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제공=AA그룹)

이 정도 얼토당토않은 B급 캐릭터를, A급 배우가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강동원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판타지와 사극을 섞은 <전우치>(2009)의 독특한 시도를 날아오르게 한 건 ‘아무렇지 않은 듯’ 와이어에 매달린 그의 도전 덕이었다.

강동원에게 거듭 물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사실 정해져 있다. 강동원의 성격을 닮았고 대변하는 수식이 없는 건조한 말투로 항상 “재밌으면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게 전부다. 물론 우리는 다르다. 많은 배우 중 강동원의 필모그래피는 해석하고 싶어지는 선택이다. 인기 정점의 배우가 가는 행보는 당연히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분명 막혀 있던 투자와 제작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특히 마이너한 소재나 장르라면 이들의 선택이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불가능했던 장르가 만들어지고, 대중적인 파급력이 생기고, 설득력이 더해질 날개가 달린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이 예사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판타지와 호러, 그중에서도 귀신을 쫓는 오컬트 장르가 섞이고, 액션까지 가미된 이 영화는 아마도 시나리오만 봤다면, 얼토당토않을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을 작품이다. 감독이 영화를 처음 만드는 신인이라는 점도 세련되거나 정돈되지 않은 이 영화의 완성이 울퉁불퉁해지는 데서 그칠지 매력적으로 전달될지 퀘스천 마크로 남는 사항이었다.

바로 전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브로커>(2022)를 선보인 강동원은 <의형제>(2010), <1987>(2017) 같은 자신의 리얼리즘 계보도로 읽히는 작품과는 또 다른 한 축인, 그러니까 아마도 강동원이 ‘천박사’에게서 본 건 <M>(2007)과 <전우치> 같은 거대한 상상력과 <검은 사제들>(2015)의 장르성, 그리고 <검사외전>(2016)급의 코믹함을 더한 흥미진진함이 아니었을까. <검사외전>의 사기꾼처럼, 가짜 퇴마사로 활동하는 천박사에게는 파 보아야 할 비밀이 있다. 실은 그가 당주집 장손이자 집안의 비밀이 있었다는 본색을 드러내는 것과 정비례해 영화의 후반부는 판타지 액션 오컬트 장르의 본색을 더한다. 강동원 자신이 의식하든 아니든, 그가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대중영화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낯설거나 신선한 이 도전을 이제 우리가 즐길 일만 남았다.


강동원 (제공=AA그룹)

판타지가 가미된 독특한 장르의 작품인데, 이 작품을 하게 된 경위가 궁금한데요.

임필성 감독님 소개였어요. 제가 임 감독님과 미국에서 합숙하면서 시나리오 브레인스토밍을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감독님이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면서 류승완 감독님을 소개해 준다고 하셨어요. (웃음) 류승완 감독님과 잘 알았지만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하지는 않았거든요. 그 참에 감독님이 운영하시는 회사 외유내강에서 준비 중인 시나리오를 보내주셨어요. (김)성식이라고 괜찮은 친구가 있는데 감독님 영화 연출부 출신이기도 하고 괜찮다며 시나리오를 주시더라고요.

임필성 감독님의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라는 어떤 의미였나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과 대할 때 차이가 큰 편인가요?

제가 좀 새침한 캐릭터일 줄 아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 성격은 전혀 그런 쪽은 아닌데. 그리고 제가 그때 제가 해외에서 무에타이 훈련을 엄청 오래 하고 돌아왔을지 얼마 안 됐을 때라 그 훈련 영상들을 보여줬더니 그걸 보시고, ‘류승완을 만나야 해’ 하셨던 것 같아요. (웃음) 아무래도 류 감독님이 액션영화를 너무 잘 찍으시고 그런 분이시니까 같이 액션 프로젝트를 하면 좋겠다 하셨던 거죠.

말씀대로 류승완 감독의 회사 ‘외유내강’ 작품이지만, 연출은 입봉을 앞둔 김성식 감독님이셨어요. 시나리오 보고서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전체적으로 시나리오가 호러를 가장한 액션 영화였어요. 시나리오 보자마자 류 감독님한테도 연락해서, “이게 무슨 호러야 액션영화지” 그랬더니 “맞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전우치> 때도 예측 불가의 독특한 판타지 장르에 도전하는 데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런 ‘안전하지 않은’ 선택, 돌출되는 선택을 할 때 감독들이 강동원을 찾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런 선택은 강동원 본래 취향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전 그냥 시나리오 읽고 재밌으면 해요. 제가 워낙 오컬트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고 제가 만화를 진짜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만화라는 만화는 다 읽고 만화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서 일단 만화적인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천박사>도 그런 지점이 재밌어서 했어요. <전우치>와 좀 비슷해 보인다고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일단 두 영화는 틀 자체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천박사>는 조금은 더 나아간 ‘현대판 전우치’ 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게 좀 반갑기도 했어요.

정말 천박사에게서 <전우치>와 <검사외전>에서 봤던 모습이 조금씩 녹아 있어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그런 캐릭터예요. 되게 능글맞으면서도 아픔이 있는 그런 캐릭터로, 보이는 것과 내면이 다른 캐릭터인 거죠. 시나리오 읽으면서 <전우치> 비슷한 느낌도 있는 것 같고 사기 치고 다니는 초반부는 <검사외전> 같기도 해서 그 둘 중간 지점의 캐릭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또 최대한 안 비슷하게 해보려고 했죠. 일단 저는 비슷한 건 하지 말자 주의라서요.

웹툰 원작 <빙의>를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천박사와 일행들이 퇴마를 하는 구조라 속편까지 생각하게 되는데요.

속편은 이번 편이 잘 돼야 가능한 거고요. 또 시나리오를 봐야죠. (웃음)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영화 제작 투자가 규모가 큰 작품들로 몰리다 보니, 실험적이거나 장르성이 강한 작품들은 오히려 OTT 오리지널, 시리즈물들의 시도에 못 미친다 싶기도 한데, 배우로서는 다양한 작품 제안을 받는다는 점에서 기회가 열려 있기도 한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체감과 생각을 하고 있나요.

네, 요즘은 다양한 플랫폼의 작품들 제안이 많이 들어오죠. 어떤 제안이든 흥미롭게 검토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침 제 다음 작품도 넷플릭스 프로젝트기도 하고요(<전,란>). 플랫폼의 확장으로 작품 수도 많아져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장르의 작품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좋아요. 한국에서 만든 작품도 이제는 해외 관객, 시청자들이 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만드는 사람들은 그 지점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변화가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무엇보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탑배우로서 B급 느낌이 강한 장르를 선호하는 건, 판타지 장르 팬들이 상당히 환호할 만한 선택인데요.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전 현실적인 얘기를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대개 극단적인 상황에 넣어놓고 하다 보니까 판타지가 많아지게 돼요. 리얼한 장르는 오히려, 현실에서도 보는데 뭐 굳이 영화로 얘기를 해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리얼한 건 뉴스가 더 다이나믹한 것 같은데… 싶은 거죠. (웃음)

그런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신인 감독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요. (웃음) 신인 감독과의 작품 비중이 꽤 높은 편이에요.

신선한 시나리오를 보고 이거 재밌는데 하고 보면 신인 감독인 경우가 많았어요. 신인 감독님이랑 하는 게 어차피 내 운명인가 보다 하죠. (웃음) 김성식 감독님 같은 경우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현장에서 스크립터 할 때 처음 뵀어요. <군함도> 연출부, <기생충> <헤어질 결심> 조감독 등으로 활동하며, 조연출 계의 에이스로 알려졌던 분이에요. 같은 신인감독님이라도 현장 경험이 많은 분들은 확실히 차이가 나요. 현장 진행이 되게 빨라요. 뭐가 되고 안되고를 빨리 알고 진행을 해주셔서 이번 현장이 정말 편했어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퇴마를 빌미로 사기를 치는 천박사의 캐릭터 플레이가 영화 초반의 재미를 확실하게 책임지는데요. 장르에 대한 호와 이해도가 높은 만큼 이 장면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런 디테일한 설정이 장르물 캐릭터의 재미잖아요.

시나리오에는 그냥 천박사가 ‘굿을 한다, 굿을 할 때 칼을 던진다, 칼로 내리친다’ 정도로 쓰여 있었어요. 유튜브를 좀 많이 찾아봤는데 무당분들이 손님들한테 화를 잘 내더라고요. (웃음) 그게 너무 재밌어서 제가 화내는 거로 설정을 잡았어요. 검이 합쳐진다는 것도 시나리오에는 없던 건데 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리고 김종수 배우가 북을 마지막에만 치는 거로 되어 있었는데 중간에도 치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하도 선배가 북을 들고 쫓아다니는데 들고만 다니지 말고 한번 쳐보라는 의도였죠. 의견을 냈더니 감독님도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장면에서 <기생충>의 지하실의 가족을 연기한 박명훈, 이정은 배우가 부자 의뢰인으로 등장해 영화팬들에게 큰 재미를 주는데요.

그분들이 지하에서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웃음) 감독님이 <기생충> 연출부여서 그런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천박사 캐릭터 설정을 하면서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 있었나요.

레퍼런스 작품은 없었고요. 진짜 무당분들이 하는 유튜브를 보고 발췌를 좀 많이 했고요.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대본에 충실했어요. 천박사가 가진 스토리대로 가자 했죠.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검은 사제들>의 사제복이나 <전우치>의 한복처럼 전형적인 제복이나 전통의상을 강동원이 소화해 캐릭터로 만들어 내는데요. 이들 캐릭터가 인상적인 장르물의 캐릭터로 남기까지, 이런 외형적인 소화 능력이 상당히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평범한 의상으로 느껴져요.

천박사 의상이 딱 한 벌이거든요. (웃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벌만 입어요. 저는 원래 영화 의상에는 의견을 거의 내지 않아요. 영화 의상은 캐릭터에 맞추는 거라고 생각하고, 워낙 전문가들이 잘 하시고요. <검사외전>에서 특징이 된, 이를테면 제가 연기한 치원이 팔을 걷는다, 이런 것도 제가 이야기한 게 아니고 의상팀에서 치원이 뺀질뺀질한 사기꾼 캐릭터니까 그런 걸 살려서 팔을 좀 걷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검은 사제들> 사제복도, 멋있게 보이려고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사제복이라는 말을 전해만 들었지, 전 그냥 입고 한 거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작품은 이른바 강동원의 비주얼이 주는 임팩트를 극대화한 ‘강동원 효과’적인 측면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굉장히 일상적인 비주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승부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물론 강동원의 일상적인 모습이라는 것도 일반 기준과는 다르지만요. (웃음)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면 제 의도로 뭘 한 적은 없어요. 그전에도 사실 어떤 특별한 장치를 한 적은 없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에는 천박사가 그렇게 멋있는 캐릭터는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이 나온 것 같아요. 글쎄, 그런데 또 모르죠, 개봉해서 뭐가 또 얻어걸릴지. 아직 속단하기 일러요. (웃음)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유경(이솜)의 의뢰로 유경, 유민(박소이) 자매가 사는 마을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퇴마사로 본색을 드러내며 판타지 액션 장르의 재미가 펼쳐지는데요. 액션이 극의 80% 정도일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직접 소화한 장면도 많을 것 같은데요.

천박사는 액션을 잘 하는 캐릭터는 아닌데요. 칼의 힘을 많이 받는 캐릭터라 칼에 힘이 없을 때 두드려 맞는 설정이죠. 제가 맞으면 맞을수록 관객들이 좋아하겠구나 싶어서 액션 연기를 거의 직접 다 했어요. 지붕에 부딪히고 떨어지고 이런 것도 거의 다 했죠. 아무래도 이제는 나이를 느껴요. (웃음) 자고 일어나면 옛날보다는 회복이 더디다는 걸 느껴요. 촬영 기간엔 몸이 쑤셔도 무거운 몸을 끌고 오늘도 뛰어야 하네, 이러다 보니 그게 힘들죠. 그때가 12월이라 새벽에 너무 추웠는데 계속 뛰어다니다 보니 힘들더라고요. 우리끼리 속편이 나오면 태국을 무대로 하자, 가서 골프도 좀 치고 따뜻한 데서 하자고 우스갯소리를 했어요. (웃음)

퇴마를 하는 팀플레이라 이동휘, 김종수, 이솜 등 많은 배우와 앙상블 연기를 펼쳐가는데요. 극을 끌고 가는 무게 중심은 확실히 천박사에게 치중되어 있어요. 부담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고요. 이제 영화를 스무 편 넘게 찍다 보니까 작품을 끌고 나가는 적이 많아서 경험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만 극의 리듬은 제가 조절을 하는 역할이니까요. 경쾌하다가 진지하고 이런 흐름의 중심을 잡는 데 신경을 썼어요. 특히 지금은 현장에 선배보다는 후배가 더 많으니 그런 것들도 체감하긴 하는데, 이런 위치에 처한 지도 벌써 좀 돼서 익숙해진 편이에요. 이번 작품은 종수 선배님도 계셨고, 이솜씨랑 (이)동휘가 있어서 제가 중간이었던 것 같아요. 선후배 모두랑 편하게 지내는 편이라 현장에서도 분위기가 좋았어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그런 편안해진 느낌을 이번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확인했던 것 같아요. 예능 출연이 오랜만인데 친근한 모습이 부각되었다고 할까. 반응을 좀 체감하시나요?

모르겠어요 저는. 그런가요? 저는 한 번 딱 있었네요. 길에서 어떤 분이 “유 퀴즈 잘 봤어요” 하시더라고요. 그거 말고는 딱히…. (웃음)

프로그램에서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그게 신인 때 신인상 받고 한 수상 소감이었는데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그냥 계속 이게 제 직업이니까 해왔는데, 이 일이 너무 재밌어요. 처음 데뷔했을 때도 좋긴 했는데 그땐 이 일이 너무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도 별로 안 들고 너무 즐거워요. 그래서 너무 좋아요. 딱히 설명할 말이 없고 좋은데, 갈수록 더 재밌어요. 그 마음이 꺾이지 않을 거 같아서 이 일을 계속 끝까지 하고 싶어요.

연기 외에 제작, 연출에 참여하는 배우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그런 역할도 기대해 보게 되는데요.

제작은 늘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고 그리고 참여를 한 적도 있었어요. 크레디트에는 안 올라갔는데 전작 <브로커>(2022)는 제가 제작에 참여를 많이 했었고요. 지금 따로 제작 준비도 하고 있어요. 내년이나 내후년부터는 성과가 좀 나지 않을까 싶네요. 판타지에 관심이 많아서 주로 그런 장르 작품들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강동원 (제공=AA그룹)


이화정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