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계는 지역 영화제 지원금 축소를 앞두고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그래도 개최를 앞둔 지역 영화제들은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올해는 10월 20일부터 29일까지,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새로운 이름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로 찾아올 umff는 이름에서 보듯 산악영화제라는 콘셉트는 지키되 울주군을 넘어 울산광역시의 대표 영화제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umff는 올해 개막 전, 지난 umff 수상작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umff 홈페이지에서 별도의 절차에서 곧바로 관람할 수 있는 지난 수상작들을 만나보자. 10월 5일까지 만날 수 있으니 당장 볼 수 없다면 즐겨찾기를 눌러놓고 추석 연휴에 즐기는 것도 추천한다.


2016(1회) 국제경쟁 자연과 사람 작품상

<구름 위의 사무엘>

구름 위의 집이 있다. 이 무슨 낭만적인 헛소리야 싶겠지만, <구름 위의 사무엘>이 담은 차칼타야를 보면 거짓말이 아닌 걸 알 것이다. 다만 이 차칼타야의 풍경은 그리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이 스키 리조트는 기후 온난화로 민둥산 위 리조트가 되었다. ‘만년설’이란 표현이 무색하게도 기후 변화는 더 빨랐고, 차칼타야는 그렇게 '눈 없는 스키 리조트'가 돼 해발 5,300미터 위에 덩그러니 남겨지고 말았다.

리조트를 운영하는 사무엘은 여전히 그곳을 지키고 있다. 언젠가는 눈이 내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간절함에도 차칼타야의 눈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신령님들께도 공물을 드리며 빌어보지만,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엔 대답할 이가 아무도 없다. <구름 위의 사무엘>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설산과 그곳에 마음을 둔 인물을 쫓아가며 언젠가 우리에게도 찾아올 무시무시한 미래를 다시금 내비친다.


2018(3회) 국제경쟁 모험과 탐험 작품상

<아름다운 패자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스포츠는 늘 짜릿하다. 그런 스포츠는 꽤 다양한데, 그중 사이클 종목은 (마치 철인 3종 경기처럼)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넣으며 승부를 보는 세계 3대 도로사이클대회가 있다. 가장 유명한 투르 드 프랑스, 그리고 지로 디 이탈리아, 마지막으로 부엘타 아 에스파냐. 이중 <아름다운 패자들>은 23일간 달려야 하는 지로 드 이탈리아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결코 우승할 수 없어 늘 무대 뒤에 있던 '도우미 선수' 그레가리오들을 포착한다.

이 그레가리오들은 마라톤으로 치면 페이스메이커인데, 그보다 더 큰 역할도 한다. 주력 선수들에게 물과 보급식을 전달하기 위해 후미로 빠져 서포트카까지 갔다가 다시 선두까지 치고 올라간다. 그러니까 결국 주력 선수들 못지않은 활동량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위험까지 감수하는 일이다. 그레가리오들은 동료들을 위해 그 모든 걸 감수한다. 지로 드 이탈리아와 그레가리오 선수를 7년 동안 카메라에 담은 아루나스 마텔리스 감독 덕분에 우리도 각자의 그레가리오를 돌아볼 기회를 만날 수 있게 됐다.


2020(5회) 국제경쟁 대상

<그리고 저녁이 온다>

일상은 평범하다. 일상은 뻔하다. 하지만 <그리고 저녁이 온다>를 보면 그 문구들을 고치고 싶어질 것이다. “일상은 경건하다.” 마야 노바코비치 감독의 <그리고 저녁이 온다>는 보스니아 동부에 사는 두 노인의 하루를 담았다. 일어나 가축을 이끌고, 밭을 일구고, 식사를 하고, 신에게 안전을 빌고, 곡물을 고르고, 그러다 하루가 진다. <그리고 저녁이 온다>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삶을 꾸리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조용하게 성심을 빚는다. 어여쁜 수식어처럼 쓰이는 '목가적'이란 말에 담긴 진의를 들여다볼 순간이다.


2020(5회) 국제경쟁 모험과 탐험 작품상

<홈>

「80일의 세계 일주」도 길다 싶은 요즘, 비행기만 이용하면 세계 일주가 손쉬운 요즘, 사라 오튼은 집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데 4년이 걸렸다. <홈>은 카약과 사이클, 노를 젓는 보트를 타고 대륙을 횡단한 사라 오튼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의 여행길을 돕는 팀이 있었다고 하나, 갖은 돌발 상황을 마주하는 건 사라 오튼 본인이다. 2년 반을 예상한 여행은 점차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라 오튼은 무시무시한 순간과 따듯한 공감 등 다양한 경험을 잔뜩 겪는다.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라 오튼의 세계 일주로 자연의 수많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2020(5회) 아시아경쟁 넷팩상, 청소년심사단 특별상

<교실 안의 야크> (10.2~10.8)

<교실 안의 야크>는 이번 수상작 상영작 중 <클라이밍>과 함께 유이한 극영화이자 개봉작이다. 2020년 9월 30일 개봉한 <교실 안의 야크>는 입소문을 타 적은 상영관에도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인구가 고작 56명인 마을 루나나의 신임교사가 된 유겐이 마을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시놉시스만 보면 어디선가 들어봤을 '불량교사 개과천선기' 같은 느낌인데, 이 영화가 갖는 힘은 부탄이라는 배경과 순수함이 묻어나는 배우들의 연기다.

극 중에서 나오듯 해발 4,800m에 위치한 루나나는 실제로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다. 그만큼 <교실 안의 야크>에 담긴 루나나의 풍경은 총천연색 자연 빛깔 그대로이며, 이는 그 어떤 드라마적 장치보다 강하게 관객을 사로잡는다. 극중 자동차가 뭔지 모르는 모습처럼 마을 사람 대부분은 카메라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 덕분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담아낼 수 있었다고. 최근 자신이 '찌들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교실 안의 야크>를 꼭 챙겨보길 권한다.


2021(6회) 국제경쟁 알피니즘과 클라이밍 작품상

<에베레스트 - 험난한 길>

산, 등산에 일절 관심이 없어도 '에베레스트'를 모르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는 산악인들에게 정복해야 할 최후의 목표나 다름없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도전하는 사람들과 현지인 셰르파들이 함께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에베레스트 - 험난한 길>은 알파인 방식, 즉 산악인이 본인의 짐을 모두 짊어지고 등반하는 방식으로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슬로바키아 산악인 네 사람의 이야기다. 진작에 “험난한 길”(The Hard Way)이라고 알파인 방식이 무모하다 말한 산악인 크리스 보닝턴과 1988년 알파인 방식으로 등정에 도전한 네 사람에 대한 회고를 <에베레스트 - 험난한 길>에서 만날 수 있다.


2021(6회)국제경쟁 모험과 탐험 작품상

<폭풍 속으로>

스포츠에서 참 많이 쓰는 표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처럼 스포츠는 소외된 이들이 자신의 신체와 열정을 믿고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드는 분야이기도 하다. 페루 빈민가에서 자란 조니 역시 이런 기적을 일군 스포츠인이다. 프로 서퍼가 꿈이었지만 환경에 번번이 부딪히던 조니는 멘토를 만나며 점점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순탄치 않아 그야말로 스포츠 영화보다 더 스포츠 영화 같은 전개가 펼쳐진다. 한국에도 서서히 서핑족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조니의 이야기로 희망과 서핑의 즐거움을 즐겨보자.


2021(6회) 국제경쟁 심사위원 특별상

<클라이밍>

2021년 6월 개봉해 관객들과 만난 국산 애니메이션 <클라이밍>.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클라이밍 선수가 사고를 당한 후 '나'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상황을 김혜미 감독의 독특한 연출로 풀어내 관객을 홀린다. 척 보기에 개성적인 화풍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상영작 리스트 중 유일한 애니메이션이라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데, 대신 전개부터 분위기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란 점을 잊지 말자.


2021(6회) 국제경쟁 심사위원 특별언급

<동굴 속으로>

<동굴 속으로>는 상영 시간 15분으로 가장 짧은 다큐멘터리지만, 그 강렬함만큼은 결코 밀리지 않는다. 어떤 설명 없이 '동굴'의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고 곧바로 동굴을 탐험하는 인물을 비추며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한다. POV와 관찰자 시점을 오가는 프레임은 보는 사람마저 점점 숨쉬기 어려운 간접 체험을 선사한다. 폐소공포증이 있다면 웬만하면 도전하지 않는 편을 추천한다.


2022(7회) 국제경쟁 알피니즘과 클라이밍 작품상

<그리움의 얼굴들>

세상은 성공한 산악인들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모든 등반이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움의 얼굴들>은 등반 과정에서 동료를 잃은 산악인들의 인터뷰를 모은 작품이다. 웃는 얼굴이지만 입을 열자마자 눈물이 맺히는, 차마 카메라를 보지 못한 채 기억을 떠올리는 산악인들의 모습이 카메라 너머로까지 그 슬픔과 상실을 전한다. 산 자가 기억하는 회상들 사이로 산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모습이 중간중간 삽입돼있다. 산악인들이라고 마냥 영웅이 아니란걸, 어쩌면 그래서 그들이 위대하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