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는 좋은 영화다. 옥분(나문희)과 민재(이제훈)는 물론, 그들 주변 사람들을 그리는 시선마저 아주 따뜻하다. 민망한 순간을 남기지 않은 채 영화 속 인물들에게 골고루 애정을 담아내던 김현석 감독의 장기가 잘 드러났다. 옥분과 민재, 나문희와 이제훈과 함께 <아이 캔 스피크>에 포근한 숨결을 불어넣던 캐릭터와 그 배우들을 소개한다.
진주댁 염혜란
나옥분(나문희) 여사의 "Wassup"에 "예~ 저 왔어예~" 대답하며 등장하는 신스틸러 진주댁. 시장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혼자 사는 옥분의 벗이 돼주는 그녀는 <아이 캔 스피크>의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담당하는 큰 축이다. 존재감이 워낙 남달라, 크레딧이 올라갈 때 진주댁의 배우가 누구인지 살펴본 이가 에디터만은 아닐 것이다.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염혜란은 십수 년 전부터 영화에 단역으로 참여했고, 올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드라마 <도깨비>에서 은탁(김고은)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이모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영화 속에서 나문희 배우와의 케미가 상당했는데, 이미 연극 <잘자요 엄마>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모녀로 분한 바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의 신작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출연할 예정이다.
도깨비
영재 성유빈
민재(이제훈)의 어린 동생 영재는 민재가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다. 둘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도 그걸 해결해주는 것 역시 영재다. 이 속깊은 고등학생을 아역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온 성유빈이 연기했다. <완득이>에선 유아인, <마이 웨이>에선 오다기리 죠,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선 이현우 등의 아역을 맡았다. <대호>에선 만덕의 아들 석이로 분해, 최민식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김현석 감독은 <파파로티>(2012)에서 이제훈의 아역을 성유빈이 연기한 걸 보고 그를 영재 역에 캐스팅했다. 어쩐지 닮았더라니.
대호
혜정 이상희
근래 독립영화계를 눈여겨 본 이들이라면 족발집을 운영하는 혜정 역의 이상희를 보고 대번에 무릎을 쳤을 것이다. 사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매사에 곧이곧대로인 옥분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영화는 혜정의 억척스러운 삶마저 다독이는 데까지 주의를 기울인다. 부지런한 행보로 '독립영화계 전도연'이라 불리는 이상희는 작년 개봉한 동성애영화 <연애담>(2016)으로 백상예술대상, 들꽃영화상, 춘사영화상의 신인여우상을 받으며 더 많은 대중들에게 기억됐다. 곧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선 그녀의 신작 <당신의 부탁>과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만날 수 있다.
연애담
금주 김소진
김소진은 올해 상반기, 또박또박한 말투로 부패한 검사들을 옭아매는 안희연 검사 역으로 <더 킹>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는 호평을 독차지했다. 특유의 사무적인 목소리 때문일까, <아이 캔 스피크>의 금주를 보자마자 번뜩 안희연 검사가 떠올랐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캐릭터도 김소진의 캐릭터 접근도 사뭇 다르다. 안희연의 매서운 태도는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옥분과 정심(손숙)의 처지를 돕는 금주의 곧은 심지로 다듬어졌다. 내년 개봉 예정인, <내부자들>(2015)의 우민호 감독 신작 <마약왕>에선 주인공 이두삼(송강호)의 아내 성숙경 역으로 다시 관객을 만날 것이다.
더 킹
아영 정연주
아영은 츤데레다. "원칙대로 하면 된다"는 민재보다 더욱 사무적인 말투로 자기소개를 하다가도, 마치 혼잣말인양 다 들리게 민재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아스트랄한" 그녀만 등장하면 <아이 캔 스피크>는 만화 같은 엉뚱한 생기를 얻는다. 코미디 프로그램 <SNL 코리아> 크루로 활동하던 정연주의 가락이 제대로 먹힌 셈. 김현석 감독은 전작 <쎄시봉>(2015)에서 정연주와 작업한 데 이어 좀 더 큰 역할로 그녀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발산시켰다. 정연주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의 '인공호흡일 리가 없잖아'를 필히 체크하자. <아이 캔 스피크>와 달리 이건 '19금'이다.
음... 양팀장은 사실 비호감 캐릭터에 가깝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마인드로 관료제의 빈틈을 노리고자 계속 잔머리를 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철민의 구수하고 능글맞은 이미지를 입고 그럭저럭 봐줄 만한 인물이 됐다. 김현석 감독은 전작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시라노: 연애조작단>, <열한시>에 걸쳐 그를 조연으로 캐스팅해 남다른 애정을 자랑한 바 있다. 박철민은 평소 애드리브를 많이 시도하는 타입인데, 김현석 감독은 늘상 그걸 다 잘라버렸기에 이번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시라노: 연애조작단
종현 이지훈
"어정쩡한 눈빛 연기는 정말 발군이에요." 종현 역의 이지훈에 대한 김현석 감독의 평이다. 종현은 덩치도 크고 인물도 꽤 좋은데, 외모는커녕 매순간 멍때리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기억된다. 옥분의 민원 러시에 무표정하게 학을 떼거나 계단에 스티커를 반대로 붙였음을 확인하고 그걸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은근히 오랫동안 떠오른다. 배우 하정우와 친분이 두터워 그가 참여한 영화 <577 프로젝트>, <롤러코스터>, <허삼관>에 참여한 데 이어 <극적인 하룻밤>, <남과 여>,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도 얼굴을 비췄다.
롤러코스터
어린 옥분, 어린 정심 최수인, 이재인
<아이 캔 스피크>를 향한 대부분의 칭찬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사려깊은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폭력의 이미지를 전시하지 않되 그 경험의 아픔은 전달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 처참한 광경을 쳐다보아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어린 옥분/정심 역을 맡은 두 배우 최수인, 이재인은 이 버거운 시퀀스를 어떡해서든 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을 불어넣었다. 서로 의지하며 커다란 고통을 딛고 결국 생을 지켜낸 두 소녀의 연대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각자 <우리들>, 단편 <기계령>(옴니버스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의 하나로 제작)을 통해 주목받았던 최수인과 이재인의 귀한 재능이 여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들
기계령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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