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를 보고 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빠, 권상사 못 이겨?”라며 능청스러움을 뽐내던 ‘옥분이’ 고민시에게 입덕하게 된다. 고민시가 연기한 옥분이는 단연 <밀수>의 웃음을 하드캐리 하는 인물. 고민시는 함께 출연한 김혜수, 염정아, 박정민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만의 개성을 톡톡히 뽐내며 다시 한번 고민시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 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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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류승완
출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김재화, 박준면, 박경혜, 주보비
개봉 2023.07.26.
“늘 주체적인 인물에 끌려요. 그중에서도 밑바닥부터 자신의 힘으로 목표를 이뤄낸 인물이 좋고요. 자신의 생각과 중심이 확실히 잡힌 주체적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하고 싶어요.” (2021년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고민시의 답변)
주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던 고민시의 바람은 그가 걸어온 길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다. 고민시는 몇 개의 작품만으로 빵 뜬 라이징 스타 같지만, 실은 고민시는 처음부터 단단한 땅 위에서 마음껏 연기해온 배우는 아니었다. <밀수>로 고민시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을 위해 고민시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모아봤다.
#예담 고민시, Go Minsi
몇 년 전 스님이 지어줬다던 그의 호, ‘예담’. 나아갈 예(詣), 평평한 땅 담(埮) 자를 써, 평평한 땅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이다. 고민시는 항상 사인을 할 때도 ‘예담’이라는 호를 붙인다고.
한편, 독특하면서도 개성 있는 ‘고민시’라는 이름은 본명이라고 한다. 뜻 역시 아름다운데, 높을 고(高), 하늘 민(旻), 볼 시(視) 자를 써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담’이라는 호와 합치면 ‘높고 평탄한 곳에서 하늘을 보며 나아가라’라는 뜻이 된다. 고민시가 영어 이름으로 ‘Ko Minsi’가 아닌 ‘Go Minsi’를 택한 것도 이 때문.
#웨딩플래너
높고 평탄한 곳에서 하늘을 보며 나아가라는 뜻과는 달리, 고민시가 눈에 띄는 배우로 성장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래의 배우들이 어릴 때부터 연기를 배우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배우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온 것과는 달리, 고민시는 고등학교 졸업 전, 19세부터 생업에 뛰어들었다.
어릴 때부터 웨딩 플래너로 일했던 경험은 지금의 연기에 큰 자산이 됐다. 수없이 많은 신랑, 신부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다 상경해 연극영화과 입시 준비를 하다 떨어졌고, 독립 영화와 <72초 TV> 등의 웹드라마에 출연했다.
<밀수>의 류승완 감독은 고민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오히려 어릴 때부터 연기하지 않아서 특유의 버릇이나 습관이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민시는 <밀수>의 옥분이 역을 제안받은 후 당연히 오디션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영화감독
저는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여자입니다. 제가 배우를 시작한 순간부터, 글 쓰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글을 써도 주인공은 결국 제가 되고, 독립된 생명체가 되어 어느 순간 저를 노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작가는 저고,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저는 의심할 여지 없는 저입니다. 그 두 사람을 마주하게 해보고 싶어 이번 평행소설을 연출하게 됐습니다. (고민시의 <평행소설> 연출 의도)
수많은 오디션을 거쳤지만 수없이 낙방했던 고민시. 주어진 역할이 없어 고민하던 고민시는 내친김에 역할을 직접 만들기로 한다. 그는 이전에 웹 드라마를 촬영했던 동료들과 함께 단편영화 <평행소설>을 만들고, ‘SNS 3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고민시는 <평행소설>의 연출, 주연,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그때쯤 고민시는 에세이를 쓰는 걸 좋아했는데, 마침 자신을 떠올리며 쓴 글이 있어서 영화화를 결심했다. <평행소설>은 고민시의 고민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표현한 단편영화다.
- 평행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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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고민시
출연 고민시, 임투철
개봉 미개봉
고민시는 연출의 꿈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40~50대가 되면, 마치 배우 문소리처럼 작품을 연출해 보고 싶다고. 고민시는 마치 <평행소설>의 서사처럼, “언젠간 여러 세계관이 얽히고 펼쳐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밝혔다. 고민시는 <우리집>,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의 팬이기도 하다.
#글과 책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고민시는 글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는 꿈 역시 가지고 있다. 마치 <밀수>에서 함께 호흡한 배우 박정민이 「쓸 만한 인간」이라는 에세이집을 낸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로 울림을 전하고 싶다고. 40대 즈음엔 단편 모음집을 내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도 있다.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은 고민시를 펑펑 울린 작품이다. 「문장수집가」 시리즈 역시 그가 종종 꺼내보는 책인데, 그중 줄리안 무어의 말은 고민시가 지칠 때 큰 힘이 되는 글귀다. “실수가 중요한 것처럼 결함도 중요하다. 당신은 실수를 함으로써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불완전함을 통해서만 진짜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은 고민시가 종종 넘어질지언정 아예 주저앉지는 않게끔 하는 원동력이다.
책에서 배역에 대한 힌트도 얻는다. <오월의 청춘> 속 ‘명희’라는 인물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보며 연구해낸 결과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으로,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탄생한 소설이다.
#피 묻은 작품
유난히도 고민시는 ‘피’와 인연이 잦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 KBS2 드라마 <오월의 청춘> 등. 고민시는 “근 4~5년 동안 피가 안 묻은 작품이 없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이제는 피가 묻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다는 고민시의 바램은 그래서일 터.
사실, 고민시는 ‘피 튀기는’ 장르를 좋아한다. 고어나 스릴러 등의 '텐션 높은 장르'도 문제없다. <마녀>를 촬영할 때, 처음으로 피를 흘리는 분장을 해보고는 그 재미에 푹 빠졌다고. 어쨌거나, 고민시는 20대 여성 배우로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즐겨 맡는 것은 분명하다.

-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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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훈정
출연 김다미, 조민수, 박희순, 최우식, 고민시, 최정우, 오미희, 정다은, 김병옥, 이주원
개봉 2018.06.27.

- 봉오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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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원신연
출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키타무라 카즈키, 이케우치 히로유키, 박지환, 최유화, 성유빈, 이재인, 다이고 코타로
개봉 2019.08.07.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