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경쟁 섹션' 어린이 심사위원단.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심사위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영화를 보고 심사를 할 거예요. 나눠드린 종이를 보면 표가 있죠. 영화 제목이 있고, 옆에 0점부터 10점까지 점수를 적는 란이 있어요. 그 옆에는 내가 왜 이 영화에 이 점수를 줬는지 심사평을 적으면 되어요. 영화를 보고 1분 동안 심사할 시간을 드릴 거예요. 혹시 심사하다가 불편한 점이 있거나 모르는 게 있을 때는 손을 들어주세요. 선생님들이 찾아가서 도와줄 거예요.”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황혜연 기획팀장의 말이 시작되자 서울시 은평구청 7층 대강당을 가득 메운 120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곳은 전 세계 어린이 영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집행위원장 김한기)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심사장.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60명의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모였다. 엄마가 우연히 지하철 광고를 보고 권해서 참여한 심사위원부터, 영화 보는 걸 평소 좋아하던 차에 영화 심사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참여한 심사위원까지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어린이 심사위원단에게 심사 기준을 설명하고 있는 황혜연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획팀장.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황혜연 기획팀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심사해야 할지 어렵죠? 먼저 이 영화들은 어린이가 만든 영화니까, 어린이들의 생각과 고민이 잘 반영되어 있는지를 봐주세요. 그리고 영화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독특하고 참신하게 만들어졌는지도 중요해요. 또 재미있거나 감동적이었다면 이 역시 심사 기준이 될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면, 좋은 점수를 주면 됩니다. 자, 이제 첫 영화 <챔피언>부터 감상을 시작할게요. 불 꺼주세요.”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참여하는 부분은 ‘어린이 경쟁 섹션’이다. 어린이가 직접 연출한 영화들을 대상으로 한 경쟁 부문인 어린이 경쟁 섹션에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9편의 단편 영화를 선정했다. 어린이들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감정들을 다룬 작품들,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로 즐거움을 안겨주는 작품들,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는 성숙한 마음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올해의 어린이 경쟁 섹션을 풍성하게 채웠다.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심사 노트.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본선 진출작은 모두 9편. 이날 심사위원들은 ‘어린이 경쟁 본선 진출작 9편’을 보고 진지하게 심사평을 적었다. 1부에서 5편을 감상했고, 10분간 휴식한 후 2부에서는 4편을 심사했다.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어린이 심사위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니까 다 생각이 다른데, 저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채점을 해야 해서 그런 게 좀 어려웠어요.” -동작초 4학년 오한빈

“영화를 보면서 되게 재밌었다고 느꼈는데요. 무엇보다 이 영화들을 어린이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게 가장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영화를 볼 때는 불이 꺼졌는데, 심사하라고 갑자기 불이 켜져서 눈이 너무 아팠어요(웃음). -상암초 5학년 현인준

”심사할 때 영화가 이해가 안 가는 게 많아서 좀 심사할 때 어려움을 느꼈어요.“ -가재울초 5학년 김단우

“영화 볼 때 어린이들이 만들었다고 하기에 너무 멋진 작품이 많아서 놀랐고, 약간 저도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게 좀 어려웠는데, 그래도 재밌게 봤어요.” -영인초 6학년 전재희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경쟁 섹션' 어린이 심사위원단.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그렇다면, 과연 어린이 심사위원의 마음에 쏙 든, 자기만의 1등 영화는 무엇으로 꼽았을까?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지만,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원픽’은 어느 정도 겹쳐져 눈길을 끌었다. 역시 영화를 보는 눈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

“학교에서 ‘또래상담자’로 봉사하면서 단편을 찍어본 적이 있어서 전부 재미있게 봤지만, <수상한 교실>이 가장 좋았어요. 이유는 일단 다른 영화들은 모두 다르덴 감독 스타일로 카메라가 많이 흔들렸는데, 이 영화만 카메라 무빙이 정말 깔끔했어요. 연기도 잘하더라고요.” -성원초 6학년 윤재희

“포켓몬빵이 나와서 너무 재미있었던 <너로 정했다>의 주제가 창의적이어서 1등이요! <묘한 이야기>에 우유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도 우유가 싫어서 관심이 갔어요.” -은평초 4학년 신아

“결말이 정해져 있지 않은 <수상한 교실>이요. 열린 결말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마포초 6학년 진우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경쟁 섹션 출품작 9편.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혹시 내가 감독이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라는 질문에는 기상천외하면서도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대답이 나와 심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저는요. <돼지들의 침공> 아니면 <돼지들의 반란>이라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맨날 먹히는 돼지들이 복수심으로 인간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영화에요.” -홍익초 4학년 김동현

“주인공이 갑자기 자고 있는데, 다음날 동물로 변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평소 고양이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청파초 4학년 이가헌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경쟁 섹션' 어린이 심사위원단.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심사위원단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가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제언을 이어갔다.

“약간 좀 시간이 긴 영화를 많이 상영하면 좋겠어요. 오늘 심사한 작품들은 너무 짧아서 잘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요. 좀 더 길면 이해하기 쉬울 거 같아요.” -대구 신월초 5학년 서인아

“책이 바탕이 된 영화들을 좀 많이 만들어서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책으로 봤을 때 안 느껴졌던 걸 영화로 보면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대곡초 4학년 박민아

그동안 서울시 구로구에서 진행되던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올해부터 은평구로 자리를 옮겼다. 김한기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개막식에서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영화제이다.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서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발돋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경쟁 섹션' 어린이 심사위원단.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개막작으로는 프랑스 영화 <아마 글로리아>(감독 마리 아마슈켈리-바르사크)를 선보였다. 출생 직후 엄마를 잃은 여섯 살 클레오와 그를 키운 유모 글로리아가 어쩔 수 없이 이별하면서 겪는 마지막 여름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최은영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아마 글로리아>를 두고 “여섯 살 클레오와 유모 글로리아의 애틋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별 뒤에 오는 성장의 감각을 풍성한 터치로 녹여냈다. 이국적인 아프리카의 풍광과 더불어 아이의 마음속에 몰아치는 폭풍 같은 감정을 더없이 세심하게 연출한 서정적이고도 아름다운 영화”라고 평했다.

올해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108개국 3,164편이 출품되어 그중 41개국 136여 편의 상영작을 엄선했다. 지구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지‧평‧선 섹션’과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성을 조명하는 ‘쌤과 함께’ 섹션 등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들을 어린이만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선생님 특별전: 쌤과 함께’에서 다종다기한 선생님이 등장하는 4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어린이배우 특별전: 문승아’에서는 재능과 아우라를 겸비한 문승아 배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2편의 장편과 2편의 단편을 준비했다. 지난해와 올해 가장 주목받은 국내외 작품 11편과 더불어 올해 신설된 애니메이션 경쟁작, 어린이의 시선으로 직접 연출한 작품 등 다양한 영화를 소개했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어린이 경쟁 섹션' 어린이 심사위원단.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심사위원도 다채롭다. 국제장편경쟁 섹션에는 <우리들>(2016)으로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윤가은 감독, <달이 지는 밤>(2022)의 장건재 감독, 지포니영화제 예술 감독 팀 소속 지안빈첸초 나스타시 프로듀서가 나섰다. 국제단편경쟁 섹션 심사위원으로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2019)의 공민정 배우, 노이 레빈 이스라엘 텔아비브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 <남매의 여름밤>(2019>의 윤단비 감독이, 애니메이션경쟁 섹션 심사위원으로는 김혜선 시모어컴퍼니 대표와 <태일이>를 연출한 홍준표 스튜디오루머 대표가 참여했다.

어린이들이 만든 작품이라 실험적인 영상도 있다는 점, 초등학생들에게 익숙한 디즈니 영화들과 비교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 저예산‧독립영화라는 측면에서 영상미나 사운드, 내러티브 전달이 쉽지 않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심사위원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초등학생들은 심사위원의 본분을 잊지 않은 채 스크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포스터. 사진 제공=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전국 각지에서 모인 60명 어린이 심사위원단의 선택을 받은 작품은 과연 무엇일까? 심사 결과는 9월 20일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폐막식 날 공개할 예정이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