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해고도>는 원작이 없다. 연출을 한 김미영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가장 먼저 있지도 않은 원작을 찾게 된다. 리얼리즘과 자연주의를 오가며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이음새를 이어가는 이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영화는 그만큼 풍성하고, 캐릭터들에게서는 하나같이 더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절해고도>를 만든 김미영 감독은 근 십여 년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로 활동했고, 이미 앞서 <일어서는 인간>(2016),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2018) 등 두 편의 장편을 만든 감독이지만, 앞선 영화들이 많은 관객과 만나진 못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한국영화감독조합 메가박스상 등을 수상한 <절해고도>는 보다 큰 규모로 개봉해 김미영 감독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알려질 계기가 될 것 같다.
<절해고도>는 감독에게도 피할 수 없는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는 영화다. 조각가로 활동해 왔지만 원하던 예술도 생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중년 남자 윤철(박종환), 미대 진학 대신 갑자기 출가를 택한 윤철의 딸 지나(이연), 그리고 이혼한 윤철 앞에 나타난 새로운 사랑이지만, 삶의 극단에 처한 영지(강경헌). 이들 모두 서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실은 각자의 마음의 섬 안에서 따로 또 존재하는 인생의 수행자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절해고도)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에서 출발한 영화는, 희망을 놓치지 않고 그들 섬 사이를 이어 줄 관계의 다리를 찾아 나서는,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영화다.
<절해고도>는 <일어서는 인간>(2015),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2018)에 이어 감독님의 세 번째 연출작인데요.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두 작품 모두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런 삶이 보편적인 삶과 접점이 있는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서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내가 ‘영화 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의 첫 번째 정체성인지 가족, 친구, 사회에서의 관계 안에 위치시켜서 인물을 점검해 보고 싶었어요. 예술가의 작업이 아니라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확장해서 한번 이야기해보자 했어요.
‘조각가’ 윤철의 내레이션으로 그 지점을 풀어가는데요. 그는 자신이 원하던 조각가로서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지도 못했고, 세상과 타협하지도 못하는 회의적인 인물이에요. 매일 조각품을 만들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은 ‘조각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함이랄까요. 조각가, 조각이라는 모티브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조각하는 친구들과 친해요. 학교 때부터 근 20년을 봐왔는데, 성공과 무관하게 꾸준히 작업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만둔 친구들도 있어요. 그들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 앞에서 초라하고 작아지는 순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둔 선배가 “넌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지만, 그만둬서 자유롭다”라고 하는데 그 말이 깊이 남았어요.
윤철과 딸 지나의 관계가 흥미로운데요. 윤철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순수예술가로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면, 오히려 그가 갖고 싶었던 아티스트의 재능은 고등학생인 자신의 딸에서 발견되는데요. 부녀간의 양육과 보호를 떠나 여기엔 묘한 부러움의 감정이 뒤섞여 있어요.
두 가지 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가지는 않지만 궁금해하는 길이 있어요. 지나의 선택은 윤철이 가지 않았지만 가보고 싶었고 궁금했던 길이었죠. 사실 부모 자식이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할 때, 부모가 성과를 이루었을 때 자식이 갖는 압박감이 적지 않아요. 피카소의 자녀들이 힘들어했다고 해요.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자신들과 동일시하잖아요. 그런데 예술가들은 자신의 경쟁자라고 생각해요. 자식을 독립된 존재로 보는 거죠. 처음엔 아버지와 딸 대신, 어머니와 아들로 관계 설정을 하려고 고민했었는데,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너무 정서적으로 밀착되어서 이런 거리 두기를 묘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버지와 딸이면 충분히 서로를 동료로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생기겠다, 그래서 지금의 캐릭터로 바꾸었어요.
그런 면에서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수행을 떠난 지나의 결단은 윤철의 지지부진할 정도로 잔잔한 일상의 흐름에 파장을 일으키는데요. 수행이 중요한 모티브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실제로 친한 친구 중에 20대 때 스님이 된 친구가 있었어요. 조각을 그만두고 일반 직장을 갔었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4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또 다른 길을 찾아가더라고요. 종교를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과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아요. 자신이 선택하는 삶이고 그 안에서 만족하면 계속 그렇게 살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열려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예술가나 종교인이나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이 시나리오를 쓸 때 ‘인생을 리셋하라’ 이런 류의 책이 많이 나왔어요. (웃음) 그런데 리셋을 해도 완전히 자기가 아닌 사람으로 살기는 힘들어요. 저는 오히려 ‘윤철이 딸을 통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성에 차지 않다가, 자기와 같은 예술적 재능을 가진 딸이 다른 길을 가는데 그 선택을 인정해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완전히 리셋하지 않고도 지금의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수행을 시작한 딸을 멀리서 바라보며 “내가 그려보았던 미래였다. 머릿속에만 있었지만 내 인생이었다”라고 하는 내레이션에서 딸에 대한 부러움까지 읽히는데요. 이후로는 부녀 관계에서 벗어나, 딸에게 예우를 하죠. 부녀지만 수시로 관계 설정을 다르게 하는 것이 극에 리듬을 안겨주는데요.
윤철은 말로는 예술가가 못되면 스님이나 수도사가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죠. 하지만 윤철 역시 이미 어느 정도 그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영화의 전반부에서 윤철이 허황되고 지질해 보이는 건 자신의 속마음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런 것들이 투명해지죠. 딸만 수행한 게 아니라, 자신도 수행자에 가까운 삶을 살아요. 굳이 조직에 속해 그 힘을 빌지 않더라도 일상 안에서 자신의 삶을 수행하듯 살기 시작하는 거죠.
박종환 배우가 혼란스러운 전반부의 삶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는 윤철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 주는데요.
배우가 정말 잘 표현해줬어요. 이혼을 했고 딸은 자기 길을 찾아 떠난다고 하고, 예술가로 자신의 삶도 지지부진하던 모습이 전반부라면 더부룩한 머리를 넘기고 나왔을 때, 누구지? 할 정도의 맑은 표정을 보여줘요. 종환 배우가 시나리오 리딩을 많이 하고, 의견을 많이 줬어요. 어떻게 표현을 하든 종환 배우가 가진 것을 윤철이라는 캐릭터에 나눠준 거 같았어요. 종환 배우님에게 윤철에 관한 거의 모든 걸 맡기게 됐죠. 시나리오에 표현된 이상으로 캐릭터 감정의 폭을 배우가 넓혀줬어요.
전후반의 변화된 모습은 지나에게서도 확연하게 보이는데요. 예술가적인 자의식을 드러내던 전반부에서 수행을 하면서 자연에 동화되어 점점 해맑게 변해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이연 배우가 지나의 그런 면모를 배우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표출해 내고 이야기의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 주는데요. 특히 배우가 삭발을 해야 하는 과제도 있었고요.
이연 배우가 출연한 <담쟁이>(2020) 개봉 당시 토크하는 모습을 봤는데, 활짝 웃고 자유로운 모습이 너무 좋아서 꼭 같이하고 싶었어요. 생각해 보면 정말 선물과 같은 캐스팅이었어요. 이연 배우는 정말, 실질적으로 이 영화가 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 사람이었어요. 삭발은 현실적으로 배우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죠. 다른 배역에 제한이 오니까. 저희도 그 부분은 알고 있었고 가발이나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가 먼저 자르겠다고 결단을 해줬어요. 놀라운 결단이었다고 생각해요. 짜여진 대로 연기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캐릭터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배우였어요. 그런 지점이 종환 배우와 잘 맞아서 좋은 합을 일으켜 준 거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 영화, 특히 캐릭터는 영화를 하는 연출가로서, 아티스트인 감독님의 자의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윤철과 감독님을 동일시하는 건 아니지만, 윤철의 갈등에 앞에, 감독 김미영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는 것이 <절해고도>로 가는 가이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전공은 전자계산학과였는데 그와 별개로 워낙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누에’라는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서 제작도 하고, 방학 때는 작품도 찍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영화 공부하려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갔죠.
저에게는 영화잡지 「키노」 기자로 일하다 영화를 연출한 기자 출신의 감독으로도 익숙해요. (웃음)
기자 생활을 아주 오래 하지는 않았는데…(웃음) 사실 영화아카데미에서 졸업 작품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때 마침 평론가 정성일 선생님이 「키노」 기자를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일하다가, 음악 관련 기고도 하고, 또 서울대 미학 대학원에 갔어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전함 포템킨>)의 몽타주 이론에 대한 논문을 썼어요. 이후엔 임권택 감독님 현장에서 근 10년 정도 연출부 생활을 했어요. <하류인생>(2004), <천년학>(2007), <달빛 길어올리기>(2011)에 참여했어요. 그러고 보면 그 길을 터준 것도 정성일 선생님이셨어요. 어떤 영화를 추구해야 할지에 대한 길을 이야기할 때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와닿았고, 임권택 감독님에게 배운 것도 많았어요.
어쩌면 감독님은 윤철처럼 흔들리기보다는 영화를 향해 직진으로 달려온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영화가 저한테는 가장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영화를 찍었는데 성과를 못 내면 좌절감이 올 때도 있지만, 좋은 작품을 보면 또 치유가 되기도 해요. 좋은 작품들을 보면, 좌절하는 주인공이 꼭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극복하지 못하는 작품들도 많죠. 우리 모습을 보면 성공이라든가, 잘 됐다는 식의 인과로 흘러가 결론이 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계속 부딪히고 알 수 없는 미래와 채워지지 않는 현재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거죠. 좋은 영화들은 이렇게 막막한 사람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일종의 각성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보여주는 영화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간의 변화가 극명하게 인물의 변화와 상호 작용하는데요. 도심에서 펼쳐지는 전반부의 리얼리즘 영화가 이후 지나의 수행 이후 사찰로 오면서 자연주의 영화로 변모하는 것 같았어요. 공간이 주는 톤앤매너를 어떻게 설계하셨나요.
도심에서는 카메라가 배우들을 따라가면서 테이크를 길게 갔어요. 후반부에서 수행센터와 절로 들어갔을 때는 인물들이 움직이기보다 차분하게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듣는 걸 담는 거여서 카메라를 고정해서 캐릭터들이 말하는 걸 지켜보는 데 중점을 뒀어요.
트렌드가 된 힐링 코드, 팬시함을 강조하는 ‘템플스테이’와는 사뭇 다른 공간 설정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큰데요. 촬영 장소의 선정에서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소 물색과 섭외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소박하고 작은 수행센터에서 찍었어요. 제가 명상수련을 꾸준히 해왔는데 거기가 5년 이상 제가 다닌 수행센터이기도 해서 주변을 정말 잘 알아요. 그게 로케이션을 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 나온 강아지 ‘천방이’도 여기 사는 강아지고,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멧돼지가 다니던 길도 그대로 썼어요. 촬영하면서 배우, 스태프들과 한 방에서 상 펴놓고 밥 먹고, 서로 더 알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너그럽고 친절해졌어요. 마음이 편한 공간이었어요. 촬영감독님과 다른 절에도 가봤는데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 거기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엽서의 이미지처럼 보이는 공간과 달리, 이곳은 삶이 지속되는 공간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수행도 일상의 연장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소박한 공간을 찾은 이유예요.
자연 안에 인물이 하나의 요소로 공존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은 임권택 감독의 영향이 보이는데요. 윤철이 스님 복장으로 수행을 하는 지나를 보면서, 예의를 갖춰 그를 이 공간 안에 동화된 이로 존경을 담아 바라보는 장면이 대표적인데요. 마치 <만다라>나 <아제아제 바라아제>같은 불교 소재 영화는 물론이고, <서편제>나 <천년학>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이 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에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느껴졌어요. 감독님 스스로는 그 영향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감독님 영화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계절을 발견했어요. 감독님께서는 사계절을 너무 명확하게 알고 그걸 표현하려고 하는 연출자였어요. 이 작품을 찍을 때 감독님이 연출한 <안개마을>(1983)을 레퍼런스로 삼아서 촬영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정윤희 배우가 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장면이 많아요. 임권택 감독님이 인물을 팔로우 하는 그런 방식이 너무 좋았어요. 풍경이 인물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는 건데, 그 방법을 잘 쓰면 우리 영화에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목의 ‘절해고도’( 絕海孤島)는 육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외딴섬이라는 뜻인데요. 영어 제목 역시 절해고도의 뜻을 표현한 ‘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로 쓰셨어요. 각자의 섬에서 갇힌 이 영화의 캐릭터들이 결국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에서 관객들이 삶의 방법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은데요. 감독님이 ‘절해고도’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절해고도라는 말은 한번 써보고 싶은 제목이기도 했어요. 영화를 개봉하면서 시집을 만들면서 책에 글을 썼는데요. 뭘 써야지 고민하던 중에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의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이 생각났어요. 책의 내용과 별개로 그 책을 제 방식대로 해석한 내용이 있는데요, 그걸 바탕으로 섬에 대한 생각을 키워왔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각자가 섬이지만,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건너가야 하는 것 같아요. 배를 만들어서라도요. 어쨌든 끝까지 그 섬에 혼자 있지 않도록. 누구나 인생의 한 시기에는 각자의 섬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그래서 어쩌면 이 이야기는 각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 혼자인 사람의 여러 시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각자가 지금 살고 있는 삶에는 사실 다른 형태의 삶에 대한 열망이 함께 한다는 거. 이 작업을 통해서 그런 사람들을 존중해 주고 싶었어요.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모든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알아가고 배워가는 그런 인물에 관한 이야기 같고. 스스로 부정하지 않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매일을 새롭게 하라는 뜻) 하면서 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웃음)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