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역사적인 순간. 봉준호 감독이 봉테일에서 봉도르(Bong d’Or)가 됐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황금종려상’의 무게가 잘 가늠되지 않는다면 다음의 영화를 떠올리면 될 것.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택시 드라이버>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지옥의 묵시록>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펄프픽션>으로 수상했던, 세계 거장과 명작이 거쳐 갔던 상이다.

<기생충>의 시작은 2017년 하반기. 봉준호 감독은 먼저 송강호를 캐스팅했고, 그의 아들과 딸로 캐스팅한 최우식과 박소담의 사진을 보며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공개된 미스터리한 포스터와 예고편은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기택(송강호),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 그리고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의 이름에서 제목인 ‘기생충’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것 역시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하지만 ‘비밀유지각서’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만큼, <기생충>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틈새 없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칸에서 영화가 공개된 이후에도 마찬가지. 칸영화제 상영 직후, 봉준호 감독은 각국 기자들에게 영어, 불어, 한국어로 ‘스포일러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최초로 국내에 <기생충>이 공개됐던 5월 28일 언론 시사에서도 마찬가지. 기자들에게 배포된 보도자료 맨 첫 장엔 ‘스토리 전개에 대해 최대한 감춰달라’는 봉준호 감독의 부탁 문구가 적혀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스포일러 조심’ 경보를 울렸으니, <기생충>이 어떤 영화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봉일까지 기다릴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칸 영화제에서 쏟아진 외신 반응을 탈탈 털어 <기생충>에 대한 힌트를 추려봤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분노의 메시지와 그를 형성해낸 복잡다단한 장르, 이 영화와 한핏줄로 언급된 영화들을 살펴보면 <기생충>이 어떤 분위기를 지녔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 <기생충>, 과연 어떤 작품일까?

기생충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개봉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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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의 양극화, 현실 사회 비판

<기생충>은
사회 계층 간의
역학 관계를 탐구하는
블랙 코미디 스릴러다.

-<BBC>

역시 외신 리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계층의 양극화’와 ‘현실 사회 비판’이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최우식)이 부잣집 저택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러닝타임 내내 전원 백수 가족과 글로벌 IT 기업 CEO 가족을 나란히 붙여놓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렇게 된다면 이들의 부와 가난이 더 극명히 구분될 것.

<괴물> <설국열차> <옥자> 등
봉준호 감독은
주로 공상과학,
우화의 설정을 빌려
이야기에 접근해왔다.

이번엔 은유의 형식을 버리고,
어두운 풍자와 신랄한 스릴러가 가미된 사실적 방식으로
자본주의, 계층의 양극화로 물든 현실 사회를 비판한다.

-<할리우드 리포터>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기생충>은 다소 직설적인 영화일 것으로 추측된다. 보기만 해도 곰팡이 냄새가 날 것 같은 반지하 방, 그곳에서 생계 수단과 직결되는 피자 박스를 접는 가족의 모습. 꼽등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으로 튕겨내는 기택이나, 벌레가 득실거리는 방을 “소독차가 온 김에 소독하자”는 터무니없는 말에 모두 동의하는 기택의 가족. 이들의 리얼한 모습만으로도 <기생충>이 현시대를 극명한 방식으로 선명하게 투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송강호 역시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위 평에 이어 <기생충>에 대해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시대에 적합한 펀치를 날리는 영화”란 수식 구를 덧붙였다.

<기생충>은
계급 분노에 대한
격렬한 피로 젖어있다.

봉준호는
현대 한국의
사회적 불평등에서 오는
칠흑적인 비극을
흥분한 상태로 조명한다.

-<버라이어티>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기자회견. “왜 이 영화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미리 엄살 좀 떨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기생충>은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이야기고,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다. 당연히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이해되리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다”고 밝혔다. “계급 분노에 대한 격렬한 분노”를 언급한 <버라이어티>의 평, 그리고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결과는 영화가 전 세계인의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음을 증명한다.


봉준호 감독 자체가 장르다

봉준호 감독은 늘
특정 장르의 좁은 틀에 갇히길
거부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기생충>은 아찔하고 탁월하며,
어느 장르로도 분류할 수 없다.

봉준호 감독 자체가 장르다.

-<인디와이어>

장르에 대한 언급으로 <기생충>을 예측해보자.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봉준호 감독은 같은 장르의 작품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상황을 넘어서는 상황을 만드는 감독.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출력은 전 세계가 인정한 봉준호 감독의 최고 장점이다. <인디와이어>는 <기생충>을 “어떤 장르로도 분류할 수 없다”고 평했다. <버라이어티> 역시 봉준호를 ‘장르 변주의 신’으로 칭했다.  

코미디, 호러, 드라마,
현실 비판, 슬래셔,
괴수, 살인 미스터리,
채식주의 선언 등
그간 봉준호 감독은
다양한 장르를 오갔다.

<기생충>도
이 리스트의 절반 이상을 오간다.

하지만 <기생충>의 웃음은
그 어떤 전작보다 더 어두워졌고,
분노는 악랄하고 사나워졌으며,
울음은 더 절망적이다.

-<버라이어티>

코미디, 호러, 드라마, 현실 비판, 슬래셔, 괴수, 살인 미스터리, 채식주의 선언. <버라이어티>의 평처럼 모두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장르 요소다. <버라이어티>는 <기생충>도 이 리스트의 절반 이상을 오간다고 언급했다. 여러 외신에서 언급됐던 코미디, “웃음은 어두워졌고 분노는 사나워졌으며 울음은 절망적이다”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실 비판, 영화의 장르로 분류된 드라마는 확정일 것. 어쩐지 ‘피’ ‘격렬한’ 등의 단어가 여럿 보이는 걸 보니 살인 미스터리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혹시 슬래셔는 아닐까?

요란스럽고 피에 젖은
사회 풍자를 날리는 <기생충>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우아함과
지하의 위협 사이
긴장감을 다룬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자꾸 ‘피에 젖은’이란 수식어가 반복되니 슬래셔 장르가 얹어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예고편 중반 스쳐 지나간 피도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

<기생충>은
사회 비판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세련된 이미지와
유동적인 카메라 워크,
빵빵 터지는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어떤 방향으로든
큰 스윙을 날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꽤 숙련된 감독이기 때문에,
그 스윙들은
늘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더 랩>

<기생충>의 웃음 코드는 어떨까? <더 랩>의 ‘빵빵 터지는 웃음’(belly laughs)이란 표현을 주목해보자. 봉준호 감독의 손끝에서 탄생한 시나리오의 힘이 크겠지만, 이를 잘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예고편만으로도 웃음을 전하던 송강호는 말할 필요 없이 훌륭한 연기를 선보일 것이다. 그는 올해 칸영화제의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손꼽히기도 했다.

카메라에 대한 언급 역시 그냥 넘길 수 없다. <더 랩>이 “유동적인 워크”를 선보였다 말한 카메라는 <버닝> <곡성>의 촬영을 맡았던 홍경표 촬영감독이 잡았다. 홍경표 감독은 제작기 영상을 통해 “클로즈업이 많은 영화” “배우들의 얼굴이 중요한 영화”라고 <기생충>을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이 쓴 시나리오 위에서 펄떡이는 감정을 선보일 배우들의 연기가 기대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한핏줄 영화는?

봉준호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에 충실하면서,
김기영 감독 연출작
<하녀>의 맥을 잇고 있다.

-<르 몽드>
<하녀>

해외 매체들이 꼽은 <기생충>의 한핏줄 영화를 소개한다. <르 몽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하녀>(1960)의 맥을 잇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칸영화제에서 열린 <기생충>의 기자회견에서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라든가 <충녀>에서 계단 이미지를 가져왔다. 김기영 감독님의 계단의 기운을 받으려고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기생충>은 예고편에서부터 계단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영화다. 박 사장의 저택을 비춘 장면에서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기택의 가족이 길 한복판에서 우왕좌왕하는 장면에서도 계단을 만날 수 있다.

<기생충>은
조셉 로지 감독의 <하인>과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테오레마> 각본을
떠올리게 만든다.

-<할리우드 리포터>
<하인>
<테오레마>

<할리우드 리포터>는 조셉 로지의 <하인>과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테오레마>를 <기생충>의 한핏줄 영화로 꼽았다. 두 영화는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상류층의 집에 은밀하게 침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기생충>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와
김기영 감독의
고전 스릴러를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비교된다.

이 영화들은 가난과 절박함에
쫓기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디언>
<아가씨>
<하녀>
<버닝>

<가디언>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임상수 감독의 <하녀>,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기생충>과 나란히 두고 설명했다. 세 영화 모두 특정 계급에 미치지 못한 이들의 분노를 조명하고, 이를 표출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더불어 <가디언>은 “<기생충>은 극 중 주인공이 모는 메르세데스 벤츠처럼 부드럽게 전개되는,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풍자적인 서스펜스 드라마 장르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인공이 모는 벤츠. 이들이 말하는 주인공은 이선균일까, 송강호일까?


광대가 없는 코미디, 악인이 없는 비극

한때 <기생충>은 <데칼코마니>라는 가제로 불렸다. 데칼코마니는 일정한 무늬를 종이에 찍어 다른 표면에 옮겨 붙이는 장식 기법, 즉 기준점을 두고 똑같은 무늬가 양옆으로 펼쳐지는 회화 기법이다. 박 사장의 가족을 양 옆으로 둘러싼 기택의 가족을 담은 해외 포스터를 보니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인 두 가족은 어떻게 겹쳐지는 걸까. 기생충과 숙주라는, 상충하는 위치에 놓여있을 두 가족이 점점 닮아가기라도 하는 걸까?

모든 것은 아직도 의문투성이다. 우리는 봉준호 감독의 말을 따라가자.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광대가 없는 코미디, 악인이 없는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두 가족 중 누구의 편에도 치우칠 수 없는 영화란 말로 들린다. 가장 확실한 건 이 모든 것을 극장에서 확인하는 것. 봉준호 감독의 “맹렬한 희비극”, <기생충>은 5월 30일 개봉한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