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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월> 메인 예고편

맷 데이먼이 주연을, 장이머우(장예모)가 감독을 맡은 <그레이트 월>이 중국에 이어 한국, 북미에서 개봉했다. 중국영화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하는 빈도가 점점 늘고 있는 와중이라, 만리장성이라는 소재와 감독 이름만 보고 중국영화인가 헷갈릴 수 있다. <그레이트 월>은 중국 부동산 기업 완다 그룹이 미국의 유명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내놓은 첫 작품이다. 어쨌든 할리우드 작품인 셈이다. <그레이트 월>의 복잡한 정체처럼, 할리우드와 중국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그로 인한 변화를 간략히 정리해봤다.


중국 자본으로 제작되는 할리우드 영화

찰리우드(China+Hollywood). 중국의 영화산업을 할리우드에 빗댄 용어다.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중국 영화산업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 시장으로 발돋움했고, 수년 안에 선두를 차지할 거라고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2016년엔 관객수 13억 7천만 명, 박스오피스 수익 460억 위안(한화로 약 7조 7천억 원)을 기록했다.

차이나필름과 <분노의 질주: 더 세븐>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은 비단 자국 영화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전부터 할리우드에 중국 자본이 들어오긴 했지만, 특히 2015년부터 유력한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할리우드에 손을 뻗은 결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국전영유한공사의 자회사 차이나필름은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에 투자해 10%의 지분을 확보했고, 영화는 총 15억 달러(중국에서만 3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여  2015년 개봉작 중 흥행 3위를 기록했다. 중국 수익이 전세계 대비 20%를 넘길 만큼 중국 내의 반응이 뜨거웠다.

알리바바 픽처스와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마윈 회장이 이끄는 알리바바는  기존의 차이나비전 미디어를 인수해 알리바바 픽처스로 이름을 바꿔, 파라마운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 메인 투자로 참여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출사표를 던졌다. 영화가 시작하면 파라마운트 다음으로 알리바바  픽처스의 로고가 떠올랐다. 작년 <닌자터틀: 어둠의 히어로>, <스타트렉 비욘드>에 투자했고, 한동안은  자국영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완다 그룹과 <워크래프트>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완다 그룹 역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다른 기업들이 '투자'나 '합작'으로 접근한 것과 달리, 완다는 '인수'를 전략으로 택했다. 중국 최대 극장체인인 완다시네마를 소유한 완다는 2012년 미국의 극장체인 AMC를 26억 달러에 인수해 세계 최대 극장체인 사업자로 올라섰다.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제작한 <사우스포>(2015)의 제작비 전액을 댄 후, 2016년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쥬라기 월드> 등을 제작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수 직후에 내놓았던 <워크래프트>는 북미 시장에서 쓴맛을 봤지만, 중국에서의 흥행으로 속편이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산둥성 칭다오에 촬영 세트장과 테마파크를 결합한 대규모 영화단지를 건설 중에 있다.

후아후아 미디어와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후아후아 미디어 역시 파라마운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잭 리처: 네버 고 백>, <얼라이드>, <트리플 엑스 리턴즈>에 투자했다.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한 영화들이지만, 차기작이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라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할 만한 행보다. 지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미국의 수익보다 중국의 것이 더 높았던 바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그만!
변화하는 할리우드 영화 속 중국 이미지

할리우드 영화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한정적이었다. 나라의 특색을 사려깊게 고민했다기보다 '미국 바깥의 기상천외한 나라' 정도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적에 가까운 무술, 어마어마한 군대를 거느린 제국, 화려한 색채로 가득한 궁전 등 '오리엔탈리즘'을 재생산하고, 스펙터클을 부풀리는 데에 효과적인 소재들이 꼭 등장했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마지막 황제>(1987)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그 추세는 더욱 두드러졌다. 중국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작품 중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쿵푸 팬더' 시리즈나 <베스트 키드>(2010) 같은 경우도 여전히 그 자장 안에 있었다.

<마지막 황제>
<쿵푸 팬더 3> / <베스트 키드>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중국의 '현재'가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의 전통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 소재를 현대에 단순히 끌어오기만 하는 방향이 아니라, 현대적인 중국을 그리고 있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돌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미국을 바짝 견제하는 나라라는 현실이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1990년대 이전이라면 러시아가 있었을 자리에 중국이 있다. 근래 개봉한 두 편의 SF가 대표적인 예다. <마션>의 주인공이 중국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구출될 수 있었다거나, 최근 개봉한 <컨택트> 속에서 세계의 위기와 평화를 조성하는 키를 중국이 쥐고 있다는 설정은 전적으로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라는 폭넓은 인식 아래 자연스럽게 작동할 수 있었다.

<마션> / <컨택트>

'중국 개봉'을 무조건 사수하라!

중국은 여전히 검열을 통해 외화 수입을 결정하는 나라다. 1994년 <도망자>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개봉하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한해 15편을 들여온 데 이어, 2016년엔 40편의 외화를 수입했다. 대폭 늘긴 했지만 여전히 넉넉한 숫자는 아니다. 편수가 제한된 만큼 수입되기 위한 문턱도 높다. 상영이 허가되지 않은 작품들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동성애 묘사
<브로크백 마운틴>, <왕의 남자>, <클라우드 아틀라스>

폭동 묘사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화려한 휴가>

영혼, 귀신 등장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크림슨 피크>, <고스트버스터즈>(2016)

"시간여행은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나비효과>

중국(홍콩)을 부정적으로 묘사
<미션 임파서블 3>, <다크 나이트>

중국인에 대한 왜곡
<러시아워 3>,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종교 문제
<노아>, <엑스맨: 아포칼립스>(십자가, 예수, 공산당 문양 삭제)

금지 항목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위 작품들이 개봉 불허된 이유로 그 요소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중국의 개봉 불허는 비단 한 나라의 개봉을 거른다는 의미로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화 시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퍼시픽 림>, <익스펜더블 3> 같은 작품은 중국에서의 흥행으로 북미 시장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었다. 때문에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영화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 <픽셀>은 만리장성을 붕괴시킨다는 애초 설정을 타지마할 붕괴로 고쳤다. <그래비티>는 중국이 인공위성을 폭파시켰다는 설정을 러시아로 바꿨고, 중국 우주항공 기술의 우수함을 강조하는 장면까지 집어넣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중국 영화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라 앞으로도 '중국 눈치 보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퍼시픽 림>의 중국 예거 '크림슨 타이푼'
<픽셀> 속 타지마할 폭발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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