고 책임자와 최고 책임기관이 국민을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또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고백한 꼴이다.
정부에서는 영회진흥위원회의 예산을 줄였다. 자연스레 영화제 지원 예산도 삭감됐다. 신예가 등장하기 점점 힘든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상업제작사들도 그런 곳에서 신인을 발굴하기보다는 기시감 가득한 기존 감독을 기용하는 것에 열심히다. 그렇게 제작된 익숙한 영화들은 어떻게 됐을까? 올해의 흥행 결과가 답해주는 것 같다. 좋든 싫든 지원보다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요소들로 넘실거린다.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은 광해라는 걸출한 (실은 아직 논란이 끝나지 않은) 인물의 등장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임진왜란 때 백성들과 함께 적진을 누비며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결국 전란이 지나고 그는 이를 바탕으로 어려운 후계자 지명전에서 살아남았다. 국내 영화계에도 전후 복구와 실리외교를 책임져줄 바탕과 존재가 얼른 나타나길 앙망해본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