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는 지성과 감성을 모두 사로잡는 놀라운 휴먼 드라마
<벤허>

아버지 세대의 인생 영화, <벤허>(1959)가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명절 단골 영화로 불리기도 하며, 국내 극장에서만 무려 7차례에 걸쳐 재개봉했을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보고 또 보는 영화 중 하나다. 사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자주 찾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영화사에 길이남을 역작으로 칭송 받는 <벤허>는 엄청난 제작 규모를 앞세워 만들어낸 거대한 스케일과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 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제작 뒷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다. 물론 <벤허>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그 제작 규모를 경신하고 있고, 또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벤허>와 함께 특히 사랑받아 온 영화들, 그리고 <벤허>와 같이 인류 역사와 드라마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제작되는 이른바 인생 영화 다섯 편을 골라봤다.


<클레오파트라>(1963)

#제작 규모 신기록 4년 만에 갱신
#로마시대판 사랑과 전쟁 스토리

<벤허>가 만들어졌던 1959년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벤허>의 놀라운 성공을 재현하고 싶어하는 영화 제작사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성공 신화 만들기에 뛰어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시 <벤허>는 MGM이라는 영화 제작사가 회사의 사활을 걸고 투자했을 만큼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였다. 당시 MGM과 경쟁 관계였던 20세기 폭스사는 <벤허>의 제작비를 훌쩍 뛰어넘는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자해 <클레오파트라>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런데 투자비용이 너무 커져버린 탓에 사실상 회사가 도산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덕분에 <클레오파트라>는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불운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클레오트라 여왕은 로마 제국의 정치적 음모와 암투 한가운데 던져진 인물이다. <벤허>의 유다 벤허와 유사한 인생의 굴곡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이다. 정상에서 바닥까지 마치 번지점프하듯 곤두박질치는 위기 속에서도 여왕으로서 국가도 이끌고 연인으로서는 사랑도 쟁취해야 했던 두 얼굴의 모습이 영화에 담겨있다. 특히 이 영화의 백미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세상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안토니우스 장군이 적국인 옥타비아군과 벌이는 해상 전투 장면이다. 결국 사랑과 조국을 모두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은 영화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선물을 안겨줬다.



<글래디에이터>(2000)

#주인공의 굴곡진 인생은 <벤허>와 판박이
#스펙터클한 검투 장면은 이 영화가 최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할리우드에서 한동안 만들어지지 않았던 로마 시대극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보려는 스콧 감독의 시도에서 시작했다. 그는 영화 제작에 앞서 로마제국 역사에 정통한 학자들을 불러모아 영화 촬영 전반을 감수받았다. 그 정도로 이전에 만들어졌던 어떤 시대극보다도 실제 역사적 사실을 영상에 고스란히 재현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요 시대 배경은 로마 제국의 최고 전성기였던 이른바 오현제(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다섯 명의 유명했던 왕권시대를 지칭하는 말.) 시대의 마지막을 다루고 있다. 게르마니아에 주둔한 북부군 군단장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러셀 크로우)가 최상위 귀족에서 노예 신분에 가까운 검투사로 전락해 가족의 복수를 이뤄내는 이야기는 <벤허>의 유다 벤허가 겪어야 했던 굴곡진 인생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그리고 <벤허>에 역사적인 대전차 경주 장면이 있다면 이 영화 <글래디에이터>에는 주인공 러셀 크로에게 73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박진감 넘치는 검투 장면이 있다. 촬영,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것은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가 제대로 된 호흡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개봉 이후에는 영화 속 역사 고증이 틀린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스팔타커스>(1960)

#검투사 영화의 원조격
#혁명전사, 그는 바로 슈퍼히어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 역시 당대 최고의 스타 배우였던 커크 더글러스, 토니 커티스, 진 시몬스 등의 배우들을 데리고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역사극을 만들고자 했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의 야심보다는 커크 더글러스라는 배우의 욕심이 더 많이 담긴 작품이다. 커크 더글러스는 <벤허>를 성공시킨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전작 <탐정 이야기>에 출연했다가 별 재미를 못 보고 실의에 빠져 있는 와중에 <벤허>의 성공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나도 할 수 있다.'는 감독과 배우의 패기가 똘똘 뭉쳐 만들어낸 영화사의 걸작이라 하겠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또한 이전에 만들어졌던 역사극들이 그러했듯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국 시절을 주목한다. 사실 이 영화는 일종의 혁명을 다룬, 노예반란이 소재인 대서사극인데 부패한 사회와 권력의 암투, 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전투 문화 등이 일상적이었던 로마 시대만큼 영화적인 요소를 활용할만한 시대가 없는 탓도 있었다. 영화는 중부 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였던 스파르타쿠스(커크 더글러스)가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하면서 노예들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글래디에이터>의 조상 격이라 할만한 하드보일드한 검투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박진감이 철철 넘쳐 흐르는 명장면이다. 나중에 드라마로도 제작됐는데 TV드라마 <스파르타쿠스>는 감동의 전달보다는 선정적인 소재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연출을 택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

#최초의 3D 역사극
#영화 역사상 가장 스텍터클한 성서 이야기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성서 소재의 역사극을 3D로 만들었다. 단지 그 뿐만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세트 촬영, 로케이션 촬영 등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미 <글래디에이터><킹덤 오브 헤븐> 등 많은 시대극을 연출하면서 노하우를 쌓았던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영화의 미술과 의상을 <글래디에이터> 때 함께 작업했던 아더 맥스, 잔티 예이츠 감독 등 당시 제작진에게 그대로 맡겼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을 위해 무려 5천 벌 이상의 옷을 만든 제작 일화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앞서 <스팔타커스>가 혁명전사의 이야기를 다룬 슈퍼 히어로 영화였다고 이야기했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역시 그와 유사하다. 아니, 오히려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 뼈대는 <벤허>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와 <스팔타커스>의 혁명전사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듯 하다. 자신의 종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야 하는 모세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출애굽기는 사실상 혁명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신을 믿고 따라야 하는 모세의 내면의 갈등은 종교적으로 깊은 주제의식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종교적인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관객들이 현대사회의 고민을 대입해볼 수 있도록 각색한 것이 매력 포인트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