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트로피

엄청난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실수라고 해야 할까. 2월26일(현지시간) 미국 LA에 있는 돌비 극장에서 개최된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사에 남을 최악의 사건이 있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최악의 실수 혹은 반전

작품상 시상에 나선 페이 더너웨이(왼쪽)와 워렌 비티. 두 사람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오른쪽 사진)에 출연했다.

시상식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작품상 시상이 진행됐다. 시상자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1967)의 두 주인공 워렌 비티(79)와 페이 더너웨이(76)였다. 내일이 없이 살았던 보니와 클라이드답다고 해야 할까. 두 사람은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렸다. 물론 두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지만.

드럼 소리가 깔리고, 워렌 비티가 작품상 결과가 담긴 봉투를 열었다. 그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듯했다. 으레 듣게 되는 “앤 디 오스카 고스 투(And the Oscar goes to)”를 그는 말하지 않았다. 봉투 안에 다른 카드가 또 있나 살펴보기도 했다. 결국 “아카데미 어워드 포 베스트 픽처…”(아카데미 작품상은…)라고 얼버무리며 발표를 하려다가 카드를 더너웨이에게 넘겼다. 그녀는 곧바로 <라라랜드>를 호명했다. <라라랜드>의 제작자 조던 호로위츠와 감독 데이미언 셔젤, 배우 엠마 스톤 등 스탭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작품상 수상 번복 장면.

작품상 수상으로 <라라랜드>는 14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미술상, 음악상, 주제가상, 촬영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한 줄 알았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전 세계 언론도 모두 당했다. 미리 기사를 써놓고 발표하자마자 기사 송출 버튼을 눌렀던 언론들은 오보를 낼 수밖에 없었다.

<23 아이덴티티>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작품상 번복을 보며 “자신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엔딩을 썼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식스 센스> 등 반전 영화로 유명한 감독이다.

한참 <라라랜드>의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와중에 헤드셋을 낀 스태프가 수상작이 적힌 봉투를 확인했다. <라라랜드>의 제작자 조던 호로위츠는 “실수가 있었어요. <문라이트>가 작품상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워렌 비티에게 전달된 올바른 카드를 관중에게 보여줬다. 거기엔 분명 <문라이트>가 적혀 있었다.

작품상 <문라이트>가 적힌 카드.

워렌 비티는 오스카 트로피를 돌려받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했다. 그는 작품상 직전에 진행된 여우주연상 카드가 담긴 봉투를 받았던 것이다. 작품상은 <문라이트>가 맞다. 이날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두 번의 작품상 수상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문라이트>는 작품상, 남우조연상(매허샬레 알리), 각색상(베리 젠킨스 감독) 등 3개 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케이시 애플렉과 브리 라슨의 어색한 만남

브리 라슨(맨 오른쪽)과 케이시 에플렉(가운데).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많은 이들이 쉽게 예상한 결과였다. 시상자는 지난해 <룸>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리 라슨이었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시상자로 나서 애플렉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문제는 케이시 애플렉이 성추행 사건에 휩싸인 적이 있고, 브리 라슨은 지난해 <룸>에서 납치, 강간당하는 여성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브리 라슨은 지난해 <룸>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애플렉은 2010년 두 차례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 제작자 아만다 화이트와 촬영감독 막델레나 고르카가 애플렉에게 각각 200만 달러, 225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한 측의 주장은 이렇다. 촬영장에서 애플렉은 화이트에게 성적 비하 발언을 했다. 또 애플렉은 다른 여성과 함께 화이트의 호텔 방에 찾아가기도 했다. 고르카 역시 성적 비하 발언을 들었다. 호텔 대신 사용한 숙소인 아파트에서 그녀가 자고 있을 때 애플렉이 티셔츠와 팬티만을 입은 상태에서 그녀의 침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소송은 법정 다툼이 아닌 합의로 정리됐다. 합의금은 공개되지 않았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인해 애플렉의 수상이 이어지자 그의 성추행 사건이 다시 이슈가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조연, 트럼프 대통령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눈에 띄는 조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물론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번 언급됐다. 사회자 지미 키멜과 시상자, 수상자들이 계속해서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했다. 어쩌면 올해가 가장 많은 정치적인 이슈가 등장한 아카데미 시상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는 이미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메릴 스트립 연설에서부터 예상 가능한 지점이긴 했다. 할리우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1960년대 나사에 근무한 흑인 여성을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

회자 지미 키멜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오프닝 무대가 끝난 후 등장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백인은 재즈를 구하고, 흑인은 나사(NASA)를 구했다”라고 말했다. <라라랜드>와 <히든 피겨스>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들의 잔치였다고 비판받은 적이 있다. #OscarSoWhite라는 해시태그도 유행했다. 올해는 달랐다. 키멜은 그 영광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했다.

시상식 사회자 지미 키멜이 트럼프 대통령에서 트윗을 보냈다.
지미 키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실제로 전송한 트윗.

키멜은 시상식이 2시간 정도 경과했을 때 다시 한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얘기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에게 트윗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상식 내내 아무 트윗도 올리지 않는다면서 키멜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극장의 스크린에 띄웠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메릴 스트립이 안부 전한다고 두 개의 트윗(Hey @realDonaldTrump u up?, @realDonaldTrump #Merylsayshi.)을 보냈다.


지미 키멜은 맷 데이먼을 싫어해

각본상 시상자로 참석한 벤 애플렉(왼쪽)과 맷 데이먼.
1998년 <굿 윌 헌팅>으로 각본상을 수상한 벤 애플렉(왼쪽)과 맷 데이먼.

트럼프 다음 조연은 맷 데이먼이다. 지미 키멜은 자신의 TV쇼에서 맷 데이먼과 앙숙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장난이지만 그 관계는 돌비 극장에서도 이어졌다. 끊임없이 맷 데이먼을 놀렸다.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이 각본상 시상자로 나섰을 때도 키멜은 장난을 쳤다. 맷 데이먼이 말을 할 때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나서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보통 수상 소감이 길어지면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투어 버스 탔다가 대박난 승객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실수가 없었더라면 이게 최고의 이벤트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의 투어 버스에 탄 승객들을 돌비 극장으로 초대한 깜짝 이벤트가 있었다. 승객들은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전 세계인들이 보는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시카고에서 온 개리라는 남성이 제일 앞에 서서 배우들과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덴젤 워싱턴은 개리와 그녀의 약혼자 가운데 서서 성혼선언문을 말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의 투어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을 돌비 극장으로 초대했다.
투어 버스에 탔다가 덴젤 위싱턴(가운데)을 만난, 시카고에서 온 개리(오른쪽)와 그의 약혼녀.
천장에서 쏟아지는 간식들.

그밖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많았다. 하늘에서 간식이 세 차례나 내려오기도 했다. 키멜은 <라이언>에서 어린 사루를 연기한 써니 파와르에게 “배고프지 않냐, <라이언 킹>을 봤냐”고 묻고는 <라이언 킹>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장작 전체 리스트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순서대로 수상작을 아래에 소개한다.

<문라이트>
남우조연상 수상 이후.

남우조연상
문라이트 - 매허샬레 알리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루카스 헤지스 
녹터널 애니멀스 - 마이클 섀넌 
로스트 인 더스트 - 제프 브리지스 
라이언 - 데브 파텔 

매허샬레 알리는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첫 무슬림 배우가 됐다. 그는 며칠 전에 딸을 얻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분장상
수어사이드 스쿼드 - 크리스토퍼 알렌 넬슨 외 2명
스타트렉 비욘드 - 조엘 할로우 외 1명
오베라는 남자 - 에바 본 바 외 1명 

<신비한 동물사전>

의상상
신비한 동물사전 - 콜린 앳우드
재키 - 매들린 폰테인 
얼라이드 - 조안나 존스톤 
플로렌스 - 콘소라타 보일 
라라랜드 - 메리 조프레즈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

장편다큐멘터리상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 - 에즈라 에델만
아이 엠 낫 유어 네그로 - 라울 펙 
화염의 바다 - 잔프란코 로시 
라이프, 애니메이티드 - 로저 로스 윌리엄스 
13번째 - 에바 두버네이

장편다큐멘터리상은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 세 명이 시상했다. 영화의 실존 인물인 나사의 캐서린 존슨이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고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오스카를 받은 <O.J.: 메이드 인 아메리카>은 7시간47분짜리 작품이다.

<컨택트>

음향편집상
컨택트 - 실뱅 벨레마르
핵소 고지 - 로버트 맥켄지 외 1명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 알란 로버트 머레이 외 1명 
딥워터 호라이즌 - 윌리 스테이트먼 외 1명 
라라랜드 - 아이-링 리 외 1명

<핵소 고지>

음향믹싱상
핵소 고지 - 케빈 오코넬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 데이빗 파커 
컨택트 - 끌로드 라 하예 외 1명 
라라랜드 - 앤디 넬슨 외 1명 
13시간 - 그렉 P. 러셀

<펜스>

여우조연상
펜스 - 비올라 데이비스
문라이트 - 나오미 해리스  
히든 피겨스 - 옥타비아 스펜서 
라이언 - 니콜 키드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미셸 윌리엄스

<다우트> <헬프>로 이미 오스카 후보에 지명된 적이 있는 비올라 데이비스가 드디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녀는 눈물의 수상소감을 전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이 모두 흑인에게 돌아갔다. 2007년 이후 한 명 이상의 흑인 배우가 수상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일즈맨>

외국어영화상
세일즈 맨 - 아쉬가르 파라디
오베라는 남자 - 하네스 홀름 
타나 : 지상 최고의 사랑 - 마틴 버틀러 외 1명 
랜드 오브 마인 - 마틴 잔드블리엣 
토니 에드만 - 마렌 아데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는 트럼프 행정명령에 보이콧을 선언하며 시상식에 불참했다. 그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이미 한번 오스카를 수상한 적이 있다.

<파이퍼>

단편애니메이션작품상
파이퍼 - 앨런 바릴라로
바로드 타임 - 앤드류 코츠 외 1명 
펄 - 패트릭 오스본 
블라인드 바이샤 - 테오도르 위셰브 
피어 사이다 앤드 시가렛츠 - 로버트 밸리

<파이퍼>는 <도리를 찾아서>의 앞부분에 삽입된 작품이다.

<주토피아>

장편애니메이션작품상
주토피아 - 바이론 하워드 외 1명
모아나 - 론 클레멘츠 외 1명
붉은 거북 - 마이클 두독 드 비트
쿠보와 전설의 악기 - 트래비스 나이트
내 이름은 꾸제트 - 클로드 바라스

<라라랜드>

미술상
라라랜드 - 데이빗 와스코
컨택트 - 파트리스 베르메트
헤일, 시저! - 제스 곤처
패신저스 - 가이 헨드릭스 디아스
신비한 동물사전 - 스투어트 크레그

<정글북>

시각효과상
정글북 - 로버트 르가토 외 3
딥워터 호라이즌 - 버트 댈튼 외 3명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 존 크놀 
닥터 스트레인지 - 스테판 세레티 
쿠보와 전설의 악기 - 스티브 에머슨 

<핵소 고지>

편집상
핵소 고지 - 존 길버트
컨택트 - 조 월커
로스트 인 더스트 - 제이크 로버츠
문라이트 - 냇 샌더스 외 1명
라라랜드 - 톰 크로스

<더 화이트 헬멧츠>

단편다큐멘터리상
더 화이트 헬멧츠 - 올란도 폰 아인지델
익스트리미스 - 단 클라우스
조스 바이올린 - 캐핸 쿠퍼맨
4.1 마일즈 - 다프네 마치아라키
와타니: 마이 홈랜드 - 마르셀 메텔지펜

<싱>

단편영화작품상
싱 - 크리스토프 데아크 수상 
더 레일로드 레이디 - 티모 본 군텐 
타임코드 - 주안조 지멘네즈 페나 
내부의 적 - 셀림 아자지 
사일런트 나이트 - 아스케 방

<라라랜드>

촬영상
라라랜드 - 라이너스 산드그렌
컨택트 - 브래드포드 영
라이언 - 그레이그 프레이저
사일런스 - 로드리고 프리에토
문라이트 - 제임스 렉스톤

<라라랜드> 촬영현장의 저스틴 허위츠.

음악상
라라랜드 - 저스틴 허위츠
패신저스 - 토마스 뉴먼
문라이트 - 니콜라스 브리텔
재키 - 미카 레비
라이언 - 더스틴 오할로란 외 1명

주제가상
라라랜드 - City Of Stars
라라랜드 -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모아나 - How Far I'll Go
트롤 - Can't Stop The Feeling
짐: 더 제임스 폴리 스토리 - The Empty Chair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케네스 로너건 감독.

각본상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케네스 로너건
로스트 인 더스트 - 테일러 쉐리던
더 랍스터 - 요르고스 란티모스 
20세기 여인들 - 마이크 밀스 
라라랜드 - 데이미언 셔젤

시상자로 나선 맷 데이먼이 케네스 로너건의 이름을 불렀다. 맷 데이먼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문라이트> 촬영현장의 배리 젠킨스 감독.
베리 젠킨스 감독.

각색상
문라이트 - 배리 젠킨스
펜스 - 오거스트 윌슨
라이언 - 루크 데이비스
컨택트 - 에릭 헤이저러
히든 피겨스 - 엘리슨 슈로더 외 1명

<라라랜드> 촬영장의 데이미언 셔젤(왼쪽) 감독.

감독상
라라랜드 - 데이미언 셔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케네스 로너건
컨택트 - 드니 빌뇌브
문라이트 - 배리 젠킨스 
핵소 고지 - 멜 깁슨

데이미언 셔젤은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감독상을 수상한 사람이 됐다. 그는 32살이다.

남우주연상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케이시 애플렉
핵소 고지 - 앤드류 가필드
캡틴 판타스틱 - 비고 모텐슨
라라랜드 - 라이언 고슬링
펜스 - 덴젤 워싱턴

케이시 애플렉과 벤 애플렉(각본상 <굿 윌 헌팅>, 작품상 <아르고>), 이전까지 포함하면 형제가 모두 오스카 트로피를 받았다. 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여우주연상
라라랜드 - 엠마 스톤
엘르 - 이자벨 위페르 
재키 - 나탈리 포트만 
플로렌스 - 메릴 스트립 
러빙 - 루스 네가 

<문라이트>

작품상
문라이트
컨택트
핵소 고지
히든 피겨스
라이언
펜스
로스트 인 더스트
라라랜드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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