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빈센트 반 고흐… 예술에 문외한이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일 테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그들의 대표작도 알 수 있다. 홍대 골목을 지날 때 보이는 그래피티에서 뱅크시를 떠올리거나, 빈지노 플레이리스트에서 ‘Dali, Van, Picaso’를 우연히 만나는 등 반드시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일상 곳곳에 스며든 그들의 이야기는 삶을 보다 다채롭게 만든다. 오늘은 미술관에 가지 않고 예술적 영감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화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유명 화가의 전기영화 중 화가의 화풍을 꼭 닮은 영화로 엄선했다. 소개할 다섯 편 모두 연출에서 화가의 개성이 묻어나와 마치 스크린 전체가 캔버스가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리스트 외에도 더 알고 싶은 화가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살바도르 달리 - <달리랜드>
<달리랜드>(2023)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하면 떠오르는 익살스러운 모습이 있다. 타고난 괴짜처럼 보였으나 그의 기행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노력이었다. 달리가 세상을 떠난 형의 환생이라 믿었던 그의 부모는 형 이름을 달리에게 붙여주었다. 그는 형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갖은 기행을 일삼았는데 그 과정에서 다중인격 등 다양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이로 인해 미술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한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감을 받아 초현실주의 작품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독재자를 긍정하던 달리의 사상은 기존 예술계와 대척점에 있었기에 제명 당하고 만다. 가족부터 제도권까지,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는 달리는 아내 갈라를 만나 사랑을 하며 내면을 치유한다. 갈라의 불륜으로 말년까지 안정이 유지되진 않았지만.


<달리랜드>는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속도감 있게 따라간다. 달리의 광팬인 제임스(크리스토퍼 브리니)가 우연한 기회로 달리(벤 킹슬리)의 조수가 되어 달리의 세계를 엿보는 이야기로, 담담하고 서정적인 전기 영화와 달리 번화하고 격정적이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예술계의 모습과 영원한 뮤즈이자 아내 갈라(바바라 수코바)에게만 보여주는 천재 화가의 진짜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달리랜드

감독 메리 해론

출연 벤 킹슬리, 바바라 수코바, 크리스토퍼 브리니

개봉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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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 <러빙 빈센트>
<러빙 빈센트>(2017)


화가를 향한 존경을 <러빙 빈센트>보다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세계 최초 손으로 그린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인 <러빙 빈센트>는 125명의 화가가 십여 년간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해 그린 작품으로, 고독하지만 뜨거웠던 고흐의 일생에 바치는 헌정이다.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는 그는 자살하기 전 단 10년 동안 모든 작품을 완성했는데 생전에는 빛을 못 보다 사후에 비로소 알려지게 된다.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결국 리볼버로 자살을 시도하고 총알에 의한 감염으로 이틀 뒤 사망한다. 동생 테오 반 고흐는 형의 죽음으로 정신질환이 발병해 6개월 후에 뒤따라 사망한다.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자살을 추적하는 추리극 형식으로, 집배원 조셉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의 아들, 아르망 룰랭(더글라스 부스)이 테오(체자리 루카스윅스)에게 빈센트(로베르트 굴라치크)의 마지막 편지를 전해주러 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고흐는 편지에서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바닥 중의 바닥 인생”이라 표현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라며 예술을 향한 열정을 보여준다. 일렁이는 그의 붓질처럼, 영화는 고흐 영혼의 질감까지 표현해내며 가장 ‘고흐다운’ 모습으로 추모한다.

러빙 빈센트

감독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출연 더글러스 부스, 시얼샤 로넌, 제롬 플린, 에이단 터너, 헬렌 맥크로리, 크리스 오다우드, 존 세션스, 엘리너 톰린슨, 로버트 굴라직, 빌 토머스

개봉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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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 -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2011)


현존하는 가장 미스터리한 아티스트, 뱅크시는 자신을 예술 테러리스트라 칭한다. 2018년, 영국 소더비 경매장에서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작품이 한화로 약 15억 원에 낙찰되었는데, 그 순간 숨겨져있던 파쇄기로 작품이 파쇄된 사건은 예술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소더비 책임자는 “우리는 뱅크시 당했다(Banksy-ed)”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팔레스타인 장벽에 평화를 소망하는 그래피티를 그리는 한편, 루브르 박물관에 패러디 작품을 몰래 전시하며 권위에 도전했다.

티에리 구에타


뱅크시에 대한 신상정보는 밝혀진 바 없기에 그의 생애를 기록한 영화는 없지만 그가 직접 연출한 다큐멘터리는 있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뜬금없이 미국 구제 옷가게 사장이자 기록광인 티에리 구에타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거리 미술을 기록하던 티에리가 직접 그래피티를 하게 되는데 그게 소위 ‘초대박’을 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충 이야기하면 조수가 알아서 다 만들어준 작품들로 그는 크게 전시회를 연다. 관객 모두가 ‘저 전시회는 망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스토리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뱅크시가 대충 써준 코멘터리를 대대적으로 선전한 덕분에 전시회는 평단의 극찬을 받고, 티에리는 한순간에 스타 작가가 된다. 작품의 제목은 선물 가게를 반드시 거쳐야 출구가 나오는 미술관의 구조를 나타낸 것인데, 허례와 자본에 의해 굴러가는 현대미술의 허점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감독 뱅크시

출연 뱅크시, 티에리 구에타, 스페이스 인베이더, 쉐파드 페어리, 리스 이판

개봉 201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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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프리다>
<프리다>(2003)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으나, 본인은 “나의 현실을 그릴 뿐”이라며 초현실주의라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고통의 여인’이라 불릴 정도로 인생의 굴곡이 많았는데, 6살에 소아마비를 앓고 18살에는 전차 사고로 하반신이 산산조각 난다. 계속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그를 위해 부모님은 그림을 권했고, 이때부터 프리다는 그림으로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1살 연상인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결혼하는데 자신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르는 등 여성 편력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았다. 훗날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해 “내 인생에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에 치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다. 디에고가 더 최악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등 디에고와의 결혼 기간은 프리다 인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 <프리다>는 프리다(셀마 헤이엑)의 지난한 고통과 예술을 두 가지로 압축한다. 사고로 인한 육신의 고통과 디에고(알프리드 몰리나)에 의한 정신적 고통에 집중해 그의 고통이 어떻게 캔버스로 옮겨지는지를 조명한다. 자신의 초상을 왜 그리도 헤집어놓는지, 척추의 자리에 쇠기둥을 박아 넣은 자화상으로 산산조각 난 그의 정신과 육신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의 정치적 신념과 투쟁의 역사는 사라져 아쉽지만, 그의 강렬한 정서만큼은 형형하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프리다 고유의 화풍을 스크린에 담아내고자 독특한 연출 기법을 사용하는데, 그의 작품을 라이브액션으로 선보이거나 영상과 그림의 경계를 교묘히 연결해 환상이고 강렬한 그의 스타일을 그대로 담았다. 이 영화가 마치 거대한 프리다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프리다

감독 줄리 테이머

출연 셀마 헤이엑, 알프리드 몰리나, 발레리아 골리노, 미아 마에스트로, 로저 리스, 디에고 루나, 패트리시아 레이스 스핀돌라, 마가렛 샌즈

개봉 200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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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핀 루이 - <세라핀>
세라핀(2008)


위 네 명의 화가보단 낯선 이름, 세라핀 루이는 19세기 프랑스 화가로 미술 교육은커녕 당장 오늘 벌어 오늘 먹고사는 노동자였다. 7세 이전에 부모를 잃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양치기나 청소부 등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괴상한 옷차림에 산만한 행동으로 조롱 받던 그는 다락방에서 “천사가 성모 마리아를 위해 그림을 그리라는 사명을 전달했다”고 말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집세를 못 내도 물감은 샀고, 종이가 없다면 병, 도자기, 널빤지, 가구 위에까지 그림을 그렸다. 제도권 밖에서 홀로 불타오르던 화가 세라핀 루이는 저명한 미술평론가 빌헬름 우데를 만나 후원을 받으면서 피어오르나 싶었으나, 끝끝내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2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인 1942년, 정신이상자 수용소에서 사망한다.


영화 <세라핀>은 마을에서 무시당하던 하층민 세라핀(욜랭드 모로)이 빌헬름 우데(울리히 터커)를 만나 재능을 꽃피우고, 1차 세계대전 헤어졌다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담백한 영상과 달리, 영상 안 세라핀의 그림은 대담하고 뜨겁다. 그가 그린 꽃과 나무는 벌레가 움직이는 듯 기괴하고 생동했다. 이는 강렬한 원색과 어우러져 상처 입은 자의 기괴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나타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스러진 천재, 세라핀을 연기한 욜랑드 모로는 광기와 천재성 사이에서 망상을 앓고 있는 그의 모습을 과장하지 않고 표현해냈다.

세라핀

감독 마르탱 프로보스트

출연 욜랭드 모로, 울리히 터커, 안네 베넨트, 제네비에브 무니치, 니코 로그너, 서지 라리비에레, 프랑수아 레브런, 레나 브레반, 코렌틴 로벳

개봉 20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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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