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스턴 지역의 코믹북 전문 샵 ‘뉴 잉글랜드 코믹스’의 단골 중에는 당시 18살이던 벤 에드런드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그는 졸업 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커리어를 찾는 동시에 취미로 프리랜서 만화 작가를 겸하고 있었다. 학교 끝나고 뉴 잉글랜드 코믹스에서 종종 주인이나 손님과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가게 주인은 격월로 발행하던 무료 배포용 소식지 <뉴 잉글랜드 코믹스 뉴스레터>에 짧은 만화를 실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뉴스레터라 해봤자 여느 코믹북/취미 샵들이 배포하던 것과 같이 A4, A5용지에 손으로 쓰거나 타자기로 친 아마추어 인쇄물이었지만, 어쨌든 가게의 홍보물이니 새 마스코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진드기를 모티프로 삼은 히어로, '더 틱'은 그렇게 탄생했다. 애초 상업성을 기대하고 만든 캐릭터도 아니고 일회성 홍보 목적으로 만든 창작물이었기 때문에 완성도나 진지함은 상관이 없었다. 더 틱은 1986년 <뉴 잉글랜드 코믹스 뉴스레터> 14호의 센터폴드 페이지에 첫 등장한다. 가게 주인이나 작가 벤 에드런드는 향후 20년간 이 진드기 인간이 두 번씩이나 TV 시리즈로 제작되리란 것을 예상했을까?
그런데 이 캐릭터가 은근히 손님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지역에서 가장 큰 점포 중 하나였던 뉴 잉글랜드 코믹스의 손님들은 더 틱의 재등장을 계속 요구했고, 점포는 더 틱을 자체 출간하기로 결정한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인디 만화 붐은 1980년대에도 거세게 불었고,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만화들을 흑백으로 소량 인쇄해 자체 판매하고 있었다. 1984년에 등장한 <틴에이지 뮤턴트 닌자 터틀즈>도 이런 류의 인디 만화로 첫 등장했다. 더 틱은 1988년 32페이지짜리 흑백 만화로 첫 출간되었고, 반응은 꾸준히 괜찮아서 1990년대까지도 쭉 출간된다.
벤 에드런드가 매사추세츠 아트 컬리지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 한 완구 라이센싱 업체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지 아이 조> TV 만화 시리즈 등을 제작한 선보우 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더 틱을 애니메이션과 완구 라인으로 개발하자는 제안이었다. 벤 에드런드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그렇게 1994년, <더 틱 애니메이티드 시리즈>가 FOX 네트워크에서 토요일 아침용 카툰으로 처음 방송됐다. 관련 완구의 마케팅도 이어져 더 틱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위상이 높아졌다. 10년 앞서 데뷔한 닌자 거북이들의 범세계적인 인기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국 아동 청소년들이 바로 알아보는 정도의 인지도까지 얻은 것이다. 취미로 만화를 그리던 벤 에드런드로서는 놀라운 성과였다. 그는 영화·TV시리즈 감독의 커리어도 포기하지 않고, 성공적인 만화가이자 프로듀서, 감독으로 성공적인 멀티 플레이어가 된다.
2001년, FOX 네트워크는 더 틱을 실사 TV시리즈로 제작한다. 1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첫 시즌을 구상하였으나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9회로 조기 종영했다. 하지만 완성도는 꽤 높아서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7년 올해, 아마존은 프라임 멤버들에게 스트리밍하는 자사 자체 제작 시리즈로 <더 틱>의 제작을 선언, 파일럿 에피소드를 곧 방영한다고 발표했다. 시리즈는 아직 제작 중이며 빠르면 올해 안에 공개된다.
미국 만화의 암묵적 관례대로, 더 틱이 처음 등장한 뉴스레터도 가격이 많이 올라 이제 100만원대를 호가하는 귀한 몸이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더 틱이 등장하는 페이지 상단에 작가 벤 에드런드 자신이 “더 틱이 나중에 유명해질 수 있으니 이 뉴스레터를 버리지 말고 잘 소장해두라”고 명시해놓았다는 것이다. 당시 18세 풋내기 고등학생의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얼마나 있었을까?
최원서 그래픽노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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