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모두가 기억하는 손기정이 아니다. <1947 보스톤>에서 주목하는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결승선을 통과해 울분을 삭이며 살아가야 했던 손기정 선수의 다음 세대, 그 10년 후에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마라토너 ‘서윤복’을 전면에 내세워 집중 조명하는 프로젝트다. 손기정이 가슴에 달지 못했던 태극기를, 해방된 조국에서 서윤복은 결국 가슴에 달고 결승선을 통과한다.

<1947 보스톤>은 가난에 배곯고 해진 신발로 뛰던 시간을 지나, 보스톤으로 가 마의 하트브레이커 언덕을 넘어, 지나던 개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서윤복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바로 그 상황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불러온다. 한국인에게 마치 실시간인 것처럼 전달되어 마땅한 감정의 스펙터클을 불러오는 과정, 아니 업적이다. 1999년 <쉬리>로 한국 블록버스터의 서막을 연 강제규 감독의 작품 흐름 안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광복을 중심으로 <태극기 휘날리며>(2004)와 <마이웨이>(2011) 사이에 자리한 대장정의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 장면을 보고자 하는 집요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마이웨이>에서 한국 현대사 안에 고통받던 마라토너 준식(장동건)의 바통을 잇듯, 임시완은 시대 안에서 그 무게를 느끼며 실존했던 당시의 인물, 서윤복으로 거의 ‘살아간다’. 준비부터 촬영까지 8개월의 시간, 임시완은 그 과정을 단련한 자신에 대해 “마라토너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미(semi) 마라토너’ 정도는 된 것 같아요”라고 되돌아본다. 마라토너로서의 외적 조건은 기본, 이번에도 결승선을 통과하는 임시완의 얼굴, 표정은 도저히 임시완이 아닌 서윤복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감정의 고조를 담아내는데도, 장르에서 선과 악의 표현에도 유효했던 임시완의 눈빛은 이제 서윤복에게 꼭 맞게 장착된다. 1947년 개인을 넘어 해방된 조국을 알리고자 전력 질주했던 한 마라토너의 간절한 바람의 눈빛으로 변환된다.


임시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작품이 끝난 뒤에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있다고 알려졌는데요. 그전에도 뛰는 데 취미가 있으셨나요.

이 작품 하기 전에는 뛰는 거에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운동은 직업적인 게 아니었으면 아마 접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렇게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원체 혼자 사색하고 생각들 정리하는 그런 시간 갖는 거 좋아하고 그래서 사실상 저는 운동이랑은 굉장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거든요. (웃음)

그런데도 뛰는 게 큰 도전인 영화를 선택하셨네요. (웃음)

물리적으로 뛰어야 된다는 그런 신체적인 부담감보다는 실존 인물을 해석하고 표현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더 컸어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분이시기 때문에 더 그랬죠. 전 그런 분들의 발끝에도 못 따라가긴 하겠지만 그분들이 당시에 가진 열정이나 간절함을 폄하하거나 깎아내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훨씬 더 커서 그래서 이 작품을 하기까지, 내가 그런 각오가 돼 있는가 라고 스스로 질문을 했던 것 같아요.

<1947 보스톤>

작품이 가진 매력, 이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였죠. 그 힘이었어요. 가슴 뭉클함이 있는 거예요. 이런 마음이 드는 작품은 굉장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단순히 그런 마음만 가지고서 결정을 하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이 컸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읽은 날이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였거든요. 마침 그날 밤에 변요한 형을 만났는데, 이런 제 고민을 이야기했죠. 마음에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형이 ‘그런 마음이 들으면 하는 거지 뭐’ 이런 식으로 툭 던졌어요. 형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 결정적이었어요.

<태극기 휘날리며>(2004)와 <마이웨이>(2011)로 이어지는 강제규 감독의 분단 3부작으로 읽히는 작품이에요. 강제규 감독의 작품에 참여하는 데서 오는 감흥은 어떤 것이었나요.

한국 영화 산업은 강제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을 하잖아요. 그런 대단한 감독님과 이 작품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제가 할 수 있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기억하기로는 처음에 가족과 같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게 <쉬리>(1999)였거든요. 초등학생 때였는데 영화에서 유도하는 어떤 그런 감정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온전히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였던 때였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이인데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상황이 너무 가슴이 절절하고 먹먹한 거예요. 어릴 때인데도 그 감정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먹먹함이 꽤 오래 가서 정말이지 거의 한동안 영화를 못 볼 정도였어요. 그 정도로 제게 영향력이 컸었던 작품을 만든 감독님과 성인이 돼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님과 실제 작업을 하면서 느낀 만족도는 어땠나요.

일단 인품 자체로 완성이 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촬영 현장이라는 것 자체가 정말 불특정 변수에 무방비로 노출된 곳이잖아요. 그렇다면은 그런 변수들을 통제하고서 주어진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을 텐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언성을 높이는 걸 들은 적이 없거든요. 그런 부분은 저도 꼭 좀 인생에서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적인 측면에서 느낀 건 감독님이 어떤 놀이터 같은 공간을 만들어 주셨다는 거예요. 배우들이 그 공간에서 열심히 재미있게 놀고 그 노는 모습을 찍어내는 거죠. 감독님이 굉장히 굉장히 큰 놀이터를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을 해요.

무엇보다 마라토너의 몸을 만드는 게 선결 과제였어요. 체지방을 6%로 유지하며 마라토너의 몸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첫 촬영이 들어가기까지 한 3개월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촬영하는 과정이 한 5개월이었죠. 이 기간만큼은 내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마인드 세팅을 하고서 임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연기자보다는 선수에 가까운 일정들을 소화했죠. 아침 훈련하고, 점심에 PT 하러 가고 또 저녁에 다시 또 보강 훈련도 하고, 삼시 세끼 닭가슴살 먹고 이게 일상의 기본값이었어요. 그리고 촬영 기간에는 이 기본값을 계속 유지해야 하잖아요. 근육 운동을 해 놔도 근육이 수축이 되니까 팽창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컷과 컷 사이에 계속 전문 트레이너님이랑 같이 운동하고, 슛 들어가면 또 뛰고 이런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저희 현장에 오는 밥차가 정말이지 손에 꼽힐 정도로 맛있는 밥차였어요. 근데 저는 옆에서 그걸 먹는 걸 보면서 닭가슴살, 샐러드 먹는 게 5개월 촬영하는 동안 제 일상이었어요. 정말 간간이 맛있는 거 먹을 때가 되면,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죠. (웃음)

<1947 보스톤>

태극 마크를 단 실존 인물이 가지는 무게까지 부담감이 큰 역할이라, 오히려 그 부담을 떨쳐야 하는 마인드 컨트롤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조금 반대였어요. 저는 어떤 느낌이었냐면 그 정도의 마음가짐을 갖고서 시작을 하니까 시작부터 역치가 좀 커졌다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지나고서 돌이켜 보니까 ‘고생을 많이 하고서 찍었구나’ 싶은 거지, 그때 당시에는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뛰어야 하니까 뛰어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더 컸어요. 저는 42.195km를 다 뛰는 실제 선수들과 달리, 컷! 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으니, 진짜 선수들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죠. 어떻게 실제 선수나 실존 인물을 따라가겠어요.

시나리오가 있지만 실존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그 흔적을 찾는 과정도 필요했을 것 같아요. 손기정 선수에 비하자면, 서윤복 선수는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데요. 어떻게 그 캐릭터를 분석하셨나요.

저도 좀 의아했던 게 이렇게 역사적으로 대단한 분이었음에도 생각보다 자료가 손쉽게 찾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서윤복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에 있어서 저의 상상력도 가미가 됐어요. 평상시 성격들, 어떤 상황을 대했을 때 나오는 그런 성격들을 상상하면서 풀어내려고 했어요. 일단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좀 색달랐던 것이, 서윤복은 손기정 선수를 굉장히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인데 막상 그 앞에서는 굉장히 시니컬한 불만 덩어리인 것 같았어요. 맞아요. 그런 게 저로서는 되게 좀 색다른 모습이긴 하더라고요. 근데 사실 또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이 영 공감이 안 되는 건 아닌 게, 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기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더 틱틱거리고 더 표현 못 하잖아요. 그런 감정들이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연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별다른 터치가 없으시더라고요. 아, 이런 방향으로 가면 되겠다는 싶어서 그때부터 점층적으로 그걸 더 쌓아나가려고 했었어요.

<1947 보스톤>

결국 바라던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손기정과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렵지만 결국 태극마크를 단 서윤복은 세대도 사고방식도 다른 인물인데요. 두 캐릭터의 밀당과 애정의 케미스트리가 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돼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임시완이 상대 배우와 만들어 낸 케미스트리를 잊지 않고 있기에 항상 기대하게 되죠.

이 작품에서는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네가 이렇게 하자, 어떤 그런 것들이 없이 그냥 되게 스무스하게 흘러간 느낌이거든요. 이렇게 가는 게 굉장히 이상적인 작업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의견을 제안하고 연기적인 분석을 언어화시켜서 서로가 서로에게 공유하면 온전하게 그런 가치관이나 생각을 전달하지 못하고 어떤 그 단어에 묶여서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방해한다고 생각을 해요. 어떤 단어가 없이 맞아 들어맞았을 경우 (하)정우 형과 저와 감독님과 무언의 뭔가가 통하는 거잖아요. 두 분 생각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전 ‘너무 잘 맞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찍었었어요.

서윤복 선수가 보스톤 대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1등을 한 것은 실제 기록이자 사실이지만, 영화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 순간의 스펙터클과 감동은 온전히 영화를 봐야 알 수 있는 감흥이자 관객에게 주는 선물인데요. 그 장면을 찍을 때도 그런 무게와 감흥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전 어떤 세계대회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신체적으로나 선천적으로 되게 뛰어난 많은 사람을 앞지르고 거기에서 1등을 할 때 정말 짜릿했어요. 의미가 더 더해진 게, 결승전 신을 찍을 때 관중들이 현장에 꽤 많이 있었어요. 보조출연을 하시는데도 그분들도 저를 1, 2등을 다투고 있는 선수같이 봐주시는 거예요. 지나갈 때마다 막 박수 쳐주고 썸업(엄지 척)해 주고 그런 것들을 느끼니 제가 감정 이입이 쉽게 되더라고요. 당연히 이길 걸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서는 꼭 1등을 했으면 좋겠다 싶고, 1등 했을 때 그런 뭉클함이 그분들의 응원과 격려 덕에 더 끓어오르는 것 같아요.

<1947 보스톤>

관객으로서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바로 그 지점, 서윤복을 연기한 임시완의 얼굴, 눈빛에서 전율을 느낄 텐데요. 먼저 임시완 본인은 스크린에서 그 순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그간의 혹독한 관리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도 같아요. (웃음)

제일 고급 진 연기는 그런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감정의 상황이었을 때 그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완벽한 연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추구한 건, 마지막에 들어오는 장면에서 그 표정을 찍을 때 ‘서윤복이 들어올 때 어떤 표정이겠지’라는 계산으로 그 표정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배제하고자 했어요. 정말 뛰고서 거의 끝 지점에 들어오기 직전에 내가 1등을 하겠다 하는 그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는 상태의 눈을 찍었는데 그게 ‘내가 바라던 그 눈이었더라’가 저의 근본적인 목표였죠. 실제로 그때는 현장에서 뛰긴 뛰었으니까, 정말 좀 많이 뛰긴 많이 뛰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게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은 하고 있어요.

드라마 <미생: 프리퀄>과 <변호인>으로 2013년 그해에 ‘배우’ 임시완으로 강렬하게 각인되어 여기까지 왔는데요. 어느덧 10년 차 배우가 됐어요. 그런 면에서 정말 꾸준한 연기 마라토너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의 마라톤이 배우님의 삶과 연기에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좋은 영향을 끼쳤어요. 일단은 원초적으로 마라톤을 계속하면서 체력이 길러질 수가 있잖아요. 10km 그 긴 거리를 하루 만에 뛸 수 있는 체력이 길러졌어요. 이 작품 덕분에 지금도 마라톤을 하고 있는데, 션 형님이 함께 뛰는 크루('언노운 크루(Unknown Crew)'로 활동 중인 박보검, 윤세아, 이영표, 장호준 코치 등)가 있으니 같이 뛰자고 해 주셔서 확장된 것도 신기해요. 잘 뛰는 분들을 보면서 저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건강한 취미를 가지다 보니까 또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분들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크루 분들이 사회적으로 되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라, 그런 분들의 틈에 있으니까 저 역시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더 경각심을 가지게 되고 좋은 연쇄 작용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 같아요.

<1947 보스톤>

한창 촬영으로 연습할 때와 지금 기록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보통 이제 km당 시간을 재요. 마라톤 러너끼리는 그걸로 소통해요. 가령, ‘오늘 5분대였어’ ‘오늘은 4분 30초대였어’ 이런 식으로 이렇게 대화를 하거든요. 제가 영화 찍을 때 손기정 마라톤 대회도 나갔었는데, 그때는 꽤 빨리 뛰었던 것 같아요. 10Km당 41분 정도였는데 그 기록은 지금은 못 깨고 있고 현재는 10킬로당 50분 정도 기록이에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2> 출연 소식을 비롯해 앞으로도 보여줄 것들이 많은데요. 바쁜 활동 가운데 평정을, 자신의 호흡, 페이스를 유지하는 본인 만의 방법론이 있다면요?

연기하는 과정 중에는 그 쌓아온 어떠한 가치관들을 표출하는 것이지 쌓는 과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새로운 캐릭터를 또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뭔가를 쌓아야지만 가능한데 작품을 계속 찍으면 찍을수록 소모를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평상시에는 좀 많이 담으면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저의 기본 성향이랑은 다르지만 (웃음), 열심히 열심히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생활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일상생활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소소한 거지만 이를테면 빨래를 한다든가 설거지를 한다든가 청소를 한다던가 공과금을 낸다던가. 일할 때는 이런 것들이 배제되는 때도 있어서 평상시에는 그런 생활들에 굉장히 집중하려고 해요. 배우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그런 감성들을 충족해서 나가려고 노력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어요.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