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다 함께 보기 좋은 작품들이 나란히 개봉하는 추석 연휴. 한편, 연휴를 살짝 빗겨나면 개성 있는 작품들이 속속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칸에 초청된 소문의 그 작품, <화란>이 10월 11일 개봉한다. <화란>은 희망 없는 세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두 인물 ‘연규’(홍사빈)와 ‘치건’(송중기)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누아르 영화다. 22일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와 기자간담회에서는 개봉 전, 영화를 미리 보고 배우와 감독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이날의 행사를 토대로 <화란>의 첫인상과 관람 포인트를 전한다.

<화란> 기자간담회 현장.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왜 하필 네덜란드였을까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은 네덜란드의 음역어(和蘭)인 동시에, 재앙과 난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禍亂)이기도 하다. 영화 <화란>을 요약하자면, 화란(禍亂) 속에서 화란(和蘭)을 꿈꾸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극중 연규는 ‘명안시’를 떠나 네덜란드(화란)로 떠나고 싶어 하지만, 그는 희망도 미래도 없는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찢어질 듯이 가난한 연규의 집 안에서는 반복되는 새아버지의 폭력만이 그를 기다리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며, 일터에서는 잘린다.

그렇다면, 왜 하필 네덜란드였을까. 극 중 연규의 대사, “거긴 다들 비슷비슷하게 산대요”라는 말에서 연규가 생각하는 낙원의 조건을 짐작할 수 있다. 불평등의 문제로부터 지옥이 시작된 ‘명안시’와는 달리, 적어도 연규에게는 네덜란드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인 것.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은 누아르의 외피 속에 복합적인 화두를 담고 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가난의 대물림 등의 사회문제를 청소년의 시각으로 비춘다는 점에서, <화란>은 여타 누아르 영화와는 분명 차별화된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김창훈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누아르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다”라며, 누아르라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기획을 시작한 건 아니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뒤틀린 어른들과 폭력적인 환경, 그것이 개인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소년이 도리어 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다시 돌려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생선, 날것, 낚싯바늘 … 축축함이 지배하는 영화의 정서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잠깐의 숨 돌릴 새도 없이 시종일관 축축하다. 약간의 뽀송함이 필요할 법도 한데, 줄곧 눅눅한 정서가 러닝타임을 가득 채운다. <화란>은 가족들이 다 함께 보기 좋은 영화는 분명 아니지만, 취향에 맞는 관객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일 작품이다. 15세 관람가라는 등급이 무색하게, 영화의 폭력성과 잔인함의 정도가 센 편이기에, 관람에 앞서 주의를 요한다.

영화는 생선과 낚싯바늘을 주요한 메타포로 사용한다. 그 때문인지, 영화는 날것처럼 퀴퀴하고 불편하다. 불편함을 증폭시키는 폭력과 고통은 ‘희망이 없는 연규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분명 영화적으로 필요한 장치였겠지만, 날것이 으레 그렇듯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수 있다.


송중기가 노 개런티로 출연한 이유

칸에서의 송중기.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치건 역을 맡은 송중기는 자신이 먼저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김창훈 감독에게 역으로 제안을 했다. 송중기는 <화란>의 대본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칠고 스산한 점에 이끌렸는데, 혹여나 자신으로 인해 <화란>의 전개에 상업영화의 흥행 공식이 들어갈까 우려해 노 개런티 출연을 고집했다. 덕분에, <화란>은 상업영화라기보다는 개성 강한 독립영화의 성격을 띠는 작품이 되었다.

자신의 노 개런티 출연이 칸에서부터 화제가 된 것에 대해 “‘송중기가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라고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문장의 중간에는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았다. 오늘로써 이 얘기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속이 후련하다”라고 송중기는 전했다.

한편, 동료 배우들은 송중기가 노 개런티로 촬영에 임하는지 몰랐다고. 홍사빈은 “저는 예스 개런티다”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홍사빈과 김형서 모두가 신인 축에 속하는 배우이고, 메가폰을 잡은 김창훈 감독 역시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데 반해, 베테랑 배우 송중기의 존재는 현장에서 큰 힘이 됐을 터. 결과적으로는 송중기가 <화란>으로 난생처음 칸에 입성하게 됐으니, 출연진과 스태프 모두에게 윈윈이 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칸에서의 배우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 김창훈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신예 홍사빈의 발견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극을 이끄는 연규 역의 홍사빈은 올해의 가장 놀라운 발견이다. 배우 홍사빈은 다수의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신예다. 홍사빈은 티빙 <방과 후 전쟁활동>, 디즈니+ <무빙>에서도 작은 분량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홍사빈은 <화란>에서 말투와 습관, 걸음걸이 하나까지도 연규다운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가정폭력 등으로 인해 위축되어 등이 굽은 자세와 상대를 잘 쳐다보지 못한 채 아래로 향하는 시선 등, 홍사빈만의 디테일은 연규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다만, 홍사빈이 연규를 표현할 때 유의했던 점은 ‘너무 불쌍하게만 보이지 않도록’ 연기하는 것이었는데, 자칫하면 ‘불행 포르노’로만 빠질 수 있는 소재에 대한 이해가 돋보인다.


가수 비비 혹은 배우 김형서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의 가장 놀라운 캐스팅이라면, 단연 김형서(비비)가 아닐까. 김형서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하얀’ 역에 캐스팅되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영화에서 만나본 김형서는 마치 독립영화배우처럼,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면서도 톡톡한 존재감을 뽐내는 배우였다. 비비는 자신의 앨범을 작업할 때도 뮤직비디오를 직접 기획하는 등, 연출과 연기에 많은 관심을 둔 아티스트이기에 영화로의 진출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김형서를 두고 송중기는 “활어처럼 (생명력이) 파닥파닥 뛰는, 본능적인 아티스트”라고 칭하기도 했다.


흥행 치트키 김종수 등 존재감 두둑한 조연들

<화란> 스틸 속 김종수.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 스틸 속 정재광.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올해 가장 흥하는 60년대생 배우라면, 단연 <밀수>, <무빙>, <비공식작전>, <드림> 등의 김종수가 아닐까. 배우 김종수는 추석 개봉을 앞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에 이어 <화란>에도 등장한다. 다만, 두 영화에서의 이미지가 극과 극이기에, 과연 동일인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 <화란>에서 김종수는 조직의 보스 ‘중범’으로 등장해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뽐낸다. 김종수가 맡은 중범 역은 영화 내에서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도, 폭발적인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지만 그야말로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존재’다. 한편, 치건의 부하 ‘승무’를 맡은 정재광은 시종일관 눅눅한 영화에 약간의 프레시함을 불어넣는 조연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